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1. 게임을 위한 준비

Views 307 Votes 0 2016.04.13 16:31:53

제 1부  아시아의 마음

 

이 책은 독자들로 하여금 외형적인 내면보다 내면적인 외형을 관찰함으로써 아시아인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것이다. 이러한 이해에 도달하기 위해 독자들은 모든 선입견적인 관념을 털어버려야 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을 읽는 동안만은 관습적인 문화적 인식을 초월하고 객관성을 유지하도록 하자. 이러한 태도만이 아시아인에게 존재하는 내면을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1  게임을 위한 준비

 

“따르르릉, 따르르릉…”
내가 머물고 있던 베이징 호텔 방의 전화벨이 울렸다. 워싱톤 포스트지의 북경 지국장 다니엘 서더랜드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데이빗 바이어(David Buyer)라는 캐나다인 실업가를 나와 만나게 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바이어는 첫번째 대 중국 거래에서 막대한 손해를 보았다는 것이다. 바이어는 첫번째 대 중국 거래에서 막대한 손해를 보았다는 것이다. 내가 현지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다니엘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바이어가 사업상의 문제에 대해 나와 상담을 나누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우리는 호텔 라운지에서 만났고, 서로 자유스럽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조용한 구석자리를 찾아냈다.
  데이빗 바이어는 모피업계에서 오랫동안 신용과 명성을 쌓아온 캐나다 출신의 사업가였다. 그는 4개월 전, 보잉747 화물기를 전세내어 산 여우 3천2백마리를 싣고 중국에 들어왔다. 여우를 팔고 과학적인 사육방법을 익히는데 필요한 그의 기술적인 지원을 제공하기 위한 거래를 끝낸 다음, 약 백만달러의 수익을 챙겨서 캐나다로 돌아갈 것으로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기대는 전혀 엉뚱한 방향

11

으로 빗나가고 말았다.
  바이어는 다음날 일찍 비행기편으로 귀국을 해야만 했다. 백만불을 챙기기는 커녕 귀중한 그의 여우도 놔두고 떠나야만 하는 비참한 지경이었다. 일단 귀국하면 약 50만달러에 달하는 손실처리로 회계장부를 마감하고, 그의 여우사육 농장이 차압당하는 것을 막기 위한 대책을 강구해야만 했다.
  데이빗 바이어는 불행하고도 모험적인 투기는 1988년 여름에 시작되었다.
  그는 여우들을 검사하기로 되어있는 중국측 대표단 일행의 도착을 학수고대하며 몇 개월을 보냈다. 바이어는 그들이 캐나다까지 먼 여행을 원치 않기 때문에 어쩌면 여행일정을 늦추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문제는 중국인들이 해외여행을 앞두고 당연히 치러야만 하는 복잡한 여권과 출입국 허가수속이었던 것이다.
  바이어는 중국인들에게 종장용 가축을 팔아오고 있었기 때문에, 번식 시즌이 다가오자 점점 걱정스러워졌다. 그는 여우의 번식기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자신이 사육하는 가축은 가장 엄격한 검사에도 통과할 수 있다는 자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바이어는 직접 여우를 중국에 공수하면서 방문하겠다고 중국인에게 통보를 했다. 그들은 바이어가 도착하는 즉시 자국에서 편리하게 거래를 끝낼 수 있을 것이다.
  화물을 적재한 제트기가 이륙하는 바로 그 순간, 중국인들과의 거래에서 이미 낭패를 당하게끔 된 것이었지만, 바이어는 수개월 동안이나 이러한 결과가 오리라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상상도 못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바이어가 중국에 도착한 직후 국제 모피시장에서 여우의 가격은 하락추세에 있었다. 그는 미처 매매계약도 이루지 못한 채로 무려 1

