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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대망

Views 261 Votes 0 2016.04.13 15:43:35

제4부  거듭 살아남은 사람들

 

한국문화는 고대 중국의 영향과 일본의 점령, 그리고 민족적 단일성에 대한 강한 의지의 혼합체이다. 두 강대국들 사이에서 시달리면서도 한국인들은 순결한 의지와 결단력으로 살아 남았다. 이제 한국은 세계무대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아 자신의 입지를 형성해가고 있다.

 

16  대망

 

1988년 9월 17일 한국의 서울에서 올림픽 경기가 열렸다. 그것은 올림픽을 유치한 도시와 국민들에게는 자랑스러운 순간이었다. 국제올림픽위원회는 유일한 경쟁자였던 일본의 나고야를 물리치고 큰 표차로 서울을 선택했다. 그러한 선택은 전세계의 국가들이 한국을 하나의 중요한 세계적인 세력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또하나의 증거였다.
  한국인들은 이러한 인식으로 인해 그들 국가의 장래가  1964년 동경올림픽이 일본에 가져다 준 것과 똑같은 결과가 나타나기를 바라고 있다.
  ▪  전후의 한국
  제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40여년에 걸친 일본의 잔악한 점령에서 마침내 벗어난 한국인들은 황폐해진 그들의 국토를 재건하는 사업을 착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그들은 얄타(Yalta)에서 서방 강대국들 사이에 이루어진 비밀협정에 따라 독일 및 전유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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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되었던 것과 거의 똑같은 방법으로 한국이 분단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유엔의 제안에 따라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소련이 지배하는 북쪽과, 자유진영국가들과 정치적으로 동맹을 맺게 된 남쪽으로 분단되었던 것이다. 유럽에서처럼 철의 장막이 한반도를 가로질러 드리워졌다.
  1947년 유엔은 독립과 통일의 절차를 밟기 위해 한국에서 총선거를 실시하기로 결의했다. 그러나 유엔관리들은 북한으로의 입국이 허용되지 않았으며, 1948년 대한민국을 탄생시킨 선거가 남쪽에서만 실시되었다. 김일성의 지도체제하에 있던 공산정권은 북쪽에서 지배권을 확보했다.
  1950년 소련에 의해 무장되고 지원받은 북한은 남쪽에 대해 침략을 개시했다. 한달도 안되어 한국의 전역은 그들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유엔은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의 지휘하에 군대를 파견하여 침략자를 몰아냈다. 유엔군은 중국 공산군이 전쟁에 개입할 때까지는 성공적으로 작전을 폈으나 승부를 얻지 못했다. 3년간의 치열한 전투를 치른 후 휴전협정이 체결됨으로써 38도선에는 다시 군사분계선이 설치되고 그것은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
  ▪  네마리의 용
  한국, 대만, 홍콩 그리고 싱가폴을 소위 네마리의 용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다같이 아시아에서 새로 깨어난 경제세력들이다. 오늘날 한국은 이들 가운데 가장 앞서하고 있으며 아시아의 경제 선진국으로서 오직 일본에만 뒤져있을 뿐이다.
  한국의 대망은 궁극적으로 선진산업국으로서 아시아에서 일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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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하는 것이지만, 당면목표는 금세기말 이전에 세계에서 기술적으로 가장 앞서있는 십대 선진국 대열에 올라서게 되는 것이다.
  한국은 대만보다 10년 늦게, 그리고 그의 옛 숙적인 일본보다는 15년 늦게, 산업화와 국제시장에서의 자기 몫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을 시작했다. 그러나 30년 동안에 한국의 GNP는 일인당 75달러에서 3천3백달러로 상승했다.

