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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외지의 겨울

Views 654 Votes 0 2015.12.06 03:0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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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지(外地) 의 겨울


외지의 겨울3.jpg


  십일 월에 접어 들면서부터 델타의 산림평야는 눈 속에 묻히고 살을 에이는
듯한 한랭한  대기에 휩싸였다. 그것은 폭설이 쌓인 북극의 설야가 깊어가고
있음을 의미했다.  백야에 피어나던 그리움들은 이제 기나긴 겨울밤의 고독한
기억속에 조용히 머물고 있었다.
  그러나 내게 있어서 백야에 피어나던 그리움은 외지의 슬픈 겨울 속에 잠들지
못하는 아픈 기억의 상처일 뿐이었다.
  앤지가 내게 다녀간 지 이개월 정도 지난 십이 월 초순경 나는 그녀가 스월드의
정신요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북극의 긴 겨울밤을 하루도 술 없이는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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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월드는 알라스카에서 그녀를 만났던 날 함께 밤을 지새웠던 곳이기도 했다.
  나는 음울하고 발작이라도 일으킬 것만 같은 나날을 보내면서 버틸 정신력에도
한계가 있음을 실감했다.
  앤지가 그녀의 딸 리자를 데리고 내게 다녀간 후에도 나와 그녀는 가끔 안부
전화를 주고 받았고 그녀로부터 속옷 몇점을 소포로 받아 보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늘 앤지에 대한 폴의 이야기를 가정된 최악의 경우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하나의 현실로 나타난 것이었다. 지난 해 십이 월 초순경
그녀는 앵커리지에 있는 종합병원의 정신과 전문의로부터 우울반응증세라는
진단과 함께 담당 의사의 권유로 스월드의 정신요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고
입원한 다음 날 오후 그녀는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그녀는 인사말도 없이
조용하고 나직한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 재만씨 지금 내가 어디 있는줄 아세요. 스월드의 정신요양원이예요. “
“ 아니 뭐라고 ? “
“ 의사의 최종 진단으로 어제 요양원에 들어왔어요.  나도 실감이 나질 않는군요.”
“ 도대체 어떻게 그런 진단이 니왔지 ? “
“ 그야 의사가  내리는 진단이지요. 결국 죠오지도 의사의 권유와 지시에 응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나로서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요. 나 자신도 실감이 나지
않지만 마지막 막다른 길목에 이른 것 같군요. “
“ 진단 결과가 뭐지 ? “
“ 우울반응이라는 거예요. 진단을 그렇게 받고 이곳에 와보니 오히려 나 자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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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더 잘 이해할 것 같아요. 그리고 이제는 끝이 보이는것 같기도 하구요. “
“ 무슨 소릴 하는거야 ! 그렇지 않아. 뭔가 분명히 잘못되어 있는거야. 조금도
딴 생각하지 말아. 내가 조만간 연지에게 가겠어. “
“ 그렇게 마음 쓰지 마세요. 이제 어느 누가 내 곁에 머문다고 해도 병이
고쳐질 리 없을 거예요. “
그녀의 차분한 음성에 가슴이 답답하게 조여오는 듯 했고, 그녀는 고집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 저는 이곳 요양원에 들어오기 전날 밤만해도 재만씨의 꿈을 꾸었어요.
그 때 저는 자신에게 부끄럽기도 하면서 죽고 싶도록 허무하기도 하더군요.
그러나 어제 요양원에 들어와 밤새껏 잠 못 이루고 온갖 잡념과 싸우고 나니
이제는 마음이 좀 편해졌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결국은 혼자일 수밖에
없었는데…..”
“ 연지 , 그만 해 ! “
그녀의 말을 막으며 무엇인가 비장한 결심을 그녀에게 들려주지 않을수 없었다.
“ 연지 내말 잘 들어. 연지만 좋다면 어디라도 좋아. 함께 단둘이 멀리 떠나서
조용히 살고 싶어. “
말을 하자마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고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 올랐다.
그러나 내가 마지막으로 그녀를 위해서라면 이 말밖에는 선책의 여지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 재만씨 그것도 현실에 어울리지 않는 허세예요. 처음 알라스카에서 재만씨를
만나 얘기했듯이 저는 스스로 유배지를 찾아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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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제 그 유배지에서 유형의 길을 가고 있는 거예요. 내겐 당연한 결과
일지도 몰라요. 그리고 황폐해 져가는 내인생에 재만씨를 끌어들여서는
안된다는 결심을 했어요. 이제야 당신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알 것 같아요. “
그녀와 전화를 끊고나자 나는 무작정 밖으로 뛰쳐나와 어두운 허공을 향해
마구 외쳐대고 싶었다. 빛과 어둠이 밀려난 저편 어딘가에서 그녀와 세상에
다시 태어나 만나게 해달라는 염원으로 소리없이 흐느껴 울었다.
  “ 피제이, 자네 도대체 왜 이렇게 자제를 못하는 거야. 자네도 앤지처럼
요양원 신세를 지고 싶어서 그러나. 그만 마셔. “
빌리는 내 앞 카운터에 놓인 와인병을 집어서 한쪽 구석으로 밀쳐 놓았다.
  “ 차라리 앤지처럼 정신 요양원에라도 들어갈 수 있다면 좋겠어. 그편이
나을 것 같애. “
나는 빌리를 외면한 채 글라스에 반쯤 남아있던 와인을 단숨에 비워버렸다.
  “ 손님들도 다 가버렸어 ? 어서 문이나 닫어. 어쨌거나 이곳은 자네의  직장이라구.
자네가 이렇게 술이나 마시고 자제를 못한다면 차라리 델타를 떠나는 것이
좋을 것 같군. 그리고 앤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자신을 아끼게. 그것이
자네를 위한것이고 또 앤지를 위하는 것일 테니까. “
빌리는 정말 걱정을 하고 있었다.
  “ 걱정 말라구. 사람들이 만나고 헤어지고 가고 오는 것도 모두가 운명이요,
팔자소관이다 이 말씀이야. 나는 돌지도 않을 뿐더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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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콜중독에도 걸리지 않을테니 염려말라구. “
  “ 자네는말없이 과묵한 성격이지만 내심 자만이 지나친 사람이야. 그래서
앤지에게 인간적인 책임과 빛을 지고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구. “
  빌리는 이런 식으로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이런말을 해주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빌리의 말대로 과연 지나친 자만심 때문에 앤지에게
인간적인 책임과 빛을 지고있는 것일까. 이런 식의 자학이 결국 내 자신을
위로하는 것에 지나지않음을 나는 깨달았다.
