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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모리따와 이시하라

Views 268 Votes 0 2016.04.13 16:05:19

9  모리따와 이시하라

 

소니(Sony)사의 회장 아키오모리따와 전 일본 운수성장관 신따로 이시하라가 공동저술한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The Japan That Can Say No)’ 이란 책은 1989년 일본에서 처음 출판되었다. 모리따와 이시하라가 저술한 내용은 일본인들에게 열렬한 반응을 얻었으며, 따라서 이 책은 11개월 동안에 11번의 재판을 거듭하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책을 읽었을 때,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쓰여진 내용이 너무나 몰염치했기 때문이었다. 무엇때문에 그들이 이런 글을 집필했으며, 그들은 누구에게 이 내용을 전하려고 했는지가 무척 궁금했다. 만약 이 책이 미국 국민들에게 그 내용을 전하는 것이었다면, 미국 때문에 오랫동안 위축을 받아온 불만에 대해 솔직한 표현으로 변명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 법했다.
  그러나 그 책은 미국에서 출판된 것도 아니며 영어로 공식적인 번역이 된 것도 아니었다. 그 책은 일본인들을 위해 집필되었고, 따라서 그것은 이시하라와 모리따의 선동적인 글로밖에 볼 수가 없다.
  불과 160페이지 정도의 포켓용인 이 책은 모리따에 의해 6편,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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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하라가 5편을 집필한 11편의 독립된 에세이의 모음집이다. 에세이에서 다루고 있는 기본 주제는, 일본이 이제 세계의 지도적 위치에 이르렀다는 것과 일본의 관습적인 태도 특히 미국에 대한 관행은 그들의 새로운 경제적 또는 기술적인 중요성의 결과에 따라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수십년 동안 희생을 감수해온 후, 갑자기 그들에 대한 압력을 행사해 오던 자보다 강해진, 일본이라는 국가에 대한 강한 자각의식이 생겨난 것이었다. 심지어 에세이 가운데 대부분의 제목이 선동적이다.

1. 일본인의 의식 혁명의 필요성(이시하라)
2.  미국의 쇠퇴 – 오직 십분 후만을 생각하기 때문이다(모리따)
3. 일본인의 강인한 뿌리 – 인종편견(이시하라)
4. 일본은 집합적인 동의를 추구한다(모리따)
5. 미국은 정당하지 못한 나라이다(모리따)
6. 일본이 모방주의자라는 비판은 근거가 없다(이시하라)
7. 미국은 인권보호자인가?(모리따)
8.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모리따)
9. 일본은 미국의 윗에 비굴해져서는 안된다(이시하라)
10. 일본과 미국은 불가피한 상호의존 관계이다(모리따)
11. 일본은 아시아와 화친해야 한다(이시하라)

상기 두 저자 가운데 이시하라는 훨씬 더 격렬한 편이다. 그의 문어적 선택은 그의 지위와 비교해 보면 믿을 수 없을 정도이다. 미일안보조약에 언급하면서 그는 미국인들을 감시인(Watchdogs)이라기 보다는 ‘미친 개들(Mad dogs)’이라고 칭했다. 추악함, 그리고 비열함 등이, 그가 미국인을 묘사하는 데 사용한 또다른 형용사적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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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들이다. 그에 대한 논란은 그가 인종주의자라는 것이다. 분명하게 그는 정복자에 대한 피정복자의 억압받은 분노와 증오의 40년을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그 책의 인기에 비추어 볼때 일본인들은 그의 메시지에 동적적인 것이 확실하다.
  이시하라의 논쟁에서 가장 문제시되는 요소는 내용들이 대체적으로 군사적 실례를 들어 설명되고 있다는 점이다. 대미관계에 있어서 일본의 문제점에 대한 그의 해결책은 일본의 군사적 기술의 우월성에 의존하고 있는 것 같다. 그는 미국에 대한 일본의 기술적인 선두지위는 역전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는 일본이 서방의 기술개발보다 십년은 앞서갈 수 있으며 또한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들의 군사기술은 이미 일본에서만 가능한 부품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러한 현상은 장차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그는 군사 프로젝트의 공동개발에 관한 일∙미간의 협정 폐기를 주장했다. 그는 미∙일 안보조약을 폐기하고 일본이 자체 군사력을 유지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특히 가공할 만한 것은 미제 전투기 F-15과의 공중전에 임하는 미쓰비시 FSX 제트전투기에 대한 그의 표현이다. FSX의 미∙일 공동개발에 대한 그의 반대 이유는 미제무기를 배제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미국은 공동개발사업에서 오직 엔진부분에만 기여할 수 있으며 그러한 기여 때문에 프로젝트의 감독권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이 비열하게 처신한다면 그에 대한 세가지 대체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 일본은 적절한 기간 내에 보다 우수한 엔진을 개발할 수 있다.
∙ 미제와 성능이 동등한 엔진을 프랑스에서 구매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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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면 소련으로부터 구매할 수 있다. 소련제 엔진은 다른 엔진만큼 강력한 파워는 없더라도, FSX는 현존하는 어느 전투기보다 우수한 성능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파워의 근소한 차이는 제공권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그는 견해를 밝혔다.

