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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기업 사무라이

Views 303 Votes 0 2016.04.13 16:08:44

8  기업 사무라이

 

▪  사무라이의 기원
  표면상으로 볼 때 일본은 현대산업사회이다. 그러나 내면적으로는 봉건군주사회의 과거에 깊이 뿌리내린 사회이기도 하다. 일본인들은 아직도 사무라이 전통에 얽매여 있다. 일본을 이해하려면 누구나 이전통에 관련된 주변 역사와 신화를 음미해보아야 한다.
  일본에서 지금까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문헌인, A.D.721년에 편찬된 고대사(Kijiki)와 A.D.720년에 편찬된 일본역사(Nibon Shoki 또는 Nihongi)에 의하면 천지가 창조될 때 하나의 신비스런 힘이 그것들을 하나씩 갈라놓았다는 것이다.
  천신인 쿠니도코다찌는 이자나끼와 이자나미를 만들어 첫번째 남성신과 여성신의 짝을 지웠다. 그는 이들에게 일본을 창조하라고 명했다. 이자나끼와 이자나미는 함께 하늘에 서서 보석으로 장식된 산호 창으로 바다를 휘저었다.
  그들이 창을 들어올렸을 때 바다에 떨어진 물방울들이 일본 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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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성했다. 그들은 하늘에서 내려와 이 섬 위에 그들의 집을 지었다. 그 산호 창은 그들의 집을 지탱하는 중심 기둥이 되었다. 이리하여 신화와 역사 속에서도 하나의 전쟁무기는 일본을 건설하는 데 기초재료로 등장한다.
  A.D. 200년 스진(Sujin) 천황은 네명의 장수들에게 군사를 지휘하여 네 지역을 정복하도록 명령했다. 스진은 장수들에게 쇼군이라는 계급을 부여했다. 이리하여 일본 역사에 쇼군(Shogun)이라는 말이 처음 생겨났다.
  스진의 후계자 게이꼬(Keiko) 천황은 야마또라는 아들을 두었다. 야마또 황태자는 용맹스럽고 병기술에 능하며 두려움없이 살생을 하는 자였다. 그의 성품은 고독하고 낭만적이며 그리고 슬픈 천성을 지녔다. 야마또 황태자는 신병이 인간으로 변신한 첫 인물로서 간주되었으며 모든 사무라이들이 본받아야할 모델이 되었다.
  야마또 황태자는 저녁식사에 늦게 나타난 그의 형을 죽였을 때 그가 추종해야 할 인생항로에 대해 미리 암시를 주었다. 놀라고 진노한 그의 아버지는 그를 전쟁터로 보내면서, 그의 아들이 적과 싸우면서 그의 흉포한 정력을 모두 소진할 것을 바랐다. 야마또는 여승이었던 그의 고모로부터 받은 신검으로 무장하고 출전했다.
  그는 처음에 용맹보다는 음모와 속임수로 승리를 거두었다. 한번은 적의 진영에서 연회가 벌어지고 있는 동안 그는 적장을 죽이기 위해 여자로 변장했다. 그는 이 전투에서 돌아오는 길에 이즈모성을 통과하면서 첩자를 파견하여 기만술책을 쓸 수 있는 기회를 다시 궁리해냈다. 역사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는 어느 마을의 촌장을 죽일 결심을 했다. 처음에 그는 그들간에 두터운 신의의 결속을 다지는 체하면서 그 사내에게 우호적으로 대했다. 한편으로 그는 별로 힘들이지 않고 그리고 자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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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하지 않은 방법으로 그를 살해할 방법을 계획했다.
  그는 목검을 만들어 정교하게 만든 칼집에 넣어 허리띠에 차고 다녔다. 그의 칼집에 쓸모없는 목검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어느날 그는 촌장을 초대하여 강에서 함께 목욕을 했다. 그들이 목욕을 끝내고 옷을 갈아입을 때 야마또는 서로 우정의 맹세로 칼을 교환하자고 제의했다. 그 사내는 승락했다. 그러자 야마또는 강둑에서 친선으로 검술시합으로 그들의 검을 시험해보자고 제의했다. 촌장이 가진 쓸모없는 목검은 내동댕이 쳐졌고 야마또는 놀라자빠진 그 사내를 베어버렸다.
  이 이야기는 영웅에 대한 서구와 일본인의 개념에 커다란 차이가 있음을 시사해 주고 있다. 서구적인 기준에 의하면 야마또는 배반자이며 비겁한 인물이다. 일본인의 기준으로 보면 그는 지혜롭고 능란한 전략가이다.
  후지(Fuji)산을 지나는데 커다란 용이 야마또의 길을 막았다.
  용은 그가 지닌 신검을 내놓고 돌아갈 것을 요구했다. 야마 또는 그 성난 용을 간단히 뛰어넘어 계속 전진했다. 얼마 후에 야마 또는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 그녀에게 아주 반해버렸다.
  인간의 사랑에 대한 집념과 그의 신에 대한 견고한 마음가짐으로 그는 갈등을 느꼈다. 결국 그는 아름다운 여인 이와또히메를 버리고 여행을 계속했다. 후지산 비탈에서 야마또는 그의 적들에게 포위당하고 말았다. 적들은 그가 포위당한 지역에 불을 지르고 그를 태워 죽이려고 했으나, 야마또는 신검운창을 사용하여 숲을 헤쳐 무사히 길을 내어 피신했다.
  이와또히메를 다시 보고싶은 욕망으로 가득찬 야마또는 그녀에게로 발길을 돌렸다. 또 다시 용과 마주치게 되었고, 이번에는 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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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넘을 때 그의 발이 용을 스치며 부딪쳤다. 이러한 마력의 짐승과의 접촉은 그에게 무서운 열병을 감염시켰다. 그가 자리에 누워 죽게 되었을 때, 그의 유일한 소원은 다시 한번 이와또히메를 만나 보는 것이다. 이와또히메는 몰래 그가 여행하는 길을 뒤따랐고 그래서 그의 마지막 임종을 지켜보게 되었다.
  야마또는 의식이 오락가락하는 가운데 잠시 눈을 떴다. 그는 사랑하는 연인의 모습을 바라보며 죽었다.
