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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흘러들어가는 정보

Views 381 Votes 0 2016.01.06 02: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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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흘러들어가는 정보.jpg

 

 

The Information Funneling into the Mass Media

 

 


The information relating to the Northrop’s
lobbying scandal being funneled into Washington D.C.
And the mass media, Peter Stockton,
U.S. congressional special investigator,
takes the first step into the investigation.
Ralph Vatarbedian, Staff Writer of Los Angeles Times,
stands by for the D-day to release the news,
and Kum Sung Chon, writer/columnist in Seoul failed
to contribute his column to Shin Dong Ah,
one of the popular monthly news commentary margarzines in Korea.

 

 

 

흘러들어가는 정보

 

 

 

  87년 10월 중순경 신광수와 이민하는 구속될 것이라고 자주 얘기하던 유종만은 갑자기 필자에게 고위층에 보낸 보고서를 영문으로 다시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부탁을 어렵게 해왔다.
“ 영문으로 만들어서 어디에 쓸려고요?”
“ 사실은 잭 앤더슨이 좀 보자고 하는데 어디 영문으로 번역을 부탁할때가 없을까요.”
그는 먼저 필자의 의중을 조심스럽게 알아보려고 하는 태도였지 결코 어느 누구에게 번역을 의뢰하겠다는 뜻은 아니었을 것이다.
“ 보안상 그런 보고서를 아무데서나 번역하겠어요.”
“ 그러니 말입니다. 바쁘겠지만 이형이 좀 수고해 주셔야겠습니다.”
“ 개인적으로 고위층에 보낸 보고서를 잭 앤더슨이라고 해서 보여줘도 되는 겁니까?”
“ 그 양반 혼자서 참고로 보고 싶다는건데 별 문제는 없을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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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요.”
  이렇게 해서 23페이지에 달하는 동 보고서는 다시 필자에 의해 영문으로 작성되어 워싱톤 D.C의 잭 앤더슨에게 전달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동 보고서가 제3자에게 흘러들어 가리라고는 어느 누구도 감히 짐작할 수 없는 일이었다.
  1987년 11월 말경 한국의 대통령 선거전이 전국적으로 그 열기가 치열하게 번져가고 있었다. 이 무렵 노드롭사건과 관련하여 신광수는 평민당 김대중 총재의 측근과 은밀히 접촉하면서 정보를 제공한다는 루머가 있었고, 반면 이민하는 통일미주당 김영삼 총재 측근과 긴밀한 협조를 한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신광수나 이민하는 모두가 선거 후에 자신들의 이권보호를 위한 사전 포석의 일환이라는 것은 자명한 것이었다. 시류에 편승해야 하는 해바라기와 같은 거간꾼들의 속성이라고 함이 마땅할 것이다.
  이 시기에 마명덕은 그의 장모의 권유와 소개로 서울 신라호텔에서 유종만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물론 유종만은 박종규의 보좌역할을 해온 마명덕을 만나는 일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마명덕은 장모로부터 유종만에 대한 호의적인 인물평을 들어오고 있던 터였다.
  그러나 마명덕은 유종만을 만나는 순간부터 조금은 난감한 생각이 들었다. 유종만은 마명덕을 만나자마자 고위층에 보냈다고 하는 보고서 사본을 내놓으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식으로 질문을 했던 것이다. 마명덕은 이때의 일을 다음과 같이 술회하고 있다.

  저의 장모님께서 몇차례 유종만에 대해 얘기를 하시면서 한번쯤 만나보라고 하시더군요. 그리고는 그분이 하는 일에 협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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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주고 도움도 받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로서는 무엇을 협조해주고 또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인가 하는 명분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만나자마자 유종만은 고위층인사에게 보냈다고 하는 보고서 사본을 내놓으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저의 의견을 물어왔습니다. 저로서는 무어라고 답변을 해야 할지 두서가 잡히질 않더군요. 대충 보고서 내용을 파악해보니 노드롭문제에 대해 맥을 잡고 있긴 하지만 오해된 부분도 꽤 있더군요. 그러나 그 보고서의 내용이 문제가 아니라 이미 그 시기에는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진 한국정부당국에서는 사건의 내용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저로서도 자의반 타의반으로 저 자신이 알고 있는 사건의 내용을 한국정부와 관심있는 인사들에게 설명해줄 수밖에 없었고, 관련당 사자들의 법정싸움이나 사태의 진전을 지켜 볼 수밖에 없는 처지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유종만에게 완곡하게 진언을 했습니다. 비록 사건의 내막이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 할지라도 이제는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고 수습단계를 지켜봐야 하는 처지에 동 사건에 개입한다는 것은 오해를 받을 소지가 많으니 신중히 생각해서 동 사건에 임하라고 말입니다. 사실 저는 유종만이 이 사건에 더 이상 개입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이 사건에 개입할 수 있는 명분이 없다는 생각을 한거지요. 따지고보면 그 양반은 관련당사자들 중의 한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느 일방으로부터 동 사건의 중재를 의뢰받은 그런 입장도 아니었습니다. 완전히 독립된 제3자가 막판에 끼어들어 양측으로 부터 갖가지 의혹만을 사게되고 구설수에 오르게 될거라는 생각을 했었지요.

  그러나 훗날 계속되는 유종만의 처신을 보면 그러한 조언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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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는 염두에 두지 않았고 독자적인 입장으로 더욱 깊이 개입함으로써 그의 본래의 의도는 어디에 있었던 주위로부터 오해와 의혹을 받는 불신의 대상이 되고 만다.
  노드롭은 지난 87년 4우러 서울민사지방법원에 제기한 고 박종규의 상속재산에 대한 가압류 신청이 경락우선 순위에 따라 말소처리가 되자 동년 12월에는 서울민사지방법원 동부지원에 문제의 6백25만불 반환청구를 위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피고인은 아시아문화관광개발을 비롯한 이종원과 이민하 등 주주들과 관련자를 포함하여 13명이었다.

