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12. 아시아의 역사와 문화

Views 297 Votes 0 2016.04.13 15:57:20

12  아시아의 역사와 문화

 

▪  염제의 황제의 후손
  일본민족이 있기 전에, 그리고 한국민족이 있기 전에, 중국민족이 존재했다. 중국의 역사기록은 B.C. 2697년에 시작되었다. 그 기록에 의하면 중국민족은 염제와 황제의 후손들이라고 쓰여 있다.
  중국의 신화는 황제란 ‘신들 가운데서 땅을 거주하며 인간들을 도우기 위해 그 신성한 지위를 포기한 신’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황제는 인간들에게 문자를 가르치고 그들에게 삶의 지혜를 주었다. 그의 부인 라조는 인간들에게 누에치는 법과 비단 짜는 기술을 가르쳐 주었다. 염제는 태양신이다. 그는 양육과 치료를 맡은 신이며, 영농과 의술을 주관하는 인간 삶의 반려자이다.
  황제와 염제의 후손들간의 결혼은 양자강변에 거주했던 한민족을 만들어 냈다. 한민족은 중국인들의 선조이자 중국문명의 창시자로서 인정받고 있다.
  B.C. 219년에 진나라의 첫 황제인 진시황은 부하들을 보내어 신

263

들이 거주했다는, 신화에 나오는 팽라이(Peng Lai)섬을 찾기 위한 탐험을 하도록 했다. 그는 신하들이 그곳에서 자란다는, 영생을 주는 것으로 믿었던 약초를 가지고 돌아오길 바랬다. 신하들은 신들이 거주하는 집을 찾아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수천명의 순결한 남녀들을 데리고 갔다. 바다에서 탐험대는 풍랑을 만나 항로를 벗어나게 되어 결국 오늘의 일본 땅에 그들이 상륙하게 되었다. 젊은이들은 그들사이에서 결혼하거나 또는 섬의 원주민들과 혼인을 하게 되었고 이로써 일본 종족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 전설은 신비에 싸여 있는 것이기는 하나 그것에는 역사적 진실의 핵심이 담겨져 있다. 전통적인 믿음은 일본 황실의 혈통이 태양의 여신으로부터 직접 이어졌다는 것이다. 즉 많은 일본 학자들이 천황은 그 신하로부터 직접 혈통을 이어 받았다는 거을 하나의 실례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일본 사람들이 이러한 것을 믿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황가에서는 중국보다는, 신으로부터 직접 혈통을 이어 받은 것으로 생각하려고 한다.
  B.C. 1121년 주왕조때 중국 황제는 한국을 중국의 한 영토로서 선언하고 중국인 총독을 임명했다. 뒤이어 중국인들이 그곳에 정착하고 원주민과 서로 결혼하기 시작했다. 역사의 전반에 걸쳐 한국은 어떤 형태로든지 중국의 영향을 받았다. 1895년에 독립국임을 선언한다는 구실하에 중국으로부터 한국을 빼앗은 일본은, 그 직후 한국을 그들의 식민지로 점령해버렸다.
  중국, 일본 그리고 한국민족은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다. 그들은 하나의 유사한 문화와 철학적인 매개체를 통하여 비슷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인들의 국민성은 결정적인 차이점들이 있다.

264

지리적 조건이 중국인들과 일본인의 다른 점을 형성하는 데 주요한 동기가 되었다. 일본은 바다로 둘러싸인 작은 나라다. 중국은 광대한 대륙이다. 중국은 천년이나 넘도록 자신을 위협해 왔던 많은 외부적인 위험을 단순히 흡수해버렸다. 연이은 침략세력이 중국에 밀려 들어왔다가는 중국문화의 세포 속에 흡수되었다.
  일본은 중국보다는 훨씬 경계하는 자세로 항상 생존을 추구해 왔으며 결과적으로 그들은 특이한 섬 주민의 개성을 발전시켰다. 그들의 그러한 성격은 ‘시마꾸니 곤죠(Shimaguni Konjo)’라고 불려지는데 ‘섬나라 근성’이라는 뜻이다. 폭풍에 시달리는 배에 함께 타고 있는 선원들처럼, 일본인들은 깊은 공동운명체의 감정으로 뭉쳐있다. 그들은 사명감과 충성심 그리고 협동에 대한 개념에 대단한 비중을 두고 있으며 개인주의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일본은 중국처럼 자원이 풍부하지 않다. 생존을 위하여 일본인들에게는 진취적인 노력이 항상 요구되었다. 따라서 그들은 집단적이고 침략적인 근성을 기르게 되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중국인들은 아주 태평스러운 성격을 지니고 있다. 중국인과 일본인은 용맹에 대해서 각기 다른 개념적 정의를 가지고 있다.
  중국에는 이런 격언이 있다. ‘현명한 자는 패하는 싸움은 하지 않는다.’ 중국처럼 광대한 나라에서는 도망쳐 숨을 곳이 항상 있다. 중국인들은 장기적인 목표의 달성을, 개인적인 용맹의 과시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들은 훗날 더 좋은 기회에 다시 진영을 편성하고 공격하기 위해 우월한 상대를 피해 물러나는 것에 대하여 수치심을 갖지 않는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병사들이 거의 모든 경우에 후퇴할 곳은 바다밖에 없다. 따라서 정복을 하든지 아니면 죽음을 감수한 패망뿐이다. 일본인들은 다음 기회에 다시 도전하기 위하여 일단 물러서거나 항복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무인정신을 발전시켰