  그의 인생의 역정과 죽음에 대한 로맨스 때문에, 야마또는 첫번째 사무라이로서 기억에 남게 되었다. 그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는 모든 일본 사무라이 이야기가 추구하는 기본적인 요소를 설정해 놓았다. 이러한 영웅은 용맹만으로는 상대가 안되는 지혜가 높은 용사이다. 그는 역시 지혜를 갖춘 전술가이며 승리를 얻기 위해 배신과 기만을 서슴치 않는다.
  영웅은 천성적으로 고독하지만, 연약한 여인과의 사랑에 빠지기 쉽고 사랑과 자신의 사명감 사이에 갈등을 느끼고 좌절하게 된다. 사무라이의 이야기에서는 항상 사랑과 사명감이 서로 배타적인 것이다. 이야기는 여인의 애절함과 영웅의 죽음이라는 비극으로 끝난다.
  이런 류의 스토리는 아직도 일본인들에게 아주 감동적인 효과를 지니고 있다. 적어도 몇번은, 일본 남성들이라면 자신의 마음 속에서 사무라이 정신을 느낀다.
  여러 세기 동안 천황, 쇼군 그리고 모든 귀족들이 속해 있는 사회계급을 지칭했던 사무라이라는 용어는 ‘섬기는 자’라는 뜻이다. 그것은 중국인 사이에서 천박하고 저속한 사람에 대한 멸시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한자에서 나온 말인데, 일본인들에게 있어서 함축된 의미는 ‘사명에 충실하며 변절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것은 어쩌면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중국인과 일본인의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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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에서 차이점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 용어는 군신을 뜻하는 것으로서, 10세기에는 일반적 관용어가 되어버렸다. 12세기에 일본의 전쟁군부는, 대군주들의 군신을 뜻하는 말로 ‘사무라이 도꾸로’라는 공식 명칭을 제정하였다.
  한 계급층으로서의 사무라이는 8세기와 9세기 동안에 대지주와 소작인들 사이의 봉건지주 관계에서 발전되었다. 이들 지주들은 사법권을 행사하고 명령을 발동하며, 위험에 처하면 촌락의 방어체제를 조직했다. 이런 시대에는 공동방어를 위해 대지주 밑에서 봉사하는 것이 소작인과 소규모 지주들의 의무였다. 병사로서의 능력에 따라, 이런 사내들은 사무라이라고 불리워지게 되었다.
  사무라이가 전문화된 군 계층으로 발전하자, 관행에 대한 규범이 체정되었다. 즉 무사도라는 것이 성문화되어 군주와 무사간의 관계를 정립했다. 이들은 같은 사회계급의 일원이 되었고, 오직 직위만 차이가 있었다.
  10세기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사무라이는 모든 일본 남성들이 추종해온 사나이다운 이상이 되었다. 사무라이 계급은 공식적으로 한 세기 전에 철폐되었지만 사무라이 전통에 대한 영향은 일본인 사회에 깊이 잠재되어 있다.
  일본 근로자들의 상당한 부류가 그들의 조상들이 봉건영주들을 섬겼듯이, 그들 자신도 고용주를 섬기는 신의가 두텁고 용감한 사무라이처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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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라이의 규범
  ‘사무라이 규범’은 16세기에 무사이자 학자인 다이도찌 유잔에 의해 쓰여진 책이다.
  그것은 사무라이에 대한 정의를 가장 완벽하게 서술한 저서 중의 하나이다. 그 내용은 사무라이의 규범이 공자의 가르침과 선불 사상의 원리 그리고 신도주의 종교에 의해 깊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나타난다. 사무라이 정신의 궁극적 목표는 검도로서 깨우침을 얻고자 함이었다.
  용맹, 충성, 사며감 그리고 무술은 도의 깨우침보다 더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개념이기 때문에, 대중의 마음 속에는 이와 같은 사무라이의 외형적 실상이 심오하고 정교한 내면세계의 가치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해왔다.
  사무라이의 규범은 일본의 국민성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것은 한때 일본을 강하게 만들었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에 황폐함을 안겨다주었다.
  사무라이 관계는 지주와 가복간의 경제적인 의존으로 발전했다. 현대에 와서 그것은 피고용인과 고용주간의 결속으로서 경제적인 원래의 관계로 회귀했다. 이러한 옛 규범의 관례가 시대적 상황에 따라 아직도 적용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사무라이의 생사관
  ‘사무라이 규범’에 의하면 한 사무라이의 인생은 ‘죽음에 대한 정신적 애정문제’이다. 그는 무사이다. 그의 존재의 유일한 목적은 그의 주인을 섬기며 복종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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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자신의 생과 사는 그의 의무와 비교한다면 아무런 의도나 가치도 없다. 그는 미래에 대한 아무런 보장도 없다는 생각을 가지도록 자신을 훈련시킨다. 그는 숨을 쉬는 그 순간마다가 그의 마지막이다. 따라서 그는 주저없이 살생을 하거나 죽을 수 있다.
  오늘날 일본 기업들은 그들의 근로자들로부터 이와같은 획일적인 사명감을 강요하고 있다. 일본의 근로자들은 마치 생사문제나 되는 것처럼 고용주를 위해 일을 한다. 그것은 어디에도 명문화된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렇게 이해되고 있을 뿐이다.

