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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북극 나그네

Views 631 Votes 0 2015.12.05 04: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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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 나그네



 

북극나그네.jpg


 



 
 앤지와 함께 이틀 동안 백야의 산림평야를 여행하고 앵커리지로 돌아왔다.
그후로도 그녀를 계속 만났으나 그녀는 자신이 경영하고 있는 생선가게에도 소홀해졌고 나로 인해 점점 자제력을 상실해가는 것만 같았다. 마침내 나는 그녀와 정상적인 부부와 같은 생활

을 하지않는 한 그녀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않는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오후 저녁식사를 마치고 뒷뜰에서 폴 부부와 한담을 즐기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느닷없이 픽업 트럭 한대가 요란한 브레이크 소리를 내며 폴의 집 앞에 정차

하더니 예기치 않게 죠오지가 차에서  뛰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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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주저함 없이 뒷뜰로 통하는 낮은 쪽문을  난폭하게 밀치며 폴과 마주앉아있는 내게로 다가와서 우뚝 멈춰섰다.
“ 죠오지 어쩐 일인가. 연락도 없이,…”
폴이 물었으나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죠오지는 나를 노기에 가득찬 눈빛으로 노려봤다.
  그의 눈빛을 피하자마자 긴장감이 순식간에 밀려왔고 그 순간 앤지의 안부가 몹시 염려스러웠다. 불길한 예감에 나는 방어적인 자세를 취했다.
“ 피제이, 알라스카를 떠나주시오 ! 아니 앤지 주위에서 멀리 떠나시오. 그렇지않으면 우리 세 사람 모두가 불행해질 겁니다. 앤지는 내 아내예요. 피제이 당신이 앤지와 과거에 한국에서

어떤 관계였던 나와는 상관없어요. 그러나 지금에 와서 당신 때문에 앤지를 고통스럽게 만들어 불행해진다면 그건 바로 나의 불행입니다. “
“ 죠오지, 그렇게 극단적인 생각은 말게. 피제이가 이곳에 오기전에도 앤지는 이미 술을 많이 마시고 솔직히 얘기해서 우울증세가 있는걸로 알고 있어. “
폴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상기된 표정으로 죠오지와 마주섰다.
“ 그래요. 나도 폴이 지금 한말을 모두 부인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러나 피제이로 인해 그 증세가 더 악화된다면 그건 누구의 책임이예요? 앤지는 나와 결혼했을
때 내게 한말이 있어요. 무어라고 그녀가 말한줄 아십니까 ? 알라스카에서 내곁에서 죽겠다고 했어요. 그리고 자기를 위해 얼음 무덤을 만들어 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피제이 당신이 나타

나서 앤지를 괴롭히고 나마저 불행하게 만들려고 한단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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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죠오지의 두 눈은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고 어느 누구든지 조금이라도 자극적인 말을 그에게 던진다면 험악한 사태가 일어 날 것만 같았다.
“ 죠오지, 당신이 여기에 이렇게 찾아온 사실을 앤지가 알고 있어요 ? “
스지가 차분하게 물었다.
“ 모르고 있어요.”
“ 그러면 죠오지는 앤지와 피제이의 과거를 어떻게 알았어요? 앤지가 얘기하던가요 ? “
스지는 죠오지에게 질문을 계속했다.
“ 아니요. 앤지가 술에 취해 횡설수설 했고 잠을 자면서도 잠꼬대를 하면서 피제이 얘기를 한단 말이예요. “
죠오지의 얼굴이 못견디겠다는 듯이 일그러졌다.
“ 그렇다면 이런 무례한 행동이 어디 있어요.죠오지가 찾아와서 이렇게 무례한 짓을 했다고 앤지에게 알려줄까요 ? “
“ 안돼요. 그건 안된다구요. “
“ 그렇다면 조용히 돌아가 주게. 죠오지. 앤지를 위해서도. “
폴은 죠오지를 달래듯이 말했다.
“ 앤지는 비록 여자일망정 남자들보다 강인한 면이 있다는 걸 죠오지도 잘 알고 있잖아요. 이 사실을 알면 앤지는 ,….”
“그만하세요 !”
죠오지는 스지의 말을 막으며 거의 울먹이듯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 죠오지, 걱정하지 마시오. 죠오지의 말대로 나는 이곳을 떠날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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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사실 죠오지 앞에서 이 말밖에 들려 줄 것이 없었다.
“ 두사람 모두 틀린 말은 아니야. 그러나 문제는 앤지라구. “
폴은 스지를 쳐다 보았다.
“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피제이가 앤지를 불행하게 만들고 있어요. 적어도 피제이가 오기 전까지 우리는 아무 문제도 없었단 말입니다. 아무 문제도,…”
죠오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나는 이 말에 거의 공감을 했다. 자신의 불행을 체념으로 극복하고 스스로의 삶을 유배시킨건 그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 피제이 그 말을 믿고 돌아갑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결국 앤지는 두번 죽게되는 불행을 겪는것과 같아요. 격정보다 더 중요한게 있다면 그건 가족의 행복입니다. 피제이, 이해를

바래요. “

죠오지는 휘청거리며 왔던 길로 걸어나갔다.
모두들 그의 뒷 모습을 지켜보며 침묵을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멀리 바람 한 점 없는 숲을 바라보며 백야의 북극하늘에 눈이라도 쏟아졌으면 하고 바랬다.
  앤지와 나의 사랑의 신파극은 이로써 죠오지라는 조연배우 겸 관객이 하나 더 는 셈이었다.
그러나 광대는 앤지가 아니었고 바로 내 자신임을 깨달았다.

