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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삼십육계

Views 782 Votes 0 2016.04.13 16:24:22

4 삼십육계


  36계란 모든 상황에 대처하는 처세방법을 다룬 고대중국인들의 전략전집이다. 이것은 잘 알려진 일종의 중국 민속문학으로 약 천오백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전집은 6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부에는 6개 관련 전략의 내용의 포함되어 있다.
  36계에 대해 몇가지 다른 해석판도 있지만, 6부+6계의 구성은 역경에서 육이라는 숫자를 가장 중요하게 다르고 있으며, 또한 육이라는 숫자는 책략과 연관되어 있다는 중국인들의 일반적인 관념 때문에 언제나 똑같은 정형을 이루고 있다.
  중국인의 지혜를 나타내는 대부분의 실례를 보면 그들 자신을 어떤 형태로든 역경에 관련시키고 있다. 손자, 손빈과 같은 병법의 대가들 모두가 역경에 지혜에 의존했으며, 그들의 군사철학과 전략에 있어서 역의 원리를 활용했다.
  영원한 음양의 조화에 의한 역경의 기본원리를 이용하여, 36계에는 우주자연적 이원법칙에 대한 특별한 계시를 유리하게 터득하고 활용하는 방법이 설명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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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계는 3개 내지 4개의 문자로 이루어진 숙어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것은 각기 연관성이 있는 역사, 철학 또는 신화로부터 전해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문어적으로 수천가지나 되는 이러한 숙어들과 그것들에 내포된 의미에 대한 연구는 중국인의 교육과정에서 필수적인 한 분야이다. 이리하여 오직 몇개의 문자에 의해 표현된 하나의 관념은 그 표현을 구성하고 있는 문자의 단순한 문어적 의미를 훨씬 뛰어넘어, 정교하고 다양한 의미를 지닌 숙어로 재창조된 것이다.
  36계는 이러한 숙어들을 모은 진귀한 전집이며 각 숙어의 주해와 실례가 담겨져 있다. 수세기에 걸쳐 여러명의 저자들이 각기 다른 주해와 실례를 제시했으나, 36계를 구성하는 36가지의 숙어를 선정하는 데에는 오직 한 부분에서 경미한 차이가 있을 뿐이다.
  36계 본래의 목적과 용도는 군사적인 것이었다. 구성전략이 분야별로 편제되어 있는 6개 부문은 다시, 응용될 수 있는 여섯가지의 각기 다른 군사적 상황에 따라 정의가 되어 있다.
  36계에 대한 민속적인 지혜와 고전적인 병법은 항상 밀접한 관련성이 있어왔지만 병법에서 바로 인용된 실례들은 결코 없었던 것들이다.
  36계라는 구문은 술책을 쓰는 행위를 가르치는 데 사용했던 중국인들의 공통된 표현이다. 심지어 중국의 어린이들도 그 의미를 잘 알고 있다. 중국인들은, 이러한 계략을 연구하는 것이 타인들을 기만하기 위한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는 그런 계략에 반하는 행위를 인식하고 이들 계략의 오용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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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계
하늘을 속이고 바다를 건너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때로는 공공연하게 바보스러운 행동을 연출하고 진실을 가려둘 필요가 있다. 그럼으로써 상대방으로 하여금 위장된 상황에 관심을 돌리게 하고, 목적을 노출시키지 않고도 쉽게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마술사가 관중들의 관심을 그의 요술적인 행위로부터 분산 시키기 위해 연막을 치는 기만적 행위와 같은 것이다. 중국 역사에는 이러한 계략이 사용된 수많은 사례가 있다.
  589년에 수나라는 이웃 진나라를 정복할 계획을 세웠다. 수나라 장수는 군대를 지휘하며 양자강을 따라 행군을 했다. 행군이 끝날때마다 그들은 진나라에서 마주보이는 강 건너에 야영을 설치하고, 대단히 많은 숫자의 깃대와 천막을 배치했다.
  이러한 군사의 이동을 보고 놀란 진나라는 상대방이 도강을 해올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그들의 모든 군사력을 집결시켰다. 그러나 수나라 군사들이 도강을 시도하지 않고 이와 같은 행군을 계속 되풀이하자, 진나라 장수는 수나라가 방어적인 목적으로 그들쪽의 강변에서 단순히 순시를 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을 했다.
  진나라 군사들이 그들의 경계를 늦추는 기미를 보이는 순간, 수나라의 군사들은 민첩하게 도강을 하여 진나라를 굴복시켜버렸다. 수왕조는 그해에 세워졌고, 중국은 약 300년 동안의 분단을 종식하고 다시 통일이 되었던 것이다.
  춘추시대(770-476 B.C.)에 소백과 위라는 두 왕자는 제나라를 세운 형으로부터의 암살을 피하기 위해 제나라를 탈출했다. 관중과 포숙이라는 충직한 두 참모는 왕자를 한 명씩 데리고 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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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다른 그들의 망명국으로 가서 광폭한 통치자를 전복시킬 수 있는 때를 기다렸다. 관중과 포숙은 훗날 두 왕자 가운데 어느 누가 왕위에 오르든지 상관없이 서로는 국가의 경영을 위해 협조할 것을 약속했다.
  소백왕자가 드디어 왕위에 오르게 되었고 노나라에 유배되어 살고 있는 그의 형제의 참모인 관중을 그에게 돌아오게 하는 방법을 강구했다.
  만약 제나라를 통치하는 데 관중을 재상직에 앉혀 그를 보좌하게 하려는 소백의 진의를 노나라의 왕이 알았더라면, 관중을 풀어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노나라로부터 어떤 의심도 받지 않기 위해 소백은 관중이 처벌을 받아야 하니 죄수로서 귀환시켜달라는 요청을 함으로써, 자신의 진의를 위장하고 단지 다섯마리의 양가죽을 선물로 보내어 그와 교환하자는 제의를 했다. 더우기 그는 관중에 대해 호의적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노의 왕에게 보이기 위해 일반 죄수들을 호송할 때 쓰는 마차를 보내어 그를 제나라로 데려왔다. 이런 식으로 소백은 그가 일반 죄수들을 다루듯이 관중을 평범하게 교환함으로써 노의 군주를 속여넘겼던 것이다.
  이렇나 역사적 사건들은 우리가 어떤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그것을 하나의 사건으로 단순하게 보아 넘긴다면 의심이나 확인의 여지가 생길 수 없다는 것을 시사해준다.
  가장 어두운 비밀들은 공공연하고 일상적인 사건 속에 흔히 감추어져 있는 것이라 하겠다. 음은 양속에 존재하고, 양은 음속에 존재한다. 즉 어둠 속에 빛이 있고, 빛 속에 어둠이 드리워져 있는 것이다.

제2계
위나라를 포위하고 조나라를 돕다
적의 허점을 찔러 공격할 목적이라면 선제공격이 불가피하다.
-‘손자병법’에서
“하나로써 열을 공격할 수 있는 전략이 있는가?”
왕이 물었다.
“네, 있습니다. 적의 허점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적어도 적이 미쳐 생각지도 못했던 그의 허점을 찔러야 합니다.”
-‘손빈병법’에서

  강한 적은 면전에서 직접 부딪치지 말고, 적의 힘을 분산시켜 공격해야 한다는 전략이다. 이 전략은 전국시대인 B.C.354년에 활용되었으며, 그 당시 조는 위나라에 의해 포위되어 있었다. 조나라는 제나라의 도움을 청했다. 제나라는 전장군과 그의 군사 그리고 전략의 대가인 손빈을 파견했다. 전장군은 정면공격으로 포위당한 조나라를 구하려 했으나 손빈은 반대책략을 내놓았다.
  “모든 위나라 군사는 현재 조나라를 포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위나라는 스스로가 무방비상태입니다. 우리가 위를 공격해 들어간다면 위의 군사는 자연히 그들의 나라를 지키기 위해 귀환할 것입니다.
  “전장군은 손빈의 계략에 지모가 있음을 알고 무방비상태에 있는 위나라를 향해 진군했다. 손빈의 예견대로 위나라는 조나라에 대한 포위를 풀었다. 위의 군사는 급히 귀환을 했으나 손빈이 설치해 놓은 매복에 걸려들어 패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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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계
남의 손을 빌어 사람을 죽임

승산이 불투명하고 어려움에 처했을 때
의지가 강한 자는
승리를 확고히 하기 위해 제3의 힘을 만들어
적의 운명을 자신의 수중에 가두어 놓을 수 있다.
-‘손자병법’에서

  이 전략은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적을 물리치기 위한 것이다.
  피아간의 싸움에 제3의 세력을 끌어들임으로써 이 전략은 수행된다. 그것은 상대방과 이쪽에서 이용하고자 하는 제삼자간에 현존하는 원한을 이용하든가 아니면 이간을 시켜 적대관계를 만들어놓는 것을 의미한다. 제삼자가 이쪽에서 바라고 있는 책략대로 적에게 피해를 입히는 행동을 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역시 우군이 비난을 받지 않고 적에게 피해를 입히기 위한 계략으로, 제3의 세력을 분쟁에 끌어들이는 것을 뜻한다. 어느 경우가 되었든 자신은 두손놓고 물러설 수 있는 것이다.
  전국시대(476-221 B.C.)에 주왕에서는 낭와라고 하는 재상과 3명의 참모가 있었다. 세명의 참모 가운데 비는, 백이 왕의 신임을 가장 많이 받고 있었기에 그를 몹시 시기했다. 하루는 비가 재상을 찾아가 백의 집에서 연회를 여는데 재상을 초대했다고 전해주었다. 재상은 기꺼히 초대에 응했다. 그러고나서 비는 백의 집에 찾아가 재상이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방문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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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는 서신을 전했다. 물론 백은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중국에서는 귀빈이 방문하면 초대에 응해준 데 대한 답례로 선물을 주는 것이 절대적인 관습이기 때문에 비는 백에게 재상을 위해 어떤 선물을 준비할 것이냐고 물었다.
  백이 미처 적절한 선물을 생각해내지 못하자 비는 재상이 병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백으로 하여금 최근에 위나라에서 노획해온 무기들 가운데서 선물을 선택하라고 권했다. 비는 재상이 들어올 때 그에게 무기들을 검사해보도록 요청하고 그것들을 그에게 선사할 수 있도록 대문 안에 비치해 두라고 백에게 일러주었다. 연회가 예정된 날이 다가오자 비는 대단히 비감한 표정으로 재상을 찾아갔다. 그는 재상에게 백의 집에는 무장한 병사들이 그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으니 연회에 참석하지 말라고 일러주었다. 재상은 이 사실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심복을 보내어 사정을 확인해보도록 했다. 심복이 돌아와 대문 안에는 무기들이 배치되었다고 알려주었다. 대노한 재상은 백을 체포해 버렸다. 백은 함정에 빠져든 것을 알았으나 때는 이미 늦어, 목숨을 잃고 말았다.
  춘추시대(770-476B.C) 회나라를 정복하기 위한 정나라 왕의 책략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그는 공격하기 전에 첩자를 시켜 회나라에서 가장 유능한 참모들의 명단을 만들어오라고 지시했다.
  그 다음 그는 동물의 피를 받쳐 엄숙한 맹세를 다짐하는 제를 올리고 승려들로 하여금 기도를 올리도록 했다. 정나라의 왕은 첩자가 가져온 명단을 보고나서, 회국을 정복하면 그는 이 참모들에게 그땅을 나누어주겠다는 서약을 했다. 하늘과 땅이 그의 증인이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회국의 왕은 정왕에게 속수무책으로 정복당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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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천안문사태 기간에 공산당은 적절하게 시위자들의 손을 빌어 등소평의 다음 대권승계자로 부상되고 있던 개방주의  당서기장 조자양을 제거했다. 그보다 일년 앞서서 상해에서 교육환경의 개선을 위해 학생들이 시위를 벌였을 때도 유사한 사건이 일어났다. 보수파들은 또다른 친 자유주의자인 호요방을 제거하는 데 시위사태를 이용했다.
  두 사건을 통해 학생들은 보수파들이 당내의 자유주의적 지도세력을 제거하는 구실을 제공해 주었다. 그들은 시위자들에게 상당히 동정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제4계
편안하게 쉬면서 적을 기다린다.