265

다. 그들은 전쟁중에 기꺼이 죽기를 바라기 때문에 전쟁터에서 극한적으로 용감해진다.
  한국은 하나의 섬은 아니지만 중국의 광활한 대륙의 변두리에 위치한 반도이다. 그 땅에는 여러가지 악조건과 수많은 침략자들의 횡포를 견디면서 놀라울 정도로 혈통의 동질성을 유지해 온, 고집세고 자생력이 강한 사람들이 원주민으로 정착했다. 한국은 독자적인 자생력을 발전시켜 왔으며 문화적으로는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독특한 위치를 형성하고 있다.

▪  아시아인의 철학과 종교의 주된 흐름
  사업적으로 거래를 해야 하는 아시아인들에 대한 좀더 깊은 이해를 하려면 그들의 생활양식에 대한 기본원리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시아의 문화는 종교와 철학의 구분에 대해 정확하게 정의를 내리지 않았다. 신앙과 철학은 일상적인 생활양식으로서 존재한다. 아시아에서 성현들의 가르침은 신의 계시적인 말로 받아들여 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하늘의 뜻에 조화되는 생활의 지침으로서 인정되고 있다.
  중국의 종교는 서구에서 말하는 종교와 직접적인 상응관계는 없지만, 신화적인 동시에 도덕과 윤리철학의 저술을 소유하고 있다. 가장 오래되고 가장 완전한 중국신화에 대한 저서는 산해경이다. 그것은 하나라(2205-1766 B.C)와 주나라(1122-770 B.C), 춘추시대(770-476 B.C), 전국시대(476-221 B.C), 그리고 한나라 초기(206 B.C)에 이르기까지 이루어진 저술을 모은 것이다. 산해경은 창조에 대한 몇가지의 해설을 포함하고 있다. 창조에 대한 또다른 해설은 회남자라고 불리우는 전집 문헌 속에서 발견되었다.

266

  산해경과 회남자는 다같이 창조의 과정을 음과 양의 조화와 결합으로 설명하고 있다. 즉 그것은 에너지의 여성적인 면과 남성적인 면을 말한다. 음양에 대한 개념은 아시아인들의 삶과 관념의 모든면을 지배한다. 한국인들은 음양의 상징을, 밝고 어두운 부분으로 똑같이 나눈 하나의 원형으로 이루어진 그들의 국기에 극명한 상징으로 표현하고 있다.
  아시아인의 철학에 의하면 모든 사물은 양과 음의 양면을 지니고 있다. 즉 흑과 백, 선과 악, 어둠과 밝음, 여성과 남성적인 면이다. 음양은 우주의 균형을 이루는 것으로 믿어지고 있는 것이다.

▪  도
도라고 불리우는 도는 참다운 도가 아니고
이름으로 불러지는 이름은 변함없는 이름이 아니다.
이름조차 없음은 하늘과 땅의 시작이고
이름이 있음은 만물의 어머니이다.
항상 욕심이 없으면 도의 현묘한 진리를 볼 수 있고,
항상 욕심을 지나면 나타난 물질세계만 보게 된다.
이 두가지는 한 곳에서 나와 이름이 달라졌을 뿐이다.
이는 만물 가운데 가장 깊고 심오하며,
모든 현묘한 진리에 이르는 문이다.

가장 높은 덕은 물과 같고
이는 만물을 이롭게 하되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처한다.
그러므로 그 근본은 도에 가깝다.
아무 곳에서나 거처하며

267

마음쓰는 것이 물 같이 조용하고
베푸는 데는 어질고
말에는 신의가 있으며
다스림에는 정의가 있고
일을 도모함에는 훌륭하고 행동은 조화를 이룬다.
이러한 자는 다투지 않는지라 허물이 없는 것이다.

