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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워싱턴D.C로부터

Views 553 Votes 0 2016.01.06 02:12:11

13

13-워싱톤 DC로부터.jpg

 

 

The Case Uncovering From Washington D.C

 

 


Maintaining a cooperative relation with Jack Anderson
And Peter Stockton, U.S. congressional special investigator,
Chong Man Yoo continues to report
the situation pertaining to the case privately
to one of the highest ranking officers
in Korean government,
as the Wall Street Journal
and Los Angeles Times release the news.
But he didn’t obtain any kind of response from Seoul government,
and keeps in touch with……
Jim K. Shin, who kept in silence in Hawaii,
Makes intentionally and interview with Korean newspaper……

 

 


워싱턴 D.C로부터

 

 

 

  유종만의 충정된 보고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반응은 전무했으나 그의 일방적인 보고와 언론을 포함한 미의회와의 내밀한 접촉은 계속되었다.
  88년 4월 27일 유종만은 워싱톤 D.C의 잭 앤더슨으로부터 노드롭사건과 관련하여 전화를 받고 상호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네번째 보고서에서 밝히고 있는데, 주요골자는 한국정부와 고위층인사가 노드롭사건으로 인하여 한미간에 여론의 대상이 되는 것을 우려한 나머지 잭 앤더슨은 유종만에게 미하원 조사위원인 피터 스탁튼을 만나 한국 측 입장을 대리하여 상호협조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 보라고 권고했다는 것이다.

……앤더슨의 깊은 배려에도 공감이 되오나 본인의 신분으로서는 이 사건에 직접 관여할 수 있는 어떤 명분을 지니지 못한 처지이오니 고위층의 지시나 훈령이 없이는 임의로 피터 스탁튼을 만나 어떤 의견교환이나 협의도 할 수 없습니다. 피터 스탁튼은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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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간 워싱톤 D.C로부터 로스앤젤리스에 출장하여 본인과 면담을 요청하였으나 본인으로서는 일단 보류해 놓았습니다. …… 한국정부에 도움이 된다는 명분이 가지고…… 어떤 지시가 있으면 그를 만나서 최선을 다해 볼 뜻이 있습니다.
  금일 동 사건과 관련하여 잭 앤더슨이 친서를 곧 보내겠다는 뜻을 전달 받았습니다……

  이상은 4월 27일자의 유종만의 보고서에 나타난 주요대목이다.
  동년 4월 29일 유종만은 피터 스탁튼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미하원의 에너지상업 소위원회가 비공개리에 동 사건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는 한편, 노드롭사의 관계 임직원들의 소환심문과 자료 제출을 지시했다는 것을 통보 받았다는 사실을 역시 5월 4일자 그의 보고서에서 밝히고 있다.

  피터 스탁튼은 5월 1일 로스앤젤리스에 와서 노드롭사의 모임원을 소환심문했으며, 본인에게 수차례 전화로 면담을 요청하여 지난 5월 2일 오전 그와 만나 면담을 했습니다. 본인은 미하원 조사위원회의 …… 조사업무에 협조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으며, 본인은 한국정부와…… 어떤 영향이 미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는 협조하겠다는 언질을 주었습니다.
  그는 본인의 제안에 동의하였으며 불원간 한국에 출장하여 관계자들과 면담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그는 본인에게 본인이 소지하고 있는 관계자료를 검토할 수 있도록 협조를 부탁했으나 현재로써는 거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현시점에서 동 사건과 관련하여 본인이…… 어떻게 그의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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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대처해야 할지 조속한 시일 내에 하명이 있기를 바랍니다.