하루는 오직 24시간이다. 낮이 길면 밤이 짧다.
-중국의 격언

미리 전장에 나가 적을 기다리는 자는
휴식을 가질 시간 여유를 가질 수 있으나
뒤늦게 전장에 나간 자는
이미 지친 상태에서 허둥지둥 응전을 하게 된다.
싸움에 능한 자는 쉬면서도
적을 곤경에 빠지게 한다.
-‘손자병법’에서

  열세에 몰려 적과 대치해야 할 형편이면 대결을 늦추고 계속 시간을 벌어야 한다. 적은 지치고 그의 강한 세력은 누그러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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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결을 늦추면서 운명이 전도될 때까지 편히 기다려야 한다. 우군의 위세가 꺽이지 않고 적의 세력을 꺾을 수 있다면 열세에서 우세로 전환될 수 있다.
  이 전략은 현재 중국인들이 활용하는 상담술의 기본원칙이다.
  중국인들에게는 서방세계로부터 대규모의 자본과 기술 등 절실하게 필요한 것들이 있다. 이러한 수요를 위해 거래 상담을 하는 데 있어서 중국인들은 그들의 필요 때문에 약세에 처해 있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해외에서 지루한 거래 협상을 치루어야 하는 기본적인 불이익을 교묘히 반전시켜 그러한 부담을 항상 그들의 상대에게 전가한다.
  중요한 협상이 중국을 벗어난 외지에서 벌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 외국인이 한정되지 않은 어느 기간 동안 북경에 거주해야 할 경우, 그는 중국인 상대자들과 비교해 현저한 불이익을 당한다. 재정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어떤 거래를 성사시키고 예정된 계획대로 돌아가기 위해서 여러가지 많은 압박감을 받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외국인에게 있어서 북경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비용이 드는 도시들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는 역시 생소한 음식과 문화적 환경에도 대처해야만 한다. 결국 그가 협상을 진행시킬 수 있는 스테미너는 감소할 것이고 상대적으로 중국인의 입지는 그만큼 강화될 것이다. 중국인들은 특히 상대방 외국업체가 여행비용을 부담한다면 짧은 일정으로 외국업체를 방문 할 수도 있지만 기초단계에서 상담이 필요할 경우 그들은 자국 내에서의 유리한 점을 고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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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계
내우외환을 이용하라

적이 혼란에 빠졌을 때 쳐라.
-‘손자병법’에서

  승리란 상대의 불운에서 득을 취하여 얻어지는 것이다. 불난 집에 들어가서 물건을 훔치기 위해 혼란한 상황을 이용하는 것이다. 불에는 두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는 약탈을 하려고 계획한 자의 소행으로 불이 일어난 경우이다. 두번째는 원인모를 우연한 경우이며 이기회를 이용하여 약탈하는 것이다.
  고대 중국에서는 한나라가 홍수 또는 가뭄과 같은 천재지변으로 어려움에 처했을 때, 이웃나라들은 흔히 그 약점을 이용하여 그 나라를 공격해서 정복했다.
 명나라 왕조(1368-1644)를 전복시킨 잘 알려진 일화가 있다.
  반군의 두목이었던 이의 군대가 중국 전역을 거의 휩쓸고 북경의 궁궐까지 침입했다. 수비군은 붕괴되었고 황제는 궁 안의 뒷편 언덕에 있는 오얏나무에 목을 매고 자살했다. 이는 스스로를 중국의 황제라고 선포했다. 산해관(만리장성 입구)에 주둔해 있던 오장군이 항복할 준비를 하고 있을 때, 그가 가장 아끼는 애첩이 반군의 수령 이에게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복수심으로 울화가 치민 그는 동북지역 만주족에게 도움을 청했다.
  만주족은 중국에서 야만족으로 여기는 민족이었으며 중국황제의 관노로서 취급을 받았다. 그들은 흔히 명나라의 학대를 받아왔다. 만주족들은 굶주린 호랑이처럼 오랫동안 이러한 기회를 기다려왔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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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 오장군은 만주군을 통솔해 중국 내륙으로 진입했고, 불과 며칠만에 이는 패주하고 말았다. 이것으로 명나라는 종말을 가져왔고 청나라가 창건되었다.
  만주족들은 명나라 내부의 불화를 이용하여 정복자로 자리를 굳혔다.

제6계
동에서 군사를 움직이고 서쪽을 공격하라

다른 지점을 공격할듯이 위장을 하여 실제 공격목표를 감추어라. 적은 상대가 위장된 전략을 이용하리라는 것을 예측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이 전략은 위장전술에 적이 넘어가리만치 고도의 전술개발이 요구된다. 이러한 속임수의 가장 중요한 요건은 적의 반응을 정확하게 예견하는 능력이다.
  한나라 말기와 삼국시대 초기(A.D.198), 조조는 중국의 북쪽 지역에서 가장 강한 지도자였다. 그는 이름뿐만 아니라 실권으로도 황제다웠다. 중국의 문학과 설화에는 그의 명석함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전투에서 조조는 남양의 남쪽 도시를 공격했다. 남양의 사령관인 장은 성곽 뒷편으로 철수하며 도시를 사수할 태세를 갖추었다. 조조는 3일동안이나 도시를 포위하다가 동남쪽 성벽이 보수축조되었음을 발견했다. 그는 요새를 구축했던 경험을 통하여 새것과 헌재료를 섞어 축조한 성곽은 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하나의 책략으로 북서쪽 외곽에 그의 군사를 집결시키고 그곳에서 공격준비를 하는 듯이 위장했다. 한편 장의 참모는 조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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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을 포위하는 것을 예의 주시하다가 도시의 요시들 가운데 가장 취약한 곳이 역시 동남쪽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조조의 전략적 수완을 알고 있는터라 조조가 이러한 약점을 발견하고 함정을 설치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그는 장 장군에게 조조의 전략에 대응할 것을 권했다.
  장은 모든 군사들에게 민간인 복장으로 옷을 갈아입으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그는 모든 병사들을 북서쪽 성곽으로 보내어 조조로 하여금 그가 상대의 책략에 빠져든 것으로 믿게끔 만들었다. 한편 장의 노련한 부하들은 동남쪽 성벽부근에 매복을 설치했다. 그날밤 조조의 군사들은 은밀히 접근했고, 매복으로 대기하고 있던 장의 병사들에 의해 혼쭐이 났음은 물론이다.
  조조가 이와같은 전략을 시도했을 때 그의 위장전술이 그의 적을 따돌릴 수 있을 만큼 완벽하지 못했다는 것은 좀 아이러니한 것이었다. 결국 그는 장이 활용한 똑같은 전략에 말려들어 패하고 말았다.
  근대의 서구 군사전략사에도 이와같은 전술의 대표적인 실례가 있다.
  2차 대전 당시에 연합군은 유럽에 대한 임박한 침공이 노르만디 북부와는 무관한 것처럼 하여 독일의 수중에 장악되는 것을 허용했다. 히틀러와 독일의 고위 지휘본부는 교묘하게 위장된 전술에 완전히 기만당하여 그들은 노르만디 해변의 방서선으로부터 군대를 철수했다. 실제 연합군의 침공은 그곳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독일은 북으로 군대를 보내어 연합군의 침공에 대비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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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계
허에서 실을 낳는다

  이 전략의 목적은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한 것이다. 즉 허를 실로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바람이 없으면 파도가 일어날 리가 없다. 파도가 치려면 바람이 일어야 하는 법이다.
  755년에 안록산은 황제에 대해 반기를 들고 하남성의 한도시를 포위했다. 성 밖에 진을 친 안록산의 반군들은 황제의 군대보다 숫적으로 우세했으나 시의 방어를 맡았던 지휘관 장순은 최후까지 사수할 것을 결심했다. 장은 수만개의 허수아비를 만들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허수아비들에게 병사들의 옷을 입혔다. 그리고는 노끈으로 매달아 성밖 아래에 진열해 놓았다.
  안록산의 병사들은 그 허수아비들이 공격태세를 갖춘 실제 병사들이라고 생각하고는 수십만개의 화살을 허수아비들을 향해 쏘아댔다. 장의 병사들은 안록산의 궁수들을 조롱하고 그들이 활을 쏘아대는 것을 고맙게 여기면서 허수아비들을 끌어올렸다. 장은 나중에 5백의 병사들로 하여금 성 밖으로 내려가도록 명령했다. 이때 안록산의 병사들은 그것이 화살을 낭비하게끔 만드는 또다른 술책이라고 생각하고 공격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장의 5백명 군사들은 적의 진영에 쳐들어가 그들을 물리쳤다.
  한국전쟁에서는 오랫동안 서로의 입지가 뒤바뀌는 혼전을 거듭했다. 중공군은 미군들을 괴롭히느라 밤이면 꽹가리를 이용하여 시끄러운 소음을 만들어냈다. 처음에 미군들은 긴장하며 매우 경계했으나 여러날 밤을 이렇게 보내고나자 미군병사들은 이런 소음에 익숙해졌고 긴장이 풀려버렸다. 얼마 후 중공군은 수천개의 꽹가리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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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위장을 하고 공격을 감행했던 것이다.