12

만마일이나 되는 원격지에서 수송해온 3천2백마리의 굶주린 여우들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중국인들은 국제시세의 불안정을 구실로 계약조건을 다시 협의하자고 제안해왔다.
  심지어 그에게 더 큰 압력을 넣기 위해 중국인들은 교묘한 방법으로 여우들이 아사지경에 이르도록 관리했고, 아주 비좁은 울 안에 여우들은 잔뜩 몰아넣었다. 얼마 안있어 질병과 고의적인 관리소홀로 바이어의 여우중에 150마리가 죽어버렸다. 결국 중국인들이 핀란드(Finland)에 있는 어느 종자용 가축사육가로부터 다수의 여우를 구매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는 다급하게 자신의 손실을 줄여보겠다는 각오를 하게 되었다. 바이어는 난처해진 자신의 입지를 극복하고 그의 여우들이 모두 죽기 전에 새로운 거래를 성사시켜줄 수 있는 다른 중개인을 찾아 나섰다. 물론 관련 중개인들은 상당한 수수료를 뇌물조로 요구해 왔다. 값비싼 협상이 끝난 후 중개인들은 원래의 구매자들이 3천2백마리 여우 가운데 9백마리를 당초의 오퍼 가격인 마리당 미화 300달러에 인수하도록 중재를 해 주었으나, 이들 구매자들은 모든 잔여분의 여우에 대해서는 마리당 단돈 39달러라는 가격을 오퍼해 왔다.
  결국 바이어는 모든 잔여분의 여우들을 엄청나게 하락된 값으로, 그것도 비공식적인 방법으로 가까스로 팔아치울 수가 있었다. 그러나 엄청난 가격 절하와 더불어 바이어는 거래를 마무리짓기 위해, 무려 열명도 더되는 중국관리들의 아이를 캐나다에서 교육받을 수 있도록 스폰서가 되어준다는 조건에 동의를 해야만 했다. 그 아이들을 위한 4년동안의 대학등록금과 생활비까지 그의 주머니에서 지출되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바이어는 중국인들의 처세방법을 깨달았다. 그는 자신의 소유였던 여우들은 인계해주고 그곳에

13

서 헤어나기 위해, 그들이 듣고자 원하는 과학적인 여우사육 방법을 포함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이야기해 줄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만났던 날 저녁 바이어는 그의 코트 안감을 꿰매어 감추어둔 미화 20만달러를 소지하고 있었다. 그의 중개인들이 주선했던 비공식적인 거래방식은 중국에서 해외로 돈을 유통시킬 수 있는 정상적인 수단이 아니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가 감수해야만 했던 엄청난 재정적인 손실과 더불어, 공항에서 보안관이 그만한 금액의 현금을 적발했을 경우 그는 또는 중국의 형무소에서 남은 여생을 보내야만 하는 형벌을 받게 될 아주 심각한 모험을 치루고 있는 셈이었다.
  바이어는 우선, 대금을 받지 않은 채 여우를 선적함으로써 심각한 실수를 저질렀다. 그러나 이것은 첫번째 실수일 뿐이지 가장 위험한 실수는 아니었다. 1989년 8월에 내가 다시 중국에 들어갔을 때 나는 비로소 실질적인 문제가 무엇이었던가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데이빗 바이어와 처음 거래를 주선했던 중국인 관리, 미스터 장(Zhang)을 만나보기로 했다. 미스터 장과 불과 몇분 동안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이면에 가리워졌던 실질적인 문제의 발단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바이어에 대한 그의 분노를 진지하고 심각하게 나타냈다. 장과 그 일행의 방문을 기다리지 않고 여우를 화물기에 싣고 중국을 방문한 바이어의 행동은, 몇개월이나 고대하며 기대했던 중국인들의 캐나다 여행기회를 빼앗아버렸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서방국가로 여행할 수 있는, 평생에 단 한번밖에 없을지도 모르는 기회를 앗아가버린 바이어를 용서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로 인한 실망은 전반적인 사업계획에 대한 그들의 열정에 완전히 찬물을 끼얹은 결과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14