▪  코리아 주식회사(KOREA. INC.)
  이와같은 기적적인 성장에 기여한 몇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 지체없이 가난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정부의 자각적인 결단이었다. 경제적 번영이 공산주의 이념의 확대를 막는 가장 표과적인 무기라고 간주되었던 것이다.
   다른 면은 어찌되었든간에 박정희 정권은 하나의 군사독재였다. 그것은 순수한 민주정부가 취할 수 있는 것보다 한국의 산업문제에 더 큰 능력을 발휘했다. 이러한 초기의 능력 때문에 관과 민간 사이에 긴밀한 유대관게가 발전되어갔다. 아시아의 실업인들은 흔히 한국 산업의 전체를 하나의 단일체제로 보고있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러한 실체를 ‘코리아 주식회사’라고 부른다.
  코리아 주식회사는 국가경제목표를 설정하고 이러한 목표를 수행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였다. 그들은 중앙집중계획경제의 이점을, 이윤추구를 지향하는 자유무역의 효율성에 접목시킨 것이다.
  일본인들도 정부와 산업간에 이와 유사한 결속을 형성했으나 그것은 개인의 이해관계 또는 개인사업을 전체적으로 국가의 필요에 예속시키는 일본국민의 특이한 능력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한국에서의 그러한 연대관계는 정부의 주도하에 이루어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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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와 산업간의 긴밀한 관계는 한국이 세계시장과 한국 자체내의 환경변화에 대처하면서 경제적인 우선순위를 정립해 나가는데 비교적 편리한 수단이 되었다.
  한국의 산업화를 위한 본래의 계획은 섬유와 같은 노동집약적인 경공업분야를 중심으로 짜여졌다. 1970년대초 한국은 노동집약산업에서 경제적인 위치를 잃게 되었다는 것이 분명해지자 철강, 중장비, 조선, 전자, 그리고 석유화학과 같은 중공업 및 첨단산업에 역점을 두었다.
  한국경제는 몇몇 대규모 종합 재벌기업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일본식 경제와 똑같은 방법으로 발전되었기 때문에 경제구조가 대체적으로 소규모의 기업으로 이루어진 대만과 홍콩의 경우처럼 부에 대한 균형있는 분배를 달성하지 못했다. 즉 한국에는 중산층이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 않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너무 가난하여 한국내에서 생산되는 상품도 충분한 양을 구매할 수가 없다.
  국내 소비기반이 빈약하고 국내자본의 공급이 원만하지 못하기 때문에 한국의 산업화계획은 당초부터 수출지향적이었다.
  한국이 자체의 산업화를 촉진하기 위해 자본축적을 꾀했던 수단은 서방국가들과의 무역이었다. 이러한 이유때문에 한국경제는 스스로 무역불균형을 초래했고, 경제체제를 유지하기 위하여 미국의 요구조건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1989년 한국의 경제성장은 두자리 수에서 6퍼센트로 낮아졌다.

▪  관료의 타락
  한국경제는 또다른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정부관료들 사이에 부패가 만연되어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사업을 하려면 관련 인물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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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뇌물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 사업에 관련된 관청의 요식행위는 간단할 수도 있고 또는 절대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만약 어떤 서구의 사업가가 그의 사업운영이 관청의 까다로운 형식절차 때문에 제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본다면, 십중팔구 그가 관련인물에게 뇌물을 주지 않았거나 또는 그들에게 충분한 뇌물을 주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첨단산업에 참여하고 있는 어느 다국적기업의 한 중역간부는 필자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해주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현지의 유통공급업자들을 우리의 고용인들로 교체할 경우 사업실적은 즉시 상승합니다. 그러나 이제까지 나는 한국에서만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의 한국 유통대리인들은 누구에게 뇌물을 주어야 하는지 알고 있지요. 우리는 그런 짓을 할 수 없다보니 그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어요.”

▪  사회∙정치적 불안정
  1989년 5월, 서울에 있는 미국농업통상위원회 사무실에서 화염병이 폭발했다. 그것은 오랫동안 연이은 대한민국 정부와 미국인들에 대한 테러행위였다.
  한국의 민족주의자들과 좌익분자들은 미국인들을, 분단된 한국을 고수하고 있는 정부의 지원자로 보고 있다.
  많은 서구기업들은 불확실한 한국의 정치적 미래때문에 규모가 큰 장기투자를 꺼려왔다. 대만이나 중국의 경우 중국인들간의 내적인 노력의 결과로 적어도 그 분야의 문제는 해결되었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어느날 아침 잠에서 깨어나보니 미국과 소련이 그들 민족을 두개의 나라로 분할시킨다고 결정했음을 알게 된 꼴이었다. 양측은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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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된 한국을 각각 점령했다. 한국인들은 한국의 분단을 개탄하고 있으며, 정치적 불안은 한국민이 하나의 민족으로서 다시 통일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두 강대국들은 그들 스스로가 함정에 빠졌고 한국은 그들 사이에 갇혀버렸다. 소련은 북한에 군사원조를 제공했고 미국은 남한에 대규모 병력을 주둔시키고 있다. 최근에 양측은 화해하고 싶어하는 기미가 보이지만 상대가 철군으로 인하여 발생되는 군사력의 공백을 이용할까 두려워 먼저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민족은 이제 난국을 서서히 벗어나고 있는 듯하다.
  1990년 6월 4일 한국의 노태우 대통령은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미국방문을 마치고 귀환하는 길에 샌프란시스코에서 그를 만나기 위해 갑자기 비공식 여행을 했다. 그들의 회담은 비공식적인 것이었지만 앞으로 더 깊은 협의를 위해 문호가 개방된 것이다.