제8계
은밀히 진창길을 건너간다

승리를 얻기 위해서는 적의 정황에 따라 작전을 구사해야 한다.
처음에 적을 전장으로 유인할 때는
어린 새색시만큼이나 조심스러운 마음가짐으로 나서야 한다.
그다음 적이 모습을 드러내면
질풍처럼 움직여 위세로써 적을 꺾어야 한다.
-‘손자병법’에서

  진나라 말기(B.C.208)에, 항우와 전투를 벌이던 유방은 사천성으로 퇴각을 해야만 했다. 곧 반격할지도 모른다는 항우의 의심을 없애기 위해 유방은 사천으로 통하는 유일한 도로를 끊어버렸다. 얼마 후 유방은 중국 내륙의 요지로 다시 진격준비를 하면서 파괴된 도로를 공공연히 보수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항우로 하여금 도로보수공사를 끝낼 때까지는 유방의 공격이 없을 것이라고 믿게 만들었다. 대신 유방은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암도진창이라는 전략을 이용하여 항우를 불시에 공격했고, 이로써 유방은 하나라 왕조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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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계
강건너 불을 지켜보라

싸움에 능한 자는
먼저 자신의 유리한 지위를 확보한 다음
적을 물리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패배를 딛고 자신을 보호하는 것은 자신의 노력에 달렸지만
승리의 기회는 적으로부터 제공되어야 한다.
-‘손자병법’에서

  강 건너에 타고 있는 불을 주의깊게 바라보는 것은, 인내하면서 때를 기다리며 이쪽에 유리한 기회가 될 만한 사태를 기다리는 태도이다.
  유능한 전략가는 행동하거나 자제해야 할 최적의 시기를 판단할 줄 안다. 적의 내부에 불화가 일어났을 때 강건너 불을 보듯이 하다가 그 불을 이용하여 공격하는 것이 최상책이다.
  중국어린이들은 조개와 굴에 대한 이야기를 알고 있다. 조개와 굴이 바닷가에서 싸우고 있었다. 심지어 어부가 그들을 발견했을 때까지도 서로는 물고 놓지 않았다. 어부는 둘 다 그물로 떠올려 집으로 가져와 저녁요리로 해먹어버렸다. 조개와 굴은 그들의 사소한 충돌때문에 죽음이라는 위기에 빠졌다. 그들 모두에게, 죽음은 제3자에 의해 다가왔던 것이다.
  조조는 이러한 전략을 원씨 형제들에게 다시 써먹었다. 두 형제는 조조에게 패한 후, 수천의 군사와 함께 요동으로 탈출을 기도했다. 조조는 그들을 추격하지 않았다. 요동의 군주는 두 형제의 아버지인 원장군을 항상 두려워해왔고, 그들 가족에 대한 깊은 증오심을 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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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다는 것을 조조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조조는 요동의 군주가 그의 공격을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에 군사를 거느린 그들 두형제를 받아줄 것이라는 점을 역시 알고 있었다. 두려워하던 사태가 발생하지 않자 요동군주는 안심을 했고, 원씨 형제들에게 피신처를 제공해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조조가 예측한대로 며칠 후, 요동으로부터 사자들이 조조에게 두형제의 머리를 들고 찾아왔다.
  조조는 ‘강 건너 불’을 지켜보았던 것이다. 사태가 발전하는대로 내버려둠으로써 불이 그의 적을 소멸시키도록 했던 조조는 어떤 소모도 없이 건재했다.
  불을 단지 지켜보고 있어야 할 때와 행동으로 끼어들어야 할 때를 가름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기를 맞추는 것이 전적으로 중요한 것이다.
  천안문 광장, 학생들과 정부군 사이에 벌어진 대결에서 유일한 승자는 대만 정부였다. 중국인들은 오직 하나의 중국만이 있을 뿐이라고 믿었다. 본토에 살건, 대만에 살건, 또는 런던, 로스엔젤레스 등 어디에 살고 있건간에, 중국인이라면 모두가 중국이라는 거대한 단일가족의 한 구성원으로서 간주된다.
  두개의 정부는 서로가 중국민의 합법적인 대변자라고 주장한다. 천안문 광장에서의 학살을 다룬 세계의 언론 때문에, 중국 당국의 주장은 위축이 되었다. 비무장한 시민들의 시체를 탱크로 깔아버린 것을 합법정부의 행동으로 보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대만은 중공 내의 내부불안으로 반사이득을 극대화하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학살이 있은 직후 대만 정부는 워싱턴 포스트지에 전면광고를 게재하고 그들이 중국인을 위한 합법적 대변인이라는 주장을 재천명했다. 본토에서 탈출한 학생지도자들은 현재 대만 정부가 발행한 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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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여행하고 있다. 대만 정부는 현재 미국과 유럽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가장 영향력있는 학생지도자들의 생활비를 지급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대만 정부는 장차의 대결에서 그들이 반사이득을 얻기 위해 학생시위 운동을 지원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아끼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제10계
웃는 얼굴 뒤에 칼을 감추어 두다
  적이 평화를 말하고 있을 때 그는 뒤에서 계략을 꾸미고 있다.
-‘손자병법’에서

  이 전략은 적으로 하여금 경계심을 풀고 믿음을 주어 그에 대한 이득을 취하기 위한 것이다.
  근대사에서 일본의 진주만공격은 이와같은 계략의 한 본보기로 간주되고 있다. 일본외교관들은 평화를 유지하기 바란다고 미국에 확신을 주기 위한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는 한편, 오랫동안 대미공격을 위해 준비했다.
  그들은 미국이 완전히 무방비상태가 되길 원했다. 협상은 1941년 12월 7일까지 계속되었고, 드디어 일본은 그 얼굴에서 미소를 거두고 하와이의 진주만을 공격함으로써 감추어두었던 칼을 뽑아들었다.
  오늘날 이 전략은 군사적 이득에서보다는 경제전쟁에서 더욱더 보편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협상테이블에서는 웃는 얼굴과 우정어린 표현을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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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계
살구가 복숭아 대신 넘어지다

  옛날 중국의 한 우화에 의하면 살구나무가 복숭아나무 옆에서 자라고 있었다. 벌레들이 복숭아나무 뿌리를 잘라냈다.
  둘중에 복숭아나무가 더 가치가 있는지라 살구나무는 자진하여 복숭아나무를 대신해서 벌레들에게 자신을 희생하여 넘어졌다.
  전장군과 손빈의 휘하에 있던 제나라 군사는 위나라가 다른 곳에서 싸우고 있는 동안 위나라의 서울을 향해 진군했다. 위나라 장수는 가능한한 신속히 수도를 방어하기 위해 그 군사들에게 회군을 명령했다. 손빈의 첩자들은 위나라의 병력이 세 진영으로 나뉘어 화급히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고했다. 전장군은 위나라의 3개 군부대에 대해 3두마의 전략을 이용하려고 했으나 손빈은 그렇지가 않았다.
  그는 두번의 승리를 거두기보다는 차라리 가장 숫자가 많은 적군의 부대를 섬멸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손빈은 제나라 군사를 3개 단위로 편성하고 가장 약한 부대로 하여금 적의 가장 강한 부대와 싸우게 하고 다음 중간 세력의 부대를 위나라의 중간규모의 부대와 대적하게 했다. 그리고 우군의 가장 강한 부대는 적군의 가장 약한 부대를 맞도록 했다. 그리고 처음 두 진영은 전투를 지연시킬 수 있도록 조심스럽게 방어위주의 전투를 벌이도록 했다.
  제나라의 강한 부대는 속전속결로 적의 약한 부대를 괴멸하고 위나라의 중간세력 부대를 압도할 만큼 강한 편대를 만들기 위해, 우군의 중간세력 부대와 합류했다. 그다음 이 두 그룹의 편대는 위나라 군사의 가장 강한 부대의 진격을 막는 동안, 엄청난 피해를 당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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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있는 우군의 가장 약한 부대의 지원을 서둘렀다. 그들은 합세하여 위군의 마지막 부대를 완파하고 완전한 승리를 거두었다.
  승리는 다음과 같은 두가지 요건에 의하여 얻어진 것이었다.
  전투력이 열세인 상태에서 용맹스럽게 기꺼이 싸웠던 가장 약한 부대의 병사들과, 속전속결로 쉽게 승리를 거뒀던 다른 두편대, 그리고 대진의 기본목표를 분별있게 설정해 놓은 손빈의 천재적 수완이었다.
  이런 전략에 대한 최초의 분명한 실례는 천안문광장 사태이다. 시위자들은 공산당의 강경노선 지지자들과 그들 자신이 대치하는 데에는 대단한 개인적 위험이 따른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살구나무처럼 더 위대한 명분 즉 중국의 민주개혁의 명분을 위해 그들 스스로가 기꺼이 희생했던 것이다.
  비지니스 세계에 있어서 상담을 추진하는 자는 항상 현실적인 기본목적의식을 지녀야 하며, 그들의 협상의제 가운데 더욱 중요한 요건들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비중이 낮은 부분들은 과감히 포기해야 한다. 이것은 비중이 대단하지 않은 것은 포기하고 대신 중요한 것을 얻기 위한 전략의 기본 원칙이다.

제12계
작은 실수라도 그냥 보아 넘기지 말라

승리의 기회는 적에 의해서 주어진다.
-‘손자병법’에서

  길가에서 어느 누구도 돌보지 않는 양을 보았다면 집으로 끌고가 자기의 소유로 만든다. 이것은 우연한 기회에 조그만한 이득을 취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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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있다면 민첩하게 행동하여, 적의 작은 실수라도 자신의 이득으로 만들라는 뜻이다.
  유방이 항우와 싸우는 동안 중국내륙에 다시 진격하기 위해 ‘암도진장’의 수법을 비밀리에 사용했을 때, 그는 명목상 적의 지배하에 있는 3개의 작은 지역을 찾아냈다. 중국 변방지역의 한 구석에 있는 후국은 무방비상태였던 것이다. 유방은 그들을 점령하고 자신의 소유로 만들었다. 이것은 기대도 하지 않았고 계획된 일도 아니었지만, 유방은 그것을 잽싸게 빼앗아버렸다.
  이 영토들은 훗날 그에게 커다란 전략적 가치를 지니게 되었던 것이다.
  동북아의 만주인들을 중국에 끌어들였던 오장군의 이야기를 상기해 보라. 만주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은 단순히 적을 이용하여 상대의 취약점으로 이득을 얻었다. 이 경우 돌보지 않고 버려진 양은 중국이었다.