  바이어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의 극단적인 실례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시사하는 바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는 듯하다. 아시아 지역 국가, 특히 중국(대만), 일본, 한국의 기업들과 서방국가 기업들의 비지니스에 있어서 여러 측면의 컨설팅에 오랫동안 종사해온 나의 전문 직업을 통해, 나는 동서간의, 심지어는 동양국가간에도 관념적인 이해의 부재 때문에 항상 당혹스러움을 느낀다.
  서구와 아시아인의 언어적 차이는 분명한 장벽이다. 언어란 우리의 사고방식을 표현할 뿐만 아니라, 그것은 또한 우리의 사고를 창출해내는 수단이기도 하다.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주요한 원인은 언어 그 자체만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사고하느냐에 달려있다. 아시아인들과 서구인들은 그들이 서로 다른 말을 하는 것만큼이나 사고방식도 다르다.
  나는 언젠가 퍼시픽사(Pacific Corp.)의 회장이었던 도날드 프리스비(Donald Frisbee)가 다음과 같은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 만약 내가 아시아인들의 사고방식을 제대로 이해할 수만 있다면, 나는 그들과 거래하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을 것이다.”
  미스터 프리스비는 그러한 어려움을 인식하고 이해하려는 점에서는 대부분의 서구 기업인들보다 훨씬 더 사려깊은 편이다. 대부분의 서구인들은 어떤 다른 충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나는 미국에서 30년 동안이나 성공적인 마케팅 경력을 쌓았다는 어느 사업가의 경험담을 경청하며 오후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다. “ 마케팅은 어디까지나 마케팅입니다. 나는 나의 비지니스를 알고 있어요. 아시아라고해서, 그곳에서는 마케팅에 대해 무엇이 다를 수가 있겠습니까?” 하고 그는 내게 말했다.
  아시아 지역에서의 비지니스에 대한 많은 책자들이 출판되었다.

15

대부분의 책들은 아시아인들의 사업적 관행을 서술함에 있어서 잘 연구되었고 정확한 내용이었지만, 내가 읽은 저서들 가운데 어느 하나도 아시아인들의 사업적 관행에 대한 ‘동기’에 대해 언급한 부분은 없었다.
  동기에 대한 이해없이 어떤 특정한 동양인 사업가의 처신을 파악한다는 것은 그와의 상대적인 비지니스를 성공적으로 도모하고자 하는 파트너 사업가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아시아인의 개인적 행동의 이면에 자리잡고 있는 깊은 동기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아시아인들의 마음 속에는 전략적인 사고가 깊이 뿌리내려져 있다. 모든 상황이 대처하기 위한 별도의 개별적 전략들이 개발되고 정립되었으며, 또한 수천년간 연구되어왔다.
  서구인들이 아시아인의 마음 속에 담겨있는 무엇인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상대방 아시아인이 자신에게 쳐둔 복잡한 전략의 그물에서 헤어나기 어려울 것이며, 그는 희생물로 전락하고 말것이다.
  서구인들은 데이빗 바이어처럼 아시아인과의 거래에 있어서 그들의 이해부족 때문에 값비싼 대사를 치루었던 경우가 많다. 바이어는 바보가 아니었다. 다만 그는 중국인 구매사절단의 캐나다 방문일정이 지연된 이유에 대해 서구적 사고방식으로 판단을 했을 뿐이었다. 한 서구인 사업가의 관습적 사고범위 내에서 볼 때 그것은 하나의 선의적 판단이었다. 바이어의 실수는, 그에게 있어서 진실한 것이라면 중국인들에게도 진실할 것이라는 자신의 믿음에 대해 전혀 의문을 가져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사회적인 관습 및 사업환경의 차이에서 발생되는 필연적인 편차를 소홀히 취급했던 것이다.
  나는 한 중국여인이다. 나의 가족은 만주의 압록강 부근에서 여러

