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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미덕과 위선

Views 277 Votes 0 2016.04.13 16:10:54

7  미덕과 위선

 

  나는 서구의 학자들이 집필한 현대 일본에 대한 저서들을 읽으면서, 저자들이 모든 내용을 일본인의 입장에서 의견을 개진한 무비판적인 태도에 놀랐다.
  일반적으로 서구인의 동양관은 아시아 문화의 고상함과 신비적인 내용에 대한 그들의 열정으로 인하여 제대로 정립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서구적인 시각에서 본다면 더욱 비판적이 될 수도 있는 행위나 사건에 대해서조차 이국적이고 낭만적인 구실을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 전체적으로 아시아인들은 아시아의 문화를 연구하는 서구의 전문가들보다 자신들의 결점에 대해 훨씬 솔직한 편이다. 일본 국민의 특징은 모든 다른 국민들도 마찬가지지만 선과 악, 미덕과 악덕의 혼합체이다. 일본국민들에게 있어서 별난 특징 즉 그들을 일본인으로 만든 바로 그 질적 특성은 미덕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일본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국가의 이해관계, 회사의 이해관계, 가족의 이해관계를 그들의 개인적인 이해관계보다 우선적인 자리에 올려놓을 수 있는 능력이다. 모든 아시아인들이 그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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듯이, 그들은 열심히 일하며 대부분의 서구인들이 경험해보지 못한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인내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다른 아시아인들과는 비교가 안될만큼, 공동의 이해관계를 위해 개인의 이해관계를 기꺼이 희생한다. 그것은 오직 중국과 한국의 기업 및 정치지도자들만이 부러워할 수 있는 놀라운 극기인 것이다.
  일본은 오늘날 세계에서 막강한 경제력을 가지고 있지만 대다수의 국민들은 아직도 개인적인 내핍생활을 하고 있다. 일본의 일반 도시 아파트는 5인 가족이 취사와 침식을 하면서 겨우 일상생활을 꾸려나가고 있는 불과 19평짜리가 주종을 이룬다. 소비상품과 식품가격은 평균소득에 비해 잔인하리만큼 불균형을 이루고 있다.
  일본의 산업화 과정에서 무거운 짐은 근로자들이 떠맡았고 아직까지도 근로자들은 재정적인 보상을 나누어 갖지 못했다. 그들의 임금은 낮고 노동시간은 길다. 심지어 주주들도 그들로서는 당연히 받을 수 있는 배당금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수익금은 회사가 경영과 시장의 확대를 위해 회사내에 예치해 두는 것이다. 근로자들과 투자가들은 그와 같은 정책을 이해하고 동의한다.
  일본의 경제는 거대한 산업집단의 주변에서 회전하고 있으며 이런 결과 부유층은 소수인 반면 대단히 많은 임금 소득자를 만들어 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대만, 싱가포르, 그리고 홍콩의 경제는 다수의 중소기업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이것은 두터운 중산층을 만들어냈으며 그리고 훨씬 많은 사람들에게 부가 분배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인들의 노동윤리는 그들의 이웃인 모든 아시아인들로 하여금 수치심을 느끼게 했다. 노동자들은 각기 성취해 놓은 노동의 질이 개인의 도덕적 가치에 대한 명세서라도 되는 듯이 최고의 우수성을 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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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개인의 인격적 품위는 대체적으로 그의 노동의 질적 결과에 따라 평가된다. 태만한 근무자는 오랫동안 일자리를 가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동료들 사이에서도 조롱의 대상이 되고 만다.
  봉건시대의 지배계급인 영주는 그의 사무라이들에게 절대적인 복종과 충성을 요구했다. 때로는 복종과 충성에 대한 시험으로, 사무라이로 하여금 사전에 어떤 설명도 없이 그의 아내와 자식들을 희생시키도록 요구했다. 옛날 일본에서는 이러한 것이 고결한 행위로 높이 평가되었다. 복종과 충성이 인간의 생명보다 더욱 가치있는 것으로 평가되었던 것이다. 제2차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괄목할 만한 능력은 이와 같이 완전하고 무조건적인 복종과 충성에 대한 전통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  겉치레의 미덕
  일본인들은 스스로를 특별한 미덕을 갖춘 국민으로 생각한다. 그들의 도덕관념의 대부분은 중국의 유교사상과 불교사상의 도덕적 원리를 받아들임으로써 비롯되었다. 이 종교들은 올바른 품행을 정신적 수도의 결실을 얻는 기본 요건으로 강조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그러한 처신방법은 목적을 위해 잘못 이용되었으며, 겉치레 형식이 진정한 덕을 쌓는 것보다 더 중요시되고 말았다. 도덕문제에 대해 말잔치만 무성했던 문화 속에서 ‘도덕상의 모양 갖추기’는 사회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외형적인 형식을 무시한 사람은 비난의 대상이 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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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결
  신도의 주된 중교적 관심사는 청결과 불결의 문제이다. 신도사상은 인간의 정신적 환경과 육신의 청결은 개인의 입신출세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믿기 때문에 청결한 의식에 대한한 비중을 두고 있다. 반면에 불결한 환경은 순수한 마음가짐을 저해하고 비도덕적인 처신의 원인이 된다고 믿고 있다.
  청결은 사회적 미덕인 동시에 개인적 미덕이기도 하다. 일본의 도시와 타운은 굉장히 복잡하지만 거리는 항상 깨끗하다. 이것은 중국인들과 그들의 조상들에게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침을 뱉지 마시오, 쓰레기를 버리지 마시오’라는 거리의 표어가 범람하는데도 불구하고, 중국인들은 ‘거리란 그저 생긴대로 내버려두어야 한다’는 그들 자신만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

▪  연계조직의 사회
  일본인 사회는 고도의 연계조직사회이다. 모든 사람들은 개개인이 적절한 사회적 의식적 행사를 통하여 소개되고 인간관계를 갖는다. 일본 사회의 어느곳에서든지 격에 맞는 인물을 통해 자신이 소개되지 않으면 안된다. 교육의 질적 수준을 위해서는 권위있는 명문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  겸손한 태도
  전통적인 일본인들은 복종과 겸손이 생활화되었다. 그들은 면전에서 부정적인 말을 좀체 하지 않는다. 부정적인 의사를 표시할 때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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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은 흔히 우회적인 표현을 한다. 부정적인 말을 하는 대신에 그들은 ‘그 문제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말씀 드리지요’ 또는 ‘그 문제는 제 윗분에게 보고를 드려야 합니다’하는 식으로 대답한다. 그러나 일본인들이 부정적인 대답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거래에서 항상 긍정적이고 편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거래 상담에 있어서 묵시적 또는 암시적인 부정적 반응을 잘못 이해함으로써 솔직한 부정의 반응을 얻는 것보다 더 비싼 댓가를 치룰수도 있다.