  죠오지와 그런 일이 있은후, 앤지 주변에서 떠나려고 하는뜻을 폴과 스지도 이해 하였고 폴은 빌리 브라우닝이라는 그의 친구를 통하여 내게 일자리를 구해주었는데 앵커리지로부터 ‘리

차드슨 하이웨이` 북방 삼백 마일 정도 떨어진 델타라는 마을에 있는 어느 조그마한 모탤의 매니저 자리였다.
  폴은 산림평야의 음산하고 외로운 오지로 나를 떠나보내는 것이 몹시 마음에 걸리는 듯, 겨울을 나기가 어려우면 서슴없이 돌아오라고 위로하며 그의 친구 빌리 부부에게 나를 잘 돌보아

달라고 각별히 부탁을 했다.
  나는 앵커리지를 떠나기 전에 폴의 소개로 빌리 부부와 전화로 인사를 나누었고 그들 부부는 한결같이 빨리 델타로 오라고 했다.
“ 피제이, 빌리 그 친구는 미 해군과 육군에서 근무하면서 해외 근무를 거의 십여 년 이상 해본 경력이 있다구. 월남 전에는 유격대원으로 참전했고, 한국에도 두번이나 파견되어 근무한

적이 있다네. 그래서 순이라는 지금의 한국여인과 결혼하게 되었지. 그 친구 특기는 스카이다이빙이라고, 거 있잖아 고공낙하 하는것 말이야. “
폴은 공항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말을 꺼냈다.
“ 스카이 다이버 말하는 거 아냐 ? “
“ 그래 맞아 . 보나마나 그 친구 자네와 만나면 서울의 한강 백사장에서 한국군 공수특전단 요원들과 시범 스카이다이빙을 몇 번 했다고 자기의 경력과 기록을 자랑할 걸세. 한국 얘기가

나왔다하면 그것이 그 친구의 화제거리 가운데 첫번째 메뉴이고 그 다음은 순이와 만나 연애한 스토리일세. “
“ 그 두사람이 만나게 된 특별한 계기라도 있나 ? “
“ 자네도 역시 한국인으로서 남달리 보수적인 데가 있을테니 오해가 없길 바라는 뜻에서 설명을 해 줘야겠군. 빌리의 아버지는 건설회사의 앤지니어로서 한국에 주재원으로 근무한 적이 있

었어. 이때 한국측 파트너회사의 간부직원과 친분을 갖게 되었는데 순이는 바로 그 간부직원의 딸이었어.
빌리의 아버지도 전통적인 영국계의 보수적인 가문에서 자라났기 때문에한국의 지식층의 고루한 관습 못지않은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이라구. 그런데 어찌된 것이 빌리의 부모님들은 순이를

굉장히 좋아하게 되었어. 아마도 그분들은 한국적인 유교관습에 길들여진 순이가 며느리감으로 적당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문제야 본인들이지만 빌리가 두번 씩이나 한국 근무를 지원한

이유가 바로 순이 때문이었다구. “
“ 그런데 어떻게 빌리는 알라스카에서 정착을 했지 ? “
“ 알라스카의 주민들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본토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라구. 빌리의 경우는 군에서의 마지막 근무지가 델타였어. 그곳에서 전역하면서 정착해버렸고 순이는 빌리가 군에

있을때부터 석유파이프라인 펌프스테이션에서 좋은 직장을 갖게 되다보니 이제는 그 고장 사람이 되었네. 빌리의 고향은 자네가 몇 달 전까지도 머물렀던 로스앤젤레스야. “
“ 그래 ? 캘리포니아의 온화한 기후 속에서 자란 사람이 알라스카에서 정착했다니 좀 별난데가 있군. “
“ 천만에 그 친구 호인이야. 만나보면 알겠지만, 그리고 미군에서 이십년 근무하고 전역한 사람이 미국 어디에서 정착 못하겠나. 그 친구 노년에는 고향을 찾을지 몰라도 그곳에서 떠날 사

람 아니야. 한가지 더 얘기해 줄까. 한국에서 근무하다가 국제결혼한 미군 병사들 가운데 기지촌의 위안부 또는 호스테스들과 짝을 지여 미국에 돌아온 경우가 많은데 빌리는 그와 달리 한

국의 양가집 처녀와 결혼했다는 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이야. “
 
폴은 내가 빌리에 대한 어떤 편견적인 선입관을 가지게 될까봐 미리 그에 대한 자세한 소개를 하는 것 같았다. 남의 신상에 대해 깊이있게 언급을 하지않는 미국인들의 일반적인 습관으로

볼때 폴이 빌리와 순이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는 것은 그들에 대한 어떤 관심보다도 내가 가질 수도 있는 선입견적인 오해를 염려했음이 분명했다.

   폴은 나의 만류를 거절하고 탑승장까지 따라와 배웅을 해주며 위로의 말을 잊지 않았다.
“ 피제이, 한국인들은 성미가 급하고 싸움도 잘하지만 그만큼 인정도 많고 눈물도 많은 사람들 아니가, 자네는 조금 별난 데가 있지만, 델타에 가더라도 너무 외로워하지 말게. 빌리 부부

가 피제이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 줄거야. 이제 두시간 후면 페어뱅크 공항에서 그 친구 만나게 된다구. 오늘은 델타에서백야의 첫밤을 보내게 되었군. 자, 건강과 행운을 비네. “
폴은 나의 손을 힘있게 잡아주었고 나 역시 그의 엄지손가락을 끼고 힘있게 악수를 나누었다.
“ 폴, 정말 고마워. 자네와 한국에서 부산이나 진해로 외출을 하듯이 함께 델타에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
“ 그래, 자네의 지금 심정 이해해. 잘가. “
폴은 나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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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어뱅크행 여객기에 올라 창가에 있는 지정석을 찾아갔으나 이미 술에 취한 어느 에스키모 사내가 흐트러진 자세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촛점을 잃은 두 눈을 꿈벅거리며 나를 아래 위

로 훑어 보았다. 나는 통로에 접한 빈자리에 앉을까하고 망설였으나 술냄새가 심하게 풍겨오는 그 사내의 옆에 앉는것이 도저히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러자 뒷 좌석에 앉아있던 미국여