▪  도시화
  한국의 인구는 불편할 정도로 도시집중화가 되어 있다. 한국인 열명 가운데 여섯명이 도시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들 가운데 4분의 1이 서울에 거주한다. 정부는 전국에 걸쳐 경제활동의 중심을 재편성해서, 시골에서 도시로 집중되는 이주현상을 막아보려고 시도하고 있으나 이제까지 그러한 계획의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금세기 말까지는 한국인 열명 가운데 여덟명이 도시에서 거주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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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민족
  한반도에는 시베리아족, 몽고족, 그리고 만주족들이 계속 이주하여 정착했으며 이들은 토착원주민들과 혼혈로 흡수되어버렸다. B.C.11세기에는 중국의 한나라 사람들이 역시 반도에 이주하기 시작했다. 한국민족은 이렇게 다양한 문화의 혼합과정을 통하여 하나로 정착되었다.
  한나라로부터 이민이 시작되었을 당시 한반도의 원주민들은 원시중교 즉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 나무, 무생물 그리고 바람과 샤머니즘을 믿었다. 이러한 원시종교의 한 형태가 아직도 한국에는 존재하고 있다. 샤머니즘은 중국의 문화적 영향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지만 기타 여러가지 한국인의 문화적 관습은 중국인들의 선례에서 발전된 것이었다. 중국의 문화적 영향을 흡수함과 동시에 한국은 역시 이러한 영향들을 일본에 전수시키는 역할을 했다.
  고대에 한국에서 온 이민자들은 일본 섬에 정착하도록 장려되었다. 후에 위험한 해상여행을 단축하기 위하여 중국의 동부 해안지방으로부터 일본에 이르는 교역통로가 아주 자연스럽게 한국을 통하여 개발되었다.