  역시 서울로부터 어떤 지시나 하명도 없었고 과연 상기와 같은 보고서들이 전달되었는 지도 확인될 수 없는 일이었다.
  피터 스탁튼과 유종만은 LA공항 근교의 힐튼호텔에서 회합을 가졌고, 노드롭의 임직원을 불러내어 환문조사를 처음 실시한 장소도 힐튼호텔이었다.
  이때 미하원 관계조사위원회는 피터 스탁튼에 의해 동 사건의 조사 방향에 대한 가닥을 정해놓기에 이르렀다. 말할 것도 없이 문제의 6백25만불이 호텔합작투자 대금인가 또는 판촉로비자금인가 하는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대외부정거래방지법에 대한 저촉여부였다.
  어떤 동기와 이유에서 시작되었건 유종만은 자신의 의도대로 만들어진 보고서와는 관계없이 결과적으로 미의회와 언론관계자들에게 적극 협조하고 나섬으로써 관련된 조사활동과 기사보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88년 5월 19일 노드롭사건을 취재한 첫 기사가 월 스트리트 저널지의 LA주재 여기자인 엘린 화이트 리드(Elleen White Read)에 의해 특종으로 보도되고 말았다. 이 첫 기사가 보도됨으로써 자극을 받은 것은 LA타임스지의 기자 랄프 바터베디언과 유종만이었다. 유종만으로부터 동 사건에 대한 상당한 정보를 입수하고 기사보도를 위한 D데이를 잡기위해 유종만과 줄다리기를 하고 있던 바터베디언은 월 스트리트 저널에 기선을 빼앗긴 사실에 대해 몹시 아쉬워했다.
  그러나 그는 월 스트리트 저널과는 정보의 출처가 다를 뿐더러 자료의 내용과 양적인 면에서는 월 스트리트 저널을 훨씬 능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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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 스트리트 저널지의 기사는 미하원 조사관계자와 노드롭측의 제보로 작성된 것으로 물론 문제의 6백25만불이 F-20 전투기 판매를 위한 판촉자금인지 호텔투자대금인지 의문을 제기했으나 대체적으로 노드롭 측의 주장을 보도하고 있었다.
  5월 19일 이른 아침 LA 타임스의 랄프 바터베디언은 유종만의 자택으로 전화하여 월 스트리트 저널지의 기사보도를 알려주고 자신도 즉시 기사를 발표하겠다고 하자 유종만 역시 어쩔수 없이 동의했다. LA 타임스지는 5월 19일 석간신문과 5월 20일 조간신문에 연속 특종기사로 보도해 버렸다. 충분한 정보와 자료를 가지고 있던 랄프 바터베디언은 노드롭사건의 내막에 제법 깊숙이 접근한 구체적인 기사를 내놓았던 것이다.
  ‘노드롭사의 한국과 거래 조사 중’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엮어낸 랄프 바터베디언은 신광수가 존스 회장에게 보낸 86년 12월 1일자의 서신을 포함하여 많은 자료를 유종만을 통하여 입수해 놓고 있었고 미의회로부터 간접적인 확인도 한 것이었다.
  5월 19일 아침 월 스트리트 저널지의 기사를 본 유종만은 동지의 LA주재 엘린 화이트 리드에게 전화하여 편파적인 보도가 아니냐고 항의조로 나오자 상대방은 두말 할 것 없이 유종만에게 만나달라고 요청했다. 동 사건에 대해 제보를 해주면 그대로 보도하겠다는 것이었다.
  이제 유종만의 행동반경은 점점 확대되어가고 있었다.
“ 유형. 어떻게 할 작정으로 또 월 스트리트 저널 기자와 만나겠다는 겁니까?”
“ 생각해 보세요. 이형도 기사를 봤잖아요. 월 스트리트 저널에서는 노드롭 측의 말만 듣고 기사를 쓰고 있다구요.”
“ 이왕 공개되어 버린 것이니까 별다른 선택은 없겠지만 기자들과의 상대는 조심해야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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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려마세요. 목표는 어디까지나 신광수와 노드롭이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에요. 랄프 바터베디언과도 약속이 되어 있었요. 한국정부에 대한 기사는 일체 보도하지 않는다는 조건에서 내가 협조해 주기로 말입니다.”
  그러나 월 스트리트 저널지의 여기자 엘린 화이트 리드를 만나고 돌아온 유종만이 그녀로부터 얻어왔다고 하며 내놓은 자료를 보고 필자는 잠시 혼란스러운 생각과 막연한 분노와 배신감 같은 것을 느꼈으나 이내 침착해졌다. 유종만이 내보인 21페이지에 달하는 영문서류는 다름아닌 87년 8월 26일자에 유종만이 서명하여 한국의 고위층인사에게 보낸 보고서를 누군가에 의해 영문으로 번역된 것이었고, 잭 앤더슨에게 보냈던 영문판 보고서와는 달리 한글판 원문을 그대로 직역한 것인데 19페이지의 예민한 부분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누락되어 있었다.
“ 유형. 이거 어디서 입수했다고 하던가요?”
“ 미의회에서 얻어냈다고 하던데……”
“ 의회라고요. 그럼 미의회에는 누가 그 보고서를 제공했습니까?”
“ 그건 나도 모르겠어요.”
  유종만의 표정이 어설프게 변하고 있었다. 유종만 자신이 미의회에 제공하지 않았다면 한국의 고위층 주변에서 미의회에 넘겨주었다는 결론밖에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 그럼 한국정부 측에서 제공했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그렇다면 왜 이런 자료를 내놓는다고 생각하세요.”
“ 그야 내놓을 가능성이 있다고 봐야지요. 한국정부의 인사들이 개입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말입니다.”
“ 그건 좀 곤란한 이유지요. 한국정부에 의혹을 갖기로 한다면 얼마든지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어요. 한국정부 측에서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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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를 미의회에 미리 던졌다면 이건 저자세라 이겁니다.”
  유종만이가 받아온 번역판 보고서 사본에는 다우 존스사(Dow Jones Co.)의 보도자료라는 스탬프가 찍혀 있었다. 유종만 자신이 미의회에 동 자료를 내놓지 않았다고 부인을 하니 정말 헛갈리는 문제였다.