16

세대 동안 살아왔다. 나의 아버지와 그의 친구들은 어렸을 때, 뱃사공에게 몇닢의 동전을 주고 나루배로 압록강을 건너, 멀리 강변에 살고 있는 한국소년들과 병정놀이를 위해 원정을 가곤 했다. 그 당시에도 오늘날과 같이 압록강은 한국과 만주의 정치적 국경이었지만, 여러 세기에 걸쳐 그 국경의 위치는 변화를 거듭했다. 이 지역의 문화는 중국과 한국의 것이 혼합된 하나의 독특한 배경을 이루고 있었다.
  일본인들이 만주에 출현한 것은 19세기말로 소급된다. 1931년에 그들은 공식적으로 만주를 일본의 한 영토로 예속시켰다. 식민지 지배세력으로서의 일본은 서구의 식민지 지배국과는 전혀 다른 관행을 가지고 있었다.
  일본인들이 만주에 출현한 것은 19세기말로 소급된다. 1931년에 그들은 공식적으로 만주를 일본의 한 영토로 예속시켰다. 식민지 지배세력으로서의 일본은 서구의 식민지 재비국과는 전혀 다른 관행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식민지로부터 단순히 부와 자원만을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심지어는 식민지 원주민들의 언어와 문화를 일본의 언어와 문화로 대체시키려고 했다. 그들은 점령이 국민들에게 일본 식민으로서의 자긍심과 신분에 대한 감각을 심어주려고 애썼다.
  나의 부모들은 오직 일본어만을 사용하는 학교에서 일본인 교사들에게 일본식 교과과정에 의해 교육을 받았다. 나의 어머니는 점령하에 있던 대부분의 중국인들에게 주어진 대우보다 더나은 대우를 받기 위해, 흔히 일본인으로 위장하고 지낼 때가 많았다.  1949년, 우리 가족은 본토를 떠나 대만으로 이주했으며 나는 그곳에서 성장했다.
  대만도 만주처럼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기 전까지 거의 반세기 동안 일본의 식민지였다. 소녀시절의 나도 일본식 교육을 받았다. 교사들은 화가 날 때면 일본말로 우리들을 꾸짖었다. 나는 훗날 성인이 되어 값진 비용을 치르면서 아시아와 서구제국을 여행하게 되었을 때야 비로소 나의 가족들이 어떻게 일본화되었으며, 한

17

국인들 역시 어떻게 일본화되었던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중국인, 일본인 그리고 한국인들은 많은 부분에서 공통된 특징을 지니고 있지만 그들간에도 역시 여러가지 두드러진 차이점들이 있다. 서구인들은 그들간에 유사한 특징만을 보는 경향이 있을 뿐, 그들간의 차이점에 대해서는 무지한 편이다. 또 그들은 중국인, 일본인, 한국인들로 구분하기보다는 이들을 ‘아시아인’으로만 보려고 한다. 중국인, 일본인 그리고 한국인의 존재가 되는 요건은 무엇인가에 대한 객관적인 구분감각을 정리하고, 이러한 객관적 감각이 서구인들과 국적이 다른 이들간에 있어서의 사업적 거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실증해보는 것이 이 책의 저술목적이다. 이러한 뜻을 살리기 위해 나는 각기 다른 그들의 국민성을 분리해서 논할 수밖에 없다. 성격이 개별적으로 독립화된 것을 추적하고 그것들을 전체적인 하나의 국민성으로 인용하다는 것은 항상 오류를 범할 수 있다.
  그러나 국민 전체의 공통점은 못되더라도, 국민을 형성하는 개인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상존하는 가치관과 믿음을 논해보는 것은 유익한 방법이기도 하다. 거기에는 하나의 사회집단적 양심같은 것이 존재한다. 그것은 ‘국민적 양심’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나는 이들 집단 내에 조재하는 다양한 차이점을 가감없이 그리고 어느 누구에 대한 감정적인 편견없이 언급하고자 한다. 따라서 이 책은 학문적 연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비지니스의 현장을 누비면서 체험한 직접 경험을 바탕으로 한 리포트이다.
  내가 언급하게 될 일반적 사실에 대한 중요한 내용은 정확하게 문자적인 진실이 아니라 할지라도, 보편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받아들여질 수 있는 진실이다.
  특히 중국인들은 자신들의 성격을 파악하는데 있어서 전형적으로 심술궂은 경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성격상의 단점은 흔히 국민성