  “ 빌리, 피제이가 하루라도 빨리 앤지에게 다녀올 수 있도록 손을 써 보라구.
눈 속에 길이 막혀 피제이도 답답해서 그러는 거 아니냐고. “
한쪽에 비켜서서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던 톰이 가까이 다가오며 말했다.
  “ 참견말고 가만히 있으라구. 내가 알아서 할거야. 벌써 군부대에 특별히
부탁을 해놓고 있는 중이야. “
“ 하지만 옆에서 보고 있으려니 피제이가 너무 딱해서 하는 말이야. “
“ 나 이만 가 보겠어. 톰 자네는 어떡할거야 ? “
“ 먼저 가라구. 난 피제이가 문닫는 것 도와주고 갈테니까 . “
“ 피제이하고 밤새껏 술친구나 하려고 ? “
“ 아내야. “
“ 마음대로 해. “
빌리는 답답하다는 듯이 나가버렸다.
빌리가 밖으로 나가자 톰은 내게 바싹 다가서며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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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제이 저 뒤를 보라구 . “
톰은  눈짓과 턱으로 등 뒤를 가리켰다.
나는 톰의 말대로 어두운 구석자리를 바라보는 순간, 이미 집으로 돌아갔으리라고
생각했던 자넷트가 아직도 그곳에서 빈 술잔을 놓고 혼자 앉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비스듬히 벽에 몸을 기대고 턱을 괸 채 머리를 숙이고 있었기
때문에 졸고 있는지 아니면 무슨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지 언뜻 봐선 알 수가
없었다.
“ 술을 많이 마신것 같군. “
톰은 귓속말로 일러 주었다.
그녀에게 다가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턱까지 차오르는 취기를 느꼈다.
“ 자넷, 아직 돌아가지 않았군요. “
그녀는 천천히 머리를 들어 나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거의 풀려 있었고
웃을 듯 하면서 눈을 내리깔았다.
“ 피제이하고 술이나 실컷 마시고 싶어서 기다렸어요. 친구들은 다 갔어요?”
“ 자넷, 집으로 돌아가요. 봐요 아무도 없어요. 이제 문을 닫아야 한다구요. “
“ 그럼 문 닫고 우리집으로 같이 가요. 가서 마음놓고 편하게 술 한잔
하면 되잖아요. “
톰의 말대로 그녀는 술을 많이 마신것 같았다. 그녀가 술을 자주 마시는 것은
잘알고 있었으나 이렇게 취한 모습을 본 적은 없었다.
“ 여기 톰이 있으니 이 친구에게 집으로 모셔다 드리도록 부탁할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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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양하겠어요. 피제이가 직접 데려다 주면 안되나요 ? “
  나는 카운터 쪽에 서있는 톰을 바라보았다. 그는 머리를 끄덕였다.
  “ 그럼 스노우 모빌  키를 제게 주세요. “
  그녀는 코트 주머니에서 열쇠가 몇 개 달린 고리를 꺼내어 내게 건네 주었다.
  “ 톰, 자넷트의 집을 알고 있지 ? “
  “ 물론이지. “
  “ 그럼 톰이 앞장서서 안내해 줘. 그리고 나를 데려다 달라구. “
  파커에다 스노우 부츠를 끼어신고 자넷트를 부축하며 밖으로 나왔다.
사실은 톰이 아니면 나 자신도 나서기가 꺼려질 수밖에 없는 눈길이었다.
  눈이 쌓이면 이곳 주민들은 밧데리 엔진이 달린 스노우 모빌을 이용하여
가까운 곳을 왕래했다. 그것은 에스키모들이 이용해 오던  개썰매의 대체
장비가 되었다. 물론 요즈음도 지역에 따라 개썰매를 사용하는 에스키모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 숫자는 그리많은 편이 아니었다.
  델타에서는 톰이 유일하게 스노우 모빌과 함께 개썰매를 가끔 이용하고 있었다.

  나는 아무런 방향 감각도 없이 앞에서 길을 잡고 있는 톰의 스노우 모빌을
바싹 뒤따랐다. 눈길을 헤치며 자넷트의 캐빈에 이르렀을때 때 아니게
한 차례의 매서운 바람과 함께 눈보라가  회오리치며 숲속으로 날아갔다.
  그 순간 자넷트는 나의목을 두팔로 끌어안으며 내 가슴에 안겨왔다.
  그녀의 숨결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애처롭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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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넷, 다 왔어요. “
  “ 함께 들어가요. “
  “ 아니요. 난 톰과 함께 돌아가겠어요. “
  “ 톰 ! 혼자 돌아가세요 ! 피제이는 나중에 내가 데려다 줄거예요. “
하고 그녀는 뜻밖에 큰 소리로 외쳤다.
톰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나의 눈치를 살폈고 나는 머리를 끄덕였다.
  “피제이, 그럼 내일 연락줘. “


  자넷트를 부축하고 그녀의 캐빈에 들어서자 생각보다는 아늑하고 정돈이
잘 되어 있었다. 그녀는 내게 거실의 소파에 앉으라고 권하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명색이 대학강단에서 지식을 전달하는 식자의 거실답게 두 개의 벽면을 차지한
서가에는 많은 책들이 꽂혀있고 여러가지 모피 장식품들이 눈에 띄었다.
  잠시 후 홈웨어로 갈아입은 자넷트는 침실문의 손잡이를 잡은채 벽에 기대어
앉아있는 나를 가만히 응시했다.
 “ 피제이, 술은 얼마든지 있어요. 우리 더마실까요 ? “
 “ 저는 이제 자신이 없어요. “
  “ 그러면 이 긴 밤을 어떻게 보내는 것이 좋을까요. 당신은 샌님같은 사내라구요.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하려고 하지않는 철의 장막 속에 가려진
사내라구요. 아무튼 좋아요. 내가 당신을 내 집에 데리고 온 이상 당신의 기분을
상하게 만든다면 그건 커다란 실례겠지요. 자 자켓을 벗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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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두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녀에게 말없이 겉옷을 벗어 건네 주었고 그녀는 옷걸이에 파커를
 건 다음 화덕에 마른 장작을 지피고 불을 피웠다.