제13계
풀을 두들겨 뱀을 놀라게 하다

적을 앞서가는 최선의 전략은
바람없는 날의 숲처럼 조용하고, 산처럼 움직이지 않으며,
어둠처럼 불가해한 모습으로 머무는 것이다.
-‘손자병법’에서

  풀을 두르려서 뱀을 밖으로 나오게 하는 것은 경우에 따라서 바람직할 수도 있고 바람직하지 않은 행위가 될 수도 있다. 뱀을 놀라게 하여 잡을 의도라면 풀을 두드리는 것은 잘못이다. 하지만 뱀과 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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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 대결을 하려 한다면, 풀을 두드려 뱀을 밖으로 끌어내야 한다.
  뱀이 풀 속에 있다는 것을 안다면, 뱀이 자신의 정체가 노출되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한은 전적으로 유리하다. 적의 의도를 파악했을 때는 모르는 척하는 것이 상책이다. 적은 자신이 노출되지 않았다고 믿는다면 의심도 하지 않고 있을 것이다. 뱀을 끌어내는 것이 더 유리하다면 풀을 두르려라. 상황이 어떻게 변하는지, 그리고 자신에게 어떤 상황이 더 유리한지 주시하라.
  디트로이트의 야구팀 타이거즈의 감독 스파키 앤더슨은, 그가 씬시내티레드팀의 감독시절에 일어났던 사건에 대해 내게 이야기해준 적이 있다.
그가 감독으로 있을 당시 레드팀은 다섯번의 지역챔피언과 네번의 전국 리그전에서 우승을, 그리고 두차례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따냈다. 이러한 실적을 올린 뒤에는 팀의 전적에 실망을 안겨준 시즌이 두차례나 뒤따랐다. 그 시즌 게임이 끝난 직후, 레드팀은 일본으로 친선방문여행을 떠났다가 미국에 돌아오자 스파키는 팀의 신임 경영자로부터 자신이 해고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앤더슨은, 해고 자체는 그리 괴로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 방법이 문제였다고 내게 말했다. 그들은 자신을 해고시킬 계획을 이미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을 방문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는 그들이 자신을 해고하려고 했다면 왜 시즌이 끝났을 때 그런 조치를 하지 않았는지 의문스러웠다. 구단주들은 그를 일본에 보내기 전에 일본에서 거의 홍보적 가치를 이용하고 싶었기 때문에 ‘풀을 두드려 뱀을 끌어내는’방법을 사용하지 않았음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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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계
남의 시신을 빌어 영혼을 찾아오다

  중국의 신화에 의하면 이라는 예언자가 있었다. 그는 어느날 그의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자신이 영혼으로서 천국을 방문하여 여행을 하고 일주일 후에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 제자는 7일 동안 그의 시신을 지키며 전적으로 돌보겠다고 약속했다. 스승이 떠난지 6일째 되는 날, 제자는 그의 어머니가 위독하니 급히 집으로 돌아오라는 전갈을 받았다. 제자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뵙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다.
  스승은 6일 동안이나 죽어있는 상태였기에, 그가 시신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가졌다. 그래서 그는 스승의 시신을 화장해버리고, 어머니를 만나보러 떠나버렸다. 스승이 7일째 되던 날 이 세상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자신의 시신을 찾을 수가 없었고 그래서 그의 영혼은 마침 길가에 죽어있는 거지의 시신으로 들어갔다.
  이리하여 거지의 시체에는 새 생명이 주어졌다.
  어느 중국회사가 폐업위기에 처했을 때, 마침 합작투자 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어떤 서구회사에 흡수된다면 그 회사는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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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계
호랑이를 부추겨 산을 떠나게 한다

  호랑이는 자연환경, 즉 산에서 있을 때만 무서운 존재이다.
  한 개인의 힘의 근원을 파악해 본 다음, 그 힘이 개인적인 것이라면 그 개인을 제거하라. 한 개인의 힘의 근원이 그의 참모로부터 나온 것이라면 그 참모를 제거하라. 호랑이를 유혹하여 산을 떠나게 하라.
  중요한 의미는 ‘유혹’이라는 말이 있다. 사나운 호랑이를 산에서 떠나게끔 유혹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마땅한 미끼를 사용하기 위해 호랑이의 성격을 이해해야 한다.
  미국의 어느 대재벌 회사의 회장이 사업투자 관계로 아시아를 방문할 때, 마치 호랑이가 산을 떠나는 것과 같았다. 그는 인상적인 사무실 건물과 공장, 그리고 호화스런 승용차를 뒤로 하고 그것들을 호텔 방과 택시로 대신한 채 몇명의 보좌역들만을 데리고 여행을 떠난 것이다. 그에게는 외국어와 외국의 관습과 싸우는 일만 남아 있었다.
  1989년 중국에서의 학생시위는 북경의 천안문 광장으로 집중되었는데, 그 광장이 인민혁명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광장의 점거는 학생들의 투쟁을 하나의 역사적인 위상으로 올려놓았고 중국 인민들의 투쟁으로 연계시켰다. 정부는 협상을 시작하기 전에 학생들을 달래어 광장을 떠나게 하려고 여러차례 시도했다. 그러나 학생들은 광장의 상징적인 의미를 알고 있었기에 떠날 것을 거부했다. 1990년 1월에, 의도적인 목적으로 중국정부는 천안문 광장 내에서나 또는 주변에서 어떤 시위도 금하는 새 법률을 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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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계
잡으면서 놔 주어라

적을 포위하더라도, 빠져나갈 퇴로는
열어주어야 한다.
그리고 절망적인 적에게
지나치게 압박을 주지 말라.
-‘손자병법’에서

  퇴로가 차단당했을 때, 절망은 오히려 투지를 소생시킨다. 그러므로 적에게는 퇴각할 수 있는 여유를 주어야 한다. 패주하는 적은 체력과 사기가 거의 소모되고 만다. 적의 투지가 완전히 소모되면 별로 힘들이지 않고 그를 잡을 수 있다.
  제갈공명이 동과 북의 나라들과 싸움을 치루는 동안, 남쪽의 야만적인 이웃나라가 계속해서 국경을 침범해왔다. 마침내 공명은 그 문제에 대처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했다. 계속되는 전쟁의 와중에서도 공명은 남쪽의 야만족 수령을 지체없이 체포해버렸다. 그리고나서 그를 풀어주었다. 그는 일곱차례나 오랑캐의 수령을 잡았다가 풀어주곤 했다. 마침내 상대방은 이 위대한 인간 앞에서 자신의 무기력함을 깨닫고 공명에게 충성을 다짐했다.
  남쪽에서 평화를 유지하지 않고서는 동과 서에서 대치하고 있는 적을 감당할 수가 없었던 제갈공명은 남쪽 국경을 평정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승리를 얻는 것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그들의 충성을 얻어려 했던 것이다.
  1989년 천안문광장 시위 기간에 날씨는 이상기온으로 무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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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햇볕을 받으며 광장 주변에 집결한 정부군은 매우 불편함을 겪어야만 했다. 시위자들은 군인들에게 존경과 우호를 보여주기 위해 빙과를 그들에게 날라다 주었다. 시위자들을 공격하라는 명령이 하달되었을 때 군인들은 거절했다. 중국정부는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최근 북경사태에 대해 별로 아는 바가 없는 타지역 성의 군인들을 투입시켰다.
  이 전략은 완충적인 방법을 뜻하며, 유연한 처신이 효과를 거둘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사업경영에 있어서도 하급직원을 엄격히 처벌하는 대신 동정적인 처우와 가벼운 처벌로서 더욱 더 충직한 직원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제17계
벽돌을 주고 옥을 가져온다

단순한 벽돌 하나와 값진 옥을 바꾼다는 것은 이득이 대단한 거래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벽돌을 주고 옥을 바꾸기 위해 상대를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자신의 벽돌은 상대방의 옥보다 더 큰 가치가 있다는 확신을 주어야 한다. 상대에게 확신을 주려고 한다면 그의 성격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끼는 상대가 반응을 보일만큼 유혹적인 것이어야 한다.
  매년 많은 아시아 국가들은 식량을 사기 위해 구매대표단을 미국에 파견한다. 고위 신분의 대표들은 개별적으로 구매결정을 하기 위해 여러 주를 여행한다. 그러나 사실상 그들은 이미 어느 메이저 브로커를 통해 곡물을 구매해 놓은 상태다. 그들은 브로커의 사무실이 있는 각주를 여행하며 거래를 성사시킨 공로를 인정받을 만한 그 지역 정치인들과 인사를 나누기도 하며 기념사진을 찍기도 하는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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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말해서 그들은 필요한 모든 곡물을 그 지역에서 구매했다는 인상을 풍긴다. 그들은 이미 곡물을 구매했기 때문에 관비예산으로 여행하면서 구매행위를 하는 척하는 것은 정치적 제스추어이다. 그들은 각주의 주지사와 상원의원들이, 그 주의 경제정책을 담당한 주역들로서 그들을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따라서 그들의 영향력을 이용한다.
  서방국가들이 아시아의 국가들과의 거래에 있어서 충분한 댓가를 얻어내는 것은 확실히 가능한 것이지만, 주어지는 것과 얻어지는 것을 신중히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결과는 항상 예상하는 것과 다르게 마련이다.

제18계
적을 물리치려면
적의 장수를 먼저 잡으라

자신을 알고 적을 알면 백전백승이다.
-‘손자병법’에서
 
  적장을 잡음으로써 적을 물리친다는 것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원칙이다. 역사 전반에 걸쳐 이 전략의 효용성에 대해서는 수많은 예증이 있다.
  근래에 미국에서 잘 알려진 한 비지니스 잡지에 최고 인기있는 제명의 앵커우먼에 대해 분석 취재한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의 내용은 방송사 경영진들의 관심을 사로잡는 데 남달리 비범한 능력을 발휘한 이들 가운데 한 여인의 성공담을 다룬 것이다.
  기사 내용에 의하면 PD회의중에 방송국의 사장이나 회장으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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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 전화를 받는 것은 예사였다고 한다.
  비지니스 세계에 있어서 경영책임자, 즉 정책결정자는 무엇보다도 조직 내에 동화되어야 하며 그다음 그는 집념같은 정열에 사로잡혀야 한다. 그 경영책임자가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에 대해 철저히 이해한 다음, 자신이 그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위상을 지녀야 한다. 경영책임자가 원하는 것을 충족시켜줄 수 없다면 그를 사로잡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 국가에서 상사의 요구사항을 분별하여 충족시켜 주는 일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보다 훨씬 복잡하고 까다롭다. 상사의 궁극적인 목적은 항상 돈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당에서의 권력적 지위, 또는 관료로서의 승진, 또는 자신의 아들을 위해 미국의 훌륭한 교육기회를 얻기 위한 것이 될 수도 있다. 상사의 관심을 끄는 능력은 상사를 이해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에 달려 있다.