▪  사무라이의 충성
  주인을 섬기는 사무라이는 주인이 번영할 때만 자신의 충성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 불행에 처했을 때도 역시 충성을 다한다.
  사무라이는 일천명의 기사가 열명으로 줄었다 할지라도, 아니 단 하나가 남아도 주인의 곁을 더나지 않는다. 사무라이는 그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그의 주인 곁에서 주인을 보호한다.
  아마도 이러한 충성심은 2차세계대전 종말에 천황 히로히또가 항복을 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일부 일본인들로 하여금 항복을 거절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항복이란 일본인들에게는 생소한 개념이다. 이제껏 항복한 주인은 없었다. 따라서 전쟁에서의 죽음은 최고의 영예이자 승리에 대한 유일한 선택이다.
  일본 국민들은 2차세계대전에서의 항복을 그들의 군대가 전략적으로 항복한 것인지, 국민들의 최후의 항복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천황은 항복연설에서 일본인들은 미래를 바라보며 일본을 재건하는데 그들의 힘을 모으고 특히 서방세계의 기술을 따라갈 것을 촉구했다. 충성하는 사무라이로서 그들은 주인의 명령을, 그들의 패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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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승리로 전환시켰다.
  필자는 임종을 맞이한 히로히또가 사무라이 국민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으리라 확신한다.