  5월 20일 아침 유종만은 노드롭 측에 몇 번이고 전화하여 겨우 홍보담당 부사장 데일리(Daly)와 통화를 하게 되자, 그에게 노드롭 측의 비리를 호도하기 위해 그들의 일방적인 의견만을 근거로 하여 월 스트리트 저널지가 기사를 보도하도록 한 처사에 대해 항의를 하는 한편, 공정한 입장에서 공동당사자인 그들의 비리를 공개하겠다고 하자 상대는 더 이상의 논쟁은 하기싫다는 듯 전화를 끊어버렸다. 사실상 그것은 별로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노드롭의 대 한국 판촉로비에 관련했던 주요 간부인 수석부사장 웰코 개쉬, 부사장 도널드 폴즈와 부사장 제임스 도어시 그리고 재무담당부사장 윌리암 맥거 등은 동 사건에 책임을 지고 이미 노드롭사를 떠났고 변호사들이 사건을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노드롭의 임직원들은 변호사들을 통한 법률적 절차가 아니면 외부인과는 동 사건에 관한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는 것은 당연했다.
  5월 20일자로 유종만에 의해 발송된 보고서에 의하면 월 스트리트 저널의 기사보도를 제일 먼저 알고 있었던 사람은 역시 미하원의 조사위원인 피터 스탁튼이었다. 그는 5월 18일 LA타임스지의 랄프 바터베디언에게 전화하여 월 스트리트 저널지의 여기자 엘린 화이트 리드가 노드롭사의 대변인으로부터 정보를 제공받아 노드롭 측의 의견만을 토대로 한 기사를 보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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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사실을 통보하였다.
  여기서 한가지 주목할 만한 것은 동년 5월 1일 LA공항의 힐튼호텔에서 노드롭의 간부직원은 미의회조사관(U.S. Congressional Investigator)피터 스탁튼과 면담 과정에서 동 사건에 관련된 어떤 내용도 미의회의 조사가 끝날 때까지 대외비밀로서 처리하겠다는 약속을 했으면서도 노드롭 측은 동 사건에 관련된 자신들에 대한 미국 내의 불리한 여론을 의식한 나머지 고의적으로 자신들의 입장만을 변명하는 자료를 월 스트리트 저널에 제공함으로써 자신들은 한국 측 관련자들의 협잡과 음모로 인한 피해자인 듯 조작하려는 의도였다고 유종만은 보고서에서 주장하고 있다. 잭 앤더슨 역시 월 스트리트 저널의 기사를 접하고 깊은 유감을 표명하는 한편 노드롭의 비리를 칼럼으로 다루겠다는 뜻을 전해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잭 앤더슨은 동 사건과 관련된 칼럼은 단 한번도 발표한 적이 없었다.
  과연 노드롭 측이 고의적으로 외부에 기사보도를 위해 정보를 흘렸는지 당시의 상황으로는 판단하기가 어렵다. 월 스트리트 저널도 추후 기사보도에 있어서 유종만으로부터의 제보에 상당부분을 의존했고, 노드롭은 LA타임스지나 월 스트리트 저널지의 심층취재보도에 반박자료를 제대로 제시하지 못한 채 거의 침묵을 지켜야 하는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월 스트리트 저널지의 엘린 화이트 리드 기자가 미의회로부터 입수했다고 하는 87년 8월 26일자 유종만의 보고서를 보관하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쩌면 월 스트리트 저널지의 엘린 화이트 리드는 먼저 상기 보고서를 입수하고 검토한 다음 노드롭에 접근을 한 것으로 추측이 가능하다. 월 스트리트 저널지에 발표된 5월 19일자의 첫 기사내용을 보면 깊이가 없는 개괄적인 보도이며 대체적으로 미의회 쪽에서 얻은 단순한 자료인 데다가 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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롭 측으로부터 나온 자료라고 할 만한 내용은 별로 없었다. 그렇다면 엘린 화이트 리드는 번역판 보고서를 추후의 보도자료로서 활용하고자 보관하고 있었다는 것이된다.