18

이라고 일컬어지는 국민적인 질병으로까지 지적되고 있다.
  ‘한국인 비지니스맨들은 술마시기를 좋아한다. 그들은 대주가이며 술에 취하기가 일쑤’라고 내가 거리낌없이 언급을 한다 할지라도, 일인당 한국인들의 알콜 소비에 대한 최근의 연구자료를 인용하지는 않았으며, 뿐만 아니라 술마시기를 절제하거나 근검한 한국인 비지니스맨들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도 일단 접어두려고 한다. 여기에서는 일반적인 관행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자 한다. 다시 예를 들면, 서울이나 북경 그리고 동경의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세워놓고 그들에게, “한국인들은 술을 마십니까?”하고 물어본다면 그들중 8퍼센트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물고기가 물마시듯 하죠.”
  이렇게 표현한다고 해서 한국인의 기질을 탓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단지 독자들로 하여금 어떤 아시아인들이 지니고 있는 일반적 상식을 철저히 이해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 당신이 만약 한국인으로부터 접대를 받으면서 계속 술잔을 주고 받게 된다면, 당신은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아시아인들은 모두가 중국인, 한국인 그리고 일본인을 구분해낼 수 있는 분명한 국민성이 그들에게 있다는 데에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더 나아가 그들은 이러한 성격의 특징들이 무엇이가에 대해서도 견해가 동일하다.
  그러나 그들은 이렇게 성격의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도덕적인가 아닌가에 대해서는 견해를 달리하고 있으며, 그들의 차이점은 그러한 국민적인 성격이 그들에게 또는 다른 제삼자에게 적용될 수 있는지의 여부로서 나타난다.
  인종문제에 대하여 어느 정도 예민한 생각을 지닌 독자들에게는 서로 다른 국민집단에 대한 특성을 논하는 것이 인종주의에 의한 국적분리를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지도 모른다.

19

  인종에 대한 아시아인의 개념은 서구인의 개념과는 아주 다르다. 인종에 대한 우월감이나 열등감은 서구사회에서처럼 문제화된 적은 없었다. 인간이 진화론적인 견해에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할지라도 중국인, 일본인, 그리고 한국인들은 인종우월감의 문제에 대해서만은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다. 아시아에 있어서 한 민족이 타민족에 대해 우수하다는 관념은 거의 일반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사실이다.
  아시아인들은 인종문제에 관해서만큼은 미국인들과 같은 감정적인 인식을 지니고 있지 않다. 그 문제는 그들에게 있어서 감정적인 편견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아시아인들은 그들의 종족, 민족, 그들의 지방이나 마을 그리고 그들의 가족이 다른 어떤 민족이나 사회보다 훨씬 훌륭하다고 느끼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서구인들도 대부분이 이와같은 태도를 보이면서도, 그것들을 쇼비니즘이나 민족주의 또는 지방주의와 같은 경멸적인 표현을 지적한다. ‘인종주의자’라는 말은 영어에서 아주 경멀적인 용어다. 그것은 흔히 ‘나는 너보다 훌륭하다’고 믿는 인간의 공통된 결점을 나타내는 것이지만, 미국에서 인종문제에 대한 관심은 아주 예민한 것이라서, 가능한 한 언급을 회피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헨리에타 앤 클라우저(Henrietta Anne Klauser ; 1987년 Harper & Row사에서 출판된 ‘Writing on Both Sides of the Brain’의 저자)는 그녀의 저서가 출판되기 전, 편집자로부터 아주 흥분된 전화를 받았는데 그 내용을 내게 들려준 적이 있었다. 편집자는 그녀의 원고에 인종적인 편견이 담긴 내용이 있으니 한 문장만 수정할 것을 고집해 왔다. 그 문장은 이러했다.

  나는 종이에 대한 대단한 경외심을 지니고 있으며 매일같이 중국인 발

20

명가에게 축복을 기원한다.

  나같은  중국여인이 볼 때 첫번째 구절은 클라우저 여사가 특정한 중국인에게 느끼는 개인적인 감정을 표현했을 뿐이다. 무미건조하게 수정된 내용은 그 감각을 상실하고 말았다. 원문에서 어떤 문제가 있는가 하는 것을 아시아인이 이해하기에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워싱톤주 킹 카운티 의회 의원을 오랫동안 역임하고 은퇴한 루비 초우(Ruby Chow)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내게 들려 주었다.
  1950년대 초에 씨애틀의 차이나 타운은 ‘국제거리(Internatioanl District)’로 개칭되었다. 지명을 변경한 이유는 분명히 밝혀지지는 않았다. 최근에 차이나타운이라는 이름을 복원하기 위한 운동이 일어났지만, 그 복원운동은 몇몇 시의회의 멤버들에 의해 거부되고 말았다. 놈 라이스(Norm Rice)는 시장으로 피선되기 전 시의원으로 재직하고 있을 당시, 모욕적인 상투적 행위라는 이유를 내세워 명칭의 복원을 거부했다. 자선단체의 회장이며 씨애틀 중국인 사회의 지도급 인사인 피터 우(Peter Woo)는 모욕적인 상투적 요구라고 한 라이스의 발언을 공개적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아시아 태생 중국인들은 중국인으로 남는 것을 긍지로 여기고, 일반적으로 차이나타운이라는 명칭을 가지는 데에는 문제시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종문제에 대해 미국식 사고방식을 가지고 성장한 중국계 미국인들은 더욱더 감정적인 피해를 입기 쉽다.
  아시아인들은 인종문제를 생각함에 있어서 죄의식을 느끼지 않으나, 그들은 서구의 반대세력을 공략하기 위해 흔히 인종주의에 대한 비판을 하고 나선다. 인종편견주의의 동기를 일본에 대한 미국의 비판적인 견해로 돌리려는 일본정치인마저도 일본인이 코카시안(Caucasian : 유럽 ∙ 북아프리카 ∙ 동아시아 ∙ 인도의 백색인과 그 자