  이시하라는 분명한 자신감을 가지고 일본의 FSX에 대한 미국의 반응을 두려움과 충격 그리고 공포라고 표현했다.
  이시하라가 바라본 미래는 인종의 구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과거는 백색인종의 지배시대였고 미래는 황색인종의 지배시대라는 것이다. 미국이 일본과의 거래에서 인종주의적인 감정적 요인을 지녔다는 자신의 비판을 고수하기 위해 이시하라는 억압받았던 아시아인들을 옹호하고 나선 것 같다. 그러나 이시하라는 황색인종에 대하여, 그의 악덕스러운 일본 민족주의 관념을 초월한 연민의 감정을 지닌 것은 아니다. 그들의 아시아의 이웃국가들은 백색 서구인들보다 일본인들을 훨씬 더 불신하고 있다.
  미국의 인종주의는 항상 공격의 대상이다. 미국의 내적인 인종문제는 오랫동안 공개적으로 보고되고 논의되어 왔으며, 이로 인해 미국의 인종편견에 대한 비난이 충분한 실증도 없이 인정되는 풍토가 조성되고 말았다.
  미국인들은 그들 자신의 인종문제에 대처하는 데 너무나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심지어 가장 거친 비난을 받아도 그다지 심각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인종주의가 미국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거나 또는 심지어 유색 민족과의 관계에서 전혀 색깔의 구분도 없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시하라는 일본인들 사이에 인종적인 감정을 부추키기 위해 인종편견에 대한 그의 비판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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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시하라는 진정한 신봉주의자다. 그는 일본이 세계사회에서 수행해야 할 숙명적인 사명을 지니고 있다고 믿는다. 그는 전후의 싱가포르, 대만 그리고 부분적으로 한국의 경제적 성공은 2차세계대전 동안 상기 국가들이 기꺼이 체험했던 일본의 행정관리제도 덕분이라고 주장한다. 그 기간동안에 동남아의 여러 국가에서는 일본의 행정관리에 대해 어느 정도 부정적인 면이 없지 않았으나 그러한 것들은 일본문화의 영향으로 얻어진 혜택으로 보상되었다고 언급했다.
  그는 이러한 실례를 필리핀에서의 미국의 행적과 비유했다. 그는 일본인들이 떠나는 것을 슬퍼하는 어느 투루크 섬 주민의 말을 인용하면서, 일본은 섬 주민들에게 노동의 윤리를 가르쳐주었다고 했다. 그 반면, 미국인들은 그들에게 생필품 생산수단을 가르치기보다는 돈과 식량이라는 방법으로 그들 주민에게 원조를 제공함으로써 전 주민들 사이에 나태한 습관을 조장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이 그 책의 전반적인 전형을 이루고 있다. 미국민들의 결점과 실책에 대해 매우 비판적일 뿐만 아니라 방어적인 소견들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가장 무례한 비난과 결론들은 이러한 근본적인 의도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필리핀과의 관계에서 어느 정도 미비한 정책을 시행한 것은 사실이지만 필리핀에서의 미국인들의 행적을 일본 점령군들의 행위와 비교하는 일본인이 있다는 것은 실로 믿기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우리들로 하여금 다시 한번 근본적인 질문에 부딪치게 한다. 이시하라는 무엇 때문에 미국인들과 그리고 크게는 전세계를 상대로 하지 않고, 오직 일본 국민들에게 메시지를 전하면서 이처럼 가장 선동적인 스타일로 발언을 하고 있는가?
  이시하라는 우리가 이미 논의했던 36계 가운데 13계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일본인들의 감정을 부추겨서 미국에 대한 적개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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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불길에 부채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무슨 목적을 위해서인가?
  모리따의 발언들은 보다 온건하고 잘 정리되어 있으며, 이시하라의 경우처럼 귀에 거슬리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실업가나 정치인들의 근시안적인 결점에 대한 그의 지적을 부인할 수 없는 진실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마음아픈 일이다. 그의 견해와 같이 미국 경제와 산업의 퇴조현상은 대체적으로 훨씬 더 중요한 장기적인 이득을 위해 단기적인 이득을 희생시키지 않으려고 하는 결과에서 비롯된것이다. 그는 미국을 퇴폐하고 이기적이며 포식하고 게으른 어린이들만이 있는 나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는 그의 견해를 뒷받침하는 좋은 실례를 제시하고 있다.
  만약 모리따의 에세이가 어떤 다른 토론에서 주제로 제시되었다면 그 내용들은 엄숙하고 건설적인 비판의 주제로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시하라의 민족주의적인 외침과 맞물린 가운데 그가 에세이를 출판함으로써, 그리고 일본국민들에게만 배포하려고 계획된 이 책 속에는 도대체 무슨 의도가 담겨져 있는가를 우리들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그 책에 대한 소문이 미국에 전해지고, 판권을 얻지못한 번역본이 배포되기 시작했을 때, 미국인들의 노도같은 분노가 모리따와 이시하라를 강타했다. 모리따는 후에 그의 견해가 보다 급진적인 이시하라의 견해와 함께 인쇄매체를 통하여 발표된 것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했다.
  모리따는 영리하고 사려깊은 사람이다. 왜냐하면 그는 우발적인 행동은 하지 않는다. 출판하기 전에 그는 이시하라의 견해를 지지하는한 인물과 연계됨으로써 모든 부분을 검토했다는 사실이다. 이시하라와의 연계를 분리시키려는 그의 의도는 그 자신이 집필한 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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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이시하라의 에세이에 대해 언급함으로써 그가 시사하고 있는 양자의 관계에 비해 별로 신빙성이 없다.
  이 책은 두 저자들의 의견분만 아니라 일본정부의 견해도 함께 반영한 것이다. 전통적으로 일본에서는 사적 또는 공적인 분야에서의 목적이 별로 차이가 없다. 모리따는 분명히 일본정계의 대변인 만큼이나 권위적인 위치에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발언이 서구사회에서 이해될 수 있을 만큼 어떤 공식적인 비중을 지닌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부대적인 이득을 얻었다. 그는 단지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는 하나의 시민이다.
  이러한 태도 표명은 대부분의 미국인들에게는 충격을 주었겠지만 일본의 이웃인 아시아 국가들에게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들은 2차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에 한동안 일본인들이 주장했던 초국가주의 입장에 대해 아주 익숙해져 있다.
  일본지도자들은 이제 공공연하게 일본의 기술과 군사적 우월성에 의해 지배되는 21세기에 대해 운운하고 있다.