부귀영화와 빈천굴욕은 불행을 가져오고
재앙은 인간에게 따르는 조건이다.
부귀영화와 비천굴욕은 어째서 불행을 가져오는가?
부귀영화를 얻은 자는 놀라서 쓰러지니
얻어도 불행이며 잃어도 불행이다.
재앙은 어찌하여 인간을 따르는 조건인가?
재앙의 근원은 나에게 몸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에게 몸이 없음에 이르러서야 나에게 무슨 재앙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내 몸을 겸손하게 세상에 내놓는 사람이면
천하를 보살필 수 있고
세상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자에게는
천하를 맡길 수 있다.
-‘도덕경’에서

  ‘도’라는 철학은 도교에 앞서 이루어진 사상철학이다.
  노자와 장자는 하나의 종교를 제창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단지 그들 스스로가 체험한, 우주에 존재하는 높은 진리를 가르쳤을 뿐이다. 그것은 훗날 종교적 교리로서 도교를 확립한 원리가 되었으며 노자를 그들의 정신적 지주로 내세웠다. 그들의 가르침은 미신과 마

268

술에 혼합되고 말았다.

▪  무위론
  노자는 우주 전체를 도의 완전한 현시로 보았다. 그의 가르침의 본질은 중국어로는 두 글자 즉 무위로 의미가 집약되며 그것은 무위비행을 뜻한다.
  무위의 원리는 앉아서 아무 행위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차라리 모든 행위는 도의 천성이라는 인식을 명시하고 있다.
  도의 은혜로서 심장은 뛰고 호흡을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란 존재는 도의 은혜와 조화로 일상행위를 도모한다. 무위는 인간들로 하여금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선용하여 행동하고 그결과로 맺어진 결실은 도에 맡기도록 가르치고 있다.
  행위에 대한 결과에 집착하지 않음으로써 만사가 도의 은혜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인식한다. 행위의 결실은 우리 모두가 일상생활에서 바라고 있는 보상이다. 그것은 각기 다른 사람들에게 서로 다른 형태로 돌아온다.
  어떤 영화배우는 성공적인 작품에서 자신의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바란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베스트셀러로 등장하는 결실을 추구한다. 이처럼 우리가 스스로의 행위로 어떤 결실을 바라거나 또는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보다는 우선적으로 순리에 따라 행동하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며, 그 결과는 도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무위란, 행위의 결실에는 초연해야 한다는 원리이다.
  불행하게도 노자의 저서에 은유되어 있는 진실을 파악할 만큼 정신적으로 수양이 되어있지 않은 사람들은 그 가르침을 세속적인 지식의 소비에 맞추기 위해 그릇된 해석을 해왔다.

269

  무위의 개념에 의해 제시된 행위의 조화는 문자 그대로 행위를 하지 말라는 하나의 요구로 잘못 인식되어 왔다.
  많은 중국인들은 일상 추구해야 하는 무난한 처신은 아무 관계도 가지지 않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중국인들은 거의 2천년이 넘도록 비활동적인 관행에 빠져 있었고 사실상 행동을 하면 할수록 그만큼 자신에게 더 많은 문제를 가져온다고 믿는다. 이렇게 무위의 개념에 대한 잘못된 발상은 중국사회의 쇠퇴와 기술적인 불황을 초래했다.

▪ 선불사상
  A.D.645년에 한 중국인 승려는 오랫동안 인도를 순례하고 중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중국불교의 씨앗을 가지고 온 것이었다.
  도교와 불교는 하나의 진리를 인식하기 위한 두가지 방법이기 때문에, 불교는 별다른 수정없이 중국의 도교사상에 뿌리를 내렸다. 중국인들의 가치관은 가족과 향토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정착의 근거가 없이 방랑하는 주거상실의 불교사상을 포용할 리가 없었다. 그러나 도의 철학이념과 많은 연관을 가지고 있는 불교의 본질적인 교리는 중국내에 널리 전파되었다.
  중국인들은 이러한 형태를 불선이라고 불렀다. 중국의 전성기였던 이 시대에, 일본인 학승들이 중국에 와서 문화, 예술, 역사, 철학을 연구하는 것은 일반적인 관행이었다. 그들은 중국에 새로이 뿌리내린 종교에 매혹되어 그것을 일본으로 가지고 돌아갔으며 그것은 일본에서 선불로 발전했다.
  모든 인간은 신의 근본을 지니고 있으며 자신의 신성을 깨닫을 수 있는 잠재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선의 본질이다. 선을 행하는 목적은 자신 속에 잠재해 있는 신성을 깨닫기 위한 것이다. 인간이