21

손)보다는 인종적으로 우월하다고 은근히 믿고 있으며, 역시 그들의 이웃인 한국과 중국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이러한 일본인들의 신념을 어느 서구인에게도 결코 시인하지는 않지만, 인종편견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아시아인들 사이에서는 지극히 보편적인 것이라서, 그들로서는 부정적이거나 죄의식으로 인해 고민하지는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독자들로 하여금 외형적인 내면보다 내면적인 외형을 관찰함으로써 아시아인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이러한 이해에 도달하기 위해 독자들은 모든 선입견적인 관념을 털어버려야 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을 읽는 동안만은 관습적인 문화적 인식을 초월하고 객관성을 유지하도록 하자. 이러한 태도만이 아시아인에게 존재하는 내면을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22

List of Articles
Subject

1. 게임을 위한 준비

제 1부 아시아의 마음 이 책은 독자들로 하여금 외형적인 내면보다 내면적인 외형을 관찰함으로써 아시아인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것이다. 이러한 이해에 도달하기 위해 독자들은 모든 선입견적인 관념을 털어버려야 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10. 장애물 경주

제3부 역사는 훌륭한 스승이다. 아시아를 이해하려면 먼저 중국을 이해해야 한다. 중국의 문화는 고대적인 유풍을 지녔기 때문에, 다른 아시아인들의 문화적 뿌리이기도 하다. 필자가 중국과 중국인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하는 내용 가운데 많은 부분이 다...

11. 중국은 서양을 어떻게 보는가

11 중국은 서양을 어떻게 보는가 ▪ 서구세계에 대한 첫 경험 18세기에 볼테르(Voltaire)는 중국 확실의 도덕성과 조직성은 세계가 체험했던 것 가운데 가장 훌륭한 것이라고 썼다. 거짓말같은 중국의 부에 대한 여행자들의 이야기는 유럽 황실 건축가들의 ...

12. 아시아의 역사와 문화

12 아시아의 역사와 문화 ▪ 염제의 황제의 후손 일본민족이 있기 전에, 그리고 한국민족이 있기 전에, 중국민족이 존재했다. 중국의 역사기록은 B.C. 2697년에 시작되었다. 그 기록에 의하면 중국민족은 염제와 황제의 후손들이라고 쓰여 있다. 중국의 신화...

13. 중국인의 속마음

13 중국인의 속마음 ▪ 중국의 계급제도 금세기까지 중국 사회는 수천년동안 변하지 않은 하나의 계급제도로 형성되어왔다. 전통적인 중국사회에는 네가지 부류의 계급이 존재했다. 즉 선비(학자)계급이 가장 높은 재위를 차지했으며 계급이 내려가는 순서로...

14. 대만의 번영

14 대만의 번영 20년전 대만의 한 젊은이가 대형 체인망을 갖고 있는 어느 미국백화점의 구매사무소에 들어섰다. 전에 한번도 미국에 와본 적이 없는 그는 화려한 현대식 사무실에 들어서자 긴장하고 두려웠다. 그는 사무실 입구의 프론트데스크에서 들고...