▪  중국의 영향
  문화적으로 그리고 지리적으로 한국은 중국과 일본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중국은 한국과 인접해 있고, 규모와 문화적인 오랜 역사 때문에 한국문화의 발전에 있어서 주된 영향을 끼쳤다. 일본도 훗날 한국 문화에 군림했지만 일본 문화의 영향은 쉽게 드러난다. 그것은 중국 문화처럼 깊이 뿌리를 내린 것은 아니다. 여러가지 관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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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한국인들은 중국인들보다 더 중국식이다. 그들은 중국인들 스스로가 포기해버린 전통적인 중국의 관습과 관념을 지켜왔다.
  최근에 필자는 한편의 한국 영화를 보면서 한국과 중국간의 문화적 유사성에 대한 깊이 때문에 놀랐다. 이야기의 내용은 1세기 전의 한국에서 중국것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똑같은 것이었다. 나는 한편의 중국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았고 다른 점이라면 언어와 특이한 한국의상 그리고 여인들의 헤어스타일뿐이었다.
  한국인들은 중국식 이름을 포함하여 중국 문화의 모든 면을 수용했다. 중국 한자는 일세기 전까지도 한국에서는 공식적인 문어였다.
  일본에서처럼, 한국에서는 심지어 오늘날에도 서예에 숙달하지 않으면 지성인 또는 교양인으로 간주될 수가 없다.
  전통적인 한국의 계급제도는 중국과 아주 유사하다. 그것은 네가지 신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일 높은 수준인 선비계급에는 모든 관리들과 관료급 인물 그리고 무관계급을 소유한 자들이 포함되었다. 전문직을 가진 사람들이 그 다음 계급에 높여 있다. 농부들과 장인들은 세번째 계급신분을 구성하는 사람들이었다. 가장 낮은 계급은 천한 직업에 종사하는 자들로서 예를 들면 하인, 도수부, 광대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한국의 계급제도는 궁극적으로 1900년대 총 일본의 점령하에서 사라졌다. 일본인들은 모든 한국인들을 사회적 신분과 지위에 관계없이 잔인하게 다루었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제2차세계대전이 끝남과 동시에 일본인들이 물러갔으나 구시대의 계급제도는 부활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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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교의 영향
  불교는 고대 한국의 여러 국가에서 수세기 동안 국교로 인정받았으며 현재도 한국에는 많은 신도들이 있지만, 유교는 하나의 종교이자 사회규범의 철학으로서 한국인의 가치관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본질적인 역할을 했다.
  한국의 어린이들은 엄격한 규율에 따라 성장된다. 복종은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이다. 심하고 빈번한 매질은 예사이다. 어린이들은 부모들의 절대적인 소유재산이며 고유한 권리는 없다. 그것은 공자의 가르침이 내포하고 있는 인내와 복종의 교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부모들에 의해 엄격하게 훈육된 어린이들은 어느 곳에서나 그들의 부모와 마주하게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성장한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의 지도자와 남편 그리고 그들의 운명에 대해 순종적이다. 한국인 또는 심지어 다른 아시아인들도 겸손과 친위에 대한 순종, 자식으로서의 의무 그리고 그들의 운명론적인 자세는 천부적으로 타고난 것이다. 이와 똑같은 가르침에 따라 성장한 서구인이라면 그들도 이와같은 성품을 보일 것이다.
  유교적인 가치관을 지닌  지식인들은 한국 사회에서 상당히 존경을 받는다. 한국인들 사이에서 교육의 질적 수준은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가족들은 항상 어린이들에게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  한국에 있어서의 일본의 영향
  16세기부터 일본인들은 한국을 중국에 대한 침략과 정복을 위한 발판으로 생각해왔다. 도요또미 히데요시는 일본을 그의 지배하에서 통일한 즉시 명나라 정복을 위해 힘을 기울였다. 1592년 봄, 히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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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그 계획의 첫 단계로 한국을 침략했다. 일본인들은 무차별하게 한국을 약탈했다. 전쟁은 기근을 가져왔고 기근은 질병을 초래했다.
  명나라 황제는 조선의 지원요청을 받아들였고 조선은 그에게 조공을 바치는 나라로서 그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었다. 그는 조선병사들과 함께 지원군을 전투에 투입했다. 대결은 1598년 히데요시가 죽을 때까지 지루하게 계속되었다.
  필자는 미국인 비지니스맨과 한국인 대표단 사이의 상담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미국인은 전에 아시아에서 거래를 해본 적이 있었으나 오직 일본인들과의 거래관계였다. 그는 자신이 공정한 사람이며 아시아 문화를 존경한다는 것을 과시하고 싶었던 나머지 일본에서 그가 체험했던 일화들을 들추어내어 일본인들을 칭찬했다. 마침내 한국측 대표단의 리더는 더이상 그의 말을 듣고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일본인들을 경멸합니다! 그 사람들에 대한 얘기는 다시 꺼내지도 마시오!”하고 그는 감정을 폭발시키고 말았다.
  일본의 점령하에서 그토록 잔인하게 취급받지 않은 대만인들과는 달리, 모든 한국인들은 그들이 일본과의 체험을 통해 얻은 어떤 이익도 인정하기를 거부한다. 차라리 그들은 일본의 사악한 착취를 당하면서 살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5백만명이 넘는 한국인 남자들이 강제노동수용소에 징용으로 끌려갔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한국의 젊은 여성들과 가정주부들 그리고 어머니들이 그들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강제로 일본군에 의해 공식적인 군대의 창녀로 끌려갔으며, 밤낮 끊임없이 줄을 지어 출입하는 일본병사들의 성적 욕망을 충족시켜주어야 했다.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점령기간 동안 일본의 영향은 훗날 한국의 산업화에 기여했다. 대만인들처럼 한국인들은 위력적인 일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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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의 노동윤리를 체험함으로써, 비록 그것이 그들에게 잔인하리만치 강요된 것이기는 했지만 이용가치를 터득했던 것이다. 근로자의 자부심 역시 일본인들로부터 배웠던 것이다.
  한국산 상품의 질은 일본제품의 기준에는 미달하고 있지만 그것은 중국인들의 조악한 상품보다는 훨씬 능가하고 있다. 완전무결함을 추구하는 일본인들은 대만인들처럼 상품의 질적 수준을 비슷하게 개발해나갔다.
  국가적 차원에서 볼때 한국은 일본의 모델을 따라 대규모의 종합상사 개발을 장려했다. 한국의 경제정책은 일본의 경우와 같이 규모가 크고 경쟁력이 강한 기업들의 편익을 위해 기획되어왔다.
  어떤 서구의 학자들은 심지어 한국의 교육 및 법률제도는 일본의 영향에 의한 산물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경쟁이 치열한 한국의 입시제도와 법률제도, 인권에 대한 관습화된 무관심은 분명히 고대 중국인들의 전형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이가 든 한국의 노년층 세대들은 개인적으로 일본의 영향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지만 그 영향은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놀라운 일임에 틀림이 없다. 그 세대의 공식적인 교육은 전적으로 일본인들에 의해 실시되었다. 그들이 배운 역사와 문학은 한국어가 아니었고 일본어였다. 한국 학생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일본을 방문하도록 장려했다. 이런 방법으로 일본은 식민지 국민과 모국간의 결속을 강화하려고 했었다.
  한국인들이 일본인들을 가장 많이 닮았다고 하는 부분은 현대식 사업과 무역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나타난다. 한국에서 사업이란, 특히 국제간의 거래는 전적으로 20세기에 들어서서 나타난 현상이다. 동시에 그 시기에는 한국이 일본의 지배하에 있었던 것이다. 한국인과 일본인들은 같은 시기에 서구식 사업경영을 배웠으며 비슷한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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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을 개발했다.
  마지막 세대들은 일본의 지배하에서 성장했으며 그들중에 오늘날 사업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중요한 지위를 가진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러가지 면에서 일본인과 같은 처신을 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현상은 그들의 과묵한 협상 스타일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으며 보다 개방적이고 구변이 좋은 한국의 노년세대는 그들이 교육받은 기준이 되는 일본인 사회의 예절과 가치관을 지키고 있다.
  이들 세대에서 일본의 영향으로 인한 더욱 놀랄만한 또 다른 증표로, 술을 마시고 기분이 거나해지면 일본군가를 부르기 시작하는 것을 들 수 있다. 그들이 오늘날의 일본인들에 대해 어떤 의식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든지간에 이것은 그들이 젊은 시절에 불렀던 노래들인 것이다.
  아시아의 다른 어느 지역에서와 마찬가지로, 지난 수십년 동안 한국에서도 여인들의 역할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것은 아마도 일본의 영향을 받은 탓일 것이다.
  한국과 일본은 남성지배의 사회이다. 한국이 그 자신의 제도를 이어 받았다면 달리 발전되었을 것이다. 1895년 후반에 한국은 민씨성을 가진 한 여인에 의해 통치되었다. 그녀는 한반도에 뻗친 일본의 세력에 대해 완강히 거부한 강력한 지도자였다. 마침내 그녀는 한국에 대한 일본의 식민지화를 위한 음모로 인해 일본인들에 의해 시해되었다.