▪  혈통의 순수성
  혼혈인종들로 한국가를 이루고 있다고 자랑하는 미국인들과는 달리 일본인들은, 순수한 혈통에 그들의 민족적 우수성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유전적인 순수성이야말로, 그들 사회의 모든 요소를 단일 의지로 통일시킬 수 있는, 그들만이 지닌 특이한 능력의 근원이라고 믿는다.
  제2차세계대전 직전에 일본의 지도층 인물들은 인종적 우수성에 대한 학설을 이용하여 일본의 제국주의적 야심을 정당화시켰다. 그들은 일본인과 독일인만이 세계의 모든 민족보다도 우수하다고 믿었다. 그것은 이들 두나라 민족이 당연히 세계를 지배해야 한다는 그들의 사고방식에서 나온 것이었다.
  일본에 거주하는 일본 혈통이 아닌 인종에 대해서는 여전히 강한 인종적 편견이 존재하고 있다. 이것은 서구인들의 시각에는 별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 일본에 거주하는 미국인들과 유럽 사람들은 그들의 의식 속에 일본사회의 주류에 자신들이 합류하겠다는 의도가 없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인종차별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편견적인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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립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나는 수년 동안 이러한 문제에 대해 많은 일본인 친구들이나 동료들과 솔직한 토론을 가져왔다. 대단한 의견차이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일본인들은 서구인에 대해 즉 백인, 흑인 그리고 유태인들에 대해 일종적 편견을 가지고 있음을 솔직하게 시인한다. 그들은 중국인, 한국인 그리고 모든 다른 아시아인들보다 자신들이 우수하다고 생각한다.
  20세기 초에 중일전쟁과 노일전쟁을 치룬 후 한국은 일본의 지배하에 넘어가고 말았다. 미국으로부터 엄청난 협조를 보장받기 위해 일본인들은 한국의 지배계층을 와해시켰으며, 그들이 일본의 식민지 점령에 대한 저항세력을 조직하거나 그런 저항운동에 참여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 그들을 일본으로 이주시켰다. 이것이 한국인의 현대 일본사회로의 첫 유입이었다. 제2차세계대전 당시 일본은 심각한 인력난에 부딪치자 한국인들을 징용하여 궁국적으로는 노예노동에 종사시켰다. 전후에 일본에 정착한 이들은 1985년까지도, 일본 시민과의 결혼을 통해서만이 시민권을 취득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결혼은 극히 드물다. 우월감을 지니고 있는 일본 가정에서는 그들 가족중에 어느 누가 한국인과 결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어떤 경우에 의심을 받게 되는 일본인은, 그가 한국인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처신을 해야 한다. 일본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에게는 좋은 직업을 얻을 수 있는 전망도 별로 없으며, 사회적 신분의 향상도 꾀할 수 없다. 많은 한국인들이 개명을 했지만, 흔히 그들의 외모는 그들로 하여금 일본인으로서 행세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몇년 전 샌프란시스코에서 필자의 어느 미국인 친지가 한국 여자와 결혼했다. 결혼식 직전에 그의 한 젊은 일본인 친구가 그를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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냈다. 그 친구는 아주 진지한 태도로 그에게 결혼식을 올리지 말라고 충고했다. 결혼을 치루지 말라는 이유에 대해 끈질긴 질문을 받자 그 일본인은 필자의 친구에게, 일본에서 한국사람들은 흑인보다도 더 신분이 낮다고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인종의 순수성은 하나의 억지개념이지만, 일본인들이 순수혈통에 대해 말할 때는 거의 해학적인 실감을 느끼게 한다.
  오늘날의 일본인들은 기원전 2세기 초부터 시작된 중국인과 한국인 이민자들의 후예이자, 동남아 전지역으로부터 유입된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은 문헌적인 근거가 뒷받침하고 있다. 이 이민자들은 일본열도의 토착원주민들과 혼혈이 되어버렸다. 인류학적인 근거에 의하면 이들 토착원주민들은 코카사스인과 공통된 특징을 지녔는데 특히 얼굴과 신체의 발모현상에서 그러하며, 이것은 몽골리안족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징이다. 고대 중국의 기록에 의하면 ‘일본은 신체에 털이 많은 사람들의 나라’였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확실한 증거가 있다.
  종족의 순수성에 대한 주장은 지난 3백년 동안의 폐쇄된 역사의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이러한 시간적인 기간은 인간의 진화적 변화에 대한 시간을 측정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  특권계층과 소외계통
  17세기 도꾸가와의 쇼군 통치기간에 일본은 중국과 비슷한 계급제도를 공식적으로 채택했다. 그것은 사회를 네 부류의 신분으로 나누는 것이다. 즉, 사무라이, 농민, 공인 및 상인계급이었다.
  사무라이 계급은 가장 높은 신분의 특권층이었다. 이들 계급에는 쇼군과 모든 봉건지배 군주 그리고 그들이 거느린 군부의 신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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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함되었다. 농민들은 식량을 생산하는 영농자로서 사회계급 중 두번째 계층이었다. 공인들은 모든 종류의 거래 알선과 기능공을 포함한 계층이었고 상인들은 비생산적이며 최하위의 사회조직에 예속되어 있는 사람들을 일컫는 것이었다.
  일본에는 이들 이외에 이름없는 또는 다른 계급이 하나 있었다. 그들은 에다(천민)라고 불리는 천민으로서, 죽은 동물의 시신이나 불결한 일을 도맡아 처리했다. 일본인들은 빈민가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일컫는 완곡한 표현으로 이들을 ‘부락민’이라고 불렀으며 문어적 의미로는 ‘마을사람들’이라는 뜻이다.
  1868년 명치 천황이 복위한 후, 그는 사무라이 계급을 없애버렸으며 그와 함께 다른 모든 계급적 차별을 공식적으로 철폐했다. 그러나 일반 서민은 사무라이 계급의 몰락을 복 기뻐했을망정 천민에 대한 차별을 두지 말라는 지시는 전면 무시해버렸다. 17세기 초부터 이런 사람들은 그들이 종사했던 직업 때문에 천민이 되어버렸다. 매춘부, 걸인, 무덤관리인 그리고 공연오락장의 광대 등은 후에 보호신분계층에서 벗어난 부류에 추가되었다.
  천민에 대한 거부는 불교사상의 교리가 오도된 결과로서 이해될 수도 있다. 그것은 인도의 천민에 대한 힌두(Hindu)교의 입장과 매우 유사하다.
  신도사상이 그 이론적 원리의 대부분을 본받은 불교 교리에 의하면 인간의 영혼이 그 자신을 나타내는 세가지 형상이 있다. 사바라고 하는 생명, 또는 빛을 나타내는 조화의 법칙인 사바, 형상과 행위의 법칙인 리자스(Rijas), 관성과 환상의 법칙을 나타내는 타마스(Tamas)가 그것이다.
  깨우친 자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이런 원리 가운데 어느 한 가지도 소유하지 못하지만 각 개인은 이런 원리 가운데 어느 것이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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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영혼을 지배하느냐에 따라 인격이 정해진다. 선불사상은 이렇나 잠재성들이 인생의 정착과정을 안내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각 개인의 이러한 질적 내용의 특별한 연계 때문에 사람은 지혜롭고 위대한 지도자가 되기도 하고 백정 또는 매춘부가 되기도 한다.
  일본 사회에서 백정 또는 매춘부가 되거나, 아니면 불결한 것으로 취급되는 직업 가운데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사람은 사회적으로 엄격히 불리된다. 이것은 영혼적 존재에 대한 세속적인 보상이다.
  오늘날의 일본에서 어떤 사람이 무덤을 파는 직업을 가졌다고 해서 천민인 것은 아니다. 그는 천민이기 때문에 무덤을 파는 것이다. 소니회사의 회장 자리가 그에게도 열려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특정한 직업에 종사하도록 강요당하거나 다른 사람들로부터 소외당하는 사회적인 제한 때문에 한 개인의 천부적인 기질이 억압당하는 상황에까지 선불사상의 교리가 적용되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일본에서 한 개인의 직업은 흔히 그의 출생신분에 따라서 결정된다. 권력과 특권적인 직업으로 입신하는 것은 관습과 관계에 따라 보호되어왔다. 불결한 것으로 취급되는 직업은 천민과 천민의 자식들에게 돌아갔다.
  이런 과정을 거쳐 에다는 인도의 천민계급과 똑같은 세습적인 계층이 되어버렸다.
  흑자는 사무라이의 식탁을 위해 가축을 죽이고 거두는 백장이 동료의 생명까지 뺏는 직업을 가진 사무라이보다 더 불결한 존재로 취급받아야 하는 까닭이 무엇이냐고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의문으로 끝나는 일이다. 에다라는 말은 상류사회에서는 통용되지 않고 있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일본가정과 회사의 고용주는 에다의 신분을 가진 자가 그들의 가족과 결혼하는 것이 아닌가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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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그들의 회사에서 일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하고 확인하기 위해 청혼자와 구직자의 신상을 조사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