인이 건너다 보더니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난처 해 하는 듯한 표정을 짓자 자기 옆에 앉으라고 내게 말을 건넸다.
“ 고맙습니다. “
  그녀의 권유를 선선히 받아들이고 자리에 앉았다.
“ 자리를 다른사람이 차지했군요.”
보고있던 잡지책을 무릅위에 올려 놓으며 나를 관심있게 바라보고는 자세를 똑바로 고쳐앉았다.
“ 네 “
  그 여인은 긴생머리와 별로 화장기도 없는 얼굴에 미국 여자로서는 가녀린 몸매였는데 차분하고 이지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그런데 언제나처럼 미국인들의 나이를 어림하기가 아직도 힘

들었다. 한국인들의 기준으로 나이를 어림하다 보면 보통 오년 내지 십년씩이나 더올린 나이로 봐버리기가 일쑤였기 때문이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이륙하여 기체가 수평을 이루며 중심을 잡을 때까지 나는 눈을 감고 의자에 머리와 등을 깊숙이 기대고 있었다. 눈을 뜨고 창밖을 내다보았 을때 눈 덮힌 산악의 전경

이 멀리 내려다 보이고 차가운 기류속의 구름층으로 표류하자 나는 그제서야 어디론가 떠나고 있음을 의식했다.
  앤지의 곁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하더라도 그녀에게 어떤 식으로든 기대를 해선 안된다는 사실을 일러줬어야했다. 앤지의 주변에서 떠나지 않는다면 그녀를 두번 죽이는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라고 죠오지가 말하기 이전에 이미 어디론가 떠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곤 했지만 어느 선택이든 결코 합리적 일수 없다고 생각했다. 서로의 삶에 다시 뛰어들기에는 상처가 너무컸고
그 상처를 나나 앤지가 감당해 낼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그러나 격정에 스스로를 몰아넣기엔 우린 서로에 대해 이미 너무 많이 알고 있었다.
  이런 것들을 우유부단의 소치라거나 성격적 결함이라고 말하는 것은 문제를 단순하게 몰아부치는 것에 불과했다. 그 모든 것이 우리에겐 갈증이었고 동시에 불만이었다.
  눈을 감고 의자에 머리를 기대었다. 오늘 델타에서 백야의 첫밤을 보내게 되었다고 하던 폴의 말이 문득 뇌리에 스쳤다. 어느 곳이 되었든 나그네에게는 첫날밤이 중요한 것일지도 모른

다.
  첫 밤을 지내고나면 그곳을 떠날 때까지는 숙명적인 삶과 생활의 공간이 생겨나기 마련이었다.
  폴과 헤어지기 전에 혼자서 지도를 펴 놓고 몇번이고 그 위치를 확인했던 타라는 산림평야속의 조그마한 마을은 내 생애의 한 가운데에서 과연 어떤 공간적인 의미를 지니게 될까 하는

생각에 나는 처음으로 나그네의 애환같은  것을 떠올리기 도 했다.
  기류가 고르지 못해 비행기가 심하게 흔들렸다. 나는 눈을 뜨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비행기는 짙은 구름 속을 통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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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창밖을 두리번거리며 내다보자 옆에 앉아있던 여인이 말을 걸어왔다.
“ 여행중이신가요 ?”
고음의 목소리는 맑고 부드러웠다.
“ 네 “
“ 알라스카에는 처음인가요? “
“네. 그렇습니다. “
“ 일본인이세요? “
  “아니요. “
“ 그럼 중국인 ? “
“ 한국인입니다. “
“ 아 그러세요 ? 관광을 오셨나요 ? “
“ 관광이야 여행을 하다보면 할 수 있는것 아닙니까 ? 지금껏 기업에 종사해 왔습니다. “
  나는 어쩐지 모텔 매니저라는 일자리를 얻어 생면부지한 고장을 찾아가고 있다는 말을 선뜻 할 수 가 없었다. 어느 누구에게도 자신을 노출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 미국에 이민 오셨나요 ? “
“ 아닙니다. 그동안 회사 주재원으로 파견되어 주로 캘리포니아에서 2년동안 지냈습니다. “
“ 그렇군요 . 멋진 직업을 가지셨었군요. 그럼 알라스카에는 사업상 오셨나요 ? “
“ 아닙니다. 주재원 생활을 끝내고 본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친구를 방문하게 된겁니다. 알라스카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 그러시겠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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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라스카에는 얼마나 사셨나요 ? “
“ 저는 미시시피가 고향인데 이곳 알라스카에 온 지는 칠팔 년 정도 되었어요.”
“ 어느 고장에 사시나요 ? “
“ 페어 뱅크에서 동남방으로 팔십 마일 정도 떨어진 델타라는 곳에 살고있어요. “
그순간 나는 하마터면 탄성을 내며 델타를 찾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그녀에게말할 뻔 했다.
“ 그곳에서 뭘 하시나요 ? “
“ 알라스카 주립대학 델타분교에서 영어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
 “ 선생님이시로군요. 학생들은 많습니까 ? “
나는 깊은 관심을 가지고 물었다.
“ 시골이라서 수강생도 별로 많지 않아요. 시골의 지역발전을 위한 주정부 특별교육 프로그램의 일환이지요. “
“ 대학에서 전공은 뭘 하셨나요 ? “
“ 저는 미시시피에서 대학을 나왔는데 영문학을 전공했어요. 대학원 과정에서는 미국문학사를 전공했구요. 미국 문학에 관심이 있으세요 ? “
“ 관심이라기보다는 학생시절에 이름있는 미국 작가들과 시인들의 작품을 대해 본것이 전부라고 봐야지요. “
“ 혹시 인상깊게 남는 작가나 시인의 작품이 있으신가요 ?”
그녀는 상당히 흥미있어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약간 당황은 하면서도 그녀가 유도하는 화제거리에 말려 들어가고 있었다.
“ 그야 동양인들에게는 잘 알려진 헤밍웨이,존 스타인백, 퍼얼벅, 존 업다이크 그리고 시인으로서는 롱 펠로우 등이 기억납니다. 이들의 대표작이라고 할 만한 작품은 고등학교와 대학시절