▪  한국인들의 공통된 성격
  한국인의 성격은 중국인과 공통점을 많이 가지고 있다.
  한국인들은 과묵한 일본인보다 개방적이고, 표현적인 북부 중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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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과 비슷하다. 중국인들처럼 그들은 미국인의 개방성을 좋아한다. 한국인이 어떤 다른 사람을 좋아할 때 그는 열렬한 자기의 감정 표현을 억제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대화를 나누면서 어떤 한국인 상대에 대해 증오감을 느낄 경우에는 이러한 감정을 일본사람들보다 쉽게 알아차릴 수가 있다.
  단체의 이해관계에서 선택적인 입장에 직면하게 되었을 때 모든 중국인들처럼 한국인들은 자신의 이익에 따라 결정할 것이다. 이와 반대로 일본인들은 단체의 이익을 위해 그들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중국인들처럼 한국인들은 그들의 약속을 이행함에 있어서 일본사람들에 비해 신중하지 못한 편이다. 그들은 조건이나 상황변화에 따라 그들이 내놓은 약속에 대한 이행의무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구사회에서 이러한 자질은 윤리적 관점과 깊은 관계가 있다. 한국인들에게 이러한 자질은 문화적 차이라는 점을 명심해 둘 필요가 있다. 즉 그들에게 있어서 실천윤리는 어떤 특별한 부분이 아니다.
  서울에서 혼잡한 러시아워를 겪어보면 한국인과 중국인 운전자들은 똑같은 학교에서 운전을 배웠다는 것을 당장 실감하게 된다. 그들은 각자 그들만의 교통법규를 만들어 날아갈듯이 운전한다. 시끄러운 브레이크의 마찰음과 요란한 경적소리는 완전히 무질서를 방불케 하지만 사실상 차량소통은 잘 이루어진다.
  한국인들은 상품을 구매하는데 있어서 조금은 별난 것을 찾는 일본인이나 중국인과 아주 닮았다. 그러나 그들은 덤을 주는 행위가 서양인들 사이에는 일반적인 관례가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관행을 오직 아시아인들 사이에서만 써먹는다.
  얼마 전에 필자는 로스앤젤리스에서 한국인이 소유한 의류상점에 들러 쇼핑을 했다. 주인은 내가 구매한 2백달러 상당의 상품을 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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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후 그는 내게 12불짜리 머리핀은 계산하지 않았다고 정중하게 얘기했다. 한국인으로서 그는 모든 아시아인들이 무엇인가를 공짜로 주리라고 기대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 것이었다. 이제는 나 역시 서구인의 상점에서 쇼핑을 하는 것이 아주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이러한 제스처는 내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
  한국인들은 굉장히 경쟁적이며 특히 다른 아시아인들에 대해서 그러하지만, 이러한 경쟁적인 태도는 서구인들의 눈에는 별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 질투와 험담, 그리고 비판은 다른 사람들의 진지한 노력을 과소평가하고, 때로는 심지어 친구들 사이에서도 그런 현상을 보인다.
  일본인이나 중국인과 마찬가지로 한국인들은 역시 누가 누구에 비해 우세하다든가 또는 열세하다는 비교적인 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두사람간의 사회적인 상호 연관관계는 그들의 신분을 비교함으로써 결정된다. 모든 아시아인들처럼 한국인들도 역시 체면의 유지와 손실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한국인들은 걱정이 많은 사람들이다. 그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하나의 생활적인 단면이다. 한국인들은 모든 일이 자신의 생각대로 잘 되어가리라고 믿지 않는다. 즉 그들은 걱정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닥쳐올 현실을 그대로 수용하기보다 모든 생활적인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전략을 세우고 계산하기 위한 그들의 궁핍때문에 기인된 것이다.
  한국인들에게는 이런 속담이 통용되고 있다.
  ‘어떤 남자의 진짜 성격을 알고 싶으면, 그가 고스톱을 치거나 또는 술마시는 것을 지켜보라.’
  한국인들은 모든 아시아인들과 마찬가지로, 일상생활에서 세속적인 일들을 관찰하면서 인간성을 배우며, 그런 과정에서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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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은 어떤 사람의 단점을 끌어내는 것이다.