  88년 6월 3일 LA타임스는 ‘임직원들의 의문제기에도 불구하고 노드롭의 대 한국 거래는 추진되다’(Northrop Deals With S. Korea Pursued Despite Officers’ Doubts)라는 제하의 장문기사를 보도하고 판매대리점 계약내용과 노드롭이 두차례에 걸쳐 도합 7백75만불을 지급한 과정을 상세히 다루고 있었다.
  뒤이어 동년 6월 8일 월 스트리트 저널은 ‘서울브라더’라는 제하의 특집기사에서 박종규와 사파리클럽에 대해서 상세히 언급하고 6백25만불과 1백50만불이 지급되는 과정을 심도있게 취재하고 있었다. 6월 16일자 동지의 기사는 미연방 법무성은 노드롭이 지급한 7백75만불은 해외부정거래방지법에 저촉되는지 여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미연방 법무성에서 조사를 시작했다는 것은 연방대심원에서 동 사건을 다룬다는 것으로 한국의 경우라면 대검찰청에 해당하는 기관으로 미의회의 조사와는 그 성격을 완전히 달리하고 있다.
  미연방 법무성에서 조사를 시작했다는 것은 연방대심원에서 동 사건을 다룬다는 것으로 한국의 경우라면 대검찰청에 해당하는 기관으로 미의회의 조사와는 그 성격을 완전히 달리하고 있다.
  미의회의 조사는 그 결과에 따라 관계기관에 고발조치를 하지만 연방대심원 (Grand Jury)은 조사결과에 따라 즉시 구속력을 갖기 때문에 이것은 바로 검찰의 수사를 의미하는 것이다.
  동 사건에 관련된 정보입수의 창구를 갖지 못한 한국의 언론들은 LA타임스지와 월 스트리트 저널지의 보도가 나온 다음날이면 번역발췌기사를 보도하면서 뒷북을 치고 따라다니기에 바빴다.
  한국 내의 신문보도와 시사칼럼이 제대로 방향을 잡지 못한 채 무성하게 발표되는 가운데 전두환 전대통령이 노드롭 측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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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백65만불의 커미션을 요구했다는 설이 보도되면서 박종규와 전두환 전대통령과의 인간관계까지 새삼스럽게 들추어내고 있었는데 연희동에 칩거하고 있던 전두환 측은 간단하게 관련설을 부인하고 나섰고, 토마스 존스 노드롭회장과의 접견록까지 공개하겠다고 하면서 결백을 주장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언론들이 의문을 제기하고 여론의 주목을 받은 것은 전두환 측근이 문제의 6백25만불 가운데 아직도 4백여만불 이상이 제3국의 은행에 예치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발언이었다. 그러면 전두환 측근은 이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느냐는 의문의 꼬리를 붙였는데 박종규와 전두환 두 사람의 인간관계 못지않게 미망인 이종원과 이순자 사이도 정기적인 모임에서 만날 정도로 가까웠고, 노드롭문제로 이면에서 고위층인사들과 만나 도움을 청하던 이종원이가 형부 이민하와의 불편한 관계를 하소연 하던 입장에서 이믾가 문제의 6백25만불 가운데 그 당시까지 얼마만큼의 금액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털어놓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민하가 86년 6월 하순에 안기부에서 조사를 받을 당시 문제의 자금에 대한 행방은 이미 소상하게 파악되고 있었기 때문에 전두환 측근이 이민하가 해외에 예치한 자금의 내용을 알고 있다는 것이 사실은 의혹을 갖게 하는 요인 중의 하나라고 볼 수도 없었다. 그보다는 관련의혹이 있다면 쉽게 드러나지 않는 이면에 있었을 것이다.