  “ 밥은 어디 갔어요? “
  “ 저의 아빠가 지난 번 추수감사절 휴가때 와서 데려갔어요. “
  그녀는 내 곁에 다가와 앉으며 의미있게 웃었다.
  “ 서로 함께 있으면서 느끼는 고독한 소외감은 혼자서 느끼는 외로움보다
더 고통스럽고 견디기가 어려워요. 피제이는 그런 걸 느껴보셨나요 ?”
  문득 내 자신 스스로가 앤지에게 고독한 자유를 통해서 인간은 진정한
자기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한 말을 기억하며 자넷트가 내게 하고 있는말이
그런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 사람은 누구나 고독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
  “ 고독한 자유라고 했어요 ? “
   “ 네. “
  “ 정말 멋진 표현을 하시는 군요. “
  그녀는 조금 전과는 달리 깊은 눈빛으로 나를 응시했다.
  “ 그러나 그 고독한 자유라는 것도 결국은 자기만을 위한 이기적인 행위
일지도 몰라요. “
  “ 피제이는 마치 어떤 경지에 이른 사람처럼 말하는군요. 진정 고독한
자유를 누려 보셨나요 ? “
  “ 대답할 자신이 없어요. “
  “ 그렇다면 피제이는 이곳에서 왜 혼자 머물고 있어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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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독한 자유를 갈구했지만 그렇게 되질 못했어요. “
  “ 당신도 결국 나처럼 때로는 고뇌의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일거예요.”
  그녀는 화덕에서 타오르는 불꽃을 물끄러미 지켜보며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
했다. 밖에는 무거운 겨울밤을 가르는 바람소리가 상당히 거셌다.
  “ 저도 피제이처럼 고독을 갈구해왔던 것 같아요. 이제 생각해보니 공감이
가는 말이예요. 그러나 그것을 위해 죽음보다 더 깊고 쓸쓸한 밤을 수없이
보내야만 했다면 믿겠어요 ? 그럴때마다 저는 밤의 숲속에 버려진 나목처럼
외로움에 시달려야 했지요. 그래서  술이란 것이 나의 유일한 친구가 되기도
했어요. “
  “ 그것을 극복할 수 있을때 비로소 고뇌에서 벗어나 자기를 회복하는 것이
아닐까요. “
  “ 마치 동양철학의 한 자락을 풀어내는 것 같군요. 그래서 저도 이런 생각을
한번 해봤어요. 죽음이란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완성시키는 것이라구요.
그렇게 본다면 인생은 내용에 따라서 죽음의 미학적 가치도 결정되겠지요.
제말에 너무 궤변적인 논리가 있는것 같아요 ? “
그녀는 술 취한 사람답지 않게정연한 자세를 유지하며 말을 했다.
자넷트로부터 거리감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녀의 말에 공감을 느꼈다.
  “ 예를 들면 이런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겠지요. 작가 헤밍웨이는 작가로서의
자기 인생에 대해서 깊은 허무에 빠졌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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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은 그의 소설 `노인과 바다’ 에 잘 나타나 있지요. 늙은 어부는 깊은 바다에서
잡은 자기 자신이기도 한 커다란 다랑어를 끌고 항구에 돌아와 보니 다랑어는
상아떼에 모두 뜯겨 뼈만 앙상하게 남아 버린 거지요. 헤밍웨이는 작가로서의
자기 인생을 그렇게 비유한 거예요. “
  “ 그러나 불란서의 실존 철학자 싸르트르와 보봐르 부인의 경우는 어떤가요.
그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관대로 실천한 사람들이 아닐까요 ? “
  “ 그렇군요. “
  “ 누구나 고뇌와 고독에서 해방을 추구할 특권은 가지고 있어요. “
  “ 당신은 그것을 실천해보려고 노력해 보았나요? “
  “ 그래서 알라스카에까지 왔는지도 몰라요. 그러나 저는 갇혀있는 자신을
발견했을 뿐이예요. “
  자넷트가  내 옆에 다가와 앉았다.
  “ 결국 피제이 당신도 그렇군요. 하지만 당신에 대해서 굳이 묻고 싶지는 않아요.
하지만 당신에게 내가 위안이 될 수 있는 어떤 상대가 된다면 좋겠어요. “
  자넷트는 손을 들어 내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
  다음날 침실에서 눈을 떴을 때 그녀는 상반신을 알몸으로 드러낸 채 곁에 누워
있었다. 어떻게 그녀와 함께 잠들었나 하고 지난 밤 일들을 기억해 보았으나
확실하게 떠오른 것은 별로 없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술에 취한 채 거실에서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녀가 내게 먼저 자기의 침실에서 잠을 자라고
몇 번이나 권유했던 일이었다. 그렇다면 그녀는 나를 먼저 침대에 들게하고
내가 잠든 후에는 내 곁에 와서 그녀 역시 잠을 청한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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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시 취중에 그녀와 정사를 나눈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덜미를 붙잡았으나
그것은 깊이 생각하기 싫었다. 우선 이곳에서 나가야 한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녀가 잠자리에서 깨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나는 조심스럽게 이불 속에서
상반신을 일으켰다. 순간 그녀는 눈을 감은 채 나의 손을 잡으며 약간 쉰 듯한
목소리로 나직이 속삭였다.
  “ 당신, 어젯밤 나보다 더 취했었나 봐요. “
 그녀는 내 손을 힘주어 꼭 잡았다.
  “ 자넷, 혹시 어젯밤에 내가 실수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군요. “
  “ 천만에요. 차라리 당신 자신이 스스로 생각하고 있는 실수라도 했다면 이렇게
당신을 붙잡지도 않았을 거예요.  피제이 당신은 무의식 속에서 정사를 가질만큼
대범한 남자는 못돼요. 이게 칭찬인지 혹은 비웃음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룻밤 새 그녀의 안색이 많이 초췌해졌음을 느꼈다.
  “ 사랑을 거절당한 제 몰골이 초라하긴 하겠지만 그렇게 동정어린 눈으로
쳐다보진 마세요. 그래요, 피제이 항상 이런 식이었어요. 고독과 슬픔과 함께
뒹굴고 자고 나면 아침이라는 것은 없는 듯이 느껴지죠. 미안해요. 피제이,
커피라도 한 잔 끓여 드려야 하는건데,…”
  그녀의 웃음은 이미 시들어 있었다. 나는 그녀의 뺨을 가볍게 어루만져 주었다.