▪  아마에(Amae)에 의한 결속
  일본말로 ‘아마에’는 깊은 애정과 상호간의 의지를 의미한다. 그것은 모자관계와 비슷한 관계로 설명된다. 그것은 절대적인 믿음과 사랑의 조건이다. ‘아마에’는 일본사회에서  가족, 친구, 고용주, 국가 등의 모든 관계를 지배할 수가 있다.
  사업에 있어서도 이러한 결속을 다짐한 두사람의 동지는 서로 상대방의 이해관계를 돌봐준다. 구매자가 판매자를 이용하지도 않는다. 이와 반대로 중국상인은, 그에게 무엇인가를 팔기 위해 제삼자가 낮은 가격을 제시하며 접근해오면 한 순간의 이득을 챙기기 위해 십년간이나 지속해온 거래관계를 끊어버릴 것이다. 아마에라는 결속관계는 상호관계를 유지하는 데 떳떳한 방법인 것같지만, 실상은 그것이 모두가 밝고 이상적인 것만은 아니다.
  아마에 관계는 서구인에게까지 확대되어 있지는 않지만 필자는 일본인과 대만 사람들에게는 그러한 관계가 존재하는 것을 체험했다.
  대만 사람들은 일본 천황의 신민으로서 오십년이란 역사를 가지고 있다. 2차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에 복무했던 필자의 한 대만 친구의 말에 의하면, 그의 몇몇 일본인 전우들의 경우에도 자신에게 이러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필자의 또 다른 친지도 그와 그의 몇몇 교수들은 이러한 관계를 발전시켰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관계들은 서구인의 용모를 지닌 사람에게는 전혀 적용되지 않고 있다.
  아마에라는 결속은 도꾸가와 쇼군 체제하에서는 중요한 의미를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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녔다. 수세기동안 내란과 정치적 불안으로 지리멸렬되었던 일본은 16세기에 이르러 태평성세에 접어들었다. 도꾸가와 막부는 사회안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아마에 결속을 미화하고 찬양했다.
  궁극적으로 아마에는 개인의 미덕에 대한 하나의 중요한 상징적 표현으로서 발전되었다. 사업 동료들간에 아마에 결속은 자신의 이해관계 때문에 이루어진다. 성공적 결과를 얻기 위해서도, 미덕을 갖춘 사람으로 가장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즉 당장의 적은 이득을 얻고자 오랜 사업관계를 가볍게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순간적인 이익을 장기간의 불이익과 비교해보아 자신의 출세에는 별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자신의 사업적 동료들 사이에서 불신을 당하게 된다.
  사업적으로 피고용인과 고용주간에 이러한 결속관계가 바람직하다면 그러한 관계를 맺고 개인적인 감정은 버리는 것이 좋다.
  필자의 어느 일본인 친구는 대학을 졸업한 후 명성이 있는 한 일본회사에 일자리를 얻었다. 그는 7년 동안 그 회사에 근무한 후 동경에 있는 미국업체에서 아주 좋은 조건의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그는 미국인 업체와 첫 인터뷰를 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어쨌든 소문은 흘러나갔고 그의 상사들에게 소문이 전해졌다. 그는 입사했던 회사와의 아마에 관계를 파괴했다는 이유로 해고되고 말았다. 일단 그 사실이 공개되자 그는 신의를 저버렸다는 이유로 다른 일본인 회사에서 직장을 구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어버렸다. 이러한 관계때문에 아마에(Amae)는 일본인 근로자들을 관리하는 데 매우 효과적인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아마에 결속관계는 많은 경우에 있어서 현실적이며, 그러한만큼 그런 관계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진정 기적을 만들어낼 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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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월감과 열등감
  일본인들은 우월감과 열등감에 대한 문제에 깊이 빠져 있다. 국가와 국가 그리고 개인과 개인간의 관계는 항상 강자의 편에서 검토되게 마련이다. 일본은 국민적 우월성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 자부심의 내면에는 그들이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바로 그 국가들로부터 문화를 빌려왔다는 사실 때문에, 그나라 국민에 대한 표현할 수 없는 열등감이 내재되어 있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대화를 나눈 많은 일본인들이 이와같은 복합적 감정에 동의하고 있다.
  민족문화는 한시라도 공백상태에서는 발전되지 않지만 일본문화는 특이하게도 파생적이다. 이미 앞에서 언급했듯이 일본문화는 대체적으로 중국으로부터 전래 또는 파생되었다. 일본의 문어는 중국문자에 기초를 두고 있다. 철학과 종교 역시 중국의 모델에 따라 형성되었다. 정부의 관료조직과 조직이 잘 이루어진 사회질서는 고대중국의 형식을 모방하고 있다. 처음 쓰여진 역사기록과 자연과학의 초기적인 모든 발전도 중국본토에서 일본으로 전래된 것이었다. 일본은 이러한 모든 영향을 흡수했고 그것들의 자신들의 개성에 맞게끔 개조했다.
  19세기에 일본은 전혀 다른 형태의 문화적 영향권인 산업화된 서구권에 자신을 내맡기게 되었다. 일단 외래의 이방인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겠다는 결정이 이루어진 이상, 기술과학분야에서 유용하다고 판단한 모든 것을 흡수하고 그러한 자료는 일본사회에서 포괄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뚜렷한 국가정책의 일환이 되었다.