▪  아시아의 아이리쉬인들(IRISHMEN)
  의심할 여지없이 한국인들이 일본인, 중국인 그리고 다른 아시아인들로부터 구분되는 특징은 그들의 다혈질적인 감정이다.
  그들은 흔히 ‘아시아 속의 아이리쉬인’이라고 불리워진다. 그들은 금새 화를 냈다가도 빨리 화해를 한다. 그들은 남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거나 또는 남들 앞에서 공공연하게 감정을 표현하는 유일한 아시아인들이다. 그들은 다혈질에다가 질투심이 많고 고집이 세며, 잘웃는 습관이 있다. 때때로 이러한 특징들은 불과 몇분 사이에 모두 드러나기도 한다.
  한국인들은 장난을 좋아한다. 그들은 일종의 자조적인 해학을 즐긴다. 한국인들의 코미디는 막스브라더즈의 영화와 공통점이 많다.
  그들은 역시 사교적이다. 한국인들은 술마시는 것과 주량에 대해서는 유명하다.
  한국의 어느 비지니스맨은 자신을 비롯한 직장인들이 퇴근후 저녁시간을 어떻게 소일하는지에 대해 내게 설명을 해주었다.
  “저녁식사 후 우리는 1차, 2차로 술집에 가지요. 우리는 걸르지를 않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미국 사람들처럼 술때문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지요.”
  나는 그에게 다시 물었다.
  “당신들은 가끔 술을 마시나요, 아니면 매일 마시나요?”
  “우리는 매일 그래요. 하지만 우리는 알콜중독자가 아니라구요.”
  그의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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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남자들은 심지어 사업적인 결정을 하는데도 매우 감정적이다. 만약 어느 누가 감정적인 기분을 제대로 맞춘다면 한국인 결정권자는 흔히 즉흥적으로 호의적인 응수를 해올 것이다. 한편 한국인은 일본인과는 달리, 상대가 자기와는 반대편 입장을 취하면 예의와 겸손을 좀처럼 차리지 않는다. 한국인들의 노여움은 무서우리만큼 뜨겁게 달아오를 수 있다.
  몹시 화가난 어느 이탈리아인 가죽제품 도매업자는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와 거래를 하는 한국인 공급업자를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를 모르겠어요. 내가 그를 죽여야 할지 아니면 내가 자살을 해야할지 말입니다.”
  역사적으로 한국은 막강한 대륙의 세력때문에 항상 위협을 받아왔고, 다른 한편으로는 군국주의 일본의 위협을 받아왔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를 극복하고 그들은 확고한 민족주체성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은 거의 끊임없이 이웃들의 약탈적인 행위때문에 자신을 방어하는 전쟁에 시달려왔다.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아니 어쩌면 이러한 과거 때문에, 한국인들은 천성적으로 평화를 사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국인들은 전쟁을 해야 할 경우 용감하고 무서운 용사들이다. 미국의 동맹으로 월남전에 참전한 한국 군인들은 용감한 전사로서 명성을 얻었다.
  한국인의 고집은 그들과 사업거래를 해야만 하는 상대방에게 커다란 당혹감을 주는 원인이 되기도 했지만 그것은 하나의 가치있는 특징이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심지어 일본의 지배가 끝난지 거의 반세기가 지났어도 일본인들은 한국인들의 가슴 속에서 내연하고 있는 고집스러운 분노를 결코 진정시킬 수가 없는 것이다. 일본인들은 대만에서 똑같은 기간의 지배를 끝낸 후 대만인들의 자세를 수습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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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 괄목할만한 진전을 보았다.
  나는 어렸을 때 가끔 대만 주민들이, 중국의 국민당 정부 치하에서보다 일본인들이 통치할 때에 훨씬 더 나은 생황을 영위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심지어 오늘날이라도 공공연하게 위험을 무릅쓰고 이러한 감상적인 표현을 하는 어떤 한국인이 있다면 아마도 그는 응급치료를 받아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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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게임을 위한 준비