  88년 6월 17일자에 LA타임스지는 경제면 특집으로 신광수의 개인신상에 대한 폭로기사를 보도해 버렸다. 동지의 기자 랄프 바터베디언은 하와이까지 출장하여 신광수와 별거 중에 있는 신광수의 부인과도 인터뷰를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여러 경로를 통하여 탐문을 하고 돌아왔다. 그는 신광수가 과거에 나이트클럽 경영당시 불법 도박장 개장으로 입건된 사실을 포함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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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보도자료까지 입수하나 후 신광수의 개인신상과 가족관계, 과거 등을 소상히 파악하여 보도했고 이때 처음으로 박보석과 신광수의 관계가 공개되기 시작했다.
  동 기사가 보도되자 곤욕을 치룬 것은 신광수의 별거 중인 부인이었다. 집에까지 찾아온 LA타임스기자를 따돌리고 숨어 버린 신광수의 부인이 전화인터뷰라도 하자고 끈질기게 접근하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무심코 신광수는 평소에 하와이의 왕(King of Hawaii)이라고 자기자신을 표현했다는 말을 인용보도한 것이 화근이 되어 신광수는 그의 부인에게 욕설을 퍼붓고 난동을 부렸다고 한다. 그러나 신광수도 그의 부인이 기자들과는 전혀 만난 사실이 없다는 점을 알고 있었고, 이때서야 관련기사의 많은 부분이 유종만이가 제보했다는 심증을 굳히게 된것이다. 그 이전에도 이미 그는 유종만을 주목하고 있었던 것으로 훗날 진술했다.
  6월 17일자 기사를 본 유종만은 은근히 어떤 감정을 음미하고 있었다. 그는 ‘이제 신광수는 끝장입니다. 사회적으로 매장이에요.’하고 거침없이 지껄이며 자조적인 표정을 짓곤 했는데 신광수는 구속될 것이라는 얘기였다. 사실 유종만의 말처럼 그 당시 신광수는 적나라하게 그의 가면이 벗겨지고 사면초가의 상태로 막다른 골목에 몰리고 있는 처지였다. 노드롭사건에 관한 한 그의 입지는 강건너 불보듯이 뻔했다. 미의회와 연방대심원에서 그를 조사할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머지않아 연방국세청(IRS)에서도 그의 탈세혐의를 조사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마명덕이가 LA타임스와 월 스트리트 저널의 취재망에 포착된 것은 88년 5월 말에서 6월 초였다. 고 박종규의 보좌역으로 노드롭사건에 관한 한은 표면에 모습을 한 번도 드러내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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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마지막 비밀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라는 정보에 따라 LA타임스의 동경주재특파원 칼 소엔버거와 월 스트리트 저널의 극동담당 특파원 조셉 망구노(Joseph Manguno)등은 마명덕을 만나 인터뷰를 하려고 했으나 그를 추적할 때마다 번번히 실패하고 말았다.
  마명덕은 그들로부터 추적을 당할 때마다 묘하게 빠져나가곤 했고 이에 화가난 기자들은 그를 찾기에 혈안이 되어 계속 열을 올렸다. 그들은 마명덕이가 비장하고 있는 자료와 그의 증언이 노드롭사건 냄가의 마지막 카드라고 판단한 것이다. 또한 이러한 자신의 입장을 잘 알고 있는 마명덕이가 쉽사리 취재망에 걸려들 리가 없었다. 상당한 분량의 비밀문서를 챙겨가지고 한국을 빠져나간 맘여덕을 놓쳐버린 월 스트리트 저널의 특파원은 마명덕을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고 한다.
  사파리클럽 불법 도박장 운영에 관련된 혐의로 불구속 입건되어 있던 마명덕은 1심 공판에서 실형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항소했으나 항소심공판인 2심에서도 1심의 선고와 똑같은 판결을 받았다. 그동안 미국 시민권자로서 출국정지 상태로 한국 내에서 발이 묶여있던 마명덕은 출국정지가 해제되던 날인 88년 6월 16일 오후, 준비도 없이 황급히 그의 부인과 함께 마치 탈출이라도 하듯 김포공항을 떠나 하와이로 돌아왔다. 그 당시를 그는 이렇게 술회하고 있다.

