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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후안흑심

Views 346 Votes 0 2016.04.13 16:21:51

5  후안흑심

 

  1911년 성도일보는 이충창씨가 쓴 후흑론이란 제목의 수필을 연재하기로 했다. 이 수필은 3회에 걸쳐 연재할 계획었었으나 첫회분이 실리자마자 격렬한 반응을 일으키는 바람에 나머지 연재분을 발표하지 못했다. 그후 얼마 안있어 이 에세이는 ‘후안흑심’이라는 제목이 붙여진 채 북경에서 은밀히 출판되었다. 이 책은 1934년과 1936년 사이에 수차례에 걸쳐 재판을 발간했는데 그때마다 즉시 매진이 되어버렸다.
  원문의 내용은 겨우 2천단어의 분량에 불과했지만 그 영향은 대단했다. 이 책처럼, 대만과 중국본토 양쪽에서 모두 금서로 낙인찍힌 책도 그리 흔하지 않을 것이다.
  필자인 이충창은, 자신들의 행위가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자신의 목적만을 추구하는 뻔뻔스럽고 몰염치한 사람들에게 ‘후안’, ‘흑심’이라는 이름을 붙였던 것이다. ‘검은 양심(Black Heart)’이라는 개념은 서구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으나 반면에 ‘두꺼운 얼굴(Thick Face)’이라는 표현은 이해하기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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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즉 안면(Face)이라는 의미에 대한 아시아인들의 관념을 생각해보라. 그 다음 억센 피부를 가진 사람에 대한 서구인의 관념을 생각해보라.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이런 부류의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하지 않는 사람으로, 부끄러움이나 죄의식에 대해서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얼굴이 두꺼운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평범한 사고방식에는 전혀 구애를 받지 아니하며, 따라서 자신의 행위가 타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하고 염려하는 그런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도 해치울 수가 있는 법이다.
  얼굴이 두꺼운 사람이 자신의 행위에 대해 갖는 유일한 관심이라면 자신의 처신들이 목적을 이루는 데 효과적인지 아닌지 하는 것뿐이다.
  철면, 흑심이라는 말은 다수의 사람들이 생존경쟁을 해야 하는 세상에서는 아주 당연한 기본 처신이기도 하다. 이런 셍상에서는 오직 강한 자, 영리한 자, 또는 몰염치한 자만이 살아 남는다.
  철면피하다거나 양심이 검다는 것은 보편적인 개념이지만, 전문직에 종사하는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그들의 처신에 대해 윤리적인 합리성이라는 가식적 명분을 붙여 허세를 부리고 싶어한다. 이기적인 행위의 원리에 대한 필자 이충창의 솔직한 비판은 심지어 가장 이기적이고 몰염치한 사람들에게도 충격적인 것이었다.
  이 책의 출판에 뒤이어 항의와 비판이 쏟아지는 와중에서 어느 유명한 관리는 박백론이라는 제목을 붙인, 신성한 양심과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글을 발표하였고 이 글에서 그는 이충창 씨가 ‘후안흑심’이라는 책에서 마치 무엇인가를 조작이나 한 것처럼 공박했다. 얼마 후에 이 관리는 엄청난 독직으로 유죄가 판명되어 관직에서 쫓겨나고 처형되었다.
  이충창은 후안, 흑심의 실체를 세가지 부류로 구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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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째는 성벽처럼 얼굴이 두껍고 숯처럼 양심이 검은, 천한 건달의 수준에 있는 사기꾼이다. 이런 부류의 사내들은 그 자신이 저지르고 있는 행위를 진정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파렴치한 속성은 그들이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확연히 반영된다. 그들은 악마의 저주 속에 빠진다 해도 그들 양심속에 도사린 검은 속성을 이해하거나 감추지도 못한다. 그들은 상습범인 것이다.