에 많이 읽었죠. “
“ 그래요 ? 대단하시군요. “
그녀는 마치 학생과 대화를 즐기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 일반적인 독서에 불과한 거지요. “
“ 그중에서 어떤 작품에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되던가요 ? “
“ 모두가 인상적인 작품입니다만 대학시절에 뒤늦게 읽은 스타인백의 ‘분노의 포도` 그리고 존 업다이크의 ‘부부들`이란 소설이지요. “
“ 모두가 사회성이 짙은 작품들이군요. 어떤 면에서 감명을 받았나요. “
“ ‘분노의 포도`의 경우는 소설의 구성에서부터 상당히 인상적이었어요.
주인공이 살인죄로 옥고를 치르는 감옥에서 풀려나 소작농을 하고 있는 고향의 가족들에게 찾아오는 것부터 시작하여 캘리포니아의 포도 농장에서 생존을 위한 노동을 치루는 동안 다시 범

죄를 저지르고 한 가정이 몰락해가는 과정은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그러나 마지막 장면은 인간의 휴머니즘을 그린 작가의 사회적 가치관과 양심의 표현이라고 생각됩니다. “
“ 마지막 장면을 그렇게 보시나요 ? “
“ 네. 산악에서 만삭이 된 이십대 젊은 임산부가 굶어서 병든 기사 직전의 사십대 사내에게 젖꼭지를 물려주는 것은 휴머니즘 이라는 말 외에 무어라고 표현하겠습니까. 물론 임산부의 어

머니가 시킨 것이기는 하나 그 사내와 그들 모녀와는 어떤 인간적 관계도 없는 사이라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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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놀랍군요. “
그녀는 나에게 악수를 청해왔다. 때 아닌 그녀의 제스츄어에 당황하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 저는 자넷 트레이시예요. 당신의 이름은 ? “
“ 성은 박이고 이름은 재만입니다. “
“ 재만 박이군요. “
“ 미국 친구들은 피제이라 고 부르지요. “
“ 저도 피제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 “
“ 네 좋습니다. “
그녀는 조금 전의 작품에 대해 다시 화제를 이어갔다.
“ 사실 스타인백은 그 작품 때문에 평론가들로부터 사회주의자라는 비평을 많이 받았어요. 그러나 저도 피제이와 동감입니다. 그는 젊은 시절 미국의 경제공황속에서 벽돌공장의 노동자로

일하며 자본주의 사회가 변혁하는 가운데 심각한 모순점을 직시했던 거지요. “
“ 반면에 존 업다이크의 `부부들’ 이란 작품은 배경을 완전히 달리한 것이면서도 풍요로운 미국사회의 문제를 시사해주는 것 같아요. “
“ 바로 보셨어요. 피제이는 대학에서 전공이 무엇이었나요 ? “
“ 저는 공학도였습니다. 사회에 나와서 무역에 종사하는 화이트 칼러가 되었지요.”
“그러시군요. 그런데 문학적인 관심을 넘어 상당한 식견을 갖고 계신 분 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
나는 그녀로부터 이런 말을 듣고나자 자신이 과거에 한때나마 창작수업에 열을 올렸던 사실을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런것이 화제거리가 된다면 오히려 피곤하고 지루해질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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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저 단순한 개인적인 취미입니다. “
간단히 대답해 버렸다. 그녀와 나는 페어뱅크에 도착하기까지 문학작품에 대한 것 뿐만 아니라 알라스카에 대한 인류학적인 상식을 화제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녀는 기내에서 나와

작별인사를 나누며 자기 자신을 솔직히 표현하며 부담없이 말했다.
“ 피제이, 알라스카를 여행하시다가 델타를 지나거나 아니면 일부러라도 저를 찾아오시면 어느때고 환영합니다. 주립대 델타분교에 오셔서 저를 찾으면 쉽게 연락이 되지요. 혹시라도 알라

스카에 계시는 동안 제가 도움이 될수 있다면 좋겠어요. “
“ 정말 감사합니다. 저도 그런 기회가 오길 바랍니다. “
나는 빌리가 나를 먼저 알아봐 주겠지 하는 생각으로 마음의 여유를 가지려고 애썼다. 왜냐하면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나와같은 동양인은 눈에 뜨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뒤늦게 트랩

을 막 빠져 나왔을 때 였다.
“ 당신이 피제이지 ! “
키가 훤칠하게 크고 구렛나루를 기른 코 큰 사내가 앞을 가로막으며 불쑥 손을 내밀었다.
“ 아, 당신이 빌리 ? “
“ 맞았어. “
나와 빌리는 처음 만나는 순간이었지만 보고 싶었던 친구들이 오랜만에 만난듯 반가워했다. 손님들 중에는 동양인 남자라고는 마침 나 하나밖에 없었으니 그가 첫눈에 나를 알아보는 것은

당연했다. 나는 그의 크고 억센 손을 힘있게 잡고 흔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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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어깨이상 더 큰 그를 쳐다보았다.
“ 나와 줘 서 고마워. “
“ 천만에, 순이도 함께 오려고 했는데 이번 주말은 특근이라서 시간을 낼 수가 없었지. 피제이가 오는것을 제일 반가워하는 사람은 순이라구. 알다시피 우리가 사는 곳에는 한국인 남자라

고는 한명도 없다구. “
“ 얘기 들어서 잘 알 고 있었어. “
“ 대신에 이 친구와 같이왔지. 탐, 내가 얘기하던  피제이야.”
빌리는 수염이 텁수룩하고 우락부락하게 생긴 사내를 내게 소개했다.
그러나 그는 동양인처럼 황갈색 피부에 키는 나와 비슷했으나 체격이 딱 벌어져서인지 강골의 인상을 풍겼다.
“ 피제이, 빌리한테서 얘기 들었어요. 만나게 돼서 반갑습니다. “
굵직한 목소리를 지닌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손을 내밀었다.
그와 손을 맞잡는 순간 그의 강렬한 기를 느낄수 있었다.
“ 저도 만나게 돼서 반가워요. “
“이 친구 델타의 무법자라구. 한국식으로 따진다면 이 친구가 막내지. “
톰이라는 사내는 그저 빙긋이 웃으며 말없이 서 있었다. 빌리는 내가 톰에 대해 궁금하게 여기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짐을 챙겨 가지고 공항 밖으로 나오면서 그에 대해 간단히 설명