제19계
솥 밑에서 장작을 빼다

  화력은 물이 끓는 정도에 따라 결정된다. 불의 힘은 타고 있는 장작으로부터 나온다. 끓고 있는 물의 온도가 너무 높아 위험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솥 밑에서 장작을 제거함으로써 물을 냉각시키고 위험을 면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상대의 강한 면과는 대결을 하지 말아야 한다. 차라리 그의 강한 점을 피하고 그 힘의 근원을 제거하라.
  전국시대(476-221 B.C.)에 락장군은 연나라의 군사를 이끌고 70여개가 넘는 제나라의 도시를 점령했다. 제나라는 오직 두개의 도시로 고립되었고 그중 하나는 전단이 방어하고 있었다. 전단은 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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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이 락장군의 비범한 능력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우선적인 전략은 적장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적의 장수가 스스로 제나라의 왕위에 오르기 위해 음모를 하고 있기 때문에 남은 두 도시를 점령하는데 일부러 시간을 끌고 있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이런 소문이 연나라 왕에게 들어가자 그는 락 장군을 즉시 해임시켜 버렸다. 무서운 상대인 락 장군을 계략으로 제거함으로써 전단은 그성을 포위한 적군을 물리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락 장군이 점령했던 70개 도시 전지역을 해방시켰다.
  오늘날 정치적 또는 사업적 협상에 있어서 나타나는 어려움들은 개인의 역할에 기인할 때가 많다. 차라리 그러한 개인이 만들어 놓은 문제에 대처하기보다는 이러한 개인적인 역할을 제거하거나 또는 그의 기능이 무시되도록 만드는 전략이 필요하다.

제20계
주객을 전도시켜라

  호스트(Host)는 회의나 모임을 진행하고 관리하는 데 아주 유리한 점을 지니고 있다. 회의 장소를 준비하고 안건을 진행함에 있어 그는 자신의 이해관계에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1985년에 미.일(U.S.-Japan)간의 시장과 상공회의소 대표들의 회의가 오레곤주 포트랜드에서 열렸다. 무역수지 불균형이 미국측 대표들에게는 커다란 관심사였고 따라서 그것이 토의안건의 주요 의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일본측 대표들은 그러한 의제가 토의되는 것을 전혀 원치 않았으나 이 문제에 대해 피할 방법은 없었고, 더우기 과열된 논의가 일어날 경우를 대비하여 동경 상공회의소의 한 간부는 많은 연구를 했다고 필자에게 실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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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무역수지 불균형에 대한 문제는 일주일간이나 계속된 회의기간 동안에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일본인들은 주최측인 미국인 호스트들의 친절한 예우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아주 기술적으로 의제를 다루었다. 미국인들은 분명히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주게 될 의제를 내놓고 토의함으로써 그들의 손님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일은 삼가했다.
  일본측의 보좌관은 우려했던 문제에 대한 자료가 더이상 필요없다고 생각하고 무거운 서류가방을 가지고 돌아가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에 그것들을 기꺼이 내게 넘겨주었다.

제21계
매미가 허물을 벗는다

  매미란 놈은 어느 단계까지 자라면 허물을 벗는다. 그다음 텅 빈 껍데기만 남기고 어디론가 날아가버린다. 그러나 버려진 그 빈 껍데기는 흔히 진짜 매미로 착각하게 만든다.
  옛날 중국의 설화에 의하면 군사들이 캠프를 그냥두고 퇴각을 하는 이야기가 가끔 나온다. 소수의 병사들이 남아서 북을 치고 조리용 화덕을 계속 피우고 했다는 것이다. 이 전략은 도주하기 위한 수단으로서만 사용되었던 것은 아니다. 그것은 역시 적의 후방을 기습적으로 공격하기 위한 방법으로도 사용되었다.
  왕양명은 명나라 때의 대선비이자 정치가였다. 그의 정적으로서 세도가 대단했던 내시 유가 그를 모함한 탓에, 왕양명은 중국 남쪽지방의 벽지로 유배되었다. 하지만 유는 왕양명의 유배에 만족치 않고 그가 죽기를 바랐다.
  유배의 길을 가는 도중에 왕양명은, 유가 보낸 자객들로부터 미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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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자신이 죽을 때까지 유가 만족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왕은 그러한 위협에서 영원히 벗어나기 위해 자결을 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그의 옷을 강물에 던져버렸다. 그리고는 그의 하인에게 강뚝에서 소리내어 울도록 일렀다. 자객은 왕이 자살했다는 사실을 유에게 보고했고 문제는 그렇게 끝나고 말았다.

제22계
시신을 거두면서 다른 사람에게
살인혐의를 씌운다

  당나라 때 무측천이라는 후궁이 황제의 총애를 받고 있었다.
  그녀는 황제의 후궁들 가운데 제일이라는 것에 만족치 않고, 황제에게 황후를 폐출하고 자신을 그 자리에 앉혀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어떤 큰 잘못도 없는 한, 황제라도 황후를 버릴 수는 없었다. 이러한 조치는 역시 국사를 돌보는 조정대신들의 동의가 필요했다.
  무는 그녀의 욕망을 즉시 이루지 못하자 그녀 스스로가 황후의 신임과 동정을 얻기 위해 행동했다. 그녀는 황제가 하사한 값비싼 패물들을 황후에게 바쳤다. 주위의 대신들로부터 무는 신임할 수 없는 여인이라고 경고를 받았지만 황후는 그 말을 듣지 않았다.
  무가 첫아이를 낳았을 때 황후는 그녀를 찾아갔다. 그녀는 갓 태어난 딸 아이를 안아주며 아이의 아름다움을 칭찬해주기도 했다. 황후가 떠나자 그녀는 자신의 아이를 목졸라 죽여버린 후, 황후가 자식이 없다보니 질투를 한 나머지 그렇게 비열한 짓을 했다고 주장했다. 무측천은 항상 부드럽고 친절한 성품을 위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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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자신의 아이를 죽였으리라는 가능성은 생각해볼 수도 없는 일이었다.
  황후가 오해받을 소지는 단순한 동기였다. 그녀는 후사를 맡을 태자를 두지 못해 소외당하는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황후는 처벌을 받아 폐출되고 무가 그녀의 자리를 차지했다.
  무와 같이 사악하게 처신하는 경우는 극히 없는 일이지만 이러한 전략은 크게 힘들이지 않고 쉽게 이용될 수도 있다. 심지어 어린아이들조차도 자신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 손가락으로 다른 사람을 가리킨다. 기업정책이라는 복잡한 세계에서 어떤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흔히 있을 수 있는 게임인 것이다.

제23계
원숭이에게 겁을 주기 위해 수탉을 죽인다

  원숭이는 매우 영리한 동물이다. 그들은 쉽게 길들여질 수도 있지만 흔히 반항적이기도 하다. 옛날 중국에서는 원숭이가 복종하고 잘 따르지 않을 때면 조련사는 말을 안듣는 원숭이 앞에서 수탉을 죽이곤 했다. 조련사의 손아귀에서 수탉이 죽어가는 고통스운 모습을 지켜본 원숭이는 즉시 명령에 대한 저항감을 버리고 완전히 복종하는 자세로 변하게 된다.
  1989년 천안문광장의 시위기간에 중국 정부는 중국의 언론인들에게 이러한 전략을 써먹었다. 그해 5월 초에는 중국 언론들이 학생시위자들에게 보여준 동정적인 내용의 기사에 대해 관용적이었다. 그러나 5월 하순경 중국 언론 가운데 몇몇 중요한 매체들이 실제적으로 시위자들과 합세를 하자 중국 정부는 더욱 강경한 자세를 취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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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을 해버렸다. 그들은 미국의 CNN방송으로 하여금 뉴스전송을 중단하도록 지시했고, 방송을 하고 있던 미국 CBS방송의 보도기자단 레더(Dan Rather)의 입을 막아버렸다.
중국정부가 국제적 이미지에 대해 얼마나 우려하고 있었느냐 하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정부가 세계의 가장 영향력있는 뉴스매체의 보도를 중단시키려고 했다면 자국내의 언론들을 대처하는 것과 같은 극단적인 방법으로 대응하리라는 것을 중국인들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중국정부는 서방의 언론들을 수탉처럼 써먹었던 것이다.
  6월 4일에 정부는 다시 이 전략을 활용했다. 이번에는 학생들이 수탉처럼 천안문광장에서 학살되었고, 중국인민들은 정부가 관리하는 원숭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제24계
용을 훔쳐 봉과 바꾼다

  송나라 때 진종이라는 황제(A.D. 997-1022)에게는 총애하는 후궁이 하나 있었는데 왕자를 출생하는 바람에 황후의 지위가 위태로워졌다. 황후는 아이의 출산을 맡은 산파를 매수하여 어린왕자를 죽은 여우로 바꿔 놓았다. 황후는 갓 태어난 왕자를 데려다가 자신이 낳은 자식이라고 알렸다. 후궁은 분명히 죽은 여우를 낳았기 때문에 그녀는 사악한 요정으로 낙인이 찍히고 말았다. 그 후궁은 대궐에서 쫓겨나고, 황후는 다음 황제의 어머니가 됨으로써 자신의 지위를 지켰다.
  진시황제가 전선을 시찰하러 궁궐에서 나가 있던 동안, 그는 중병에 걸리고 말았다. 그는 소생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태자인 부소에게 지위승계를 한다는 유언을 즉시 작성했다. 그는 임종하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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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황급히 입궐한 재상 이사에게 유언장과 옥쇄를 넘겨주었다. 이사는 후계문제를 염려하여 내시 조고에게 자문을 청했다.
  “ 내 생각으로는 부소 태자가 황제가 되면 대감의 목숨이 위태로울 것 같습니다. 그 유언을 바꾸시어 부소 태자를 탄핵하여 죽게 하고 호해 왕자를 후계자로 삼으십시오.”
  이사는 혼돈스럽고 두려웠지만 조고의 조언을 따르기로 결심했다. 그는 부소 태자에게 사약을 내리고 호해 황자로 하여금 황제에 즉위하도록 만들었다. 황제가 된 호해는 내시인 조고를 재상으로 등용했고, 조고는 이사를 죽여버렸다.
  일식집의 진열장에는 플래스틱으로 만들어 놓은 음식 모형을 가끔 볼 수 있다. 플래스틱 음식은 모두가 한결같이 같은 공장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레스토랑에서 제공하는 음식의 질과는 사실상 무관하다. 그런데도 그것이 하나의 유혹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은, 인간이 갖고 있는 불가사의한 측면을 보여주는 일단이라 하겠다. 우리는 이러한 전략이 광고에도 흔히 활용되고 있음을 알고 있다. 상품의 전시적인 특징은 현실성과는 무관한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건강에 해로운 설탕의 과잉소비를 피하기 위해 특별히 조리한 아침식사가 완전한 영양식으로 제공되고 있는 오늘날의 현실이다.