  두번째 수준은 철면피에다가 근엄한 인품을 지니며, 검은 양심에 위장된 처신으로 그들의 비윤리적 행위가 드러날 때만 확인될 수 있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다. 그들은 죄의식이나 부끄러움으로 인해 어떤 제한을 받는 것이 아니며, 그들의 검은 속성은 주변의 모든 대상 속에 머무른다.
  세번째 단계는 너무 얼굴이 두꺼워서 표정으로는 나타나지 않으며 너무 검기 때문에 색깔도 없는, 최고 수준의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이 부류는 외양적으로 덕과 품위를 갖춘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덕과 품위 때문에, 희생되는 사람들로부터 오히려 창찬을 받으면서 뻔뻔스럽게 그들의 목적을 추구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충창은 이렇게 이름을 붙이고 분류했지만 그 개념의 정립은 옛사람들의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중국 역사에 있어서 왕조의 흥망성쇄 뒤에는 권력을 추구하는 개인적인 힘의 세력이 있었던 것이다.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고 형제들은 권력을 추구하느라 서로 반목하고 칼을 휘둘렀다. 권력의 추구는 중국으로 하여금 수백년 동안이나 끊임없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머물도록 만들었다.
  오늘날의 전쟁들은 협상테이블을 두고 일어난다. 갑옷은 브룩스 브라더즈 양복으로 바뀌었지만 권력을 추구하는 속성은 바뀌지 않았고 그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원리도 변하지 않았다. 여러 세기에 걸쳐 살펴보아도 대권을 잡았던 사람들은 항상 철면피와 검은 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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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대한 그 이치와 원리를 이해했던 사람들이었고 뻔뻔스럽게 그리고 한결같이 후안흑심의 원리에 집착했다.
  전국시대에 한비자는 후, 흑이라는 표현으로 그 원리에 대한 주해를 처음으로 집필하였다. 진시황제는 그가 전중국을 지배하려고 시도하던 시기에 한비자의 글을 읽고나서 이렇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내가 이 사내를 만나 잠시만이라도 그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내 목숨을 바쳐도 후회가 없으련만….”
  한비자는 황실로 소환되었으나, 그가 황제의 자리를 찬탈할 것이라고 우려한 황제의 참모들에 의해 독살되었다.
  한비자는 어느 공자파 출신의 학자 밑에서 학문을 익혔고 그 학자는 ‘인간의 영혼은 순수한 상태에서 태어났으며, 세상에 대한 경험은 점차적으로 의식 속에 스며드는 악의 성품을 만들어 낸다’는 공자의 전형적인 관념에 대해서 의견을 달리했다. 한비자의 스승은 인간의 영혼은 순수한 상태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며 따라서 끊임없이 악의 성품과 대결을 하는 존재라고 가르쳤다.
  한비자의 철학은 실용주의적인 것이었다. 그는 모든 인간은 스스로 자신을 위한 존재이며 모든 국가는 그 자체를 위해 존재하므로써 하나의 세계가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는 과오를 저지른 행위에 대해 엄격한 징계와 중벌을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고위 지도자는 인간적인 감정을 초월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선정을 베푸는 것은 자비로운 배려가 앞서야 한다고 하면서도 그는 정의에 대해서는 엄격하고도 현실적인 실천자였다.
  그는 칭찬이나 비판의 한계에 대해서는 무관했으며 오직 그의 나라와 그 자신이 적대시하는 상대들을 압도할 만큼 강한 힘을 유지해야 한다는 이상적 주장으로 일관했다. 그는 정복이든 또는 방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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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이든 국가의 정책으로 동맹을 결성하는 것을 떳떳한 일로 받아 들이지 않았다. 국력은 그 자체의 내심에 달려 있으며 동맹간에는 진정으로 공동된 이해관계가 있을 수 없다고 믿었던 것이다. 유일한 이해관계는 자신에게만 달려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그는 진시황제가 동맹국들을 하나씩 배신하면서 중국을 정복하는 데 성공할 것이라는 사실을 예견했다.