▪  정의와 불의에 대한 사무라이의 판단
  전통적으로 볼 때 사무라이는 단순한 전사가 아니다. 그는 역시 다양한 지성적 소양의 여러 분야를 배워야 한다. 그는 공자의 사서를 통독했으며 동시에 서도를 익혔다. 물론 현대의 사무라이는 수학, 물리학, 공학, 경제학, 판촉 그리고 그외에 국제무역에도 통달했다.
  역시 사무라이는 의와 불의를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사무라이의 판단이 그의 주인과 상충될 때 그는 자신의 판단을 거두고 주신의 판단을 받아들인다. 이러한 무조건적인 복종이 현대 사무라이의 강한 그러나 위험한 특성으로 아직까지 남아있는 것이다.
  사무라이는 아침 저녁으로 그의 손발을 씻고 매일 뜨거운 욕조에서 목욕을 하는 것이 규범상에 정해졌다. 그는 매일 아침 수염을 깎고 머리는 단정하게 빗질을 해야 한다. 그는 매일 아침 예복을 입고, 두개의 검을 휴대하고 동시에 한손에는 부채를 들고 다녀야 한다. 그들은 계급에 따라 적절한 예의를 갖추어 손님을 맞이해야 한다.
  일본인들과 일할 때 그들은 자신의 신분에 맞는 예절로써 대우를 받기를 기대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대신 그들은 서구인들을 지위와 신분에 따라 대우한다.
  일본인과 거래하는 서구인들은, 지위에 관해서는 거의 무관심하기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기도 한다. 미국 내에서 있었던 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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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관한 집회에서, 고위 일본외교관이 기조연설을 할 때 필자가 참석한 적이 있었다.
  연설이 끝난 후 그의 연설에 호감을 가졌던 한 젊은 여인이 그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그 외교관에게 열심히 찬사를 보내면서 그와 악수하려고 손을 내밀었다. 그는 미국인의 관습에 아주 익숙해 있었지만 일본인으로서의 그의 관습은 순간적으로 그를 자제시켰다. 그는 신분을 알 수 없는 이 여인이 아주 무례하게 접근해 오는 것이 버릇이 없다는 듯이 화가 나서 손을 내저었다. 그의  보좌관이 재빨리 끼어들어 그 순간을 정리하는 한편 그 외교관은 자세를 가다듬었다.

▪  침묵은 금이다
  사무라이는 쓸데없는 한가한 대화를 삼가해야 한다. 한가한 대화를 삼가하는 것은 일본인들 사이에는 정상적인 처신이다. 일본인은 서구인들의 개방적인 태도나, 여담을 즐기는 중국인들과는 다르다. 일본에서는 말을 하는 자는 지혜롭다 할지라도 바보로 취급된다. 차라리 침묵을 지키는 바보가 지혜로운 사람으로 인정된다.
  18세기의 사무라이였던 야마모도 쓰네모또가 쓴 ‘하까구라’에는 이렇게 표현되어 있다. ‘말 한마디도 지껄이지 않고 생각을 전달할 수 있다면 최선이다. 만약 그렇게 할 수 없다면, 몇마디 지혜롭고 잘 선택한 말로써 대화를 해야 한다.’
  수세기에 걸쳐 일본인들은 말없이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치있는 것으로 평가했다. 눈빛, 얼굴 표정, 가벼운 몸동작 등등 모두가 효과적으로 의사를 전달한다. 현대 사무라이가 서구인과 변설을 늘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은 저녁식사 테이블에 앉아서 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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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의 술을 마신 후이다.

▪  경계심을 결코 풀어서는 안된다
  사무라이의 처세규범에 의하면 사무라이는 언제, 어느 때, 어느 장소에서,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육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대결할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일본인들은 항상 투쟁적이었다. 수세기에 거쳐 사무라이뿐만 아니라 농민들, 예술인, 그리고 상인들까지도 무기를 휴대하는 것은 모든 일본 사내들 사이에서는 그저 평범한 관습이었다.
  비록 가장 천한 하인도 작은 칼을 항상 지켜야 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심지어 평화시라도 사무라이는 죽을 때까지 결투와 대결에 참여하는 것을 자랑으로 삼았다. 유잔(Yuzan)은 옛 속언을 인용하고 있다.
  “대문을 나설 때 적이 눈앞에 나타난 것처럼 행동을 하라. 공격할 마음의 준비를 늘 지니고 있지 않은 사무라이는 그의 칼을 차고 다녀도 무사의 탈을 쓴 농부나 일꾼에 지나지 않는다.”
  유잔의 책은 전시에 쓰여진 것이 아니라 일본 역사상 가장 길었던 평화시에 쓰여졌다.
  서구인들로서는 전체 국민성에 잠재해 있는 이렇게 냉혹한 투쟁적인 태도를 이해하기가 어렵다. 현재 서구에서 평화는 모든 문제 가운데 가장 정상적이고 바람직한 질서로서 간주되고 있다. 반면 전쟁은 하나의 무거운 탈선이라는 견해이다. 일본인들 사이에서는 반대개념이 항상 진실이었다.
  많은 미국인들은 미국 내에 일본인의 투자가 늘어나고 있는 것은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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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원 의장을 역임한 오닐(Oneil)은 결국 독일과 영국인이 일본인보다 미국에서 더 많은 것을 소유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독일과 영국은 일본이 아니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들은 침략적인 군국주의의 국민성과 과거의 잘못에 대한 복수를 결행하겠다는 무거운 결심을 보이지는 않았다.