▪  운명을 지배하는 사나이
  아키오 모리따, 그는 70세로서 소니사의 회장이다. 그는 은발에 점잖은 매너 그리고 밝은 미소를 늘 지닌 미남자이다. 그러나 생각에 몰두할 때면 그 미소는 사라지고 그의 안면 근육과 입술은 아래로 쳐지며, 아키오 모리따는 운명을 지배하는 사나이의 모습을 드러낸다. 그가 또렷한 갈색 눈으로 바라보는 모습은 강한 결단력을 소유한 인물임을 말해주고 있다.
  그는 엄격하고 정력적이며 오만하고 그리고 자기위주이다. 무엇보다도 그는 자신의 목적을 추구함에 있어서 뻔뻔스럽고 몰염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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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석상에서 그는 남의 말을 듣기보다는 강론하기를 좋아한다.
  그는 1986년 ‘메이드 인 저팬(Made in Japan)이라는 그의 책을 출판한 이래, 심지어 미국 재계와 정계의 중요한 인물로부터의 질문도 ‘내 책을 읽어보시오’하고 야무진 태도로 회피하는 습관에 빠졌다. 모리따는 신속하고 정확하게 사람들의 의중을 읽고 사태를 파악하는 무서운 능력을 지녔다. 그는 그의 적수들을 어디까지 밀어낼 수 있을지를 알고 있다. 그는 역시 화내지 않고 상대방을 괴롭힐수 있는 희귀한 능력을 지녔다. 모리따는 2차대전 중 오사까 제국대학을 졸업하고 물리학사 자격을 받았다.
  일본이 항복하던 시기에 젊은 모리따는 제국 해운에 근무하고 있었다. 한 순간에 전쟁의 종식을 가져왔던 놀라운 미국의 산업과 기술적인 우수성은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의 귀환은 쓰라린 아픔이였다. 그는 ‘메이드 인 저팬’이라는 저서에서 ‘도쿄와 그의 고향 나고야는 잿더미가 되었다’고 묘사하고 있다. 그는 바로 개인적인 입장에서도 서구의 기술적인 우수성에 대한 무서운 위력을 당해 보았다.
 아키오 모리따는 일본의 가장 명망이 높은 혈통가문들 중에 한 가문의 15대 장손이다. 전통적인 일본문화와 가치관에 깊이 뿌리내린 부유한 가문 출신인 것이다. 그의 고조부는 지역사회에 대한 공로로 명치황제로부터 훈장을 받았으며, 그의 명예를 기리는 뜻으로 동상이 건립되었다. 그의 어머니는 대단한 명망을 지닌 사무라이 가문 출신이다. 모리따는 그의 선조에 대해 자타가 인정할 만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아키오 모리따는 그의 시대의 대부분의 부유층 일본인들처럼 다다미 매트에서보다는 양식품의 침대에서 잠을 잤다. 모리따의 가족도 서양식 관습을 받아들인 속된 유행감각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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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화와 서구화는 천황에 의해 강요되었다. 지역사회의 지도자이자 애국적인 일본인으로서, 모리따는 가업을 이어 받을 상속자로서 성장해왔다. 그러나 그는 한 어린이로서 가문의 혈통을 위한 것보다 더 큰 일종의 사명감을 느꼈다. 2차세계대전 당시 그는 일본으로부터 수천마일이나 떨어진 해상에서 무모한 전투에 참가하여 목숨을 잃기보다는 그의 과학적인 연구를 계속할 수 있는 해군의 특별사업 계획에 참여했다. 그는 일본의 장래를 위해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이 있을 뿐만 아니라, 미래를 위해 자신을 지키는 것이 일본에 대한 그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모리따는 그의 생애를 통해 엄청난 재력과 권력을 축적했지만 그는 도날드 터럼프(Donuld Trump)도 아니며 티 분 피킨스도 아니다.
  그가 이루어낸 모든 것은, 그가 일본의 미래상을 만들기 위한 그의 숙명적인 사명감으로 추진했던 사업이란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  모리따의 용기
  누구나 모리따의 용기에 대해 경하할 만하다. 소니사 자산의 기본적인 부분과 모리따의 개인 재산은 미국인 소비자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이었다. 미국 정부의 자유무역정책은 그에게 제한없는 부의 축적을 허용했다. 모리따는 ‘No라고 말할 수 있는데 아무런 두려움이 없다’는 것을 과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발언한 어느 부분도, 소니제품에 대한 미국인들의 불매운동이나 또는 일본에 대한 더 엄격한 무역정책을 초래하는 결과를 가져오리 않으리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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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상황을 분석했으며 미국 소비자와 미국정부는 단지 개인적인 관심사로밖에 보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소니사가 계속해서 우수한 제품을 제공하는 한, 미국인들은 생각없이 그 제품들을 구매할 것으로 모리따는 확신하고 있다.
  워싱턴D.C.에 가장 강력한 로비팀을 가지고 있는 그는, 더욱 엄격한 무역정책의 채택에도 불구하고 크게 우려하지 않는다. 모리따와 일본은 ‘호랑이를 잡아먹기 위해 돼지노릇을 하라’는 전략을 연출해 왔다. 그러나 이제 그는 호랑이를 잡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마침내 그는 자신의 속을 털어놓을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대로 지꺼리고 있는 것이다.
  모리따는 일본이 서구의 교역상대자들에게 솔직히 그리고 강력하게 발언할 때가 왔다고 믿고 있다. 한가지 근본적인 오해는, 과거에 일본인들이 미국인들에게 꼭 해야만 했던 말을 삼가했기 때문에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처럼 삼가는 태도를 직접적으로 말하기 싫어하는 전통적인 일본인의 관습 탓으로 돌리고 있다. 하지만 모리따는 일본인들이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말이, 오직 힘을 가짐으로써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 힘을 지닌 지위는 최근에 와서야 확보된 것이었다.