270

란 세속적인 고통과 삶의 기쁨에만 의존한 나머지 자신의 진실한 근본을 깨닫지 못하고 생애가 계속되는 동안 방황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선은 가르친다.
  한 인간이 자신의 신성에 대해 무지할 때 인생은 꿈과 같은 것이며 몽상가는 흔히 자신의 망상에 빠져 고통을 겪는다. 묵상과 근행, 수양과 은혜 그리고 이웃과 동료에게 사심없이 봉사함으로써, 신자는 단지 죽음을 향하고 있다는 환상을 쫓아버릴 수 있으며, ‘신은 자신 속에 자신의 모습으로 거하고 있다’는 깨우침에 이를 수 있다.
  그러나 세속을 신성하게 만들기보다는, 오히려 선을 행하는 것이 흔히 세속화되어 있다. 선은 사업을 경영하는 기술이 되었다. 즉 꽃꽂이의 선, 검술의 선, 정원을 가꾸는 선 등과 같은 생활적인 기술로 변화된 것이다. 물론 어느 누군가가 신통력을 지니게 되면 어떤 전문분야에서 대가가 되게 마련이지만, 흔히 그 결과는 본애의 뜻에서 벗어난 경우가 대부분이다.

▪  공자의 가르침
지혜롭고 도를 깨달은 자는 마음에 의심을 두지 아니한다.
덕과 인을 갖춘 자는 이기적인 생각이 없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 자신을 수치심없이 바라본다.
용기있는 자는 진실과 덕을 다른다.
그러므로 마음 속에는 두려움이 없다.

덕이 있는 자는 도가 충만하고 그의 말 속에는 진실의 본질이
담겨져 있다. 꾸며서 말을 잘 할 수 있는 자는 겉으로는 감언이지만

271

반드시 덕을 갖춘 사람은 아니다.
어진 자는 이기심없는 불변의 진실로 마음이 가득하며,
자신에게 사명이 주어졌을 때 어떤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그것을 수행한다.
따라서 그에게는 항상 용기가 있다.
그러나 용감한 자는 그의 성질이나 흥분 아니면 자신의 자부심을
꺽이지 않기 위해 싸움을 하며 어진 것에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부유하고 재산이 많을 때 만족하며 겸손해지기는 쉬운 일이다.
그러나 가난할 때, 입을 것과 먹을 것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그로 인해 마음에 비탄과 증오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은
가장 어려운 일이다.
모든 행동과 말, 그리고 처신을 분별하여 행하면 거의 실수가 없다.
배운자는 말을 함에 있어 매우 조심하고 조심하라.
그러나 행동함에 있어서 민첩하며 게으르지 않게 하라.
덕이 있는 자는 외롭지 않다.
그의 덕은 언제나 그의 친구이기 때문이다.
-공자의 가르침에서

  공자는 춘추시대였던 B.C.551년에 태어났으며 그때는 중국이 봉건영주의 전국으로 분할되어 있었다. 이러한 난세에 공자는 사회질서의 근간을 확립하기 위한 기본원칙을 제시한 것이다. 그는 인과 정의로 다스리는 것이 위정자의 의무이며, 지도자를 따르고 존경하는 것은 백성의 의무라고 가르쳤다. 그 당시에는 어느 누구도 그의 말을 경청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위정자들은 그들의 권위에 대한 복종과 존경을 얻기 위해 공자의 가르침을 널리 보급하는 것이 이롭다는 것을 깨달았다.
  공자의 의도는 다스리는 자와 백성간의 합리적인 관계를 규범화하고 그러한 관계에서 서로 각자의 의무를 정립함으로써 혼란하고 분

272

할된 나라에서 법과 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위정자들은 인과 의로 다스릴 것을 그들에게 요구한 공자의 가르침 가운데 해당부분에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이러한 공자의 가르침에 대한 오용과 남용은 2천년 동안 정치적∙사회적 핍박을 받는 결과를 초래했으며 그 영향은 아직도 아시아 전역에 현실적으로 내재되어 있다.
  공자의 가르침의 주제는 개인의 온전한 품행 또는 다르마(Dharma)이다. 그의 가르침은 사회에 대한 봉사와, 생애를 경영해 가면서 자신의 위치에서 요구되는 일상적인 의무에 주된 역점을 두고 있다. 그는 봉사와 의무에 대한 관념을, 도를 깨우치고 도에 따르는 명분에 두었다.
  자신의 덕을 쌓는 법을 터득했을 때 비로소 그는 가정과 국가와 세상에 관심을 돌릴 수가 있다고 공자는 가르쳤다. 그는 자신이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은 남에게도 하지 말라고 가르쳤으며 이러한 가르침은 후에 기독교 전성시대에도 반영되었다.