제 1부 아시아의 마음 이 책은 독자들로 하여금 외형적인 내면보다 내면적인 외형을 관찰함으로써 아시아인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것이다. 이러한 이해에 도달하기 위해 독자들은 모든 선입견적인 관념을 털어버려야 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10. 장애물 경주

제3부 역사는 훌륭한 스승이다. 아시아를 이해하려면 먼저 중국을 이해해야 한다. 중국의 문화는 고대적인 유풍을 지녔기 때문에, 다른 아시아인들의 문화적 뿌리이기도 하다. 필자가 중국과 중국인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하는 내용 가운데 많은 부분이 다...

11. 중국은 서양을 어떻게 보는가

11 중국은 서양을 어떻게 보는가 ▪ 서구세계에 대한 첫 경험 18세기에 볼테르(Voltaire)는 중국 확실의 도덕성과 조직성은 세계가 체험했던 것 가운데 가장 훌륭한 것이라고 썼다. 거짓말같은 중국의 부에 대한 여행자들의 이야기는 유럽 황실 건축가들의 ...

12. 아시아의 역사와 문화

12 아시아의 역사와 문화 ▪ 염제의 황제의 후손 일본민족이 있기 전에, 그리고 한국민족이 있기 전에, 중국민족이 존재했다. 중국의 역사기록은 B.C. 2697년에 시작되었다. 그 기록에 의하면 중국민족은 염제와 황제의 후손들이라고 쓰여 있다. 중국의 신화...

13. 중국인의 속마음

13 중국인의 속마음 ▪ 중국의 계급제도 금세기까지 중국 사회는 수천년동안 변하지 않은 하나의 계급제도로 형성되어왔다. 전통적인 중국사회에는 네가지 부류의 계급이 존재했다. 즉 선비(학자)계급이 가장 높은 재위를 차지했으며 계급이 내려가는 순서로...

14. 대만의 번영

14 대만의 번영 20년전 대만의 한 젊은이가 대형 체인망을 갖고 있는 어느 미국백화점의 구매사무소에 들어섰다. 전에 한번도 미국에 와본 적이 없는 그는 화려한 현대식 사무실에 들어서자 긴장하고 두려웠다. 그는 사무실 입구의 프론트데스크에서 들고...