15. 성장의 그늘

15 성장의 그늘 ▪ 공해 아무런 대가를 치루지 않고 대만의 경제성장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환경은 피폐해졌고 여전히 환경에 대한 현실적인 관심은 없다. 최근에 타이완의 한 재벌 기업가가 대만 대학의 학생단체에서 연설을 했다. 그는 연설을 끝내...

16. 대망

제4부 거듭 살아남은 사람들 한국문화는 고대 중국의 영향과 일본의 점령, 그리고 민족적 단일성에 대한 강한 의지의 혼합체이다. 두 강대국들 사이에서 시달리면서도 한국인들은 순결한 의지와 결단력으로 살아 남았다. 이제 한국은 세계무대에서 중요한...

17. 성공적인 처신

제 5부 게임은 끝나고 17 성공적인 처신 ▪ 인정 일본, 한국, 그리고 중국의 문화는 인정에 대한 공자의 개념에 의해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이 개념은 세 나라의 언어에서 똑같은 중국어로 표현되며, 영어로는 ‘human feelings’로 번역된다. 그것은 ...

18. 미국은 종이호랑이인가

18 미국은 종이호랑이인가 미국은 심각한 경제문제에 직면해 있다. 연간 2천억달러에 이르는 예산적자와 함께 자신의 미래에 역행하는 빚을 짊어지고 있으며, 빚에 대한 상환시기는 급속히 다가오고 있다. 미국의 중공업은 노후한 기술로 운영되고 있으...

2. 시장은 전장이다

2 시장은 전장이다 ▪ 역사를 현실의 거울로 삼는다 서양의 사업가들이나 정치인들이 아시아인들과 상대할 때 흔히 당혹감을 느끼게 되는 이유를 이해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실상 아시아인들은 서양인 상대자들보다도 훨씬 더 정확하게 다듬어...

3. 손자병법

3 손자병법 4세기의 병법의 대가 손자에 의해 저술된 손자병법은 현재까지 전래되어온 군사전략서 가운데 가장 완벽한 책이다. 그것은 또한 현대의 독자들에게 가장 널리 읽히고 있는 병서이기도 하다. 이 책은 13편의 소단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론을 ...

4. 삼십육계

4 삼십육계 36계란 모든 상황에 대처하는 처세방법을 다룬 고대중국인들의 전략전집이다. 이것은 잘 알려진 일종의 중국 민속문학으로 약 천오백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전집은 6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부에는 6개 관련 전략...

5. 후안흑심

5 후안흑심 1911년 성도일보는 이충창씨가 쓴 후흑론이란 제목의 수필을 연재하기로 했다. 이 수필은 3회에 걸쳐 연재할 계획었었으나 첫회분이 실리자마자 격렬한 반응을 일으키는 바람에 나머지 연재분을 발표하지 못했다. 그후 얼마 안있어 이 에세이는...

6. 일본은 300년 동안 배타적이었다

 제 2부 개미 민족 다음 4장에 걸쳐 쓰여진 내용은 이미 백년 전에 일본인들이 구체적으로 설계했던 국가개발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그들은 이미 이 책의 앞 부분에서 논했던 속임수의 원리를 이용하여 그 계획을 추진해 나갔다.  6 일본은 3...

7. 미덕과 위선

7 미덕과 위선 나는 서구의 학자들이 집필한 현대 일본에 대한 저서들을 읽으면서, 저자들이 모든 내용을 일본인의 입장에서 의견을 개진한 무비판적인 태도에 놀랐다. 일반적으로 서구인의 동양관은 아시아 문화의 고상함과 신비적인 내용에 대한 그들의 ...

8. 기업 사무라이

8 기업 사무라이 ▪ 사무라이의 기원 표면상으로 볼 때 일본은 현대산업사회이다. 그러나 내면적으로는 봉건군주사회의 과거에 깊이 뿌리내린 사회이기도 하다. 일본인들은 아직도 사무라이 전통에 얽매여 있다. 일본을 이해하려면 누구나 이전통에 관련된 ...

9. 모리따와 이시하라

9 모리따와 이시하라 소니(Sony)사의 회장 아키오모리따와 전 일본 운수성장관 신따로 이시하라가 공동저술한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The Japan That Can Say No)’ 이란 책은 1989년 일본에서 처음 출판되었다. 모리따와 이시하라가 저술한 내용은 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