제25계
멀리있는 자는 화친하고
가까이 있는 자는 공격하라

  병참보급선이 끊기지 않고 확보된 상태에서 일사불란한 방법으로 전진해 가는 것이 안전한 군 작전이다. 우군의 지배하에 있지 않은 지역을 건너 군사작전을 펴는 것은 불안하기 때문에, 멀리있는 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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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해서는 안된다. 차라리 멀리있는 자와는 동맹관계를 맺고, 가까이에 있는 적을 공격하는 것이 유리하다.
  5백년 동안의 전국시대 동안에 중국은 7개 국가로 나뉘어져 각기 독립된 군주에 의해 통치되었다. B.C.221년에는 7개 국가중 가장 강한 나라가 다른 국가들을 정복하고 중국 전체를 자신의 지배하에 두었다. 그가 바로 첫번째 황제인 진시황이었다. 진시황은 여섯이나 되는 상대를 물리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전략을 이용했다. 그는 멀리있는 이웃국가들과는 동맹관계를 맺었고 가까이 있는 나라와는 분란을 일으켰다. 진나라의 적이 된 나라는 적들에게 둘러싸여 괴멸되고 말았다 진은 멀리있는 이웃과는 동맹관계를 유지하면서 새 이웃과는 전쟁을 부추겼다. 곧 새로운 적은 정복되었고 진은 천하를 통일할 때까지 이 전략을 되풀이했다. 다른 군주들은 진의 의도를 깨닫고 연합전선을 형성하여 그에게 대처했어야만 하는 상황이었지만 각 군주들은 그들이 맺고 있는 진과의 관계만은 특별한 것이며 진과의 동맹조약은 지켜질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히틀러가 2차대전 개전을 수개월 앞두고 유럽에서 이와 똑같은 전략을 시도했다. 나찌의 전면전으로 인한 화근이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을 내세우고 다른 나라들이 독일의 침공에 대처하는 전통적인 동맹관계를 포기하도록 유인했다.
  영국은 체코인들을 배신한 댓가로 ‘우리시대의 평화’를 산다는 생각을 했다. 러시아는 독일 탱크들이 폴란드롤 진격하는 것을 허용함으로써 몇개월동안의 평화를 얻었다.
  히틀러는 모두를 기만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의 약속이 지켜질 것으로 믿었던 것이다.
  사업세계에서 가까운 동지가 그 자신의 다른 동지들을 배신하는 것을 보았다면, 그와의 관계는 특별하기 때문에 그가 끝까지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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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

제26계
뽕나무를 가리키면서 회나무를 욕한다

  동양인들은 특히 상대가 기분나쁘게 생각할 수 있는 말을 해야 할 경우 거의 직설적으로 말하는 경우가 없다. 본인이 없는 자리에서 상대를 비판하는 것은 보통 있는 일이지만, 은유적인 암시로 그 비판이 앞에 있는 상대에게도 적용된다는 뜻을 전한다. 그것은 감정적 대립을 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전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 전략을 재치있게 활용한다며, 사안이 예민한 상황에서는 아주 효과적일 수도 있다.
  아시아인들은 이러한 암시적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 익숙해져 있지만 외국인들은 대체적으로 그러하지 못하다. 나는 일단의 중국인들이 어느 미국인 외교관에게 몇가지 은유적인 비판을 전달하려고 하는 자리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그 미국인은 그 자신이 실제적으로 비판을 받는 인물이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초왕의 총애를 받았던 참모였던 우맹은 어느날 고인이 된 재상 손의 아들을 만났는데 그는 과부가 된 어머니와 함께 가난한 생계를 꾸려가느라 땔감을 구해 나르고 있었다. 우맹은, 그의 충직했던 재상의 가족을 돌보는 데 왕이 얼마나 인색하고 등한시하고 있는가를 알고는 충격을 받았다.
  다음날 우맹은 고인이 된 재상처럼 의복을 갈아입고 조정에 들어섰다. 이것을 보고 초왕은 기뻐하며 말했다.
  “가식적인 것이라도 나를 기쁘게 하는군. 나는 분명히 손을 그리워하고 있소. 귀공이 그처럼 의복을 차리고 행동하니 나는 그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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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재상으로 임명하고 싶소.”
  우맹은 초왕에게 말하기를, 재상의 자리를 받아들이기에 앞서 자신의 부인과 상의해보고 싶다고 했다. 다음날 우맹은 왕에게 자신의 부인은 자신이 재상자리에 앉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전했다. 이유인즉 고인이 된 전직 재상의 가족들이 너무 가난하여 기근을 면하려고 땔나무를 만들어 팔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맹은 자신이 재상자리에 앉는다면 그가 죽은 후에 그의 부인은 굶어죽을까봐 걱정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제서야 왕은 그가 죽은 재상의 가족들을 돌보지 않고 태만해 왔다는 것을 깨닫고 그들 가족에게 후한 하사금을 내려 그 어려운 처지를 해결해주었다.
  중국인 또는 다른 아시아인들과 상대할 때, 반드시 주의깊게 귀를 기울여야할 것이 있다. 암시의 출처는 중국인의 과거에서 비롯된 것이다. 상거래에 있어서 한가지의 암시를 놓쳤다면, 그것은 아주 값비싼 댓가를 치루는 결과가 된다.

제27계
호랑이를 잡기 위해
돼지처럼 행동하라

  사냥꾼이 호랑이를 잡으러 산에 올랐을 때 그는 돼지처럼 가장을 하여 호랑이를 유혹할 수도 있다. 호랑이가 가까이 접근해오면 그는 되려 죽을 수도 있다. 강한 적이 나타나면 약한 척하고 적이 경계심을 누그러뜨리게 만들어라. 그리고 자신이 만들어 놓은 덫에 걸려드는 그 순간까지 기다려라.
  손빈은 호랑이를 잡기 위해 돼지 노릇을 해야만 하는 그 효용가치를 이해하고 있었다. 방연이 손빈의 두다리를 잘라 그를 가두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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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손빈은 그러한 불행으로 인해 실성해버린 듯이 처신했다. 그는 방연으로 하여금, 자신으로 인하여 더이상 두려워할 것이 전혀 없다는 생각을 가지도록 행동했다. 제나라의 사신이 위나라를 방문했을 때 손빈은 그를 이용하여 기묘한 수완으로 탈출을 했다. 훗날 손빈은 위나라를 섬멸하고 방연을 죽음으로 몰아넣게 되었다.
  이 전략은 특히 아시아의 무협이야기에서는 잘 알려진 일화이다.
  영웅이 되는 것은 호랑이를 잡아먹고 있는 그 순간이 아니며, 돼지처럼 행동함으로써 멸시를 극복하고 인내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아시아인들에게 있어서 정상인의 능력을 초월한 인내는 진정한 사나이의 정신력을 보여주는 것이 된다.
  적이 강하면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강한 힘은 피해야 하며 헛점을 찔러 공격해야 한다.

제28계
강을 건너고 나면 다리를 부순다

  다리는 강을 건너는 데 유용하다. 일단 강을 건너고 나서 돌아갈 필요가 없다면 다리는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 중국역사에는 새통치자를 위해 많은 어려움을 겨꼬 커다란 희생을 치루면서 정권유지를 위해 모든 것을 다바쳐 헌신한 사람들이 흔히 비참한 죽음으로 끝내는 경우가 많았다.
  다리처럼, 이들도 더이상 쓸모가 없어지면 제거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요왕은 두명의 충직하고 유능한 참모를 두고 있었는데 만일 그들이 없었다면 오나라를 정복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왕은 화평시절에는 유능한 이들도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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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은 귀양을 보내고 다른 한명은 처형되었다.
  또다른 실례를 든다면, 유방이 중국을 통일한 후에 그의 귀중한 3명의 참모 가운데 한명은 현명하게도 조정을 떠나 은퇴의 길을 택했다. 유방은 남은 두명 가운데 한명은 투옥시키고 다른 한명은 난자를 당하여 죽게 만들었다. 모두들 유방의 경쟁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거세되었던 것이다. 한 지도자가 목적을 이루기 위해 투쟁하고 있을 때는 강력한 지지자들이 필요하다. 일단 목적이 이루어지면 그들의 뛰어난 능력과 지혜 때문에 목적을 이루기 전과 같은 지지는 가치가 없는 것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
  총명한 아시아인이라면 시제의 중요성을 배웠으며, 연회가 끝나기 전에 자리를 떠난다.

제29계
현명하되, 어리석은 체 하라

전쟁의 기본 요건은 속임수이다.
유능한 자는 무능하게 보여야 한다.
공격준비가 되었을 때 자신을 낮추어 처신하라
가까이 있으면 멀리 있는 척하고
멀리 있으면 가까이 있는 척하라.
-‘손자병법’에서

  강한 적의 위세와 맞섬녀 경거망동을 삼가하는 것이 최선이다. 대신 어리석게 보이고 위협을 보이지 말며 의심을 낳게 하지 말아야 한다.
  3세기에 사마의는 위나라 군사를 지휘하는 장수였다. 왕은 사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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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아주 불쾌하게 생각하는 후계자를 선정하였고 그래서 그는 왕위를 찬탈함으로써 후계자의 권력승계를 막기 위해 대책을 세웠다.
  사마의는 의심을 돌리기 위해 자신은 늙고 병약한 것처럼 처신했다. 그는 정사에 별로 성의를 나타내지 않았으며 군무에도 관여하지 않았다. 그 결과 왕과 조정은 그가 노망기가 들었다고 생각하고 백전노장을 완전히 무시해버렸다. 어느날 왕과 태자가 사냥을 나갔을 때 사마의는 대궐을 장악하고 왕과 그의 후계 태자를 돌아오자마자 체포해버렸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후 스스로 서방세계에 대해 겸손해지는 한편 착실히 국가산업 재건에 진력했다. 평화적인 입장을 취함으로써 일본의 산업을 세계의 지도적 위치로 올려놓았다. 일제(Made in Japan)라면  50년대와 6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 소비자들과 정치인들에게는 3등급의 저질상품으로 취급받았다. 이러한 저질의 잡화상품이나 만드는 메이커들로부터 미국의 산업이 어떤 위협을 받으리라고 생각한 미국인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일본에서 견고한 산업기반이 창조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도 별로 없었다.