15. 성장의 그늘

15 성장의 그늘 ▪ 공해 아무런 대가를 치루지 않고 대만의 경제성장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환경은 피폐해졌고 여전히 환경에 대한 현실적인 관심은 없다. 최근에 타이완의 한 재벌 기업가가 대만 대학의 학생단체에서 연설을 했다. 그는 연설을 끝내...

16. 대망

제4부 거듭 살아남은 사람들 한국문화는 고대 중국의 영향과 일본의 점령, 그리고 민족적 단일성에 대한 강한 의지의 혼합체이다. 두 강대국들 사이에서 시달리면서도 한국인들은 순결한 의지와 결단력으로 살아 남았다. 이제 한국은 세계무대에서 중요한...

17. 성공적인 처신

제 5부 게임은 끝나고 17 성공적인 처신 ▪ 인정 일본, 한국, 그리고 중국의 문화는 인정에 대한 공자의 개념에 의해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이 개념은 세 나라의 언어에서 똑같은 중국어로 표현되며, 영어로는 ‘human feelings’로 번역된다. 그것은 ...

18. 미국은 종이호랑이인가

18 미국은 종이호랑이인가 미국은 심각한 경제문제에 직면해 있다. 연간 2천억달러에 이르는 예산적자와 함께 자신의 미래에 역행하는 빚을 짊어지고 있으며, 빚에 대한 상환시기는 급속히 다가오고 있다. 미국의 중공업은 노후한 기술로 운영되고 있으...

2. 시장은 전장이다

2 시장은 전장이다 ▪ 역사를 현실의 거울로 삼는다 서양의 사업가들이나 정치인들이 아시아인들과 상대할 때 흔히 당혹감을 느끼게 되는 이유를 이해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실상 아시아인들은 서양인 상대자들보다도 훨씬 더 정확하게 다듬어...

3. 손자병법

3 손자병법 4세기의 병법의 대가 손자에 의해 저술된 손자병법은 현재까지 전래되어온 군사전략서 가운데 가장 완벽한 책이다. 그것은 또한 현대의 독자들에게 가장 널리 읽히고 있는 병서이기도 하다. 이 책은 13편의 소단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론을 ...

4. 삼십육계

4 삼십육계 36계란 모든 상황에 대처하는 처세방법을 다룬 고대중국인들의 전략전집이다. 이것은 잘 알려진 일종의 중국 민속문학으로 약 천오백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전집은 6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부에는 6개 관련 전략...

5. 후안흑심

5 후안흑심 1911년 성도일보는 이충창씨가 쓴 후흑론이란 제목의 수필을 연재하기로 했다. 이 수필은 3회에 걸쳐 연재할 계획었었으나 첫회분이 실리자마자 격렬한 반응을 일으키는 바람에 나머지 연재분을 발표하지 못했다. 그후 얼마 안있어 이 에세이는...

6. 일본은 300년 동안 배타적이었다

 제 2부 개미 민족 다음 4장에 걸쳐 쓰여진 내용은 이미 백년 전에 일본인들이 구체적으로 설계했던 국가개발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그들은 이미 이 책의 앞 부분에서 논했던 속임수의 원리를 이용하여 그 계획을 추진해 나갔다.  6 일본은 3...

7. 미덕과 위선

7 미덕과 위선 나는 서구의 학자들이 집필한 현대 일본에 대한 저서들을 읽으면서, 저자들이 모든 내용을 일본인의 입장에서 의견을 개진한 무비판적인 태도에 놀랐다. 일반적으로 서구인의 동양관은 아시아 문화의 고상함과 신비적인 내용에 대한 그들의 ...

8. 기업 사무라이

8 기업 사무라이 ▪ 사무라이의 기원 표면상으로 볼 때 일본은 현대산업사회이다. 그러나 내면적으로는 봉건군주사회의 과거에 깊이 뿌리내린 사회이기도 하다. 일본인들은 아직도 사무라이 전통에 얽매여 있다. 일본을 이해하려면 누구나 이전통에 관련된 ...

9. 모리따와 이시하라

9 모리따와 이시하라 소니(Sony)사의 회장 아키오모리따와 전 일본 운수성장관 신따로 이시하라가 공동저술한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The Japan That Can Say No)’ 이란 책은 1989년 일본에서 처음 출판되었다. 모리따와 이시하라가 저술한 내용은 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