  오랫동안 출국정지에 묶여있다가 풀려나고 보니 착잡했던 심정과 주변을 정리하고 싶은 생각에 한국을 떠났습니다. 출국정지가 풀리기 전날밤 갑자기 출국준비를 하느라고 잠을 설쳤고 그러는 와중에서도 노드롭사건으로 나 자신이 무고하게 피해는 입지 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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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노드롭은 아시아문화관광개발과 이민하와 미망인인 사모님을 포함한 모든 주주들을 상대로 고소를 했는데 주주도 아닌 나를 박회장의 보좌역할을 했다는 이유로 피의자에 포함을 시켰기 때문에 저로서는 노드롭에 맞고소라도하여 혐의에서 풀려나고 명예회복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자 반증할 수 있는 자료가 필요했던 겁니다. 그래서 보관하고 있던 모든 증빙자료를 챙겼던 것이지요.

  마명덕은 무려 50kg이나 되는 방대한 서류를 두 개의 가방에 나누어 챙기고 김포공항에서 출국수속을 거쳤다. 그저 무엇인가에 쫓기듯 황망하게 출국심사를 마치고 보세구역에 들어선 마명덕은 그때야 비로소 신세를 졌던 몇몇 친지와 인사들에게 전화로 출국인사를 했다. 그러자 어떤 인사는 그동안 그가 정신적인 고생을 많이 했다고 위로하며 다음과 같이 당부하더라는 것이었다. 미국에 돌아가더라도 지금까지 처신해온 것처럼 노드롭문제에 대해서는 조심을 해달라는 것과, 부득이한 사정으로 진실을 공개하더라도 마명덕을 조금도 오해하거나 탓하지 않을 것이며, 그는 마명덕이가 자의에서 내막을 털어 놓았다고 믿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 말을 거꾸로 생각해보면 비밀을 지킬 수 있는 한까지는 함구하고 처신하라는 당부이기도 했다.
  하와이공항에서 입국수속을 하던 마명덕은 세관검사대를 통과하며 너무나 긴장한 나머지 자기 스스로가 무슨 죄인이나 된 듯한 착각을 할 정도였다고 그 순간을 회상했다.