제30계
위세를 보이라

  다른 사람들의 무리 속에서 위세를 드러내는 것은 그들의 행동거지를 지배할 수 있는 기본 처신이다. 분노는 특별한 감정표현이다. 분노는 세계를 정복할 수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분별력을 잃게 하고 치명적인 과오를 범하게 한다. 분노는 장수로 하여금 패전을 초래하고 왕으로 하여금 왕권을 잃게 한다. 분노 속에 잠재한 힘이 적절하게만 쓰인다면 누구나 두려움없이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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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가 전쟁에 임하게 되면 최고 지휘자의 첫 사명은 군과 민간 백성들의 마음 속에 분노의 불길을 당기는 것이다. 자신의 조국을 위해 죽음을 각오한 한 병사의 의지는 대체적으로 그의 분노와 적개심이 어느 정도인가에 달려 있다.
  이러한 원리는 평화시에도 적용된다. 한 근로자의 감정이 회사의 목표를 위해 더 크게 고양되는 만큼 회사는 더 크게 발전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 가운데서 위세를 보이는 능력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반감을 일으키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현명한 자는 자기 감정에 도취되지 않는다. 그는 공과 사, 상과 벌을 구분한다. 그는 선동적인 감정에 굴복하지 않으며 자신의 감정에 말려들어 희생되지 않는다.

 제31계
미인계
  일찍부터 성은 간첩활동과 음모의 한 수단으로 이용되어 왔다. 춘추시대(B.C.770-476)에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는 월왕의 복수에 대한 이야기는 미인을 간첩으로 사용한 최초의 기록적인 실례로 꼽힌다. 요왕은 중국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여인중의 하나인 서시를 오왕에게 선물로 위장하여 보냈다. 그녀의 진정한 목적은 오왕의 마음을 사로잡아 그로 하여금 국사를 등한시하게 만들고 동시에 월왕을 위해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이 두가지 일에 성공을 거두었고 결국 월왕은 그의 적을 정복할 수 있었다.
  심지어 오늘날의 산업세계에 있어서도 여인을 이용하는 것은 아시아인의 사회에서는 예외가 아니다. 손님의 욕구를 재치있게 이해하고 충족시켜주는 것은 호스트(Host)의 의무이기도 하다. 주인과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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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 사이에, 그리고 바이어와 업자간의 거리감은 술과 여자 그리고 노래가 있는 흥겨운 분위기에서 사라질 수도 있으며 더욱 깊은 사업관계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동서를 막론하고 역사의 어느 시대이든, 의도적으로 필요할 때면 성을 하나의 효과적인 도구로 이용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그것은 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중국인의 속담에는 이런 것이 있다.
  ‘하녀와 병사들은 함께 잃어버릴 수 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여자의 유혹적인 위력은 역공작을 하는 데 아주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통용되고 있다. 이리하여 ‘여자는 물이며 남자는 진흙이다. 그들은 서로 잘 섞인다’라는 속담이 나오게 된 것이다.

제32계
공성계

  삼국시대(A.D. 220-265) 때 제갈공명은 그의 군사들을 모두 전장에 출병시켰다. 그의 도시는 무방비상태에 놓였다. 그의 최대의 강적인 사마는, 공명이 방비를 허술하게 하고 있을 때 예기치 않은 접근을 해왔다. 그러나 공명은 도시를 방어하기 위해 공성계를 이용했다. 그느 노인들을 보내어 성문을 열게 하고 출입구를 쓸게 했다. 그다음 공명은 망루에 올라 음식과 술을 준비했다. 그곳에서 세상사에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악기를 연주하며 시를 읊었다. 장수 사마는 성문에 이르렀으나 안으로 들어가기를 주저했다. 그는 어떤 계략이 숨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염려했고, 너무나 경비가 허술하여 함정이라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사마는 그의 군사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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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철수할 것을 명령하고 진정한 상황을 파악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
  사마가 초조하게 기다리는 동안 공명의 군사는 전장에서 돌아왔고 도시는 다시 방어상태에 놓였다. 위약함에 대한 계산된 노출은 진짜 허약함을 감출 수 있으며 적의 판단을 혼란시킨다. 자신의 진정한 힘을 감추어 둠으로써 상대를 불가해하게 만드는 것은 하나의 효과적인 무기이다.

제33계
간첩과 역간첩

  첩보활동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 그 자체만큼이나 긴 유래가 있다. 적에 대한 정보는 한 나라의 생존에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그것은 사업적인 생존에도 역시 중요한 부분이다. 연구 개발에 있어서 시간과 돈의 투자는 아주 높은 비중을 차지할 수 있기 때문에, 아시아인들의 사업체에서는 그들 자신의 비용으로 개발을 하기보다는 가끔 변칙적인 수단으로 기술정보를 취득하려고 한다.
  그들은 다른 제3자의 기술을 취득하여 자신들의 것으로 세련시키는 것이 훨씬 능률적이며 비용절감에서도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경우는 흔히 하나의 기술집약적인 상품을 구매하여 그것을 분해하고 부품을 분석함으로써 간단히 목적을 이룬다. 아시아인 구매자들은 상품의 사용법을 단순히 익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떻게 그것을 재생산할 수 있는가를 터득하기 위해 이런 행위를 한다. 표면적으로는 평범한 질문이 순진한 기술자에게 주어지지만 그들에게는 낱말 짜맞추기에서 어려운 단어를 찾아내는 것과 같은 것이다.
  IBM 개인 사무용 컴퓨터가 시판된 후 IBM사는 몇가지 부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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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간하기 위해 대만의 몇몇 제조업체들과 계약을 체결했다. 그후 오래지 않아 대만은 IBM PC제조에서 세계적인 위치에 서게 되었다. 일본인들은 요즈음에 와서 세계가 그들의 나라를 모방자(Copycat)라기보다는 하나의 발명가로 평가해 주길 원하지만, 일본은 서방세계에서 대부분 개발된 기술을 도입하여 현재의 경제적 성공을 이룩했다는 것이 아직도 지배적인 견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일본인들은 귀중한 정보가 쉽게 유출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역시 정보관리에 대한 중요성을 이해하고 있다. 중국인들은 일본인들의 입이 굳게 닫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은 아무것도 나누어 갖지를 않는다. 일본인들은 심지어 그들의 기술에 대한 가장 보편적인 질문에도 대답을 기피할 때가 허다하다. 그러나 이런 것 때문에 중국인들이 실망하지는 않는다.
  단순히 질문을 함으로써 귀중한 정보를 얻으려고 시도하는 것은 아시아에서는 일반적인 관례이지만 질문을 받을 때마다 답변을 하는 사람들은 유일하게도 미국인들뿐이다. 미국업체들은 산업첩보활동에 대해 자신들을 별로 보호하지 않고 있다. 미국의 중진 경영인들은 때로 그들의 손실에 대한 심각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들의 지적 자산의 공개를 맞지 못하는 것은 미국 엔지니어 사회에서 잘 알려진 하나의 약점이기도 하다.
  아시아인들은 다른 사람의 지적 가치를 이해하고 있다. 그들이 다른 사람들의 지적 자산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때로 그들은 그러한 소유권을 외면하고 사용하는 방법을 선택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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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계
내몸을 상하게 한다
  어느 누가 서약 또는 충성에 대한 확신을 나타내고자 할 때, 이 전략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 봉건 군주시대에 이웃나라에 잠입한 간첩은 그의 새로운 군주를 섬기겠다는 진정한 뜻을 보여주기 위한 증거로, 그리고 신임을 얻기 위해 자신의 신체 일부를 자진해서 자르거나 아니면 한쪽 눈을 빼버리는 경우가 가끔 있었다.
  병법의 대가였던 오자는 춘추시대에 살았던 인물이다. 그는 젊었을 때 봉직을 얻기 위해 어려 군주의 영토를 여행하며 군주들에게 자신의 총명함을 믿게 하려고 했다. 번번히 거절당하고 개인적인 수모를 겪은 후 마침내 그는 노나라 조정에서 보잘것없는 한직을 얻었다.
  얼마 후 노나라 왕은 오자의 재능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이웃인 제나라로부터 침략을 당하자 그를 군 지취관으로 임명했다. 오자의 유능함을 시기한 왕의 참모들은 오자의 부인이 제나라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의 충성심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오자는 왕에 대한 자신의 충정을 보이기 위해 자신의 부인을 죽여버렸다.
  천안문 광장에서 벌어진 시위에서, 학생들의 주된 목적의 하나는 많은 중국인들이 민주주의와 더 많은 자유를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중국과 전세계에 알리는 것이었다. 열렬한 언론의 보도 때문에 이 목적은 대학살이 있기 전에 상당한 실현을 거두었다. 그러나 또다른 하나의 목표는 즉각적인 민주적 개혁을 성취하는 것이었다. 학생들의 시위를 종결시키기 위한 유인정책으로 정부는 모종의 양보를 약속했으나 학생들은 이렇나 약속이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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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들은 전세계를 향해 중국을 대신하여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그들의 몸을 희생하고 피를 흘렸다.

제35계
적을 스스로 얽히게 하다

  연환계라 함은 모든 계략, 수단 그리고 모략 등을 서로 얽히고 설키게 만들어 하나의 쇠사슬처럼 묶어놓는 전략이다.
  동탁은 한나라 왕조 시대에 권력을 잡은 인물이다. 그는 아주 잔인한 인물이었다. 그는 연회에 조정대신들을 초대한 후 포로가 된 적군 병사들을 끌어내놓고 그들의 목을 자르는가 하면 팔과 다리를 절단하거나 그들의 눈을 빼버리기도 했다. 피눈물에도 그의 마음은 동요되지 않았다. 그러고도 그는 아무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연회장을 배회하곤 했다. 조정대신들은 그들 자신도 조만간 동탁의 희생물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는 너무 강해서 음모로서도 제거할 수가 없었다. 그는 황제에 대한 전적인 월권을 가지고 있었고 그의 의붓자식이자 중국의 전설적인 영웅의 하나인 여포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 폭군을 제거할 방법이 없을 것 같았다.
  당시 어느 정도의 재산과 권력을 지니고 있던 왕윤은 동탁을 거세할 방책을 강구하기로 결심을 했다. 그는 동탁과 여포가 미색의 여인들에게는 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터라 그들의 이 약점을 이용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도단은 왕윤의 의붓딸로서 미색이었다.
  왕윤은 여포를 집으로 초대해놓고 그의 의붓딸 도단으로 하여금 차를 대접하게 했다. 도단의 미색에 반해버린 여포는 그녀에게 구혼을 해왔다. 왕윤은 승낙했다. 얼마 후 왕윤은 다시 동탁을 그의 집으로 초대했다. 동탁은 왕의 예쁜 의붓딸을 만나자, 그역시 그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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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반했고 도단을 자기의 소실로 삼기를 원했다. 왕윤은 이 제안에 역시 동의했다. 두사내들은 각기 자기만이 도단을 소유할 수 있는 유일한 남자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왕윤은 즉시 도단을 동탁에게 출가시켜버렸다. 여포는 어른의 뜻을 존중해야 하는 중국인의 관습 때문에, 그녀가 자기의 의붓아버지인 동탁과 결혼하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여포는 은밀히 도단을 만나러 다녔다. 그녀는 여포에게, 매일 늙은 사람과 함께 사는 것은 지옥과 같다고 말했다. 그녀는 여포가 중국의 위대한 영웅이지만 그는 이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환경으로부터 자신을 구해줄 수 없는 사내라고 그를 조롱하듯이 말하곤 했다.
  마침내 여포는 그의 의붓아버지의 살해를 마음먹게 되었고, 이로써 중국에서 폭군의 지배를 종식시켰다.
  이것은 미인계와 ‘강건너 불보기’라는 전략을 이용한 것이었다. 그들이 한 여인을 두고 사랑에 빠졌을 때 이들 두사내간에 이해상충이 일어난 것이다. 그 이해충돌은 동탁과 여포 사이에 타오르는 불이었다.  그다음 왕윤은 여포의 손을 빌어 살인을 했다.
  이 경우 왕윤은 한가지만이 아닌 연계적인 전략으로 그의 목적을 이루었다.