  모리따는, 일본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영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면 누가 되었든 깊이 머리를 숙이고 일본 전지역을 여행하는 미국의 주지자들보다 훨씬 더 용기있는 사람이다. 그들은 너무나 소심하여 일본인의 비위를 건드릴 수도 있다고 생각되는 일은 전혀 하지 않는다. 일본 사업가와 정치인들은 개인적으로는 ‘거지’라는 의미가 담긴 일본말로 그들을 부르고 있다. 이런 류의 미국 정치인들은, 미국이 세계경제에서 그의 주도적인 위치를 결코 다시 확보하지 못할 것이라는 모리따의 평가를 묵시적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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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는 일본의 투자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우리의 주지사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일본인들의 비위를 맞추는 것이 그들의 지방산업발전을 장려하는 것보다 더 나은 가치가 있다고 믿는 것 같다.
  나는 아름다운 오레곤주에 살고 있으며 오레곤주는 일본인들의 투자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최근에 필자는 ‘일본인들은 오레곤을 사들이고 있는가’라는 주제를 붙인 토론에 참가했다. 이 토론은 포트랜드에 있는 ABC TV에 의해 방영되었다. 여러 일본 회사의 대표들과 고위직에 있는 주정부 관리들도 역시 초대되었다.
  일본인들은 필자의 발언에 대해 크게 관심을 가질 것 같지는 않았으나 토론이 막 시작되기 전에 주지자 사무실에서 나온 한 관리가 필자에게 다가와, “정중하게 발언하실 거지요?하고 물었다. “그럼요. 저는 항상 정중합니다.”하고 필자는 대답했다.
  그러나 필자는, 일본인들은 우리에게 선의의 이해관계를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시청자들에게 말해주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  모리따의 심리적 동기
  모리따는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을 출판하면서 자신에 대한 부담을 철저히 계산했다 할지라도, 왜 그는 자신에게 다가올 공격의 비난을 감수하겠다고 생각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문이다. 이 모든것에 대한 그의 보상은 무엇일까?
  그는 분명히 돈 때문에 그런 짓을 하지는 않았다. 그 대답은 그의 행위가 자신의 사명감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19세기 중반부터 일본은 서구의 식민지 강대국들에게 겸손하게 복종을 해야만 했다. 대형 전투함들은 일본인들에게, 공업화되고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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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적으로 발전한 상대에게 필적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빠져들게 했다. 일본은 2세기 초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 승리를 거둔 후 그들 자신의 힘으로 세계의 강대세력이 되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을 때까지는 그러했다. 연속적으로 얻어진 군사적 승리는 그들로 하여금 과대평가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고 그로 인하여 일본은 승산도 없는 전쟁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이미 언급했듯이 2차세계대전에서 굴욕적인 패배를 당한 일본은 오로지 일편단심으로 세계사회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회복하려고 노력해왔다. 히로히또 천황의 항복은 일본 라디오를 통해 방송되었다.
  그는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참을 수 없는 아픔에 대해 말했다. 그는 도시의 파괴나 또는 그의 신민들의 현실적 고통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일본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수많은 전쟁은 일본 땅을 휩쓸며 광란을 부렸고, 그 전쟁에서 결코 항복하거나 목숨을 구걸하는 일은 없었다. 일본인들은 엄청난 현실적 고통을 이겨내는 능력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굴욕과 패배를 견디지 못한다.
  패배하는 순간에도 천황은 그의 국민들의 국가재건을 위해 단결하고, 특히 세계의 기술발전에 보조를 맞추어야 한다고 촉구했을 때, 그는 국민들에게 그들이 패배한 원인을 치유하도록 강조하고 있었다. 그의 간단한 몇마디의 연설은 국가의 말없는 의지가 되었다. 일본인들이 국가재건에 박차를 가한 광적인 정력은 패배에 대한 수치심과 굴욕을 씻어버리겠다는 욕구에서 비롯되었다.
  ‘메이드 인 저팬’에서 모리따는 그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모리따의 아버지는 자신의 사업이 기울어지자 부채를 갚기 위해 그가 소장하고 있던 아주 귀중한 예술품 3점을 팔아야만 했다. 그는 기울어진 그의 사업운을 회복하여 언젠가는 팔아버린 그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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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들을 되찾아오겠다고 맹세했다. 모리따에게는 그의 아버지가 자신의 맹세를 결코 잊지 않고 마침내 그 예술품들을 다시 찾아왔던 것이 특별한 감동적인 인상을 남겼다.
  아키오 모리따는 거의 반세기 전에 스스로에게 맹세를 했다. 그는 폐허가 된 그의 조국을 재건하고 본래의 위대한 모습으로 회복시키는 데 협력하겠다는 다짐을 했던 것이다. 그는 결코 그 맹세를 잊지 않았던 것이다.