▪  사무라이의 용맹
  16세기에 장기간 지속된 전쟁을 치루면서, 매일 저녁 군 진영에서는 두 부류로 나누어 자리가 배치되었는데 한 쪽은 용감한 무사를 위해서 그리고 다른 한쪽은 비겁했던 자들을 위해서 마련된 것이었다. 매일 저녁, 낮동안에 치룬 무사의 개인적인 전적에 따라서 그에 상당하는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다이도지 유잔은, “아무리 훌륭한 뜻을 지니고 있어도 용기와 담력이 부족한 사무라이는 무사로서 가치가 없다. 사실상 그는 사무라이가 아닌 것이다.”라고 말했다.

▪    사무라이의 임무
  사무라이는 두가지 분야에서 즉 군인과 시민으로서의 전통적인 의무를 지니고 있다. 전시에 사무라이는 무사로서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평화시에는 그에게 건설 또는 생산사업의 임무가 부여된다. 그들은 사회현장에, 그들이 군인으로 지녔던 사명감, 충성심, 그리고 용기를 가지고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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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판 사무라이
  구세대의 사무라이는 사라졌지만 일본에는 새로운 사무라이 계급이 존재하고 있다. 그들은 바로 근로자, 경영간부 그리고 그들의 조상이 전쟁터에서 지녔던 것과 똑같은 마음가짐으로 사업에 임하고 있는 고위직 간부들로서, ‘기업의 사무라이’이다. 한명의 일본 근로자는 미국 근로자 한명이 이틀걸려 생산하는 양을 하루에 생산해낸다. 일본인들은 서구의 근로자들이 일본의 사무라이 근로자와 필적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서방세계에 자유무역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    무사의 기예
  대만에서 일곱살 때 필자는 ‘미요모도’라는 일본영화를 본 적이 있다. 그 영화는 나의 전생애에 걸쳐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것은 내 어린시절의 영웅이었던 검술도인 미요모도 무사시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였으며, 아직까지도 그는 나에게 어느 면에서는 영웅으로 남아있다.
  일본의 내전이 끝나고 도꾸가와의 250년 동안의 태평성세가 시작되었던 시기인 1584년에 무사시는 태어났다. 양반 귀족가문의 혈통을 받은 사무라이였던 그는 열세살 때 그의 첫 결투를 치루었다.
  스물아홉살이 되기까지, 그는 육십명이나 넘는 기량이 뛰어난 사무라이를 죽였다. 그는 결투에서 한번도 패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사람을 베는 데 대단한 검술이 있었기 때문에 단순히 나의 영웅이었던 것은 아니다.
  무사시는 육십이 되었을 때, ‘고린노소’라는 책을 썼는데, 이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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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투와 검술에 대한 논문이다. 이 논문은 검을 다루는 기술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승부를 얻는 정신적 자세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 일본의 사업가들이 일반적으로 연구하는 자료가 되었다.
  일본인과 거래를 해야 하는 서구인들은 누가 되었든 무사시가 설파한 원리에 자신들을 적응시키는 데 훌륭한 참고자료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사업관계를 가지고 있는 일본인들은 그 원리들을 잘 이해하고 그것들을 습관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무사시는 이렇게 피력했다.
1. 무사는 문무(文武-펜과 칼)를 똑같은 기예로서 사용하는 사람이다. 칼을 쓰거나 전쟁에 참가하여 승리를 얻을 때, 우리는 자신과 지도자를 위한 권력과 명예를 얻을 수 있다. 이것이 무사의 기예에 대한 미덕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모든 지식은 상호연관을 가지고 있다. 한가지 전술에 대해 완전히 통달하기 위해 많은 연구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사무라이는 여러 분야에서 학자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현대판 사무라이는 협소한 자신의 전문분야에만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광범위한 지식을 터득해야 한다.