▪  중용
  공자의 가르침의 본질은 중용이라는 저서 속에 보존되어 있다.

중에서 수없이 갈라져 만물을 이룬다. 결국에 그것은 하나의 진리로
다시 합해진다. 이렇나 진리가 해체된다면 그것은
우주를 가득 채울 것이지만 이 진리를 접어두면 그것은 가장 보잘것없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어버린다. 이러한 진리의 본질은 무궁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참됨의 지식이다.
식자는 이것에 의존하여 생각하며 묵상한다.
지식은 그 스스로가 나타나게 마련이다.

273

모든 일상생활에 이러한 참된 지식을 활용할 때 무궁한 보답으로 돌아온다.
-‘중용’에서

천하의 만물은 인식의 대상일 뿐이다. 이러한 인식으로 사고하지 않으면
자신이 지니고 있는 것은 오직 한정된 지식에 불과하다.
모든 만물 속에 내재하고 있는 이러한 인식의 원리를 이해한다면
모든 지식은 상호 연관관계를 가질 수 있다.
이것이 지식의 본질이다.
-주자

  공자의 가르침은 대체적으로 세속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의 제자들은 스승의 가르침에 대한 고상한 진리가 후대에 가서 가치를 잃을까 하여 두려워했다. 중용은 공자의 실용적인 가르침의 근본이 되는 불후의 기본 이치를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쓰여진 것이다.
  중용은 중도(Middle Path)라고도 불리우며, 우유부단하고 모호한 방법으로 대개는 잘못 해석되어왔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우유부단한 것을 정당화하고 배를 흔들지 않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는 식의, 일반적인 중국인들의 견해를 고수하는 방편으로 이용되어왔다. 자신들의 과오와 결점을 정당화하기 위해 공자의 가르침을 이용해왔던 것이다.
  중국인들과 거래를 함에 있어서 애매하고 우유부단한 사람을 상대한다고 해서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2천년 동안 전해내려온 공자사상의 산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274

▪  관용
  서구 역사의 전반에 걸쳐 종교적인 견해 차이와 갈등으로 인한 전쟁이 있어왔고, 십자군에서부터 오늘날의 아일랜드에서 벌어지고 있는 구교와 신교의 싸움에 이르기까지 계속되고 있다.
  미국 대륙은 평화롭게 자신들의 신앙을 지키기 위한 땅을 찾아나선 사람들에 의해 정착되었다.
  중국, 일본, 그리고 한국역사에는 종교전쟁은 없었다. 아시아인들은 우주의 모든 형상은 하나의 동일한 조물주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믿고 있다. 불교 신자든 또는 선을 믿든 아니면 도교를 신봉하든간에 그들은, 구원이란 자기 수양과 자신의 정결함에 이르는 묵상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  일본과 한국 사회에서의 중국 철학의 영향
  일본과 한국은 다같이 중국인의 사고방식에 의해 깊은 영향을 받았다. 그들의 사회는 다같이 공자사상을 숭배한다. 일본인들은 그것을 잘 터득하여 복종과 규범 그리고 튼튼한 가족의 결속을 바탕으로 질서있는 사회를 이룩했다. 이것으로 인한 한가지 중요한 결과는 일본 사회의 모든 계층에서 현존하는 사회적인 억압이다.
  한국인들 역시 명령과 복종에 바탕을 둔 사회를 이룩했으며 이러한 결과와 함께 사회적∙정치적 억압을 받게 되었다. 중국인들은 수천년 동안이나 억압을 견디어 냈다.
  중국, 일본, 그리고 한국은 중국철학자들의 지혜를 각기 받아들이고 그 의미를 포용했다. 다음의 두가지 이야기는 중국인과 일본인의 가치관이 얼마나 유사한지를 잘 말해준다.