▪  모리따의 전략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의 출판은 여러가지 수단과 방법에 의한 모리따의 목적을 시사해주었다.

1. 미국인들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우회적으로 전달한다
모리따는 앞서 출판된 ‘메이드 인 저팬’이란 그의 책에서 미국에 대한 그의 불만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누가 그 내용을 탐독해본다면 그 불만의 내용은 분명하게 나타난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미국인 독자들은 모리따가 무언으로 남긴 많은 내용을 이해할만큼 아시아인들의 오묘한 속마음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다. 그의 책을 대하는 대다수의 미국인 독자들은 심사숙고 없이 전쟁, 전투 그리고 대결에 대한 그의 은유적 표현을 지나치고 만다.
  그의 메시지의 내용은 일본인의 입장에서 볼때, 미국과의 교역은 하나의 전쟁으로서 수행되고 있다는 뜻이었다. 목표는 적을 물리치고 적에 대한 지배권을 갖는다는 것이다.
  모리따는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란 책에서 그 자신의 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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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를 보다 직접적으로 재천명할 필요를 느꼈다. 모리따는 말솜씨가 둔감하다보니 일본인을 상대로 그의 뜻을 직접 전달해야 하는 필요성도 있었겠지만, 그 내용이 간접적으로 전달되는 미국인 독자들을 비롯한 비중있는 인물들에게, 그의 메시지가 전해지는 것이 중요했던 것이다.
  신따로 이시하라는 미국 내에서 불법으로 번역된 것에 대해 수업이 불쾌한 언급을 하고 있지만, 그 책이 일본에서 출판된 후 국무성과 뉴스매체에 배포되었던 비공식 번역판은 소니사에서 유출된 것이라는 루머가 꾸준히 나돌고 있다.

2. 승리에 대한 선언
‘상대의 진정한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미국이 일본과의 전쟁에 참여해 왔다’는 것을 미국인들에게 깨우쳐 주기 위해, 모리따는 큰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글을 썼다. 그는 전쟁이란 궁극적으로 승리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란 책은 일종의 승리에 대한 선언이다. 미국에 대해 굴종의 자세로 40여년을 보내면서 그들 스스로가 피정복국민이며 3등국가라고 하는 생각에 빠져 있다가, 이제 일본인들은 세계사회에서 그들의 진정한 지위를 회복한 자신들의 이미지를 알리기 위해 이러한 표현수단이 필요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자신감을 표현하는 메시지는 적에 의해서 인식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3. 차도살인계를 이용하다
모리따는 미국의 언론과 대담을 하면서 이시하라의 견해와는 거리가 있다는 의도를 밝혔지만, 이시하라와의 동료관계는 치밀하게 계산된 것이었다. 그들의 공동협력은 세가지 목적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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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리따는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공격적인 발언을 하지는 않았으나 그들에게 똑같은 내용을 전하려고 했다. 모리따는 자신의 손을 더럽히기를 원치 않았고 따라서 그는 이시하라에게 악역을 맡겼다.
2)   이시하라는 전직 각료였지만 자신의 견해에 대한 관심을 끌만큼 국제적인 입지를 가지고 있지 못하였으나, 모리따와의 공동협력은 여론에 어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모리다의 저작물 출판권은 이시하라의 광적인 민족주의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주었으나 모리따는 자신의 이용가치가 내재되어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3) 이시하라의 적대적이고 과격한 스타일은 그 책의 성향을 제시해 놓았다. 모리따는 그 자신이 비난을 감수할 수 없다는 뜻이지만 일본국민들간에 민족주의적인 열기를 불어 넣기 위해 계획한 이 책에서 그는 그러한 스타일의 경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  모리따의 관심사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란 책은 특히 일본의 천부적인 운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젊은 세대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그들은 2차세계대전 후 패배의 굴욕과 고난의 세월을 직접 체험해보지 못했다.
  좀더 풍요롭고 자유스러운 시대에 성장한 그들은 전통적인 일본인의 가치관에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부패한 서구의 관습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더우기 모리따의 세대는, 그들 자신의 세대를 특징지웠던 제국일본의 영광에 대해 지녔던 뜨거운 충성심이 젊은 세대의 일본인들에게는 결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신세대는 혹심한 폭격을 당한 후 폐허가 된 동경시내를 방황하거나 또는 히로시마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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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가사끼의 무서운 후유증을 견뎌냈던 세대와는 매우 다르다.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란 책은 아버지와 할아버지 세대를 지배했던 어떤 목적의식을 젊은 세대에게 전이시켜주려는 의도에서 출판된 것이다. 명치천황의 복위 이래 일본인들은 서구의 야만인들에게 대처하기 위해 일치단결해서 한가지 목적을 추구했다. 그런데 처음으로 그 목적에 완전히 뜻을 함께 나누지 않고 있는 세대가 출현한 것이다. 그것은 모리따와 이시하라 그리고 그들과 같은 사람들이 자신의 입장을 돌아보게 하는 동기가 되었던 것이다.