  한비자의 저술은 일상적인 선악의 개념과는 무관한 처신방법을 제시했다. 처신방법은 오직 적대시하고 험악한 세상에서 생존을 지켜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지의 여부에 따라 평가되는 것이었다.
  중국역사 전반에 걸쳐 후, 흑에 대한 원리론을 구체적으로 개진한 인물들이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많은 역사자료에 기록되어 있으며 오늘날 모든 아시아에서 읽혀지고 연구되고 있다.
  삼국시대의 뛰어난 인물이었던 조조가 바로 흑심적인 처신에 능한 사람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자신의 이해득실을 추구하는 경우에는 악이라는 것은 정년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남들이 내게 나쁜 짓을 하도록 내버려두는 것보다는 내가 남들에게 나쁜 짓을 하는 것이 더 낫다.”
  조조의 적수였던 유비는 두꺼운 얼굴을 가진 자로서는 아주 대표적인 경우였다.
  유비는 적들에게 몇차례나 붙잡혔는데 그때마다 무릎을 끓고 눈물을 흘리며 부끄러움없이 목숨을 구걸했다. 그러나 적이 그의 수중에서 생포되면 그들에게 전혀 자비로움이란 것은 베풀지 않았다.
  진나라 왕조(B.C.207)가 끝난 후 유방과 항우는 중국의 지배권을 놓고 전쟁을 벌였다. 항우는 모든 면에서 유리했다. 그는 최강의 군사를 거느렸고 이미 대부분의 중국당을 지배했으며 또한 그는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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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영웅으로 추대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유방처럼 얼굴이 두껍고 마음이 검지 못하다 보니 중국을 잃고 말았다. 유방은 연전연패를 하고 자기 나라로 돌아와 군대를 모았다. 그러나 항우는 오직 단 한번의 중요한 전투에서 패하자 굴욕감에 사로잡힌 나머지 그의 나라로 돌아가 군사를 재정비하고 모명을 할 계획은 하지 않고 자신의 목숨을 버렸다.
  그들의 마지막 전투에서 항우는 유방의 저항을 견디어 낼 수가 없었다.
  항우는 이러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유방의 아버지를 인질로서 오랫동안 잡아두었다. 항우는 그를 끓는 기름가마 앞으로 끌어내어 묶으라고 명령했다. 유방은 그의 군사들과 함께 철수를 하든지 아니면 그의 아버지가 산채로 끓는 가마솥에 들어가는 것을 보든지 양자택일하라는 주문을 받았다. 유방은 말을 타고 그의 군사들 앞에 나와 항우를 향하여 이렇게 외쳤다.
  “항장군, 당신과 나는 한때 피를 나눈 형제였소. 그러니 난의 아버지는 당신의 아버지이기도 하오. 당신이 나의 아버지를 요리한다면 내게도 그 수우프를 한컵 나누어 주시오.”
  우리는 모두 후안무치한 처신을 체험한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조그마한 일을 경영하면 조그마한 결실을 얻을 것이며 큰일을 도모한다면 조조와 유방처럼 황제들을 넘어뜰릴 것이다.
  이충창의 글을 보면 그는 우리가 상대하는 중국인들과의 관계를 통하여 중국인들의 사고방식을 두가지로 특정지워 설명하고 있다. ‘화살 잘라내기’와 ‘솥 때우기’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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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살 잘라내기
  중국의 개업의는 두가지 부류 즉 외과와 내과로 나뉘어져 있다. 화살을 맞고 외과의사를 찾아간 어느 사내에 대한 일화이다.
  의사는 활을 뽑아냈으나 화살촉은 제거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환자에게 치료가 끝났다고 일러주었다. 의아한 환자는 살 속에 박힌 화살촉은 왜 제거하지 않았느냐고 의사에게 물었더니 의사가 대답하기를 그것은 내과의사의 소관이라는 것이었다.
  아시아인들은 흔히 활을 잘라내듯이 사업관계를 처리한다.
  아시아에서는 거래상의 어떤 제안을 하면 흔히 제3의 인물로부터 승낙을 받아야 된다는 협의의 전제조건을 내세운다. 그리고 이런 표현을 자주 듣게 될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선생과 전적으로 의견이 같습니다만 일단 미스터 X와 상의를 해봐야 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역시 이런 말을 듣게 될 것이다.
“이 부분까지는 처리하겠습니다. 나머지는 다음에 처리하지요.”
  중국인들은 책임을 전가하기 위해 이러한 방법을 쓰곤 한다. 어느 누가 되었든 최종승인을 하거나 또는 사안을 마무리지은 사람에게 책임이 주어지는 한 그들은 무엇인가 잘못되면 책임을 회피하고 외면해버린다.