  일본인들의 사상관념은 중국의 유교와 불교에 의해 형성되는 한편 일본의 과학지식은 서구에서 유래되었다. 이것은 일본인들로 하여금 전적으로 일본인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진정한 국정석의 결핍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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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끼게 만들었다. 그들은 개발하지 않고 오직 남의 것을 모방한다는 비판에 대해 예민한 반응을 나타낸다.
  일본은 이미 세계적으로 최선의 가치가 있다고 판명된 지적 무형자산과 아이디어를 선택하여 자기들 것으로 정제해왔다. 그들은 자신이 선택한 요지부동의 막다른 목표를 수행하는데 별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이것은 일본의 제도가 일본인들이 빌려온 문화를 소유했던 나라들보다 더 훌륭하게 운영되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문화가 잘 유지되고 있는 그 자체가 일본인들이 우월감을 갖게 하는 근본 이유이기도 하다. 일본인들이 그런 문화에 이중적인 국적성을 부여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열등이니 우월이니 하는 감정들은 사라지고 일본 국가의 행운으로 가득찼다. 일본이 전적인 우월감을 처음 느끼기 시작한 것은 제2차세계대전에서 중국 및 서방세계와 대립하기 이전, 그들의 식민지 정복이 고조를 이루고 있을 때였다.
  이제 21세기로 접근해가고 있는 이때에 일본은 다시 우월감을 갖기 시작했다. 세계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다른 분위기의 모습으로 변하는 것과 점차적으로 세계무대에서 다시한번  그들의 의지를 돋보이게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일본인들은 그들의 개인적 그리고 정치적 상호역학관계에서 가족과 같은 계급제도에 얽매여있다. 일본인들은 처음 사람을 만나 인연을 맺게 되면, 그들은 어떻게 처신해야 할 것인가를 알기 위해 누가 윗사람이고 누가 아랫사람인지를 먼저 결정한다. 1970년대 후반까지도 일본인들은 서구인을 만날 때 그들의 국제적 지위 때문에 자동적으로 서구인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양보하곤 했다. 동시에 그들은 자신들이 일본 종족이라는 이유로 역시 우월감을 느꼈다.
  몇몇 일본작가들은 일본인들의 태도에 대한 양면성을 분석해 보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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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러한 사회비평가들 중에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은 고인이 된 유끼오 미시마라는 작가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미시마의 전반적인 작가로서의 경륜은 일본인들의 인품에 대한 어두운 면과 부딪쳐온 것이었다.
  미시마는 사후에 20세기에 가장 찬사를 받는 일본인 작가가 되었지만 생존시의 그는 괴팍스러운 처신과 우직스러운 정직성으로 하여금 많은 일본독자들에게 외면당해왔다. 일본은 권력에 대한 순종자에게는 후한 배려를 한다. 미시마는 일본인들에게 개인으로서 그리고 한 국가로서 자신들을 정직한 마음가짐으로 진단해볼 것을 촉구했다.
  그의 40여 편의 소설과 33편의 희곡 그리고 기타 8편의 단편 가운데 ‘반도덕적 교육 세미나’라는 제목을 붙인 수필집이 있다. 이 수필들은 원래 주간지의 칼럼으로 발표되었다가 나중에 일본에서 T.V.스페셜 프로그램으로 제작되었다. 미시마는 이 수필집에서 예리하고 정직한 관찰을 바탕으로 한 일련의 비판적인 글을 썼고, 이로 인하여 일본인들 가운데 엄청난 논쟁을 일으켰으며 또한 수많은 증오의 서신을 받았다. 우월성과 열등감의 복합적인 감정을 지니고 있는 그의 동포들에 대한 글을 쓰면서 그는 1957년 미국에 체류했을 당시 일어났던 한 사건을 기술했다.
  그는 일본의 어느 명문대학 총장이 역시 초대되어 참석한 것을 알고 기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놀라기도 했다. 이 사내는 그의 화려한 매너 때문에 잘 알려져 있었고, 그래서 미시마는 멋진 접대를 받을 수 있는 저녁이라고 기대했다. 저녁식사 동안 이 유명한 재담꾼은 거의 말이 없었다. 그는 자신을 초대해준 미국인 호스트에 대해 비굴하리만치 겸손한 태도로 응수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 사내는 미시마를 그보다는 아래 수준의 인물로서 알고 있었고 또한 그를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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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 식으로 대했다.
  저녁내내 그 총장님은 미국인에게는 겸손하고 그의 동포에 대해서는 교만을 보이는 처신을 연출했다.
  미시마는 그 자신 스스로가 일본 민족의 우월성에 대한 일본인들의 신념속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그는 외국인들 앞에서 겸손과 오만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비겁한 가변성을 보고 울화가 치밀었다.
  한 손을 들고 일본인들은 ‘일본은 신성의 혈통을 받은 나라이니 결코 패배자가 될 수는 없다’라는 슬로건을 외친다. 그런 한편 다른 손을 들고 그들은 서구인들 앞에서 스스로 겸손해진다. 이러한 복합적인 감정은 열등감을 감추고 자긍심에 대한 위장된 감정을 얻고 싶어하는 강한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미시마는 말했다.