  “ 당신이 델타를 떠나기 전에 기억에 꼭 간직할 만한 밀회를 나누고 싶어요. “
 “ 쉬어요. 자넷, 난 톰에게 연락해서 모텔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할 테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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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옷을 챙겨입고 침실을 나오다 마주친 자넷의 허망한 눈빛 속에서 나는 앤지의
모습을 기억해낼수 있었다. 두 여인에 대한미묘한 감정이 파문처럼 조용히
밀려왔다. 그러나 정리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톰에게 전화를 걸었
더니 마침 그가 제대로 받았다. 그는 벌써 잠자리에서 일어났느냐고 농담이라도
던질 듯한 말투였다.
  나는 즉시 와주었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얼마 후 문 앞에서 개 짖는 소리가
요란히 들려왔다. 창문커튼을 들어올리고 밖을 내다보자 톰이 정문을
들어서는 모습이 보였다. 밖으로 나가자 희미한 어둠 속에서 썰매의 멍에를
걸친 여섯 마리의 개들이 나를 향해 사납게 짖어댔다.
  “ 빌어먹을, 스노우 모빌에 밧데리 충전하는 것을 깜빡 잊었어. 자동차 엔진도
얼어버리고 말이야. 그래서 이 놈들을 끌고 나왔지. 어서 타라구. “
  톰은 싱글벙글 웃으며 내모습을 살폈다. 내가 썰매에 오르자 톰은 가죽 회초리를
휘두르며 고삐를 당겼고 개들은 요란하게 짖어대며 눈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 피제이, 어젯밤 어땠어 ? “
  “ 뭐가 ? “
 나는 퉁명스럽게 말을 받았다.
  “ 그 여선생하고 말이야. “
  “ 별 일 없었어. “
  “ 별일 없었다고? 이렇게 어물쩡 넘어가려는 것을 보니 무슨 일이 있었긴
있었나보군. 아무튼 잘해봐 . 그여자 술을 좀 많이 마셔셔 그렇지 델타에 있는
여자치고는 부드럽고 아주 나긋나긋한 여자라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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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톰은 소리를 지르며 신나게 썰매를 몰았고 등 뒤에는 썰매가 지나온 자국을
메우며 눈이 흩어지고 있었다.
  스월드의 요양원에 있는 앤지를 만나기 위해 나는 크리스마스가 지나서야
빌리의 주선으로 업무 연락용 군용헬기에 비공식으로 자리를 하나 얻어
앵커리지로 갈 수 있었고 델타를 떠나기 앞서 폴에게 전화하여 요양원측에
연락하여 면회를 주선해 달라고 부탁해 두었다. 내가 탑승한 헬기가 앵커리지에
도착했을 때 겨울의 짧은 낮은 벌써 어둠속에 멀리 밀려가 버렸다.  마중 나온
폴을 만나 그의 차로 곧장 스월드로 출발하려고 하였으나 폴은 어두운 눈길을
피해 다음 날 안전하게 여행하자고 권유했고 나는 그의 의견을 따를 수 밖에
없었다. 폴은 차가운 흰 눈으로 뒤덮힌 쓸쓸한 시가지로 들어서며 다른 때와는
달리 무거운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 피제이, 자네 알라스카에서 적응할 수 있겠어 ? “
  “ 지금으로서는 그리쉬운 일은 아닌 것 같애. “
  “ 솔직히 그럴테지. 차라리 연지와 멀리 기후 좋은 남쪽으로 가서 살면 어때 ? “
순간이었지만 폴의 정색된 눈초리가 마음에 무겁게 와 닿았다.
  “ 물론 그런 생각을 안해본 것은 아니야, 그녀에게도 그런 제안을 했었지.
그러나 이제는 그녀 쪽에서 거부하고 있어. “
  “ 그건 자네가 판단을 잘못한 걸세. 그녀는 정신요양원에까지 입원을 하게
되니까 자네에 대한 일종의 가해의식을 느껴 그러는 것이 분명해. 내심으로는
요양원에 입원하기 전 보다도 자네에 대한 애정이 더 강렬할지도 몰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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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왕에 이렇게 된 바에야 그녀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강구해 보겠네. “
  “ 자네의 결단이 빠르면 빠를수록 그녀는 보다 빨리 회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게. “
그날 저녁 폴은 나를 회식집으로 안내하여 저녁식사를대접하였고 오지에서
지내다 외출한 나를 위안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누드 댄싱을 보러가자고
제안했다. 나는 뜻밖의 그의 제안이 무료한 밤 시간을 소일하는 데 적절하다는
생각에 쾌히 승락을 했다. 폴과 나는 시가지를 벗어나 한적한 도로변에 칵테일바와
함께 자리잡고 있는 누드 댄싱 클럽으로 향했다. 겉보기에는 초라한 건물이지만
안으로 들어서자 넓은 실내에는 요란한 록큰롤이 고막을 질타해 왔고 타원형의
중앙무대에서는 나체의여인이 음악에 맞춰 발랄한 율동을 하고 있었다. 어둡고
현란한 조명이 실내의 분위기를 완전히 압도한 채 꽉 들어찬 손님들의 열기를
돋구고 조명이 어두운 구석자리에는 군데군데 누드의 여인들이 손님들 테이블
앞에서 능란한 교태로 묘기 같은 춤을 추고 있었다. 중앙무대의 누드 댄서가
바뀔 때마다 사회를 맡은 디스크 쟈키가 열띤 달변으로 댄서를 소개하고
흥을 돋구었다.
“ 피제이, 우리 무대 앞보다는 좌석으로 가지. 자네 기분전환도 할 겸 여자들을
불러다가 테이블 댄싱이나 시키면서 누드나 감상하세. “
 “ 이왕 왔으니 괜찮은 생각이야. “
폴과 나는 웨이터의 안내를 받아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 술을 주문했고
곧 이어 폴이 누드 댄서를 동시에 둘이나 불러들였다. 금새 전나가 된 여인들이
코 앞에서 둔부와 음부를 들이대로 터질듯한 교태를 보이기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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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은 나에게 눈을 깜박이며 웃었다. 나는 민망한 생각에 전신이 화끈거리는 것만
같아 훌쩍 와인을 들이키고는 풍만한 여인의 나체를 감상했다.