275

▪  중국의 이야기는 불행에 관한 것이다
  새옹이라고 하는 한 사내는 널리 잘 알려진 아름다운 말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날 이 아름다운 말이 사라졌다. 마을 사람들은 큰 불행을 당한 새옹에게 동정을 표했다. 그러나 새옹은 “당연한 일이지요.”하고 간단히 응수해버렸다. 며칠 후에 없어졌던 말이 한마리의 아름다운 야생종마를 데리고 돌아왔다. 마을 사람들은 그의 행운을 축하해주었다. 그는 역시 “당연한 일이지요”하고 말했다.
  얼마후 새옹의 외아들이 말을 타다가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다시한번 마을사람들은 새옹의 불행에 대해 동정의 뜻을 표했다. 이번에도 그는 “당연한 일이지요.”하고 대꾸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전쟁이 일어나 마을의 모든 젊은이들은 절름발이 불구가 된 새옹의 아들을 제외하고 전쟁에 불려나가 죽고 말았다. 마을사람들은 그의 행운에 대해 모두들 경탄했다. 그의 불구가 된 아들만이 마을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젊은이였다. 그러나 새옹은 난리를 겪고 득실에 상관없이 똑같은 태도를 지니고 있었으며 똑같은 대답을 했던 것이다, ‘당연한 일이지요’라고.
  다음의 일본 이야기는 하꾸인이라는 젊은 승려에 관한 것이다.
  하꾸인은 작은 어느 농촌마을에서 홀로 외롭게 살았는데 그곳에서 그녀는 기도를 하며 엄격한 정신적 수도를 쌓고 있었다. 그는 속세의 생활에는 관여하지 않았으며, 이웃들은 그의 덕을 높이 칭송했다.
  역시 그 마을에 살고 있던 어느 예쁜 소녀가 임신한 것이 드러났다. 그 소녀의 가족들은 그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냐고 그녀에게 물었다. 그러자 소녀는 울면서 말하기를 ‘하꾸인 스님’이라고 했다.
  가족들은 하꾸인을 찾아가 그가 저지른 불경한 행위에 대해 힐책을 했다. 젊은 승려는 ‘그래요?’하고 응수할 뿐이었다. 아이가 태어

276

나자 소녀의 가족들은 갓난아이를 하꾸인에게 주고 기르라고 했다. 그 승려는 사내아이를 받아 자신의 자식처럼 키우면서 여전히 그의 근엄하고 신앙적인 수도생활을 계속했다. 하꾸인은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에 대해 일언반구 설명이 없었다. 마을 사람들이 승려의 모순된 행동을 경멸하는 한편 몇해가 지나갔다. 마침내 그 소녀는 양심의 가책으로 더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그녀는 가족들에게 그 아이의 아버지는 스님이 아니라 마을에 있는 다른 젊은이라는 것을 알려 주었다. 그녀의 가족과 마을 사람들은 승려를 찾아가 오랜 세월동안 그를 모욕하고 경멸했던 점에 대해 사과했다. 하꾸인은 ‘그래요?’하고 말할 뿐 아무말도 하지 하지 않았다.
  중국인들은 수세기에 걸친 환경변화를 겪으면서, 그들의 뿌리를 이룬 철학에 대해 의미를 해석하고 풀이하는 데 있어서 항상 가변적이었다.
  중국으로부터 그들의 신앙을 받아들인 일본과 한국인들은 이러한 고대의 원리들을 응용함에 있어서 더욱 더 교조적이며 불변적인 경향을 지니고 있다. 하나의 문제시되는 시례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고자의 사상이며 그것은 오늘날 중국, 한국 그리고 일본에서 얼마나 다르게 이해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여자는 남자보다 못난 존재라고 공자는 가르쳤다. 그러나 그는 2천년 이전에 중국 역사에 있어서 가장 어두웠던 한 시대에 가르쳤던 것이다. 사회는 혼란하고 무법천지였다. 그 가르침의 대부분은 시대적으로는 맞지 않았지만 대체적으로 그러한 시기에 특히 사회적인 조건에 역점을 둔 것이었다.
  오늘날에 공자가 다시 태어난다면 여성들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그의 견해는 판이하게 다를 것이다. 요즈음 중국에서 여성에 대한 태도는 한국과 일본에 비해 극적으로 변화되었다. 최근에 필자는 한 지성

277

적인 한국인 남성과,  ‘여성들의 지위’에 대해 토론을 가져보았다.
  그는 한국여성들이 온당한 지위를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대단한 국가적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는 원인을, 그러한 문제에 대한 공자의 가르침에 한국인들이 더욱 집착했던 탓으로 돌리고 있었다.

▪  옛날과 오늘의 원한
  최근에 필자가 참석한 어느 모임에서 한 미국여인은, 한국인들이 일본인들을 싫어한다는 것이 사실이냐고 내게 물었다. 그녀는 지난밤 참석한 파티에서 한국인 비지니스맨으로부터 그런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필자는 그녀에게 한국인과 일본인 개인들간의 관계는 국민적 감정을 초월할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 한국인들은 일본인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해주었다. 대부분 한국인들의 기억 속에는 일본이 한국을 점령하고 한국인들을 야만적으로 다루었다는 사실이 남아 있다. 이러한 체험은 한국인들로 하여금 일본인에 대한 증오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오늘날까지 일본에 의한 경제적 또는 군사적 지배에 대한 두려움이 한국인들 사이에는 잔존하고 있다.
  역사 전반에 걸쳐 중국은 한국에 대해 수시로 영향력을 행사해왔지만 두나라 사이의 관계는 보다 우호적인 면이 있었다. 중국은 때로는 한국을 보호하는 입장에서 역할을 했지만, 그보다는 흔히 정복자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전쟁에서 승패에 관계없이 중국인들은 일단 전쟁이 끝나면 귀국을 했다. 그들은 일본인들을 자극했던 인적 또는 천연자원의 궁핍에 시달리지 않았으며, 그들이 정복한 나라의 문화에 자신들의 것을 뿌리내리려고 강압적인 수단을 쓰지 않