2. 검술에 대한 연구만을 통하여 검도를 이해하기는 어렵다. 가장 작은 것에서 그리고 동시에 가장 큰 것에서, 가장 눈에 잘 뜨이는 곳에서 그리고 가장 깊은 곳에서 그 신비함을 터득해야 한다.
검술은 칼날의 기계적 운동으로 이루어지는 단순한 기예가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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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것은 자신을 도와 조화시키는 것과 연계되어 있다. 검술을 숙달하는 과정에서 훈련을 하는 자는 변화무쌍한 원리를 발견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칼을 한번 움직여 공격하는 것은 서도에서 붓을 한번 움직이는 것, 또는 꽃꽃이에서 한송이 꽃봉오리의 위치를 선정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 무변화의 원리를 터득하기 위한 이러한 훈련은 서구세계로부터 새로운 기술을 얻어내고 핵심원리를 발췌하여 그 다양한 용도를 찾아낸 다음, 실제 기술을 개발한 사람들이 결코 상상도 못했던 제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 일본인들의 기본능력이다.

3. 도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것이다. 이것을 얻으면 저것을 얻지 못한다는 뜻이다. 무사가 기예를 익히는 길은 자연의 도이다. 자연의 힘에 자신을 조화시킬 때 비로소 모든 변화의 리듬을 깨우치며 적을 베고 물리칠 수 있게 된다. 이 모든 것은 도의 행함이다.
무사시는 그의 생애의 후반을, 도를 연구하면서 외롭게 보냈다. 선불의 도는 유형과 무형을 초월한 것이다. 그것은 모든 것을 포용하고 버리기도 하며 아무것도 취하지 않으며 버리지도 않는다. 도는 시작의 시작이며, 끝남의 끝이며, 만물의 어머니이다.
  그것은 우주가 만들어진 힘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즉 도의 원리에서 무사시는 오직 우주의 단일한 진리만을 깨닫았을 것이다. 자아와 타아, 적과 친구의 구별도 있을 수 없다. 그가 도를 행하는 과정에서 연구하고 터득한 기예는, 물리쳐야 할 적이 없기 때문에 아무런 활용가치가 없다는 것이었다.
  필자는 성인이 되어 철이 들었을 때 무사시는 궁극적으로 끝남에 대한 의미를 잘못 깨우쳤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검술의 세속적인 기예를 완성할 수 있는 기본원리를 정신세계에서 추구했다. 필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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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적인 기예를 익히는 것은, 그 스스로 끝맺음이 되는 도에 이르는 과정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무사시가 쓴 논문과 같은 저서들 때문에 일본에서는 검술과 같은 무예에서 기술을 익히는 것은 어느 수준까지는 정신적인 도의 달성과 항상 동일시 되어왔다. 그러나 흔히 외적인 자세는 내적인 고상함을 대신하며, 정신적인 자세가 비현실적인 반면에 테크닉만 강조된다.
  기독교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동료를 기술적으로 살해하는 기예가 어떻게 정신적 수양의 과정으로 간주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을 이해하기는 어려운 문제이지만 일본과 아시아 전역에서는 그렇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전문인들은 정신적 구조의 오묘함을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은 숙련된 기교인 검술로 살생하는 행위는, 희생되는 생명의 가치를 초월하여 초자연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허무맹랑한 관념에 젖어있다.
  아마도 이것은 1937년 남경에서 일본인들이 저지른 조직적인 잔혹행위처럼, 분명히 야만스러운 행위임에 분명한 사건들에 대해서 사려깊고 선비다운 사내들이 어떻게 참여할 수 있을까 하는 이유를 설명해줄 수 있는 유일한 근거일 것이다.

4. 무사의 기예에 대한 도를 정관해야만이 눈빛을 이용하여 대결의 상대를 물리칠 수 있다. 성실하게 훈련을 쌓음으로써 정신력을 이용하여 싸움에서 열사람을 당해낼 수 있다. 무사도를 연구함으로써 명예와 존경을 얻고 자신의 정신력을 상대방에게 압도당하지 않는 길이다.
    1945년 일본군의 패배는 마지막 결전에서 승리를 거두겠다는 일본인들의 결단에 불을 당겼을 뿐이다. 미국의 전문가들과 정책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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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들은 때로는 숫자의 자리수만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즉 GNP, 경상수지, 산업생산고 등에 관해서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숫자들은 일본이 이룩한 전후의 기적을 이해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난 40년 동안 잘못된 예견과 과소평가 그리고 미국의 옵서버들이 그들의 목전에서 진행되고 있었던 사실에 대한 완전한 판단 실수를 돌이켜보라. 이런 전문가들은 인간의 정신력을 결코 이해하지 못했다.
  일본 국민들은 비록 무사시의 글을 읽지 않았다 하더라도 무사시를 이해한다. 그의 철학은 모든 일본사람들의 영혼 속에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깊이 묻혀있다.