을 해주었다.
“ 저 친구는 델타의 토박이라구. 인디언의 후예인데 보통 인디언 에스키모라고 하지. 사냥에 명수이구. 그래서 사냥 길잡이로서는 그만이야. 델타에 있는 동안 피제이에게도 아주 쓸모있는

친구가 될 걸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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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도 첫눈에 피부색이 동양인과 똑같다는 생각을 했어. “
“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을 테지. “
빌리는 톰을 시켜 그의 자동차 트렁크에 나의 짐을 챙겨 싣고는 이내 델타를 향해 떠났다. 곧 페어뱅크 시가지를 벗어나 동남방으로 이어진 델테로 가는 길은 적막하리만치 한가했고 나는

시야에 펼쳐지는 끝없는 산림평야를 바라보며 앤지가 말했듯이 어디론가 유배의 길을 가고 있는것은 아닌가 하는 망상에 젖어보기도 했다. 빌리는 줄곧 내게 말을 걸어왔고, 아니나 다를까

그는 미 육군에 근무하던 시절 월남전에 참전한 것이며 한국에 두번씩이나 파견되었던 일을 들려주었다.
“ 폴이 그러는데 빌리는 요즈음도 델타의 군 기지에 가서 한달에 두번 정도는 스카이다이빙을 한다면서 ? 고공낙하 하는것을 한번 보고 싶은데. “
“ 피제이, 걱정말라구. 그런 부탁 하지않아도 빌리는 자기가 스카이 다이빙하는것을 으시댈려고 꼭 데리고 갈테니까. “
말없이 뒷자리에 앉아있던 톰은 낄낄거리며 말머리에 끼어들었다.
“ 좋아. 나는 그렇다치고 자네는 뭘 가지고 으시댈 건가. “
“ 자네 말대로 델타의 숲을 지배하는 타잔이다 이거지. “
“ 잘 알면서 왜 농담을 하는거야 . “
“ 피제이가 자네를 알아야하니까 . “
“ 나도 군대를 갔어야 하는건데. 그랬어야 월남의 정글에도 가보고 한국에도 갈 수 있었을거 아냐. “
“ 톰, 군대가서 전투하는게 숲에서 사냥하는 것과 같은 건줄 아나 ? 사냥하는 기분으로 정글에 들어갔다면 그건 바로 총알받이야. 알았어 ? 자네는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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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상술이라도 마시고 싶으면 새로 모텔 매니저로 온 피제이한테나 잘 보이라구.
가끔 사냥안내도 잘 해주고. “
“ 그야 이를 말인가. “
“ 자네, 늘 생쥐같은 놈 한방 먹여준다고 벼르던 호세가 떠난다니 기분이 어떤가 ? “
“ 정말 이렇게 될줄 알았으면 그 기생 오라비같은 놈을 한번 혼을 내주었어야 하는 건데. “
“ 피제이, 호세라는 친구가 바로 자네와 인수인계를 하게 될 녀석이지. 남미 출신의 녀석인데 델타에서는 어울리지 않게 약삭 빠른 친구야. 처음부터 톰과는 앙숙이었지. 외상술을 가끔 마

시려는 톰을 요리조리 잘 가지고 논다구. 그 놈은 머리로 톰을 가지고 놀아. “
“ 그만하라구 ! “
톰은 갑자기 언성을 높이며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는 빌리의 말에 꽤나 불쾌감을 나타내는 것 같았다.
“ 오늘 그놈을 데려다 한방 먹여 줘야겠어. “
톰은 힘을 주어 말했다.
“ 오늘 델타에서 누가 코피 흘리는 것 보겠군. 그러나 저러나 피제이와 인수인계가 끝난 다음이 아니면 피제이에게 지장이 많다구. 안그런가 톰 ? “
빌리는 백미러로 톰의 표정을 살피며 익살맞게 웃고 있었다.
나는 빌리와 톰의 대화에서 그들 생활의 일면을 엿볼 수 있었고 달리는 차안에서 북극의 여름이 마치 한국의 봄날씨와 흡사하다고 느끼며 산림평야의 웅장한 전경을 기억에 간직해 두려고

했다. 한참 동안 달리던 자동차가 약간 비탈진 길을 돌아가고 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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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렵 도로변에 호마처럼 큰 암갈색의 짐승이 나타난 것을 보고 내가 탄성을 올리자 빌리는 그것이 무스라고 일러주었다. 내가 접근하여 구경할 수 없느냐고 하자 빌리는 차를 세워 지나온

길을 후진으로 운전하여 무스가 서성이는 곳까지 접근했다. 그러나 무스는 놀라지도 않고 서서히 숲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몸은 말보다 커도 다른 짐승을 해칠 줄 모르는 순한 동물이며 알

라스카를 여행하다 보면 가끔 볼 수 있으며 간혹 혹한이  몰아 치고 눈이 깊게 쌓이면 주 정부 산림경찰이 야생동물 보호조치의 일환으로 먹이를 공수하여 공급도 하지만 기사를 하는 경우

도 많다고 했다. 인간이 천재지변으로부터 재난을 당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계절을 따라 이동서식하는 동물들도 있는데 유독
일정한 장소에서 악천후의 어려움을 겪는 동물의 생태가 이런 경우에는 좀 이해가 안된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일하며 머무를 모텔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더 외롭고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그저 하룻밤 지나치는 나그네의 심정으로 고즈넉이 머물다 떠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떠오를만큼 모텔은

불과 이십여 개  정도의 객실이 있는 초라하고 낡은 건물에 레스토랑 겸 조그마한 칵테일 바가 딸려 있었다.
마치 서부 영화 `석양의 무법자’ 에 나오는 주막 거리가 연상되었다. 건너편 세 갈래의 도로 가운데 우뚝 솟은 이정표를 바라보자 빌리가 설명해 주었다.
“ 피제이, 동쪽으로 뻗은 길은 캐나다 국경으로 넘거가는 길이지. 이곳에서 남쪽으로 앵커리지는 자동차로 여섯 시간 정도의 거리야. 눈이 오는 겨울철 에는 캐나다로 통하는 길은 거의 폐