나체의 여인들이 테이블 댄스를 끝내자 폴과 나는 여인들의 스타킹 거들에
오불 짜리 지폐를 각각 팁으로 끼워 주었고 그들은 깍듯이 고맙다는 인사를
연발하며 다른 테이블의 손님들을 찾아갔다.
  전날 밤 오랜만의 과음으로 나는 델타에서 보다 깊은 수면을 취하고 긴 밤을
생각보다는 홀가분하게 보냈다. 아침에 폴이 자동차에 체인을 감고 스월드로
나를 데려다 주기 위해 모텔로 찾아 왔을 때 나는 커피 한잔으로 빈속을 채우고
지난 밤 과음으로 기진한 채 그의 자동차에 올랐다. 지난 가을 앤지가 델타를
다녀갈 때 월동준비로 챙겨다준 파커에 스노우 부츠를 신고 방한 준비를 단단히
하고 스월드로 향했다. 시계를보니 아침 아홉 시를 막 넘어섰고 스월드에 도착
해도 어둠이 완전히 걷히지는 않을 것 같았다.
  “ 자네 스월드에 몇 일이나 머물 예정인가. “
  “ 델타의 일은 빌리에게 봐 달라고 부탁을 했네마는 오래 머무를 수는 없지
않겠나. 요양원 측의 카운슬러와 만나 일단 면담을 해 봐야 앤지의 상태를 거의
파악할 수 있을테고. “
  “ 심각한 증세는 아닐 걸세. 그녀가 그곳에서 빨리 퇴원할 수 있는 길은 자네의
도움과 그녀의 정신적인  의지에 달려 있지 않을까. “
  폴이 여러 가지로 조언을 해 왔으나 내게는 많은 부담이 되었다. 그의 조언이
나와 앤지의 인간관계를 풀어갈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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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이 수긍은 하면서도 나의 모든 현실을 던져 버려야만 하는 용단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스월드에 도착했을 무렵에야 동녁 하늘이 밝아오고
겨울의 해안포구에는 냉기류만 바닷 바람에 흘러갈뿐 인적은 거의 찾아 볼 수
없었다. 폴은 체인소리만 요란히 울릴 뿐 정적만이 감도는 좁은 해안도로를
끼고 어촌을 벗어난 낮은 언덕에 위치한 단독 건물 앞에 차를 멈추었다.
러시아풍의 퇴색한 붉은 이층건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 피제이, 다 왔네. 먼저 원장인 카운슬러를 만나봐야 될 거야. “
  “ 그러지. 그런데 이 건물은 큰 저택이었던 것 같군. “
나는 인적이라고는 얼씬도 않는 주위를 살피며 과연 건물 안에는 사람들이
기거하고 있을까 하는 의구심까지 가졌다.
  “ 러시아풍의 건물일세. 러시아가 알라스카를 지배할 당시 지어놓은 이런
건물들이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지. 자 어서 들어가 보지. “
나는 폴을 따라 현관 입구로 다가 갔다. 벨을 몇 번 누르자 굳게 닫힌 현관문이
열리며 중년 여인이 얼굴을 내밀었다.
  “ 안녕하십니까? 원장님 계신가요? “
  “ 어디서 오셨지요 ? “
  “ 네. 저는 폴이라고 하고요. 이 친구는 델타에서 온 피제이 라고 합니다.
미세스.산드라 파커와는 이틀 전에 전화로 통화했습니다. 저희들은 앤지라는
여인을 만나러 왔고요. “
“ 네에. 얘기 들었어요. 어서들 들어오세요. “
그 여인은 폴과 나를 안으로 안내하고는 접수실 창구에서 면회 일자를
 내보이며 인적 사항 기록과 서명을 요구했다. 나와 폴이 그녀의 지시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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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명록에 기재하고 서명을 하자 그녀의 접수실 내부에 별도로 나 있는 출입문을
열고 원장에게 손님이 왔다고 보고를 하였다. 그 사이 폴과 내가 스노우 부츠와
파커를 벗어 챙기고 기다리자 안경을 낀 오십대 후반의 키 크고 단정한 여인이
입구로 폴과 나의 이름을 차례로 부르며 악수를 청했다.
  “ 오시느라 수고들 많았어요. 앤지를 만나기 전에 우선 내방에서 얘기를
좀 나누시죠. “
그녀의 사무실에 들어서자 낡은 집기들이 잘 정돈되어 있었고 남쪽 창문으로
작은 포구의 해안선이 한 눈에 들어왔다. 그녀가 권유하는대로 폴과 내가 나란히
책상 머리에 있는 의자에 앉자 그녀는 철제 서류박스에서 앤지의 신상에 관한
기록을 꺼내들고 자리에 앚았다.
  “ 미스터 박은 앤지와 사제지간이라고 했지요 ? “
 “ 그렇습니다. “
  “ 앤지를 위해서는 직계가족은 물론, 가까운 친구나 친지들의 도움이 상당히
필요합니다. 두말할 것도 없이 물리적 또는 외과적 치료로 쾌유가 되는 그런
병이 아니고 마음의 병이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특정인의 도움 으로 정상을
회복하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
그 순간 폴은 머리를 끄덕였다.