5. 전투와 일상생활에서 항상 침착하라. 육신이 감정적인 영향을 받거나 또는 육신이 감정에 자극을 주지 않도록 하라. 감정을 드러냄에 있어서 높아서도 안되고 낮아서도 안된다. 감정의 높고 낮음은 위약한 증거를 보여주는 것이다. 적에게 감정을 노출시켜서는 안된다.
일본인과는 달리 중국인과 한국인들은 그들의 감정을 지나치리만치 나타낸다. 심지어 그들은 어떤 이점을 얻기 위해 진정으로 느끼지 않는 감정까지도 표현하는 수가 있다. 반대로 일본사업가는 감정을 자제하고 감추면서 성실하게 처신한다.

6. 일상생활 속에서 하나의 대결적인 자세를 유지하고 평소의 마음가짐을 대결의 자세로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을 잘 연구하고 익혀야 한다.
사무라이는 대결을 하는 마음가짐으로 매사에 임한다. 현대 일본의 경영간부들의 정신자세도 역시 임전태세와 같은 상태를 유지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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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 사활을 건 전투처럼, 국제무역은 일본의 중견간부들에게 있어서 일상생활의 묵시적인 주제가 되고 있다.

7. 대수롭지 않은 검술이라고 해서 긴장을 풀어서는 안된다. 역시 대처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이에 대한 역설적 추론은 다음과 같다.
  대수롭지 않은 검법으로 적의 집중력을 산만하게 만들라.
  예를 들자.
  최근에 중요한 계약협의를 위해 소규모 미국인 사업가 단체가 동경을 방문했다. 일본인 호스트들은 그들을 공항에서 영정하고는 곧바로 그들을 호화스런 접대로 안내했다. 오후에 잠시 환담하는 사이에 일본측 호스트 가운데 한명이 미국측 손님들에게, 돌아갈 수 있는 탑승예약을 해주겠노라고 점잖게 제안을 했다. 그는 고맙다는 인사를 받았고, 그래서 미국인 일행들은 모일 모시에 떠나도록 예약이 되었다.
  그들은 체류기간 동안 다채로운 저녁식사와 점심, 파티 그리고 관광 일정에 따라 접대를 받았다. 그러다 보니 사실상 그들의 일정은 여유가 없었고 그들은 일본측 호스트들과 계약을 서둘러 체결하거나, 아니면 멋진 시간을 보냈으나 거래를 성사시키지 못하고 귀국하게 되었다는 보고를 할 수 밖에 없는 처지였다.
  미국인들이 공항을 향해 막 떠나기 직전에 과연 어느 누가 그들의 거래를 제대로 진행시킬 수 있었을까?

8. 단순한 결투에서 적이 자신의 시간적인 기회를 읽어버렸다면 이러한 순간적인 이득을 그냥 지나쳐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적은 다시 재기할 수도 있거나 또는 별로 큰 피해를 입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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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 적의 불리한 점이 무엇인가를 파악하고 그가 결코 회복할 수 없도록 냉정하게 그 약점을 공격하라.
  때때로 미국인들의 감정이 엄청난 대일 무역적자에 대해 고조되면, 일본의 무역정책이 완화되곤 한다. 일본은 어느 정도 부분적인 양보를 해놓고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그 양보사실을 대대적으로 홍보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결정권이 있는 한 영구적인 정책변화란 있을 수 없다. 정정당당한 행위에 대한 개념이란 일본문화의 어느 한 부분에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국민양심의 일부분도 아니다. 게임에 대한 그들의 관념은 오로지 이기느냐 아니면 지느냐, 죽느냐 사느냐 하는 것뿐이다.