▪  모리따의 윤리강령
  전통적인 일본문화는 윤리적 행동을 존중하며 불교와 유교로부터 전래된 엄격한 윤리규범을 정해놓고 있다. 일본인들은 그들의 모든 생활의 단면에서, 윤리적 행실에 대한 경외심과 관행은 그들을 서구의 야만인들과 구분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자의 가르침의 원리는 모든 아시아의 문화 속에 잘 알려져 있고 실용화되었으며, 일본인들은 그에 대해 깊은 경의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중국인들의 ‘누구든 물을 마시면 그 샘물에 대해 감사해야 한다’는 격언으로 아주 쉽게 표현되어 있다.
  아시아인의 문화는 자신이 성공하는 데 은혜를 베푼 사람, 그리고 어려울 때 도와준 사람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러한 빚을 일생 동안에 갚을 수 없다면 그 빚을 갚기 위해 자식이나 후세대의 책임으로까지 남게 된다. 만약 누가 큰 은혜를 받고 그 빚을 갚기 싫어한다면 그와 그의 가족은 아주 불행해진다.
  만약 그들이 은혜를 베푼 사람에게 불경한 짓을 한다면 그들은 자신의 조상에게 불경을 저지르고 그 가문이 많은 세대를 거치면서 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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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명예는 무엇이든 더럽혀지고 말 것이다.
  1930년대에 일본은 동남아에 대한 정복 계획에 착수했다. 일본은 진주만에서 미군에 대한 기습공격을 감행했고 그 결과 제2차세계대전은 태평양 전역에 걸쳐 확대되었다. 전쟁에서 패배한 후 일본은 수십억불에 해당하는 미국의 원조를 받았다.  1950년부터 1980년까지 미국은 일본에게 미화 8억1천만달러의 군원과  40억 달러에 달하는 비군사원조를 제공했다.
  이러한 원조가 제공되지 않았더라면 현대의 일본 또는 소니사도 존재할 리가 없다. 그리고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란 책을 저술한 오만방자한 억만장자도 없었을 것이다. 모리따가 처음 수주했던 중요한 계약도 미국의 외국원조 자금에서 자금이 지원되었다. 소니사의 전신인 도꾜 쓰신공업은 재정도 불충분한 부실기업이었다. 시설도 전혀 갖추지 못한 낡은 빌딩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NHK의 대규모 음향시설을 짓기 위한 계약업무를 맡은 미국인 장성은 모리따에게 기회를 주기로 결심했다. 이것이 바로 그 회사가 파산을 면하게끔 만들어준 계약이 되었다. 또한 소니사의 첫번째 테이프레코더를 개발하기 위해 서로 헤어져 사업계획을 준비하던 모리따의 파트너에게 테이프레코너 생산을 위해 금융지원을 해준 것도 NHK(일본방송)에 주재하고 있던 미군장교의 덕분이었다. 모리따의 은혜 보답에 대한 관념은 미국인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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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리따의 지혜
  모리따의 처신의 동기는 의문이지만 그의 발언들은 쉽게 잊혀질수 없는 것들이다. 그는 오늘날의 미국의 실책에 대해 예리한 관찰을 하고 있다. 그의 발언 가운데 대부분은 건설적인 비판보다는 차라리 쓰라린 상처에 소금을 뿌리고 부벼대는 심산에서 비롯된 것 같다. 그는 다른 발언들 가운데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1. 미국은 더 이상 생산을 하지 못한다. 단지 떠도는 유동자금으로 이득이 생기는 재미를 보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발언 내용을 가지고 논쟁을 하기는 곤란하다. 어느 누구도 미국의 노후한 철강산업을 근대화하기 위해 진정으로 노력하고 있지 않다. 그대신 미국에는 훌륭한 금용기관들 가운데 너무나 많은 숫자가 기업의 인수를 부추기는 비생산적인 운영에 참여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풍조에 대한 비난은 미국에게 책임이 있지만 일본도 책임을 져야 할 역할을 해냈다.
  1960년대와 70년대에, 건전한 미국의 제조산업은 합법 또는 비합적인 수단으로 미국시장에 침투한 일본인들에 의해 잠식당하게 되었다. 이러한 양면적 수단은 일본 정부에 의해 인정되고 지원을 받았다.
  불법적 방법에는 산업스파이와 독점기술에 대한 불법탈취 등이 포함되었다. 예를 들면 수년전에 미국의 대규모 장거리 통신회사와 한 일본회사는 미국의 기술 매입을 협상하고 있었다. 거래 협상은 굉장히 시간을 끌었다. 경영간부들은 협상을 계속하는 한편 일본 기술자들은 미국측 운영기술을 익히고 있었다. 일본인들의 처신에 대해 완전히 무지했던 미국인 기술자들은 동료 과학자들이라고 생각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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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과 마음놓고 그들의 정보와 자료를 교환했다.
  어느날 갑자기 협상은 결실도 없이 일본인들에 의해 결렬되고 말았다. 일본 회사는 그들이 이미 속임수를 통해 확보한 자료에 대해 무엇 때문에 수억 달러나 지불을 하겠는가?
  일본회사들은 미국의 경쟁자들로부터 흘러나오는 가치있는 기술정보를 취득하기 위해 기술자들을 미국에 파견하는 것은 역시 하나의 일반적인 관례이다.
  일본인들의 불법 덤핑은 미국인 경쟁자들을 시장에서 축출하는 데 즐겨 써먹는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다. 일본회사들은 미국 내에서 원가 이하로 상품을 팔기도 하고, 흔히 미국인 경쟁자들이 경쟁적 싸움을 포기할 때까지 일본에서의 판매가격보다 더 싸게 팔기도 한다. 미국은 자유무역제도를 따르는데다가 일본인들과의 거래경험이 부족하고 나아가 이러한 행위를 조사하거나 막기 위한 어떤 실용적인 방법이 미비하다보니 오늘날까지 이러한 불법 무역관행이 계속되도록 허용하고 말았다.
  일본인들은 그들의 산업이 이러한 방법으로 침해당하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그들은 미국이 어떤 보호조치를 취하려고 시도하면 부당하다고 외쳐대면서도 한편으로는 언제나 그들 자신을 위해 보호주의를 실행해왔다. 미국이 일본과 같은 방법으로 상품을 생산하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30년 전에 우리의 무역정책을 입안한 사람들이 일본과 계속되고 있는 비공개적인 전쟁을 깨달았더라면 아마도 미국의 산업은 근본적으로 향상된 형태를 갖추었을 것이다.
  모리따는 기업인수과정을 통해 미국의 타락한 징조로서 부의 생산이 단순한 서류상의 조작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10대 은행들이 모두 일본인의 소유라는 것을 언급하지도 않는다. 이러한 은행들의 참여없이는 많은 대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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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의 인수가 불가능한 것이다.