  “ 다시 말해서 전문의사가 정신질환에 대한 진단을 올바르게 내렸다
할지라도 의사가 환자를 직접 치유시키는 경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합니다. 그저 카운슬러의 역할을 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요. 앤지의
경우는 의사가 우울반응 증세로 진단을 내렸는데 그녀가 이곳에 온 이래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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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접촉을 하면서 관찰해 보니 의사가 거의 정확한 진단을 내렸다고 판단이
됩니다. 물론 심한 증세는 아니나 불규칙적으로는 일어나는 반응증세로
보아서 원인은 오래 전부터 그녀의 마음 속에서 내재해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어떤 때는 하루종일 어느 누구와도 한마디의 대화 없이 혼자서 보내는가 하면
어떤때는 지나치리만치 쾌활하고 명랑하며 말 수가 굉장히 많아요. 전적으로
우울반응증입니다. 과거에 충격적인 슬픈일을 당했거나 자신의 과오에 대한
수치심과 또는 타인에 대한 자존심 때문에 자기자신을 비하시켜 깊은 망상에
빠지거나 함으로써 발생하기 쉬운 증상인데 그 유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다양하여
어느 부분이다 하고 원인을 정확하게 밝혀내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본인과
배우자나 직계 가족들은 그 원인을 알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앤지의 경우 담당의사나 저의 경우도 그 원인을 추적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첫째로 그녀의 주거 환경은 여러번 바뀌었더군요. 한국에서, 이혼한
전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하여 버지니아와 뉴욕 등지에서 거주하다가
자식까지 낳고 이혼 후에는 다시 알라스카로 이주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년 전에
재혼을 했고요. 둘째로 인간관계에서 받았던 충격적인 상처도 큰 원인이 됐을
것으로 봅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정도의 차이는 있을망정 애정
관계를 가지게 마련입니다. 그녀의 경우는 주거환경의 변화에서보다는
인간관계 즉, 다시말해서 애정적인 결핍 또는 욕구불만이 그 원인의 출발이라고
보는데 그녀 자신도 이부분에 대해서는 거의 함구를 하고 있는 처지이고 현재의
남편과도 면담을 해 보았으나 결정적인 도움은 얻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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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환경의 변화에 대해 비교적 잘 적응하는 의지형의 여인입니다. 왜냐하면
열심히 직업에 종사해왔고 생활력도 강한 편입니다. 문제는 알콜중독증세가
더 심각하다고 판단할 정도로 현재의 남편이 호소를 해 왔거든요. 그녀가
이곳에 오게 된것도 남편이 그녀의 주벽을 고쳐보겠다고 관계요로에 호소를
해옴으로써 비롯된 것이지요. “
  “ 그렇다면 앞으로 앤지의 정상회복에 대해서 미세스 파커의 의견은
어떠하신지요 ? “
폴이 질문을 했다. 그녀의 남편 죠오지를 비롯하여 앤지와 내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마치 무슨 수수께끼의 해답이라도 얻으려는 듯 앤지의 증상을
놓고 흥미로워하는 것 같았다. 나는 미세스 파커에게 앤지와의 지난 과거를
솔직히 고백하고 그녀를 퇴원시켜 데려가고 싶다는 의견을 말해볼까 하는
충동도 일어났으나 그것이 더 큰 문제를 야기시킬지도 몰랐다.
  “ 심각하게 보지는 않습니다. 그녀가 이곳에 있는 것은 술을 멀리 한다는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주벽을 근절할 수 있는 의지가 생기면 우울증에 대해
자신이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이 다시 생겨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어요. 앤지는 언젠가 나와 면담도중 이런말을 했어요. 자기가 술을
끊는다면 남편 죠오지와 별거를 하겠다고 말입니다. 얼핏 납득하기 어려운
말입니다만 그것은 그녀가 남편을 애정의 상대로 보지않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일단 그녀가 주벽을 끊을 수 있는 자제력이 생겼다고 판단되면 퇴원시킬
예정입니다. 미스터 박은 앤지에 대해 제게 참고가 될 만한 자료가 없으세요. “
미세스 파커의 질문에 가슴이 뭉클해왔다.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얘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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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 것이며 소상히 고백을 한다 할지라도 현실적인 도움이 되겠는가 하는
의문만이 일어났다. 나는 그렇다고 그녀와 마주 앉은 이상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 앤지와는 오랫동안 헤어져 있던 사이라 그 동안의 변화에 대해서 깊이 알 수는
없지만 내가 알고 있는 그녀가 이런 경우에 처했다는 것이 도저히 납득이
가질 않습니다. 그녀와 만나 대화를 나누어 보고 미세스 파커와 상의해
보겠습니다. “
  “ 좋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그녀의 가족관계라든지 애정관계 같은 것에 대해
알고 있으시다면 말씀을 좀 해주세요. 앤지를 찾아 이곳까지 오실 정도라면
단순히 사제지간의 입장에서 뿐만 아니라 직업 및 인간관계 등도 얘기해 줄 수
있지 않을까요. “
 나는 폴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 순간 그의 시선이 나의 의중을 훤히 뚫어
보고 있다는 생각에 견딜 수가 없어 창 밖으로 시선을 돌리자 해안을 끼고
멀리 뻗어나간 산기슭에 열기가 바랜듯한 북극의 태양이 낮게 걸려 있었고
겨울 바다는 평화스럽게 잔잔해 보였다.
  “ 피제이, 그녀는 누구보다도 자네의 도움이 필요하네. “
폴은 나지막 했지만 정중하게 한마디 했다.
“ 도움이 되신다면 자세히 말씀드리지요. 앤지는 고등학교 시절 저의 제자
이기도 했고 훗날 졸업 후에는 저의 애인이기도 했습니다. “
그러자 미세스 파커는 안경을 고쳐쓰며 정색을 하고 자세를 고쳤다. 나는 난생
처음 엄숙한 분위기에서 마치 고해성사라도 하는 기분으로 말을 이어갔다.
나는 앤지의 가족관계, 성장과정 그리고 나와의 애정관계 등을 허심탄회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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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어놓았다. 내가 말하는 도중 미세스 파커는 가끔씩 메모를 해두기도 했다.
그녀는 나의 긴 이야기를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진지하게 들어주었고, 그녀는
나에게까지 위로의 말을 잊지 않았다.
  “ 미스터 박, 너무 괴로워하지 마세요. 미스터 박이 협조하면 그녀는 머지않아
퇴원하게 됩니다. 저에게는 지금 하신 고백과 같은 그 말씀이 결정적인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앤지를 위해 우리 함께 노력해 봅시다. 그리고 미스터 박이
하신 말씀은 절대 비밀로 지키겠습니다.
그녀는 나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것은 엄숙하고 감동적인 순간이기도 했다.


미세스 파커의 안내를 받아 이층에 있는 앤지의 방에 들어서자 그녀는 이미
접수실 직원의 연락을 받고 초조하게 서성이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 앤지 ! “
  침착하려고 마음 먹었으나 그만 볼멘소리를 내고 말았다. 그녀는 우뚝 선
채로 두손을 모으고 경련을 일으키는 듯 하더니 다시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내 품으로 달려들었다. 나는 목이 메인 채 그녀의 어깨를 힘껏 쓸어
안으며 창 밖을 바라보았다. 남쪽 산기슭에 낮게 떠 있던 태양은 벌써 산
너머로 깊이 가라앉고 다시 겨울 바다에는 어둠이 밀려오고 있었다.