278

았다. 이런 연유에서 그들은 똑같은 원한을 만들어내지는 않았던 것이다.
  18세기 후반부터 2차세계대전 말기와,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을 때까지 제국일본 정부는 한국에서처럼 중국에 대해서도 기본적으로는 똑같은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중국인들이 일본인들의 행위를 망각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이미 앞서 말했듯이 필자의 가족들은 만주출신이며 부모들은 일제점령하에서 성장했다. 나의 어머니에 의하면 그녀의 고향에서 일본인 경찰서로 통하는 길목은 땅 위에 얼록진 핏자국으로 확연히 구분되었다고 한다. 어린시절에 그녀는 매일같이 학교로 가는 도중 그길을 지나다녀야만 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여행하는 것은 흔히 매우 위험했다고 한다. 일본인들은 여행자들의 신분증에 사소한 흠이라도 있다고 판단되면, 그들을 철도의 플랫홈에서 검문하고 고문하는 것이 다반사였다는 것이다.
  나의 부모는 만주와 일본에서 정규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지금도 일본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일본어를 쓰지 않는다. 일본인들과는 일본어로 말하는 것이 사업적으로는 가끔 유리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모든 구세대인들처럼 나의 부모들은 일본인들의 중국 점령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나의 세대에서는 일본인들의 잔학성을 우리들의 부모의 이야기와 역사책을 통하여 배웠다.
  중국인들은 아직도 중국내에서 저지른 일본인들의 만행에 대해 분노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 서구인이든 이러한 원한에 대해 이야기를 들을 기회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외부인으로서는 이해하지 못하는 옛 친구들 사이에서 일어난 문제로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아시아인들은 여러가지 면에서 유사점을 지니고 있지만,

279

오랜 세월의 상호교류를 통하여 형성되고 근세역사의 사건으로 격화된, 감정적인 심리들이 서구인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하고 난해한 관계로 그들 사이에 얽혀있다.

280

List of Articles
Subject

1. 게임을 위한 준비

제 1부 아시아의 마음 이 책은 독자들로 하여금 외형적인 내면보다 내면적인 외형을 관찰함으로써 아시아인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것이다. 이러한 이해에 도달하기 위해 독자들은 모든 선입견적인 관념을 털어버려야 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10. 장애물 경주

제3부 역사는 훌륭한 스승이다. 아시아를 이해하려면 먼저 중국을 이해해야 한다. 중국의 문화는 고대적인 유풍을 지녔기 때문에, 다른 아시아인들의 문화적 뿌리이기도 하다. 필자가 중국과 중국인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하는 내용 가운데 많은 부분이 다...

11. 중국은 서양을 어떻게 보는가

11 중국은 서양을 어떻게 보는가 ▪ 서구세계에 대한 첫 경험 18세기에 볼테르(Voltaire)는 중국 확실의 도덕성과 조직성은 세계가 체험했던 것 가운데 가장 훌륭한 것이라고 썼다. 거짓말같은 중국의 부에 대한 여행자들의 이야기는 유럽 황실 건축가들의 ...

12. 아시아의 역사와 문화

12 아시아의 역사와 문화 ▪ 염제의 황제의 후손 일본민족이 있기 전에, 그리고 한국민족이 있기 전에, 중국민족이 존재했다. 중국의 역사기록은 B.C. 2697년에 시작되었다. 그 기록에 의하면 중국민족은 염제와 황제의 후손들이라고 쓰여 있다. 중국의 신화...

13. 중국인의 속마음

13 중국인의 속마음 ▪ 중국의 계급제도 금세기까지 중국 사회는 수천년동안 변하지 않은 하나의 계급제도로 형성되어왔다. 전통적인 중국사회에는 네가지 부류의 계급이 존재했다. 즉 선비(학자)계급이 가장 높은 재위를 차지했으며 계급이 내려가는 순서로...