쇄된다네. 앵커리지로 통하는 하이웨이도 막히기 일쑤고 말일세. 외롭긴 하겠지만 좋은 친구들을 많이 사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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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테니 안심하게. “
빌리는 나를 위로하려고 애를 썼다. 나는 새삼스럽게 절후와 날짜를 기억하며 팔월의 북극 하늘을 마음에 새겨두기라도 하겠다는 듯 먼 시선으로 두루 사방을 살폈다. 아스라이 시야의 끝

에 들어오는 하늘과 맞닿은 산봉우리에는 흰 눈이 쌓여 있었다.
빌리와 함께 짐을 들고 모텔입구로 다가가자 어느새 톰이 안으로 들어가 콧수염을 기른 날렵하게 생긴 사내와 함께 나왔다.
“ 당신이 피제이요? “
나를 반갑게 맞이하며 손을 내밀었다.
“ 피제이 이 친구가 바로 호세일세. “
“ 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
그는 남미에서 온 스페니쉬로서 이모텔의 매니저로 있다가 텍사스에 있는 가족들에게 돌아가기 위해 일자리를 내놓았다고 마침 내가 그 후임으로 온것이었다.
그는 내가 기거할 방으로 안내해 주고는 일단 오늘은 쉬고 다음날부터 트레이닝 겸 인수인계를 시작하자고 했다.
그날 저녁 나는 빌리의 집으로 초대받아 그의 부인 순이 덕분에 알라스카에 온 이래 처음으로 가정집 식탁에서 김치와 나물 밑반찬이 올려진 한식으로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산림속에 있

는 외딴 통나무 집에서 맛보는 한식은 조리솜씨가 어떻든 내게는 감격스러움을 느끼게 했고 순이는 처음 만난 나를 고된 시집살이 하던 아낙네가 친정오라비라도 만난 듯 반가워하며 들뜬
기분을 감추지 않았다.
수줍은 새색시처럼 조용히 찾아왔던 북극의 여름은 벌써 자취도 없이 훌쩍 남풍을 따라 멀리 밀려가고 있었다. 나는 벌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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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조그마한 모텔과 칵테일바가 딸린 레스토랑을 관리하는 일에는 이력이 나 있었다. 찾아드는 손님들이라고는 태반이 주민들이고 자동차로 이삼십 분 정도 떨어진 군기지에서 찾아오는 병

사들도 꽤 많았다. 주말이면 페어뱅크 에서 오는 섹스폰과 드럼,기타만을 갖춘 밴드를 고용했고 무명가수도 공급을 받았다. 그래서 주말이면 바쁘기 마련이었다.
  레스토랑과 칵테일바를 드나드는 단골 손님들은 나를 친구처럼 가까이 대해 주었고, 가끔 한가한 때는 빌리나 톰을 만나 술을 나누며 한담을 나누었다.
그러다가 주 중에 하루정도 쉬는 날이면 그들의 집에 가서 식사를 하거나 톰과 함께 버스를 타고 할 일 없이 페어뱅크에 다녀오기도 했다. 그동안 빌리는 두차례나 나를 군기지에 데려가

현역 군인들과 함께 자신이 직접 참여한 스카이 다이빙 묘기를 관전시켜 주었고 나는 그가 고공에 떠 있는 헬기에서 낙하하며 지정된 위치에 거의 정확하게 착지하는 것을 보고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델타에서 생활을 시작한 지 이 개월이 지날 무렵이 되어 그런데로 외로움을 느끼면서도 단조로운 환경에 적응해나갔으나, 아무 말없이 떠나온 지에 대한 생각을 잊기 위해 술을 자

주 마시는 편이었다.
  빌리의 스카이 다이빙 묘기를 관전하고 톰과 함께 마을로 돌아오면서 나는 전화로 예약해 놓은 미용실에 데려다 줄것을 그에게 부탁했다.
“ 피제이가 예약해 놓은 미용실에 가면 나이든 여자들만이 일을 하고 있다구.
이왕이면  페어뱅크에 가서 야들야들한 젊은 아가씨들한테 머리 깍는게 어때 ? “
톰은 입가에 야릇한 웃음을 흘리면서 부추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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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자네 집에서 바베큐 하기로 해 놓고서 언제 그곳까지 다녀 오겠나.
지금 출발하면 페어뱅크에 도착도 하기전에 해가 지고 말텐데. “
“ 밤이 싫으면 알라스카에서 못 견딘다구. 나는 밤눈이 밝은 사람이야. 눈 감고도 델타평야 정도는 손바닥 보듯 훤하다구. “
“ 알았네. 다음 주에나 다녀오기로 하지. 참 그보다도 케리브 사냥은 언제 갈거야. 빌리의 말에 의하면 캐리브 사슴들이 거의 남쪽으로 이동을 끝낼 시기라고하던데. “
“ 빌리가 어떻게 사냥을 나보다 잘 할 수 있어. 나는 그놈들의 길목을 훤히 꿰고 있어. “
“ 눈 감고도 말이지 ? “
“ 당연하지. 아직도 델타와 유칸 브리티시를 통과하지 않은 캐리브들이 있다구. 다음주까지는 그놈들을 사냥 할 수 있어. 염려말라구. 사슴떼를 보여 줄테니까. “
“ 캐리브들이 남쪽으로 갔다가 언제 다시 오나 ? “
“ 그야 내년 오월 쯤 눈이 녹기 시작하면 초원을 찾아 북으로 이동하는 거지. “
“ 어디까지 ? “
“ 여름이면 그린랜드까지 올라가지. “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톰은 캐리브 사슴떼는 초원을 찾아 남북으로 보통 이천 마일씩이나 이동서식을 한다고 설명해 주었다. 이동을 하다가 늑대들을 만나면 몇 십 마리씩 무리를 지은