  “ 연지, 폴과 함께 왔어. “
  그녀의 어깨를 잡고 그녀를 똑바로 세웠다.
  “ 폴, 오셨군요. 늘 염려해 주셔서 고마워요. “
“ 마음 쓰지 마세요. 우리는 서로 친구가 아닙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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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와 폴은 서로 손을 마주잡고 뜨거운 인사를 주고 받았다.
  “ 우리는 나가 있을 테니 두분 천천히 얘기 나누시고 내려 오세요. “

  미세스 파커는 폴과 함께 숙연해진 표정으로 밖으로 나갔다.
나는 그녀가 기거하는 방 안을 둘러보았다. 한쪽 벽으로는싱글 베드가
놓여있고  낡은 러브시트 하나와 깊은 등의자 그리고 서랍이 달리 화장대와
조그마아한 키친까지 설치되어 마치 여행자들이 묵어가는 싸구려모텔과도
같았다. 그녀가 늘 사용했을 듯한 등의자 자리에는 뜨게질 실타래와 마무리
안된 스웨터가 놓여 있었다.
  “ 재만씨의 쉐터를 만들고 있어요. 다 만들면 소포로 보내드릴 거예요. “
  “ 그래, 고마워. “
  나는 그녀와 함께 러브시트에 앉았다. 너무나 초췌해진 그녀의 모습을
의식하자 울컥 울음이 터져나올 것 같아 숨을 죽이며 멀리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촌에는 띄엄띄엄 불빛이 밝혀져 있었고 두터운 어둠은 설야에
머물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이곳에 기거한다고 해서  과연 마음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는 믿어지지가 않았다. 미세스 파커의 말대로 그녀가 주벽을 근절할
수 있는 자제력만 갖는다면 한시라도 빨리 그녀는 이곳을 빠져 나가야 오히려
병을 치유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 연지, 그동안 이 곳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하군. “
  “ 한 번 쯤은 자신을 이겨내는 극기 훈련이라고 생각하고 견디고 있어요.
그러나 환자 취급을 받을 땐 정말 더 못 견딜 일이예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때로는 무서우리만치 외롭고 나자신의 미래가 두려워요.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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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일 동안 혼자서 울면서 보냈어요. 그러나 이제는 눈물도 말라버린 것 같아요.
전과 같은 감정의 동요가 일어나지 않는 것을 보면. “
  “ 미세스 파커가 그러더군. 앤지의 경우는 주벽만 끊을 수 있는 자제력이
생기면 퇴원시키겠다고 그리고 가능한 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내가 연지를 돕겠어. 용기를 갖고 옛날의 자신 모습을 회복하도록 노력해 봐. “
  “ 저 자신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보다도 제가 잘 알고 있어요. 제가 왜 이곳에
와 있는지도 잘 알고 있어요. 그것을 분별 못할 만큼 제가 돌아버린 건
아니니까요. 그래서 때로는 분별 못할 정도로 돌아버렸으면 하는 생각도 해
보았지요. 너무나 소름끼치는 외로움과 지난 날의 저의 환영 때문에 말예요.
아마 지옥엘 가도 이보다 더 무서운 고독은 없을 거예요. “
  “ 고독하다고 느끼는 것은 아직은 자신을 지키겠다는 자가 반응이야.
연지, 지난 날의 아름다웠던 자신을 생각하며 용기를 가지라구. 나는 지난
날의 연지를 생각할 때마다 늘 떠오르는 순간이 있지. 서울 운동장에 모인
수많은 관중들의 우뢰와 같은 박수갈채를 받으며 고적대를 지휘하던 발랄하고
아름다운 연지의 모습말이야. “
  “ 그래요. 정말 다시 돌아가고 싶은 과거의 순간들이예요. “
  그녀는 가슴에 손을 엊고 터질 듯한 감동이라도 받은 표정을 짓더니 안색이
굳어져 버렸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가 밖을 내다보며 입가에
쓴 웃음을 흘려 보냈다.
  “ 아녜요. 다 부질없는 생각이예요. 저를 좀 보세요 .제게 남은게 뭐가 있죠 ?
현실은 바뀌지 않는데 그 현실에 맞춰 살도록 머리속을 뜯어 고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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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자에게 아름다운 과거나 미래가 무슨 소용있나요? “
그녀는 내게 얼굴을 돌리고 잠시 머뭇거리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 재만씨,나까야마와는 베델에서 헤어진 후 다시 연락을 주고 받았나요? “
 “ 뭐라고 ? 연지 뭐라고 그랬어 ? “
반사적인 충동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침착하려고 애썼다.
  “ 사실은 재만씨가 델타에 가 있는 동안 나는 그것도 모르고 재만씨의 행방을
수소문하다가 나까야마가 베델에서 생선가공 공장을 한다는 걸 알게 되었지요.
이미 나까야마와 는 일자리 관계로 재만씨가 나와 이곳에서 만나기 전에 서로
교제가 있었으리라는 것은 쉽게 이해가 됩니다. 그리고 나에게 끝까지 그 사실을
숨기고 있는 것도 잘 이해하고요. 더욱이 저 때문에 베델을 떠났다는 것도 쉽게
판단할 수 있더군요. 저역시 그것을 알았다고 해서 재만씨에게 얘기할 수는
없더군요. 물론 나까야마라는 사람은 내 기억에 머무를 수 있을 만큼 나와
어떤 피치 못할 인간관계를 가진 인물도 아니예요. 그러나 재만씨가 불필요
하게 고민했을 것을 생각하니 정말 불쾌할 때도 있었어요. “
  “ 나로서는 아무렇지 않게 넘어간 일이야.  오히려 연지의 감정을 자극할까
염려하여 아무 말하지 않고 베델을 떠났었지. “
  “ 바로 그점이 마음 아팠어요. “
  “ 지금 나와 연지는 그런 사소한 일에 사로잡힐 때 까 아니야  아무런 가치도
없는 일이라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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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피차가 다 알고 있었으니 어차피 얘기를 하는것이 불필요한 감정적
부담을 털어버리는 것이 아니겠어여. “
 “ 그렇게 생각해 ? “
그러나 나는 나까야마 진따로에 대해 약간은 비굴한 생각을 금할 수가 없었고
그녀마저 알라스카에서 어떤 계기에서였든 나까야마와 접촉했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했다.