▪  문명화된 야만인

  ‘인간의 직관적인 감정은 흔히 피의 현장을 목격함으로써 자극을 받고 표출될 수 있다. 우리는 투우에서 그런 면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일본인들의 의식행사에서는 흔히 피를 흘릴 때까지 함께 싸우는 광적인 사람들이 없이는 환희의 절정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역시 알고 있다’라고 미시마는 말했다. 현대 일본인들의 위선적인 태도는 이러한 피같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무기력에서 기인된 것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사무라이 시대가 종말을 고하자, 이처럼 자극적인 욕구는 오직 대체적인 방법으로 충족될 수밖에 없었다고 그는 서술했다.
  도꾸가와의 쇼군 통치가 끝날 때까지만 해도 일본은 하나의 문명국가였지만 그의 원시적인 진한 욕망을 탐닉할 수 있었다. 피는 일본인들이 즐기는 모든 것에 즉 문학, 연극 그리고 영화에 충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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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은 폭력 또는 잔인한 장면을 결코 마다하지 않는다.
  미시마는 일본인들이 사무라이 검을 차고 일함으로써 그들의 불안감 대부분을 해소할 수 있었다고 함축성있게 말했다.
  미시마는 다른 많은 민족들에게 그러하듯이 일본인들에게도 어둡고 야만적인 면이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이런 폭력적인 것에 대한 강력한 충동은 현대 문명사회의 제한적 조치로 좌절되고 있다.
  미시마의 관찰은 원초적인 감각에 접근했다. 이 문제에 이의를 제기하는 일본인은 별로 없다.
  세계대전 당시 일본인들의 과도한 잔인성은 전세계에 잘 알려져 있다. 1989년 2월 15일 UPI통신은, 대전 당시 일본인군들은 오스트레일리아인 전쟁포로들에게 사람고기를 먹였다고 주장하는 조지 스티븐슨(George Stevenson)이라는 69세의 오스트레일리아인 노병에 대한 기사를 공급했다.
  1942년 2월 트럭운전수로서 강제노동에 처해진 전쟁포로 스티븐슨은 300여 상자나 되는 고기를 캄보디아에 있는 포로수용소에 운반했다고 진술했다. 그 고기는 설탕과 생강으로 절였으나 구더기로 가득 덮여 있었다. 스티븐슨씨는 그가 말고기 아니면 돼지고기를 운반한 것으로 생각했다. 냄새가 너무 역겨워 그는 옥스포드대학에서 교육받은 한 장교에게 그것이 어떤 종류의 육류인지 물어보았다.
  “우리 일본인들은 영양가있는 좋은 음식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지. 우리는 중국인 백정들을 시켜 중국 시민들을 죽이게 한 다음 포장을 하고 그 고기를 절이도록 한다구.”
  주로 일본인들은 화학무기 실험으로 50만명의 중국인들을 도살했다. 그들은 역시 20세기에 들어서서 영주봉건시대에 있었던 잔악성을 어느 정도 재현한 것이었다. 특히 괴기스러운 관행중 한 가지는 산 사람의 가죽을 벗기도록 하는 일이었다. 일본인들은 한 중국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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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또다른 중국인의 가죽을 벗기도록 강요한다. 만약 그 중국인이 인정 때문에 그의 가죽을 벗기기 전에 그를 죽여버린다면 일본인 정복자는 또다른 중국인으로 하여금, 그 인정많은 사람의 가죽을 벗기도록 다시 강요하곤 했다.
  이러한 야만적 행위에 대해서 글을 쓴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글을 썼다 하더라도 역시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과 50년전 일본이 중국을 점령하고 있을 당시 이런 일은 차라리 공공연하게, 그리고 또한 상습적으로 저질러졌다고 알려져 있다. 일본인들의 집단수용소에서 자행된 잔학행위는 나찌(Nazis)의 야만성과 동일했다.