  과거 박동선사건이 바로 세관검사대에서 관계 비밀문서가 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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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어 꼬리가 잡힌 전례가 있었기 때문에 저는 세관을 통과하는 순간이 너무나 길고 초조하게 느껴지더군요. 두 개의 가방에 서류만 가득 채웠는데 거의 50kg나 되었어요. 다행히도 서류가방은 무사히 확인없이 통과되는 바람에 큰 시름을 놓게되니까 허탈한 기분마저 들었습니다.

  마명덕은 하와이에서 불과 몇 시간을 머무른 다음 6월 17일 밤 로스앤젤리스로 직행했다. 장모의 권유로 로스앤젤리스에 있는 유종만을 찾아간 것이 6월 18일 토요일이었다. 그는 서류만 가득 담긴 가방을 가지고 유종만의 사무실에 나타나 유종만과 필자를 함께 만났다. 마명덕의 일차적인 용건은 그의 장모의 권유대로 유종만을 만나 변호사 선임을 의논하는 것이었으나 우선은 변호사비용 지급방법을 놓고 유종만이가 중재를 해야 할 입장이 되어 일단 보류되었다.
  유종만은 노버트 슈라이에게 마명덕의 케이스를 의뢰하려고 생각했으나 마명덕이가 자신의 조건을 제시하고 노버트 슈라이가 수락하지 않는다면 예비적으로 신임해 놓은 변호사에게 찾아 가겠다고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노버트 슈라이가 마명덕의 케이스를 맡기 곤란하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그것은 다름아닌 노버트 슈라이가 한 때 노드롭케이스와 관련하여 신광수의 법률대리인 역할을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필자는 이들 두 사람에게 개별적으로 이 사실을 상기시켜주고 이해 상충된 경우라고 하자 노버트 슈라이에 대한 변호사 선임 계획은 무산되고 말았다.
  마명덕은 유종만과 만난 자리에서 어떤 서류도 내보이지 않고 변호사 선임문제가 무산되자 그의 행방에 대해 함구해 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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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부하고 뉴욕으로 떠났다.
  서울을 떠나던 날 오후에 마명덕은 월 스트리트 저널지의 특파원 조셉 망구노와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으나 그는 간다온다는 말도 없이 기자를 따돌렸고 이 사실을 모르고 있던 조셉 망구노는 마명덕의 행방을 추적하기에 열을 올렸다. LA타임스지의 동경주재 특파원 칼 소엔버거도 마명덕이가 미국에 들어온 것을 모르는 채 서울에서 행방을 추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유종만은 88년 6월 20일 여섯번째 보고서를 필자를 통해 작성해 놓고 서울로 출장을 떠났고 다음날 그의 부탁대로 팩시밀리로 보내주었다. 그것이 유종만이가 서명한 노드롭사건에 관한 마지막 보고서이기도 했지만 한번도 어떤 반응이나 회답은 얻어내지 못한 것 같았다. 그리고 이것으로 서면보고 행위가 끝난 것은 사태진전으로 보아 명분도 없어졌지만 머지않아 그럴 만한 이유가 불가피하게 발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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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F-20 Tiger Shark's People In the April of 1983, Northrop dispatched James K. Shin, a front-man for the lobbying activity to work out the marketing promotion of F-20 to Seoul, Korea. James K. Shin(Korean name : Shin, Kwang Soo...