2. 미국은 근시안적이다. 즉 10년계획보다는 한순간의 재치있는 경영인을 선호한다
모리따는 미국인 관리간부들의 근시안적인 접근방법과 일본기업의 중견간부들에 의해 이루어진 장기계획을 비교한다. 그는 미래에 대해 10분 이상 계획을 할 수 없다고 그에게 말했던 어느 미국인 환전상의 실례를 든다.
  아시아인의 견해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꾸밈이 없고 재치가 있다. 그것은 단순한 것을 좋아하는 미국인의 천성이다. 어떤 상황에 부딪치면 결단을 내리게 되고 그리고 행동이 뒤따른다. 그래서 ‘The One-Minute Mangager’같은 책들은 그러한 재치있는 자세에 대해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아주 인기가 있다.
  미국인들은 사랑하는 사람의 말을 듣기 좋아한다. 그들은 일본인들보다 더욱 직선적이며 그래서 타인들이 지니고 있는 복잡한 것에는 상관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러한 우직성은 그들로 하여금 미일부역 마찰에서 흔히 피해를 입게 만든다.
  일본인들은 대부분의 다른 아시아인들처럼 어릴 때부터 전략적인 방법으로 훈련이 되어 있다. 아시아인들은 36계를 연구하는 한편 미국인들은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라는 책을 놓고 연구한다. 미국의 경제제도는 일본과의 국제경쟁을, 상호협력으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어려움을 지니고 있다.
  정당한 행위에 대한 미국인의 윤리규범은 일본인들에게 이해될 수 도 없고 호혜원칙이 될 수도 없다.
  사실상 모리따는 일본 회사들이 일반적으로 10년 앞을 내다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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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을 한다고 주장하면서 굉장히 조심스러운 발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정부나 민간기업들은 흔히 그 결실을 거두는 데 훨씬 더 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 계획을 세우고 실천해나간다.
  일본인들은 아직도 일세기 전에 명치천황이 복위하면서 기초해 놓은 계획에 집착하고 있다.

3. 미국인들은 일본인들이 미제상품을 구매하지 않는다고 화를 내지만 사실상 그들도 자기네 상품을 구매하지 않는다
모리따는 미국상품의 구매를 거부하는 일본인들에 대해 그에게 늘 불만을 털어놓고 있는 어느 미국인 사업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골프 첫 라운드를 시작하면서 모리따는 미제 드라이버를 꺼내고 그의 비판적인 상대는 일제 클럽을 꺼냈다. 그가 왜 일제물건을 쓰느냐고 물었을 때 미국인은 그에게 더 큰 거리감을 주는 대답을 했다.
  게임이 끝난 후 모리따는 그 사내를 따라 그의 집으로 갔는데 그의 집 입구에는 일제보트, 차고에는 일제 레저용 차량 그리고 집안에는 소니 TV, 라디오 및 스테레오 시설이 있는 것을 보았다.
  모리따가 그 사내에게 미제상품의 질이 일제보다 뒤떨어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본인들에게 미제상품을 구매하라고 제안할 수 있으냐고 묻자 그는 아무런 대답을 못했다.
  모리따의 견해를 놓고 계속 논란을 벌이기는 어렵다. 그러나 미국업체들이 일본시장에 진출하는 것을 거부하는 공식적인 정책이 없다는 결론으로 그는 적당히 넘어가려고 한다.
  사실상 미국은 일본시장에 다량의 TV세트를 팔려는 것도 아니지만 만약 일본의 대외무역에 과한 규정의 교묘하고 복잡한 내용을 대처해나갈 수 있다면 농산물은 일본소비자들에게 잘 팔릴 것이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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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은 쌀, 고기 그리고 과일 값을 미국소비자들보다 열배 이상 지출하고 있다.

▪  모리따의 애국관
  모리따는 모든 애국적인 일본인들처럼 2차세계대전에 대해 묘한 역사적 해석을 하고 있다.
  모리따는 ‘메이드 인 저팬’에서, 중국의 장개석과 미국에서 교육받고 영어를 잘하는 매력적인 그의 부인에 대한 미국인의 동정심이, 미일간에 불편한 걸림돌을 만든 국민적 여론으로 발전되어, 마침내 전쟁이 유발되었다는 실례를 제시하려고 시도했다.
  그는 중국에 대한 일본의 이해상충은 일본측으로서는 침략에 대한 불가피한 행위가 되었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 심지어 그렇다 하더라도 미국인들은 장개석의 부인이 매력적이라거나, 명석하든가, 또는 그렇지 않든 관계없이 일본과 전쟁을 치룰만큼 심각하게 관여한 바가 없었다.
  1941년 미국은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공격함으로써, 3천명이나 되는 미국인들이 죽고 태평양함대의 주력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일본과 전쟁을 치루게 되었던 것이다. 모리따는 전적으로 이러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모리따는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에게, 미국은 일본상품에 대해 고관세를 부과하고 일본인의 미국이민을 금지하며 일본이 중국으로부터 외면당하도록 일본의 석유수입을 삭감함으로써 2차세계대전에 대한 어떤 책임을회피하고 있다는 언질을 주었다. 만약 미국이 중국 내에서 일본의 행위에 대해 그토록 근시안적인 판단을 하지 않았더라면, 모리따는 미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아시아 지역에서 공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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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가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을 것이다.
  모리따의 입장은 태평양전쟁으로 발전한 원인이 되었던 중국에 대한 일본의 대학살적인 공격을 지원하는 전략물자공급을 중단한 것은 미국의 인도주의적 감정 때문이며, 공산주의가 중국을 정복하게끔 만든 장개석의 국민당 반공군대를 물리치려는 일본의 계획에 미국이 간섭을 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모리따처럼 명석한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역시 대부분의 일본인들처럼 그가 그렇게 믿고 있다는 사실을, 어느 미국인도 이해하기가 어렵다.