▪   자기를 부정하는 민족
  독일과는 달리 일본은 제2차세계대전 당시 그들의 만행으로 인한 국가적 유죄의식을 별로 치루지 않았다. 즉 별로 속죄하는 뜻을 나타내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국가정책의 일환으로서 그들의 교육제도는 전반적인 문제를 간과해버렸다.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사실상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다.
  만약 전쟁에서 있었던 일본의 역할에 대해 일본의 십대 젊은이에게 물어 본다면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는 어떤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모든 나라들이 우리에게 자원공급을 끊었거든요. 우리는 우리의 생존을 위해 싸울 수밖에 없었지요.”
  필자는 전쟁을 체험한 세대들에게 이런 질문을 해보았다.
  “일본인들은 서로 아주 예의바르게 대합니다. 그런데 한국, 대만, 그리고 중국을 점령했을 때 그들은 왜 그렇게도 야만적이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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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관심을 끄는 것은, 약 30여 명의 일본인으로부터 필자가 받은 대답이 똑같았다는 점이다.
  그들 모두가 한결같은 내용의 대답을 내놓았다.
  “그것은 전쟁이었지요. 사람들은 전쟁에서 미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모두가 이것으로서 충분한 설명이 된 것처럼 말했다. 한 여인으로부터도 같은 대답을 들었다. 특별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이런 생각들을 거의 모든 일본인들이 함께 하고 있는 것같다.
  1937년 일본은 중국의 수도 남경을 점령했다. 도시가 그들의 수중에 함락된 후 사흘동안 일본군은 고문, 살인 그리고 강간 행위를 미친듯이 자행했다. 그들은 마주치는 모든 중국인들을 총살하거나 총검으로 찔렀다. 그들은 여인들과 7세에서부터 17세에 이르는 소녀들까지 닥치는대로 강간한 다음 살해했다. 그들은 태아가 남성인지 또는 여성인지에 대한 내기를 걸고 임산부의 배를 찔어 가르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다음 그들은 이러한 피흘리는 현란한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사진을 찍곤 했다. 그들이 그런 행위를 끝냈을 때 삼십오만명의 중국인들이 살해되었던 것이다.
  그 도시를 끼고 흐르는 양자강은 문자 그대로 인간의 피로 붉게 물들었다.
  필자는 마이라이(My Lai)학살에서부터 스페인의 종교재판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건과 비교하여 증명된 남경약탈에 대해 들었다. 한 일본인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 전후의 점령기간 동안 미군들은 많은 일본여자들을 겁탈했어요. 그렇다면 남경의 겁탈은 뭐가 대단한 겁니까?”
  일본인들은 제2차세계대전에 대한 그들 자신의 날조된 역사를 만들어냈으며 그 의도를 은폐하고 있을 뿐이다.
  북경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남경학살현장에 참가했던 일본군 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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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한 인사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자신이 느꼈던 죄의식에 대한 일종의 속죄로서, 전쟁 당시 그가 썼던 일기를 출판하고 싶었다고 술회했다. 그의 의도는 이러한 사건을 상기시키려는 반애국적 충동에 대한 거부감과 분노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난 날의 악덕행위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민족에게는 커다란 위험이 내지하고 있는 겁니다.” 하고 그는 우울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남경약탈사건을 실록으로 집필하려고 했던 필자의 의도는 똑같은 저항에 부딪쳤다. 몇년 전 필자는 이 사건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하려고 스폰서를 구하고 있었다. 필자는 이와 같은 사건은 결코 다시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확신을 심기 위한 운동에 동참하기를 원하는, 소수이나마 지성적인 일본인들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서구인들은 나찌 독일의 잔학행위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만 일본의 중국점령에 대한 소름끼치는 사건들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고 있다.
  필자는 일본에 대한 훌륭한 기여로 히로히또 황제로부터 훈장을 받은 어느 유명한 미국인 친구에게, 세계평화를 위해 헌신하는 한 일본단체로부터 필자를 위해 기금을 요청해달라고 부탁했다. 그가 내게 가지고 돌아온 회답은 필자가 세계3차대전이 일어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면 필자의 그런 발상은 완전히 버리라는 것이었다.
  1990년 1월 18일 나가사끼시의 시장 히또시 모도시마가 초국가주의 단체인 세이끼 주꾸(Seiki Suku)의 멤버로부터 총격을 받고 중태에 빠졌다. 암살 시도는 1988년 12월에 모도시마가 몇 마디 언급한 내용에서 비롯되었다.
  천황 히로히또가 임종했을 무렵, 모도시마는 어느 공개토론석상에서 그에게 돌아온 질문에 답변하면서 천황은 2차세계대전을 일으킨 데에 대한 어떤 책임을 질 수도 있지 않는냐는 뜻을 시사했다. 모도시마는 그의 발언 취소를 거부한 후, 수많은 죽음의 협박을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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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는 엄중한 보호를 받았으나 천황에 대한 조문기간이 끝날 때까지는 그의 목숨을 노리는 공공연한 시도는 나타나지 않았다. 많은 일본인들이 개인적으로는 모도시마의 견해와 뜻을 같이하고 있지만 이러한 의견을 공개적으로 발설하는 것은 아직도 일본 내에서는 중대한 문제를 일으키는 경거망동으로 인정되고 있다.

▪  희생에 대한 증후현상
어느 정도까지는 외래 민족들에 의해 희생을 당했다는 감정이 대부분의 아시아인들에게는 공통적이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그러한 감정은 하나의 고정관념이다. 모든 일본인들은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의 원폭투하 그리고 전후 미국의 점령으로 인한 수모감에 대해 대단히 분개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역사적 교훈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미국의 수중에서 당한 굴욕감은 페리(Perry)제독 시대까지 소급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미국이 자국 상품에 대한 일본시장의 개방을 요구하는 것은 그들을 희생시키려는 미국 정부의 또다른 의도라는 견해를 갖고있다. 미국의 무역제대에 대한 위협은, 심지어 미국인들도 구매하지 않는 싸구려 상품들을 일본인들에게 강매하는 것으로 비춰지고 있다. 일본인들은 대체적으로 전후 미국의 원조와 그들에 대한 관대한 무역정책 때문에 그들의 번영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전통적인 일본의 예술은 불가피하게 비극적인 면에 중점을 두고 있다.
  연극, 음악 그리고 회화의 주제들도 대부분 슬픔의 주변에 머물고 있다. 일본인들은 슬픈 빛으로 자신들을 음미하고 싶어한다. 일상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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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에서 비극적인 감정요소가 결여되어 있으면 어떤 일본인들은 그런 요소를 만들 필요성을 느낀다. 어느 일본의 농산물 업체 회장인 필자의 친구 하나가 한번은 필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매일 나의 일기장에 아주 슬픈 이야기를 쓴다구.”
  “좀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지 그래? 자신의 생활을 둘러보라구. 감사해야 할 일도 많을 텐데. 내가 생각하기에 당신은 일기에 쓸 만한 즐거운 일 한 가지씩은 꼭 찾아낼 수 있을 거야.”라고 필자는 그에게 말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하지만 나는 사실 슬픈 감정을 좋아하거든.”