14. 대만의 번영

14 대만의 번영 20년전 대만의 한 젊은이가 대형 체인망을 갖고 있는 어느 미국백화점의 구매사무소에 들어섰다. 전에 한번도 미국에 와본 적이 없는 그는 화려한 현대식 사무실에 들어서자 긴장하고 두려웠다. 그는 사무실 입구의 프론트데스크에서 들고...

15. 성장의 그늘

15 성장의 그늘 ▪ 공해 아무런 대가를 치루지 않고 대만의 경제성장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환경은 피폐해졌고 여전히 환경에 대한 현실적인 관심은 없다. 최근에 타이완의 한 재벌 기업가가 대만 대학의 학생단체에서 연설을 했다. 그는 연설을 끝내...

16. 대망

제4부 거듭 살아남은 사람들 한국문화는 고대 중국의 영향과 일본의 점령, 그리고 민족적 단일성에 대한 강한 의지의 혼합체이다. 두 강대국들 사이에서 시달리면서도 한국인들은 순결한 의지와 결단력으로 살아 남았다. 이제 한국은 세계무대에서 중요한...

17. 성공적인 처신

제 5부 게임은 끝나고 17 성공적인 처신 ▪ 인정 일본, 한국, 그리고 중국의 문화는 인정에 대한 공자의 개념에 의해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이 개념은 세 나라의 언어에서 똑같은 중국어로 표현되며, 영어로는 ‘human feelings’로 번역된다. 그것은 ...

18. 미국은 종이호랑이인가

18 미국은 종이호랑이인가 미국은 심각한 경제문제에 직면해 있다. 연간 2천억달러에 이르는 예산적자와 함께 자신의 미래에 역행하는 빚을 짊어지고 있으며, 빚에 대한 상환시기는 급속히 다가오고 있다. 미국의 중공업은 노후한 기술로 운영되고 있으...

2. 시장은 전장이다

2 시장은 전장이다 ▪ 역사를 현실의 거울로 삼는다 서양의 사업가들이나 정치인들이 아시아인들과 상대할 때 흔히 당혹감을 느끼게 되는 이유를 이해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실상 아시아인들은 서양인 상대자들보다도 훨씬 더 정확하게 다듬어...

3. 손자병법

3 손자병법 4세기의 병법의 대가 손자에 의해 저술된 손자병법은 현재까지 전래되어온 군사전략서 가운데 가장 완벽한 책이다. 그것은 또한 현대의 독자들에게 가장 널리 읽히고 있는 병서이기도 하다. 이 책은 13편의 소단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론을 ...

4. 삼십육계

4 삼십육계 36계란 모든 상황에 대처하는 처세방법을 다룬 고대중국인들의 전략전집이다. 이것은 잘 알려진 일종의 중국 민속문학으로 약 천오백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전집은 6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부에는 6개 관련 전략...

5. 후안흑심

5 후안흑심 1911년 성도일보는 이충창씨가 쓴 후흑론이란 제목의 수필을 연재하기로 했다. 이 수필은 3회에 걸쳐 연재할 계획었었으나 첫회분이 실리자마자 격렬한 반응을 일으키는 바람에 나머지 연재분을 발표하지 못했다. 그후 얼마 안있어 이 에세이는...

6. 일본은 300년 동안 배타적이었다

 제 2부 개미 민족 다음 4장에 걸쳐 쓰여진 내용은 이미 백년 전에 일본인들이 구체적으로 설계했던 국가개발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그들은 이미 이 책의 앞 부분에서 논했던 속임수의 원리를 이용하여 그 계획을 추진해 나갔다.  6 일본은 3...

7. 미덕과 위선

7 미덕과 위선 나는 서구의 학자들이 집필한 현대 일본에 대한 저서들을 읽으면서, 저자들이 모든 내용을 일본인의 입장에서 의견을 개진한 무비판적인 태도에 놀랐다. 일반적으로 서구인의 동양관은 아시아 문화의 고상함과 신비적인 내용에 대한 그들의 ...

8. 기업 사무라이

8 기업 사무라이 ▪ 사무라이의 기원 표면상으로 볼 때 일본은 현대산업사회이다. 그러나 내면적으로는 봉건군주사회의 과거에 깊이 뿌리내린 사회이기도 하다. 일본인들은 아직도 사무라이 전통에 얽매여 있다. 일본을 이해하려면 누구나 이전통에 관련된 ...

9. 모리따와 이시하라

9 모리따와 이시하라 소니(Sony)사의 회장 아키오모리따와 전 일본 운수성장관 신따로 이시하라가 공동저술한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The Japan That Can Say No)’ 이란 책은 1989년 일본에서 처음 출판되었다. 모리따와 이시하라가 저술한 내용은 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