제36계
도망치는 것이 상책이다

후퇴는 공격을 위한 하나의 방편이다.
현명한 자는 지는 싸움을 하지 않는다.
-중국의 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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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리한 상황에 처하면 후퇴하라. 조건이 호전될 때 공격하라.
  궁극적인 승리를 얻기 위해 일시적인 패배를 받아들이고 도망감으로써 자신의 힘을 축적하는 것이 때로는 필요하다. 어떤 경우에는 영광된 죽음보다도 후퇴의 부끄러움을 받아들이기가 더 어려울 수도 있다.
  중국역사는 퇴각 도주에 대한 많은 실례를 가지고 있다. 중국의 수많은 왕조를 창업했던 인물들도 도망치는 데 명수들이었다.
  예를 들어 한나라의 창업자 유방은 군통솔자로서 평생동안 도망치는 것을 되풀이했다. 유방은 항우를 물리치고 중국을 통일하기 전까지 그는 항우와 맞서 싸우면서 4년간을 고전했다. 매번 유방은 패배를 당했고, 그럴 때마다 다시 공격을 하기 위한 유리한 기회를 기다렸다. 한편으로 항우는 오직 한차례 유방에게 패한 일밖에 없었다. 그러나 도망치는 전술을 이해하지 못했던 자에게는 그 한번으로 충분했다. 자신의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항우는 오나라 강둑에서 자기의 목숨을 스스로 끊었다.
  도망이란 영웅적 행위는 될 수 없지만 그것은 훗날 다시 결전에 임할 수 있는 기약이 될 수도 있다. 중국처럼 넓은 대륙에서 속전속결로 승리를 거둘 수 없다면 도망치는 것은 용이한 편이다. 중국에는 숨어 피신할 수 있는 곳이 많다.
  도주는 군사전략에서 하나의 중요한 기본 전술이 되었다. 중국인들은 궁극적인 승리를 거두기 위해 일시적인 굴욕을 받아들이는 법을 터득했다. 중국인의 전쟁은 수년씩 끌어가는 경향이 있다. 매번 패할 때마다 후에는 성공을 거두곤 했다.
일본에서는 도망을 치거나 다시 재무장을 할 여유가 없다. 일단 사태가 터지면 섬나라에서 피신할 곳이 없기 때문에 끝장을 보아야 한다. 다라서 일본인들은 중국과는 전혀 다른 전략을 개발했다. 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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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의 위기에 직면했을때 중국인들은 훗날의 결전을 위해 살아남기 위한 슬기로운 수단을 이용하는 한편, 일본인들은 굴욕을 당하기보다 죽음의 철학을 개발했다. 일본인과 중국인들은 여러가지 같은 사고방식을 지녔으면서도 이점에서는 서로 다르다.
  36계의 마지막 부분인 이 전략은 중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계략이다. 모든 중국의 어린 학생들도 이것만은 알고 있다.
  중국인은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싸워서 이길 수 있다면 나는 싸울 것이다. 이길 수 없다면 나는 도망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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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게임을 위한 준비

제 1부 아시아의 마음 이 책은 독자들로 하여금 외형적인 내면보다 내면적인 외형을 관찰함으로써 아시아인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것이다. 이러한 이해에 도달하기 위해 독자들은 모든 선입견적인 관념을 털어버려야 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10. 장애물 경주

제3부 역사는 훌륭한 스승이다. 아시아를 이해하려면 먼저 중국을 이해해야 한다. 중국의 문화는 고대적인 유풍을 지녔기 때문에, 다른 아시아인들의 문화적 뿌리이기도 하다. 필자가 중국과 중국인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하는 내용 가운데 많은 부분이 다...

11. 중국은 서양을 어떻게 보는가

11 중국은 서양을 어떻게 보는가 ▪ 서구세계에 대한 첫 경험 18세기에 볼테르(Voltaire)는 중국 확실의 도덕성과 조직성은 세계가 체험했던 것 가운데 가장 훌륭한 것이라고 썼다. 거짓말같은 중국의 부에 대한 여행자들의 이야기는 유럽 황실 건축가들의 ...

12. 아시아의 역사와 문화

12 아시아의 역사와 문화 ▪ 염제의 황제의 후손 일본민족이 있기 전에, 그리고 한국민족이 있기 전에, 중국민족이 존재했다. 중국의 역사기록은 B.C. 2697년에 시작되었다. 그 기록에 의하면 중국민족은 염제와 황제의 후손들이라고 쓰여 있다. 중국의 신화...

13. 중국인의 속마음

13 중국인의 속마음 ▪ 중국의 계급제도 금세기까지 중국 사회는 수천년동안 변하지 않은 하나의 계급제도로 형성되어왔다. 전통적인 중국사회에는 네가지 부류의 계급이 존재했다. 즉 선비(학자)계급이 가장 높은 재위를 차지했으며 계급이 내려가는 순서로...

14. 대만의 번영

14 대만의 번영 20년전 대만의 한 젊은이가 대형 체인망을 갖고 있는 어느 미국백화점의 구매사무소에 들어섰다. 전에 한번도 미국에 와본 적이 없는 그는 화려한 현대식 사무실에 들어서자 긴장하고 두려웠다. 그는 사무실 입구의 프론트데스크에서 들고...

15. 성장의 그늘

15 성장의 그늘 ▪ 공해 아무런 대가를 치루지 않고 대만의 경제성장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환경은 피폐해졌고 여전히 환경에 대한 현실적인 관심은 없다. 최근에 타이완의 한 재벌 기업가가 대만 대학의 학생단체에서 연설을 했다. 그는 연설을 끝내...

16. 대망

제4부 거듭 살아남은 사람들 한국문화는 고대 중국의 영향과 일본의 점령, 그리고 민족적 단일성에 대한 강한 의지의 혼합체이다. 두 강대국들 사이에서 시달리면서도 한국인들은 순결한 의지와 결단력으로 살아 남았다. 이제 한국은 세계무대에서 중요한...

17. 성공적인 처신

제 5부 게임은 끝나고 17 성공적인 처신 ▪ 인정 일본, 한국, 그리고 중국의 문화는 인정에 대한 공자의 개념에 의해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이 개념은 세 나라의 언어에서 똑같은 중국어로 표현되며, 영어로는 ‘human feelings’로 번역된다. 그것은 ...

18. 미국은 종이호랑이인가

18 미국은 종이호랑이인가 미국은 심각한 경제문제에 직면해 있다. 연간 2천억달러에 이르는 예산적자와 함께 자신의 미래에 역행하는 빚을 짊어지고 있으며, 빚에 대한 상환시기는 급속히 다가오고 있다. 미국의 중공업은 노후한 기술로 운영되고 있으...

2. 시장은 전장이다

2 시장은 전장이다 ▪ 역사를 현실의 거울로 삼는다 서양의 사업가들이나 정치인들이 아시아인들과 상대할 때 흔히 당혹감을 느끼게 되는 이유를 이해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실상 아시아인들은 서양인 상대자들보다도 훨씬 더 정확하게 다듬어...

3. 손자병법

3 손자병법 4세기의 병법의 대가 손자에 의해 저술된 손자병법은 현재까지 전래되어온 군사전략서 가운데 가장 완벽한 책이다. 그것은 또한 현대의 독자들에게 가장 널리 읽히고 있는 병서이기도 하다. 이 책은 13편의 소단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론을 ...

4. 삼십육계

4 삼십육계 36계란 모든 상황에 대처하는 처세방법을 다룬 고대중국인들의 전략전집이다. 이것은 잘 알려진 일종의 중국 민속문학으로 약 천오백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전집은 6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부에는 6개 관련 전략...

5. 후안흑심

5 후안흑심 1911년 성도일보는 이충창씨가 쓴 후흑론이란 제목의 수필을 연재하기로 했다. 이 수필은 3회에 걸쳐 연재할 계획었었으나 첫회분이 실리자마자 격렬한 반응을 일으키는 바람에 나머지 연재분을 발표하지 못했다. 그후 얼마 안있어 이 에세이는...

6. 일본은 300년 동안 배타적이었다

 제 2부 개미 민족 다음 4장에 걸쳐 쓰여진 내용은 이미 백년 전에 일본인들이 구체적으로 설계했던 국가개발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그들은 이미 이 책의 앞 부분에서 논했던 속임수의 원리를 이용하여 그 계획을 추진해 나갔다.  6 일본은 3...

7. 미덕과 위선

7 미덕과 위선 나는 서구의 학자들이 집필한 현대 일본에 대한 저서들을 읽으면서, 저자들이 모든 내용을 일본인의 입장에서 의견을 개진한 무비판적인 태도에 놀랐다. 일반적으로 서구인의 동양관은 아시아 문화의 고상함과 신비적인 내용에 대한 그들의 ...

8. 기업 사무라이

8 기업 사무라이 ▪ 사무라이의 기원 표면상으로 볼 때 일본은 현대산업사회이다. 그러나 내면적으로는 봉건군주사회의 과거에 깊이 뿌리내린 사회이기도 하다. 일본인들은 아직도 사무라이 전통에 얽매여 있다. 일본을 이해하려면 누구나 이전통에 관련된 ...

9. 모리따와 이시하라

9 모리따와 이시하라 소니(Sony)사의 회장 아키오모리따와 전 일본 운수성장관 신따로 이시하라가 공동저술한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The Japan That Can Say No)’ 이란 책은 1989년 일본에서 처음 출판되었다. 모리따와 이시하라가 저술한 내용은 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