▪  미국에 대한 비판의 이중목적
  1989년 9월에 일본은 교역의 상대방에 대한 직접적이고 강력한 새로운 태도를 표명하기 위하여, 미일  무역관계에 대한 일종의 비판과 특정 분야의 개선을 위한 일련의 특별한 제안을 부시 행정부에 전달했다.
  1984년에 일본이 이와 유사한 비평으로 한국에 대해 정책변화를 요구했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는 것은 관심을 끄는 일이다. 오늘날과 같이 그 당시 일본은 그들 자신의 개혁에 대해서는 사실상 관심이 없었고, 오로지 그들의 진짜 목적으로부터 상대방의 관심을 돌리기 위한 수법이었다.
  그것은 적대행위의 도발을 선동하고 늘 중국에 잠식당했던 한국시장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였다.
  최근 일본의 행동은 미∙일 양국간의 무역관계를 완화시키기 위해 표면상의 목적을 지니고 있으나 사실상 그것은 일본이 이미 누려왔던 무역의 이점을 계속 유지하고 증대시키기 위한 그들의 기본 수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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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선의 방어는 차선의 공격이다.
  한국과 대만은 불공정 무역거래에 참여하는 국가들에 대한 미국의 보복조치 대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상당한 양보를 한 반면에, 일본은 1989년 비판적 자세로 정면공격을 하고 나섰다. 일본은 관련문제에 대해 언급하기보다는 차라리 다른 문제들을 들고 나옴으로써 주된 관련 안건들을 희석시켜버렸다.
  미국이 일본의 태도변화를 바란다면 미국 역시 어느 정도 변화를 기꺼이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이 제시한 변화의 내용에는 연방재정적자의 감소, 저축증대, 미국교육제도의 질적 향상, 가솔린세부과, 그리고 알래스카산 석유수츨 금지를 해제할 것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마지막 사항을 제외하고 모두가 훌륭한 제안이며 미국 경제가 회복되는 데 도움이 되는 방안이지만 그것은 일본인들이 의도했던 진정한 목적이 아니다.
  일본인들은 미국인들이 그들의 비판에 대해 심각한 반응을 보일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으며 그럼으로써 불공정 무역거래나 엄청난 무역적자에 대한 미국의 현실적인 조치를 회피하겠다는 계산을 한것이다.
  이렇나 전환조치가 계획대로 진행될 경우 일본은 또 다른 방법으로 대체할 것이다.
  미국에 대한 비판문서에서 일본인들이 심각하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항목은 알래스카산 석유에 대한 이권 개입이다. 미국에서 일본인의 투자는 파라마운트 영화사 또는 록펠러 센터에 우선적 이해관계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니다. 주된 이해관계는 천연자원에 있다. 그리고 일본은 한번에 한가지 대안으로 사업을 도모하고 있다. 첫째로 그들은 알래스카산 석유 구매권을 확보하고 싶어한다.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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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에 그들 스스로가 유권을 매입하기 위한 또다른 단기적인 계획을 지니고 있다.

▪  일본은 국가적 희생에 대한 후유증을 강조한다
  2차세계대전에 대한 일본의 실록에는 진주만 공격, 남경 또는 바탄 사건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다.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 대해서는 많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며 전후에 일본이 당한 어려움에 대해서 자세히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현재 미국과의 문제에 대해서도 일본인들의 견해는 무역 불균형을 거의 도외시하고 있다. 주로 거대한 서구세력이 보잘것없는 일본을 다시 희생물로 노리고 있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그와 같은 비판은 일본 정부를 위해 국내의 목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그런 비판자료는 미국이 어떤 방법으로 모든 문제에 대한 책임을 일본에 전가하고 있는가 하면 미국은 그들 자신이 저지른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보니 일본이 지향하는 시대적인 생활양식까지 바꾸기를 고집하고 있다는 설명자료로 이용되고 있다.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라는 저서처럼, 그것은 일본 국민들 사이에 반미감정을 선동하기 위한 자료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무역에 대한 인위적인 장벽이 무너져내리는 시기에 도달하면 일본정부는 일본의 소비자 사회에서 미국상품 수입을 막기 위한 정신적 장벽을 효과적으로 구축할 것이다.
  얼마 전에 필자는 한 일본인 사업가와 점심식사를 나누면서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란 책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그는 모든 면에서 모리따와 의견을 같이 했으며 다른 모든 일본인들이 그러했듯이 그는 그 문제에 대해 그들과 똑같은 의견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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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그에게 한마디 간단한 질문을 했다.
  “만약 일본이 지금의 미국과 같은 처지에 놓였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당신의 생각을 말해 주시겠어요?”
  “우리 같으면 공격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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