▪    사무라이의 완전한 게임
  옛 규범에 의하면 사무라이는 정확한 계산으로 매사에 임한다. 우연한 사고란 결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그는 적들에게 전혀 위협적인 인상을 주지 않는다. 그는 그의 적과 술을 마시면서 겉으로서는 봄날의 벚꽃놀이를 즐기듯 기생춤을 즐기면서도 그의 관심은 사실상 그의 검과 적의 검에 집중되어 있다.
  그는 그의 손님(적)에게 대단히 공손하게 대한다. 그는 손님의 만수무강을 위해 건배한다. 그가 진정한 사무라이라면 그는 적의 입장이 되어 적의 감정과 기분을 음미해볼 것이다.
  1989년 가을, 굴지의 언론 매체인 후지산게이 통신사는 전직 미국대통령 도날드 레이건과 그의 부인 낸시를 초대하여 20분간 연설을 하게 했다. 2회에 걸친 연설 출연료는 미화 2백만불이며 부대 비용이 미화 5백만불이었다.
  이 행사는 전 세계적으로 공사간에 논란의 대상이었다. 레이건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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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는 그들의 개인적인 행운에 대해 내심 자축을 했을지도 모르겠으나, 이 행사를 축하하는 진정한 동기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은 기업의 사무라이들 즉 레이건의 방문을 쌍수로 환영했던 일본의 정계와 재계의 지도자들이었다. 예전 같으면 분명히, 사무라이들이 의식 예복을 걸치고 부채를 든 채 이와 같은 멋진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대강당에 모였을 것이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여러가지 목적을 이루었던 것이다.

1. 그들은 일본이 세계의 어느 수준에 이르렀는가를 과시했다.
전쟁에서 패배한 후 단지 45년만에 일본은 빈곤과 기아 그리고 전쟁의 상처를 안은 그들의 나라를, 미합중국 대통령에게 가격표를 붙여놓을 수 있는 세계의 강대국으로 전환시켜 놓았다.
2. 그들은 레이건의 장래의 영향력을 매수했다. 즉 로널드 레이건은 계속해서 미국의 유권자들에게 인기를 누릴 것이다. 부시 대통령의 당선과 공화당의 연속적인 집권에 레이건의 지지는 중요한 것이었다. 일본인들은 레이건이 현 미국 행정부와 미래의 행정부가 정책을 입안하는 데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믿었다.
3. 그들은 소니(Sony)사가 최근 헐리우드의 콜롬비아 영화사를 34억달러에 인수하기 위한 계획과 관련하여 레이건으로부터 구두지원을 받았다. 레이건은 이렇게 언급했다. “아마도 헐리우드는 품위와 취향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 어떤 외부 투자가들이 필요할 것이다.”
4. 그들은 미국 의회에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한 셈이었다. 즉 레이건에게, 그의 서비스에는 아주 어울리지 않는 거금을 지불함으로써 그들은 미국의 정치지도자들에게 하나의 분명한 메시지를 보냈다.
  정치인으로서 재임하는 동안 어느 누가 되었든 일본과 협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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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 일본은 그가 은퇴한 후라도 그를 돌봐주겠다는 의미가 된다. 정부 관리가 공직에서 은퇴한 후 몇차례 연설을 하고 돈을 받았다고 법에 저축되는 관례는 없다.

  기업의 사무라이들은 근세사에서 가장 인기있었던 미국대통령을 매수했을 뿐 아니라, 바겐세일 가격으로 그를 묶어놓았다. 레이건이 집권했던 8년 동안에 미국은 세계의 가장 부유한 국가에서, 세계에서 가장 큰 채무국으로 전락했으며 일본은 바로 그들의 주된 채권자인 것이다.
  일본은 현재 미국 정부가 운영되도록 자금을 공여하고 있다. 레이건은 일본의 경제목표 달성에 개인적으로 지대한 공헌을 하였으며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앞당겨서 그들의 목표가 실현되게끔 해주었다.
  어느 일본인 사업동료가 한번은 내 앞에서 이렇게 확언했다.
  “레이건이 당신네 지도자라는 걸 하느님께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가 우리의 지도자가 아니라는 것을 더욱 하느님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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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부 게임은 끝나고 17 성공적인 처신 ▪ 인정 일본, 한국, 그리고 중국의 문화는 인정에 대한 공자의 개념에 의해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이 개념은 세 나라의 언어에서 똑같은 중국어로 표현되며, 영어로는 ‘human feelings’로 번역된다. 그것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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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미국은 종이호랑이인가 미국은 심각한 경제문제에 직면해 있다. 연간 2천억달러에 이르는 예산적자와 함께 자신의 미래에 역행하는 빚을 짊어지고 있으며, 빚에 대한 상환시기는 급속히 다가오고 있다. 미국의 중공업은 노후한 기술로 운영되고 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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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모리따와 이시하라

9 모리따와 이시하라 소니(Sony)사의 회장 아키오모리따와 전 일본 운수성장관 신따로 이시하라가 공동저술한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The Japan That Can Say No)’ 이란 책은 1989년 일본에서 처음 출판되었다. 모리따와 이시하라가 저술한 내용은 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