▪  감시사회
  최근 일본의 낮은 범죄율이 지속되고 있는 이유를 연구하기 위해 일본 현지를 방문했던 미국의 경찰관계자들은 아무런 이유도 발견하지 못한 채 귀국하고 말았다. 가장 중요한 요인들은 그들의 눈에 드러나지 않았던 것이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일본에서 범죄율이 낮은 이유는 사회 전체가 감시의 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범죄행위를 찾아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이웃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관찰하기 위해서이다.
  인품이 단정한 일본인은 반드시 지켜야 할 엄격한 규칙이 하나있다. 그들은 항상 이웃사람들의 감시와 친숙한 지면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성실하고 근면한 남편은 매일 출근하고 저녁늦게 귀가해야 한다. 만약 그가 일찍 귀가하면 그는 자신의 가족들에게 부끄러움을 가져다 주는 것이다. 장래가 보장된 사내라면 늦게까지 일하고 그다음 고객들을 접대하는 그의 상사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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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하도록 초대받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다. 어떤 남자가 매일 저녁 일찍 귀가하면 그의 부인은 이웃사람들로부터 쑥덕공론의 대상이 될 것이다.
  일본인은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상당히 관심을 둔다. 그들은 주변사람들의 의견에 따라 그들의 생활을 영위하며 상호간에 솔직한 의견을 교환하는 데 매우 관대한 편이다. 이러한 성품은 일본인들 사이에는 별로 이상한 것이 아니지만, 이러한 생활태도가 사회적으로 얼마나 깊은 영향을 미치는 것인가를 이해하려면 그러한 현상의 근원을 살펴보아야 한다.
  봉건군주시대의 가정들은 다섯세대 단위로 집단을 이루었다. 이러한 가족세대 단위는 그 집단 내에서의 모든 개인들의 행위에 대하여 군주에게 책임을 졌다. 만약 어린이들을 포함하여 어느 누가 군주에 대하여 반규범적 행위를 저지르면 그 집단의 모든 구성원들은 똑같이 처벌을 받게 된다. 모든 사람들은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는 정도로 다른 모든 사람들의 개인사정에 대해 관심을 갖게 마련이었다.
  오늘날 일본에서, 어느집 자식의 약혼자가 천민가문의 출신이라면, 개인적인 문제인데도 불구하고 수많은 편지를 받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다. 미시마의 약혼녀도 미시마와 같은 사내와 결혼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편지를 수없이 많이 받았다.

▪  나를 구찌(Gucci)라고 불러주오
  일본은 대단한 신분의식사회이기 때문에 격에 맞는 의상을 걸치고 걸맞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신분에 어울리는 옷을 입고 있다는 것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그 사실을 알도록 하는 최선의 방법은 디자이너의 상표가 붙은 상품을 걸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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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자이너의 의상과 장신구는 최고의 신분적 상징이다. 유명 디자이너 상품 수입에 대한 과도한 세금부과는 그들로 하여금 더욱 호기심을 느끼게 한다. 그것은 고급 취향을 나타내며 또한 그럴만한 신분을 가졌다는 것을 외부에 과시하는 의도도 된다. 어떤 일본인 간부직원은 구찌 벨트를 착용하고 샤넬(Chanel) 가방을 들고 또다른 유명상표의 열쇠고리를 흔히 달고 다닌다. 또 어떤 부유한 여인은 구찌 또는 샤넬 핸들백을 들고 싸인이 새겨진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다닐 것이다. 필자는 때때로 유럽의 유명상표가 붙어있는 의상만을 온몸에 걸친 사람을 보았다. 최근 일본의 의상잡지에 나타난 자신에서 가슴에 샤넬(Chanel)이라고 새긴 티셔츠를 입고 있는 여인도 보았다. 그녀는 오른쪽 어깨에 구찌 핸드백을 매고 왼손에는 뷔똥(Vutton)상표의 여행용 가방을 들고 있었다. 그녀는 머리에 펜디(Fendi)상표의 모자를 썼는가 하면 사진 위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씌어 있었다. ‘이 여인은 신분상의 문제가 있음.’

▪  하늘이 무너져도…
  하늘이 무너질까봐 앉아서 걱정을 하는 한 사내에 대한 유명한 중국 설화가 있다. ‘하늘이 무너지면 어떻게 될까? 별들이 나를 깔아 뭉개고 말겠지’하면서 툭하면 불안해 했다. 종말이 올까봐 걱정하는 중국 사내와 일본이라는 나라를 비유하여, 일본인들은 이 설화를 하나의 우화로 써먹는다. 일본인들은 그들의 국가와 민족의 생존문제에 집착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둘러앉아서 걱정하는 일은 없으며, 그들은 국력을 배양하기 위해 뜨거운 열정으로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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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의식없는 일본인
  일본 사람들은 최후심판의 날을 대비해 모든 행위를 생각하는 서구의 기독교인들보다 자신들이 훨씬 더 잘 산다고 생각한다. 일본인들은 신도 또는 불교신자가 절대적으로 많은데, 그중 어느 종교도 죄의식이나 지옥 또는 천당에 대해 서구적 개념과 동일시되는 가치를 지니고 있지 않다. 인과응보(KARMA)의 참선 불법을 진실하게 이해하고 있는 일본인들은 항상 청결하고 순결한 삶을 살아갈 것이지만, 대부분의 일본인들에게 있어서 종교는 단순히 일련의 의식적 행사일 뿐이다.