사슴들은 오금을 펴지 못하고 앞장을 섰던 숫놈 리더를 중심으로 엉덩이를 빼고는 머리들을 한곳에 쳐박고 웅성거리다가 늑대가 뛰어들어 사슴의 목을 물고 늘어지면 모두를 풍비박산이 되

어 도망친다고 했다.
  늑대들은 사슴을 잡아 혓바닥만 빼먹고 달아난다는 것이었다.
남은 사슴의 시체는 독수리나 승냥이의 먹이가 된다고 했다.
“ 톰, 자네가 죽은 사슴을 차지하면 어때 ? “
“ 일류 사냥꾼인 내가 늑대들이 잡아놓은 사슴을 차지한다는 건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구. 사슴이건 늑대건 간에 내가 직접잡아야지. “
 톰과 이야기를 나눌때면 마음의 여유를 느꼈다. 그의 대화속에는 논리적이거나 가식적인 면이 없었다.
  내가 일하고 있는 모텔 맞은편인 동쪽 숲속 길을 자동차로 오분 정도 가면 모빌홈 같은 외딴 건물에 미용실이 있었고, 대부분은 예약을 하고 드나들었다.
톰은 삼십분 쯤 뒤에 나를 다시 데리러 오겠다며 미용실 앞에서 나를 내려주고 이내 돌아갔다. 내가 무심코 미용실 입구로 다가서고 있을때 어떤 여인이 어린
사내아이를 데리고 미용실에서 막 나서고 있었다. 나는 그 여인에게 길을 비켜 주며 잠시 머뭇거리다가 제자리에 멈추어 섰다.
“ 아니 피제이 아니가요 ! “
“ 자넷트 ? “
  나는 반갑기도 하면서 그녀에게 사실을 감추었던 것에 대해 조금은 미안함을 느꼈다. 사실은 언젠가 그녀를 델타에서 찾아보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참이었다.
“ 델타에는 언제 오셨나요 ? “
“ 자넷트를 만났던 그때 왔어요 “
“ 맙소사 그러면서 내게 연락을 주지 않았군요. 지금 어디 계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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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버그린 모텔에 있습니다.”
“ 그래요 ? 밥, 아저씨에게 인사드려. 제 아들 이예요. “
그녀는 옆에 서 있는 사내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안녕하세요 ? 밥이예요. “
“ 그래 잘 생겼구나. 나는 피제이라고 해. 몇 살이지 ? “
“ 여섯 살 이에요. “
그녀의 아들은 손가락을 입에 문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 지난번 비행기에서 피제이를 만났을때 밥을 앵커리지에 있는 저의 아빠에게 데려다 주고 오는 길이었어요. “
나는 그녀의 설명을 듣는 순간 그녀의 처지를 대강 짐작할 수 있었지만, 상관할 바는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 피제이 머리 깍으러 왔어요? “
“ 그래요. “
“ 그럼 머리 깍은 다음에 별다른 일 없으면 저녁이나 하면서 얘기나 나눠요.
모텔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만날까요 ? “
아무래도 다른 장소가 좋을 것 같았다.
“ 어디 다른곳이 있으면 정해 주시지요. 제가 찾아가겠습니다. “
“ 그러시다면 피제이가 있는 모텔에서 걸어올수 있는 곳이있어요. 마켓 가는 길 쪽에 있는 피자집 아세요 ? “
“ 알고 있어요 “
“ 한 시간 후에 그곳에서 만나요. 밥을 맡겨놓고 나오지요. “
일단은 자넷트와 헤어지고 미용실로 들어섰다. 그동안 델타에 머물면서 나는 빌리와 톰에게 그녀에 대해 알아보고 싶기도 했지만 그녀와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가져 볼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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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사실은 내 자신을 누구에게도 노출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관계를 이어나가는 것은 나나 자넷트에게나 모두 무의미했다.
  톰의 집에서 바베큐를 겸한 저녁식사 약속은 일단 미루어 놓고 나는 빌리에게도 아무말 하지않은채 피자집으로 갔다. 창가의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손님은 한 두 테이블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한가했고 밖에는 이미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손님이 드나드는 저녁시간은 아직도 몇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어둠이 점점 짙게 다가서고 있는 창가에 앚아 공상에 잠겨있는 사이에 자넷트가 나타났다.
“ 아, 오셨군요. 제가 딴 생각을 하다가그만….”
“ 무슨 생각을 그렇게 깊이 하셨나요 ? 고향 생각하신건 아닌가요 ? “
그녀와 나는 서로 마주 앉았다. 단발머리에 밝은 회색빛 여우털 자켓을  걸치고 목이 긴 검은 티셔츠를 받쳐 입은, 화장기 없는 얼굴은 그녀의 모습을 단아하게 느끼게 했다.
“ 그저 막연한 생각을 했을 뿐이예요. “
“ 피제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저는 이해할 수 있지요. 피제이가 모텔 매니저로 왔다는 걸 알았어요. “
“ 누가 말해주던가요 ? “
“ 아니요. 피제이가 이곳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머물 특별한 이유가 없잖아요.
그리고 얼마전에 어떤 동양인이 모텔 매니저로 왔다는 소문을 들었거든요.
그래서 아까 미용실 앞에서 피제이를 만나고 난 후에 직감적으로 생각해낸 거예요. 이곳은 주민들이 적은 조그마한 시골이예요. 소문이 빠르기 마련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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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동안 내가 한번도 그 모텔의 레스토랑에 들리지 않다보니 피제이를 만나지 못했던 거예요. 이곳에서 자주 들려서 맥주나 와인을 마시는 편이예요.
참 우리 뭣 좀 주문하지요. “
“ 좋습니다. 제가 가서 주문하지요. “
“ 아녜요. 델타에서 우리가 처음 만났으니 제가 먼저 대접하는 것이 순서일 것 같아요. 다음에는 피제이가 사시면 되잖아요. 말씀하세요. “
그녀는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을 만류했고 나는 그녀의 의사에 따랐다.
  우선 팬피자와 맥주를 주문했고 피자가 나오기 전에 그녀와 나는 손잡이가 달린 커다란 글래스에 캔맥주를 한잔 씩 받아 놓았다.
“ 자넷트,한가지 물어보아도 될까요 ? “
“ 좋아요. 뭐든지 물어 보세요. “
“ 남편되시는 분은 델타에 안계신가요 ? “
어쩌면 그녀에게 필요 이상의 관심을 가지고 있는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헤아리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이 초연하게 대답했다.
“ 사 년 전에 우리는 이혼을 했어요. 결혼한 지 오년 만에 헤어진 거지요.
델타에 와서 아이를 낳았구요. 우리는 고향 미시시피에서 결혼한 지 일 년만에 알라스카에 왔어요. 그사람이 석유회사의 엔지니어로서 급료가 상당히 높은 일자리를 얻었기 때문이었어요.