“ 연지, 이곳에서 나가게 되면 주거환경을 한번 바꿔보는 게 어떨까 ?  예를 들면
다른 곳으로 이주해서 직업도 바꿔보고 말이야. 나와 함께 캘리포니아로 떠나
자구. 그곳에는 겨울에도 꽃이 피고 따뜻해. “
나는 자신도 모르게 빌리가 내게하던 말을 뇌까렸다.
“ 그냥 이곳에서 겨울을 지내고 싶어요 .이젠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이라든가
정서가 메말라 버렸나봐요. “
“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자학행위라구. “
“ 아니예요. 참선을 하듯 자기극복을 위한 수련을 할 거예요. 그리고 봄이 오면
생선장사를 다시 시작하고요. 돈을 벌어야 하니까요. “
“ 돈은 순리적으로도 벌 수 있다구 . “
“ 정말 재만씨는 샌님같은 말만 골라서 하시는군요. “
그녀는 갑자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더니 이내 가라앉았다. 나는 그녀의
태도를 세심하게 관찰했다.
“ 재만씨 언제까지 알라스카에 계실 건가요 ? “
“ 확실한 계획은 좀더 두고 봐야겠지만 연지를 이렇게 두고 그냥 떠날 수 는
없어. 비록 지난날 연지와 함께 피운 애정의 꽃이 제대로 활짝 피진 못했을 망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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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사이로 인해 생긴 불행에 대해선 나도 책임질 각오가 돼 있어.
이것은 진심이야. “
 “ 그냥,….이렇게 놔둬주세요. 더 이상은 싫어요. 이제 당신을 놓아드리겠어요.
저를 생각하신다면  제발 떠나주세요. 당신을 그렇게까지 움직이게 한 제 자신이
나쁜 거예요. “
그녀는 울고 있었다.
“ 당신은 나를 여자로 성숙시킨 첫 남자예요. 나로 인해 불행해지지 않게끔
당신을 아끼고 싶을 뿐이예요.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으세요 ? “
“ 어떤 생각 ? “
그녀의 야윈 두 손을 꼭 잡았다.
“불가에서 말하는 윤회라는 것 말예요. “
“ 환생을 뜻하는 건가? “
“ 그래요. 죽어 다시 태어나는 내세의 인생 말이예요. “
나는 이미 윤회라는 말에 그녀가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 연지, 무슨 생각으로 그런 소릴하지 ? “
“ 요즈음 자주 환생이라는 것을 생각해요. 죽어서 무엇이 되어 다시 태어날까 하고
말예요. 사람들은 대게 순수하고 순결한 것을 원하지만  저는 그렇지 않아요.
제가 새가 되어 환생한다면 아름답고 고결한 백조와 같은 새가 아닌 어둠을
꿰뚫어보는 자기만의 빛을 소유한 검은 불사조가 되어 태어날 거예요. 그리고
모두가 싫어하는 저 어둠을 홀로 다 차지할 거예요. 마치 어둠을 지배하는
천사처럼. “
                                                                                                                                        200
  나는 그 순간 무어라고 형용할 수 없는 두려움을 느끼며 그녀를 힘껏
끌어 안았다.
“ 연지, 인간에게 죽음보다 더 절대적이고 고독한 형벌은 없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 자신의 뜻이 아니었듯이 죽음이라는 것도 스스로 결정할 권리는 없어. “
“ 그럴까요. “
그녀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현실에 대해 강렬하게 저항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사흘동안 스월드의 모텔에 머물면서 잠자는 시간과 앤지가 카운슬러와
면담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그녀와 함께 소일을 했다.
  미세스 파커는 앤지와 나에게 각별한 관심과 배려를 아끼지 않았고
앤지의 외출을 쾌히 승락해 주었다. 외출이라고 해야 스월드에 있는 마을의
조그마한 커피솝이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며 지난 날을 회상하거나
그동안 서로에게 일어났던 신변잡기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 받는 일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그 삼일 동안이 그녀와 나의 관계를 다시 한번 깊이 음미해보는
계기가 되기도했다. 그녀는 생각했던 것보다는 차분히 안정된 태도로 나와의
만남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내가 떠나기 바로 전 날 그녀는 커피솝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내게는 약간 충격적인 얘기를 해주었다.
“ 재만씨, 사실 저는 이곳 요양원에까지 왔어야 할 이유가 없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주위에서는 깊은 속은이해 못하고 나의 외형적인 행동만을
보고 의사까지 오판을 한거예요. 그러나 저는 그러한 오판에 대해
                                                                                                                                       201
거부반응을 보이고 싶지 않아요. “
“ 그렇다면 이건 자기 기만이 아니가? 아니, 도대체 이곳까지 제정신으로
올 수 있었단 말이야. “
“ 앞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지금까지는 돌았다고 느낀 적이 없어요. “
“ 누가 연지보고 돌았다고 했어. “
“ 술을 끊어야 한다는데 대해선 제 자신도 백번 동의해요. 문제는 혼자 있을때의
외로움보다도 둘이 함께 있을 때의 외로움이 더 무섭고 견딜 수 가 없었던
거예요. 그래서 죠오지와 함께 있으면서 더 많은 술을 마시게 되었고 머리가
터지고 가슴이 찢어질 듯한 울적함을 참아 낼 수가 없었던 거예요. 그래서
저는 남편 죠오지와 의사 그리고 주위의 판단과 권고에 거부반응 없이 이곳을
택한 거예요. 재만씨를 다시 만남으로서 제 자신을 돌이켜 보게 되었지만
당신을 만나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어요. 미안해요. 그냥 당신만 보면
미안하게 생각돼요. “
“ 연지, 제발 ,….”
“ 이곳에서 겨울을 지낼 거예요. 그리고 퇴원하면 다시 일하면서 제 자신을
 정리해 보겠어요. 저는 누가 뭐래도 돌지 않을 거예요. 염려마세요. “
“ 사랑이었고 아픔이었네….기억해! 앤지 ? “
“ 당신과 내가 좋아하던 시였죠. 기억에 새롭군요. “
“ 옆에서 지켜보겠어. 그래도 괜찮겠지 ? 연지에대한 모든것이 내겐 사랑이었고
동시에 아픔이었어. 그것을 알아줬으면 좋겠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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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 어둠 속에서 시간이라는 관념도 잊은 채 그녀와 나는 미로의 기억들을 더듬
으며 외지의 깊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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