▪  자살, 그것은 모든 문제를 청산하기 위한 유일한 방편이다
    일본인들에게는 사업 또는 추구하는 바를 이루지 못할 때는 자살로 끝맺는다는 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자살은 모든 것을 올바르게 정리한다.
  물론 자살은 과거의 모든 문제를 청산하며 실패로 인하여 실추되었던 불명예를 다시 회복시켜 줄 것이다. 만약 어느 누가 불명예스런 행위를 저질렀다면 그의 가족들은 그의 오명을 함께 나눈다. 그의 아들은 훌륭한 직장을 얻지 못할 것이며 그의 딸은 바람직한 결혼을 하지 못할 것이다. 자신의 가족들에게 이러한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당사자는 흔히 자살의 길을 선택한다.
  자살은 죽음과 삶에 대한 명예를 회복한다. 사람들은 스스로 목숨을 바쳐 댓가를 치룸으로써 명예회복을 선택한 자를 용서한다. 일본인들에게 있어서 명예는 개인의 생명보다 훨씬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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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한과 앙갚음
  대부분의 아시아인들은 복수심이 강하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일본인도 빠지지 않는다. 사무라이와 쿵후 영화를 보면 대부분의 내용은 복수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구성에 있어서도 대동소이하다. 그 내용은 대체적으로 이렇게 전개된다.
  주인공의 전가족은 악덕군주에 의해 살해된다. 주인공은 그의 젊은 문하생에게 무술을 전수시키는 데 헌신하고, 그의 젊은 수제자는 그 군주와 수십명이나 되는 그의 수하들을 찾아 죽여버린다. 한순간도 복수에 대한 그의 사명을 잊지 않는다.
  19세기 중반에, 사쓰마와 조슈라는 쇼군 정권을 전복하고 천황을 복위시키기 위해 군사력을 통합했을 때 그들의 유일한 결속 동기는, 2백년 전 그들의 조상이 도꾸가와 쇼군세력에 의해 패배한 사건의 명예회복을 위한 사명감이었다. 단 하나의 복수심 때문에 서로에 대한 적의를 거두었던 것이다.
  17세기 오이시(Oishi)라고 하는 사무라이에 대한 유명한 일본의 설화가 있다. 오이시의 군주는 쇼군 내의 어느 고위직의 궁주로부터 모함을 받고 나서 할복자살을 해야만 했다. 오이시는 그의 군주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하기로 결심했다. 처음에 그는 적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7년 동안이나 주정뱅이 노릇을 가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복수에 대한 그의 결심에 동조하는 군주의 사무라이 가운데 46명을 비밀리에 포섭했다. 마침내 그들은 군주를 죽음에 이르게 한 사내의 목을 자를 수 있었다. 그 다음 그들은 군주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는 사당으로 그 머리를 들고 찾아갔다. 그들은 자신의 임부를 끝낸 후 47명의 병사 전원이 함께 자결을 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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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이야기는 아주 인기있는 소설과 가부끼(kabuki)연극공연, 또는 인기있는 영화의 주제가 되었는데, 그것은 준엄한 복수에 대한 일본인들의 태도를 주로 반영하고 있다.
  일본인과 중국인들이 복수를 행하는 방법의 차이는 일본인들은 집단으로 행동하는 반면, 중국인들은 개인적으로 복수를 한다는 것이다.

▪  개미민족
  일본 사회는 개미집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각 구성원은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조직 내에서 일정한 지위와 수행해야 할 특정한 임무를 가지고 있다.
  개미의 집단조직은 땅 위의 곤충들 중에 어느 종류보다도 훨씬 강하다는 사실과 비유한다면, 그와 유사한 일본사회는 전체의 뜻에 완전히 예속되지 않는 개인주의 사회보다는 훨씬 능률적이다.
  일본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미덕인 동시에 가장 큰 악덕은 국가의 목적을 위해 개인을 희생시킬 수 있는 그들의 힘이다. 대부분의 경우 일본의 젊은이는 대학을 졸업하고 큰 회사에 입사한 후, 남은 전생애를 통하여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변천해 갈 것인가를 정확하게 알게 된다. 전체 국민이 그들의 개인주의를 버리고 공동의 사회복리를 위해 일하는 얼굴없고 이름없는 존재로 전락할 때, 그 과실을 따먹는 자는 그들의 고용주나 정치지도자들이다.
  사람과 개미의 차이점이라면 개미는 개미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개미들은 개체성이 없다. 일부 일본인들은 퇴근후 즉시 귀가하는 즐거움, 휴가를 갖는 즐거움, 그리고 그들의 개성과 개인의 욕망을 표현하는 즐거움을 이해할 만큼 서구적인 영향을 받아들였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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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나 고도의 군대식 조직으로 이루어진 집단사회에서 이러한 감정을 표현하기는 어렵다.
  그들의 목적의식, 더 큰 복리를 위해 개인의 이해관계를 흡수할 수 있는 능력과 그들의 근면성에 대해, 물론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일상생활을 최대한으로 간소화하고 그들이 행하는 모든 일에서 완전함을 추구하는 기능으로 변화시킨다. 그러나 어떤 친구에게 이러한 내적 능력이 있다면 칭찬할 만한 것이 되기도 하지만, 역설적인 의미로서 그러한 능력은 가공할 만큼 무서운 한 점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중국인과 기타 아시아 민족은 일본인들이 이러한 특성을 가장 긍정적인 자세로 표현하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우리는 역시 일본인들은 하나의 공동목적을 지닌 집단적인 존재로서 흔히 그들의 이웃민족들에게 위협을 가했던 사실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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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기업 사무라이 ▪ 사무라이의 기원 표면상으로 볼 때 일본은 현대산업사회이다. 그러나 내면적으로는 봉건군주사회의 과거에 깊이 뿌리내린 사회이기도 하다. 일본인들은 아직도 사무라이 전통에 얽매여 있다. 일본을 이해하려면 누구나 이전통에 관련된 ...

9. 모리따와 이시하라

9 모리따와 이시하라 소니(Sony)사의 회장 아키오모리따와 전 일본 운수성장관 신따로 이시하라가 공동저술한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The Japan That Can Say No)’ 이란 책은 1989년 일본에서 처음 출판되었다. 모리따와 이시하라가 저술한 내용은 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