우리는 석유 파이프라인 공사기간 동안에 오년 정도만 저축을 해서 돈을 모아 고향으로 돌아가면 집도 마련하고 조그마한 사업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런 꿈은 얼어붙고

말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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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돈에 집착하는 사람인데다가 저와는 성격적으로 문제가 많았지요.
이혼 후에는 고향 미시시피로 돌아가려고 했으나 자신이 없더군요. 내인생의 꿈을 가꾸어 준 요람이었던 그곳으로 돌아가기에는 내모습이 초라하고 비참 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는 한

동안 술을 마시며 나날을 보내다가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했었어요. 그러면서도 이곳 델타를 떠나지 못하다가 대학에서  강의를 맡은 후부터는 그런대로 생활의 변화를 추구하게 된 거지요.

그것은 변화라기 보다는 적응이라고 하는 게 옳을지도 몰라요. 학창시절에는 작가가 되겠다는 꿈도 대단했었지만 아직 처녀작 하나도 출판해 보지 못한 처지예요. “
그녀는 잠시 글래스를 만지작 거렸다.
“ 우선 맥주나 한 모금 마시지요.”
그녀와 나는 서로 깊이 있게 한 모금씩 맥주를 마셨다. 문득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 자신이 더 우울해짐을 느꼈다. 지금쯤 앤지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하는 궁금한 생각이 떠올

랐다. 갑자기 그녀가 보고 싶었다.
“ 저는 팔년 가까이 이곳에 살면서도 언제나 떠난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했어요. “
“ 언젠가는 미시시피로 돌아가셔야 겠군요. “
“ 그렇게 되길 바라고 있어요. 그러나 그때가 언제가 될지….예정이없군요. “
“ 돌아갈 수 있는 고향이 있다는건 어쨌거나 좋은 일입니다. 아직까지 그리움이 남아있다는 것과 다름 없으니까요. “
“ 피제이는 자신의 나라로 돌아갈 예정이 있나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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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언젠가 돌아가야 하겠지만 역시 예정은 없어요.”
“ 우리는 피차가 고향으로 돌아갈 예정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만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군요. 피제이는 델타에서 겨울을 지내실 작정인가요 ? “
“ 무슨 말씀인지요 ? “
“ 아니요. 그저 물어봤어요. 그 모텔에 매니저로서 동양인이 온 것은 피제이가 처음이지만 어느 사람이건 육개월 내지 일 년을 넘긴 매니저가 없었다고들 하더군요. 겨울을 지내시는데 상

당히 어려움이 따를 거예요. 혹한이 계속되는 가운데 어둠만이 계속되는 겨울은 이곳에 오랫동안 살아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견디기 힘든 외로움을 가져다 주지요. “
“ 각오는 되어 있습니다. “
“ 피제이, 당신이 이렇게 먼 오지에 어떻게 혼자 몸으로 오게 되었는지 알고 싶지않아요. 그러나 분명히 한가지는 말씀 드릴수가 있어요. 그리움이라는 것을 이겨내지 못하면 이곳에서 견

디어내기가 어렵다는 점이지요. “
공감이 가는 말이었다. 델타에서 불과 이 개월 동안을 지내면서도 단조로운 생활과 외로움에 젖어들었고 지난날 내 곁을 스쳐간 얼굴들을 떠올릴 때마다 그 그리움은 점점 커져갔다.
“ 사람은 왜 일생동안 그리움이나 외로움을 떨칠수 없는 걸까요. 원래, 그것이 우리 인간 자신의 모습이기 때문일까요. “
“ 피제이. 전 사색적인 사람은 못돼지만 이렇게 생각되는군요. 그것이 없다면 삶은 그다지 의미가 없을 것 같아요. 델타에서 계시는 동안 아무래도 그런것을 더 체험하게 될 것 같네요. “
“ 그렇지만 ,저는 언젠가 떠나야 할 델타토이가 아닙니까 ? “
“ 벌써 그말은 누군가에게서 들었던 말 같군요. 저는 팔년 씩이나 이곳에 살면서도 내자신이 델타나가 되었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어요. 아직도 델타토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어요. 팔년과 이개월 이란 시간적인 차이는 있어도 그런 의미에서는 피제이와 저는 또한가지 공통점이 있군요 .”
그녀와 잔을 들어 부딪히고는 단숨에 맥주를 들이켰다.
“ 자넷트, 당신의 도움이 아마 많이 필요할 것 같군요. “
“ 물론이죠. 친구로서 서로 필요한 만큼 도와야지요. 자 북극의 겨울보다 더 추운 우리들의 겨울을 이겨내기 위해 우리 건배해요. “
그녀와 나는 주문한 피자가 나오기도 전에 커다란 생맥주잔을 마져 비워버렸다.
그날 저녁 자넷트와 나는 늦게까지 마주앉아 맥주 글래스를 몇개나 비웠고 결국 두 사람은 델타에서 처음 만나는 날부터 취하고 말았다. 그러나 아무래도 술로서는 내가 그녀를 따라 잡을

수 없었다. 그녀와 함께 술을 마신후 취기로 인해 몸가누기에 불편을 느꼈으나 그녀는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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