▪ 솥 땜질하기

  이것은 역시 옛 설화에서 유래된 수법이다.
  어느 가정주부가 그녀의 솥에 금이 가서 물이 새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수선공을 불렀다. 수선공은 그 여인에게 자기가 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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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그을음을 태워버리고 좀더 자세히 확인해 볼 수 있도록 불을 화끈하게 지피라고 부탁했다. 잠깐 사이에 솥을 검사했을 뿐만 아니라 수선공은 깨진 금이 더 커지도록 했던 것이다. 이윽고 그을음이 다 타버리고나자 수선공은 주인 여자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깨진 금이 처음 볼 때보다 훨씬 크지요. 어렵긴 하지만 그래도 저를 부른 것이 다행이에요.”
  주인은 놀란 표정으로 깨진 금을 살펴보며, “그렇군요. 정말 그렇네요! 좀더 내버려 두었더라면 아주 수리도 못할 뻔했군요.” 하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방법은 자신의 행위가 상대방에게 미치는 영향을 전적으로 무시하고 자신의 이해관계만을 추구하는 데서 비롯된다. ‘후안’의 원리가 오늘날 아시아인 사업과 정치세계에서는 언급되고 있지 않은 부분이지만 그것은 분명히 효율적인 처신이 이루어질 수 있는 기본원리이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 그러한 원리를 활용하는 것이 저질적인 행위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을 선의적인 목적으로 이용함으로써 하나의 품위있는 행위로 삼을 수도 있다. 외국인들과 거래를 할 때 자국의 이익을 위해 실제 활용할 수도 있으며 그럼으로써 긍지를 갖는 행위가 될 수도 있다.

▪ 등소평의 전략

  1989년 6월 4일 이른 아침에 탱크들이 열을 지어 천안문 광장을 가로질러, 시위중인 수많은 학생들을 바퀴밑에 깔아버렸다. 중국인들은 이러한 대학살이 중공의 강경보수파인 이붕총리에 의해 저질러 진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충격적이고 수수께끼처럼 의문스러웠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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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은 등소평의 동의없이 그러한 사태가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던 점이었다. 이 잔혹한 행위는 등소평의 기질적 성향과 중국의 정치적 및 경제적 미래에 대한 그의 정책노선과는 완전히 벗어난 것처럼 보였다.
  천안문 광장이 점거되어 있는 동안 온건파의 조자양은 중국 공산당 서기장직에서 축출되었다. 이 사태가 끝난 후 이붕에게는 최후의 완전한 승리가 이루어진 것 같았다. 즉 등소평의 사후에 그의 후계구도를 사전에 보장하기 위해 조자양의 자리에 이붕이 올라서는 일만 남아 있었다. 그러나 놀라운 이변으로서 등은 조자양이 차지했던 자리에 비교적 온건파에 속하는 강택민을 임명했다. 등은 역시 더이상의 힐책으로부터 조자양을 보호했다.
  이렇게 절충된 처신을 보인 등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어린 십대소년시절부터 당 조직에 몸을 담았다. 그는 시민전쟁에서 하나의 평범한 병사로서 전투에 참가했고 그들의 투쟁의 역경 가운데 가장 어두웠던 시절에 대장정을 하면서 모택동을 추종했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인 전생애를, 중국을 정치적. 경제적으로 개혁하는 데 바쳤다. 인생의 마지막 시기를 보내면서 그가 무엇 때문에 자신의 모든 계획을 포기하고 중국을 복고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보수파들의 수중에 넘어가게 하겠는가?
  과거에 그가 후계자를 점지했을 때마다 그가 선택한 인물은 온건 개혁파였으며 그때마다 강경노선의 인물들은 그의 선택을 방해하는 공작을 버렸다. 필자가 판단하기로는 등소평은 강경노선의 보수파 인물들을 희생시키더라도 당의 자유파가 실권을 잡도록 지원할 수 있는 그의 마지막 기회임을 인식하고 그에 집착했던 것 같다. 그의 사후에 중국은 엄청난 권력투쟁을 치루게 될 것임은 등 자신도 잘 알고 있으며 그의 최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유주의 온건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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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주의 강경파와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그는 이붕과 그의 강경파 동료들이 이와 같은 잔인한 행위를 저지르도록 허용함으로써, 등소평은 인민들에게 강경파들을 적으로서 낙인찍어 놓겠다는 계산을 했던 것이다.
  마침내 권력투쟁의 시기가 다가오면 온건파들은, 등소평이 그들을 위해 중국인민들과의 강력한 동맹관계를 다져놓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가장 광한 의미로 표현한다면 후흑의 원리를 활용한 기교는, 환자에 대한 고통스러운 치료방법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사지를 절단하는 외과의사의 담력과도 같은 것이다. 그것은 사랑하는 부하병사들에게 죽음을 무릅쓰고 싸우라고 명령할 수 있는 장수의 용기와 같다. 그것은 반드시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이루고야 마는 지도자의 능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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