3. 검은 돈 6백25만불 file

3 The Black Money of 6.25 Million Dollar  An undercover struggle between James K. Shin and Min Ha Lee continued, and a constant secret negotiation between Park, Chong kyu and Northrop's executive members to funnel the lobby...

4. F-20의 추락 file

4 F-20 Fighter Crashed During the late President Park's time, a power broker, Chong kyu Park countered with an ambush unexpectedly on the way of rebuilding his dignity. On October 10, 1984, a F-20 Fighter was exploded during the d...

5. 대통령의 커미션 요구설 file

5 A closed Meeting Between The President and Chair While C.K. Park's trusted assistant, Myung Duck Ma (Eric Ma) faces with a lyunch from the hoodlums hired by James K. Shin who was Ma's step father - in -law at that time, Park'...

6. 피스톨 박의 죽음 file

6 Pistol Park's Passing Away Park's death forcasted the stormy night, and the lobbying scandal falls into a whirlwind...... Breaking through a mine field , James K. Shin works out a hand-hand fight. Stepping into a self- made ...

7. 신사협정 file

7 The Settlement and 1.5 Million Dollar's Gentlemenship While Northrop was not able to recover even a penny of 6.25 million dollar through the settlement negotiation with Korean counter partner, U.S. aircraft maker paid 1.5 mil...

8. 신광수의 1차보도계획 file

8 James K. Shin's First Failure In Buying off News Media Jim K.Shin, ostracized from Northrop and Min Ha Lee, makes an attempt in slandering and blaming Min Ha Lee and Chong Won Lee through one of Korean community newspaper in ...

9. 맞불지르기 file

9 Shin's Confidential Letter and Northrop's Counter Fire Due to a breakdown of the negotiation with Nothrop behind the scene, a long story letter prepared by James K. Shin was sent to Thomas V. Jones, Chairman of Northrop, and ...

10. 50만불의 지급약정 file

10 A Half Million Dollar's Pa ment Agreement Northrop, who already gave up to recover 6.25 million dollar, takes the related case to the Korea Commercial Arbitration Court in Seoul, but the court hearing never be held. A half ...

11. 미로에 선 사람들 file

11 The People On The Road Without A Milestone Even after taking 1.5 million dollar, Jim K. Shin sticks to scheming another clandestion dealing. Chong Man Yoo and Shin in the same boat made A nonsensical plot to recover 6.25 mil...

12. 흘러들어가는 정보 file

12 The Information Funneling into the Mass Media The information relating to the Northrop’s lobbying scandal being funneled into Washington D.C. And the mass media, Peter Stockton, U.S. congressional special investigator, take...

13. 워싱턴D.C로부터 file

13 The Case Uncovering From Washington D.C Maintaining a cooperative relation with Jack Anderson And Peter Stockton, U.S. congressional special investigator, Chong Man Yoo continues to report the situation pertaining to the cas...

14. 오리발로 걷는 사람들 file

14 A Parade of Interview With A Negative Answer James K. Shin in Hawaii and Charles S. Kim in Chicago show up for the interview respectively. But the true story still covering up in their palms…… and the article about Jack Anderson...

15. 베일속의 인물 file

15 Chasing Eric Ma, A Veiled Character Eric Ma, a shadow business man who has been tracing by the reporters of Los Angeles Times and the Wall Street Journal, leaves Seoul for Hawaii, carrying 50 Kg big bag contained the confident...

16. 다시만난 사람들 file

16 The People Who Catch Up Each Other Yesterday, they were the comrade in arms, but today, they are forced to tie up each other as opponents. The survival principle to live for the death And to die for the revival. 다시만난 ...

17. 첫번째 청문회 file

17 The First U.S. Congressional Hearing Ex-Northrop officials and executive members, as well as the corporation itself subpoenaed. But the related executives and Chairman avoid the hearing. D. Meredith Wilson, 79 years old, Chair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