  87년 12월 중순경 한국 및 일본을 여행하고 돌아온 유종만은 그때까지도 자신이 고위층인사에게 보낸 보고서에 대한 반응을 얻지 못했고, 그는 대통령 선거를 전후한 정치적 혼란기라서 보고서에 대한 응답이 유보되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는 나름대로 노드롭을 접촉하면 어떤 반응이 나오리라는 기대를 하고 토마스 존스 회장과 전화통화를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회답이 없으면 노드롭문제에 대해 매스컴에 제보를 하겠다는 언질의 메시지를 여비서에게 남겼는데도 상대방에서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당초부터 그의 발상은 용의주도 하지 못했다고나 할까. 동 사건의 관련당사자들에게 그의 명분이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시기적으로 상당한 거리감이 있을 뿐더러 망상적인 행동이라는 오해를 받기가 십상이었다.
  유종만은 노드롭의 존스 회장과 전화통화를 시도하다가 실패한 자리에서 필자로부터 동 사건에 더 이상의 개입을 자제하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을 받았으나 역시 그의 나름대로 명분을 내세웠다.
“ 유형. 노드롭사건에 관한한 유형이 한국정부를 위해 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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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일은 다 한것 같습니다. 보고서를 일단 제출했으니 반응을 본 후에 유형이 더 깊이 관여를 하든지 결정을 하는 게 현명하지 않겠어요. 노드롭 측에서 변호사를 내세워 법정투쟁을 하는 마당에 관련당사자도 아닌 제3자의 개입을 받아들일 수도 없잖아요. 그러니 불필요한 오해를 받지 말고 기다려보세요.”
“ 노드롭에서 반응이 없으면 신문에 공개할 겁니다. 목표는 어디까지나 신광수와 이민하의 비리를 공개하는 것이지 한국정부와 관계된 것은 아니니까요.”
  이쯤되고 보면 유종만이가 가지고 았는 자료만으로도 노드롭사건을 공개한다면 한미 양국간의 언론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 내 관계기관까지 온통 자극시킬 수 있다는 것은 강건너 불보듯이 뻔한 노릇이었다.
  한국정부를 위해서도 진실을 밝히고 신광수, 이민하 그리고 노드롭이 지탄을 받아야한다는 그의 논리적인 명분이 표면적으로는 아무런 하자가 없으나 그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궁극적인 의도와 행동의 괴리를 헤아린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면이 있었다.
  드디어 유종만은 88년 1월 하순 LA타임스지의 기자 랄프 바터베디언과 접촉을 시작했다. 이로써 노드롭사건은 미국 내 여론의 도화선에 불을 붙이기 시작했고 기사 보도는 시간문제었다.
  88년 2월로 접어들면서 노드롭문제를 포함하여 남편 박종규의 사후 일을 처리해야만 했던 이종원으로서는 형부 이민하의 일방적인 태도와 견해차이 때문에 줄곡 고심을 해오며 대책을 강구해 보았으나 뜻대로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박종규가 고인이 되어 버리자 모든 기득권은 마치 이민하의 수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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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해도 과언이 아닌 처지가 되고 말았다. 말할 것도 없이 박종규의 이권을 관리해온 대리인격인 이민하가 상속자인 이종원을 박종규와 동일하게 대우해 주지는 못할망정 그는 박종규가 생전에 그에게 위탁해놓은 모든 이권을 독단적으로 처결해나간다는 오해를 받을 정도로 형부와 처제 사이인 두사람 관계는 몹시 어긋나 있었다. 그래서 이종원은 마명덕과 다시 숙의한 끝에 일가친척 중에 가까운 고위인사를 찾아가 도와줄 것을 하소연했으나 형부와 처제간의 반목과 불화를 해결할 수 있는 이렇다할 대책이 나올 리도 없었다.
  대통령선거 전까지만 해도 그녀가 고위층인사들을 찾아가 도움을 청하지 못할 처지도 아니었고, 사실은 몇 번이고 부탁을 했었지만 이민하의 비협조 때문에 노드롭문제까지도 어려움에 처하고 말았다.
  마명덕은 전락원 측에서 30억원을 투자하여 호텔건립 계획에 참여하겠다고 동의했을 때 이민하가 상대적으로 동의만 했더라도 문제는 해결되었을 것이라는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만 되었더라도 6백25만불을 이민하가 독식을 한들 표면적으로 탈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민하는 엉뚱하게도 호텔건축비를 자기에게 주면 노드롭문제를 해결하고 호텔도 짓겠다고 하니 사건의 내막을이미 잘 알고 있는 전락원 측에서 투자를 하겠다고 나설 리가 없었던 것이다.
  이종원이가 형부를 불신하고 마명덕과 대책을 세우기위해 나섰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이런 와중에 작가 천금성이 노드롭사건에 대한 관련정보를 누구로부터 어느 정도 입수했는 지는 모르겠으나 동 사건에 대한 칼럼을 월간지 신동아에 기고할 것이라는 사실을 전해들은 이종원은 칼럼기고를 막기위해 나섰다. 어떤 경로를 통해 이종원이 손을 썼는 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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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 천금성의 칼럼은 한 번도 발표되지 않았다. 서울에서 이종원의 주변에 이런 일이 있을 후 미하원 에너지상업위원회 소속 조사소위원회의 특별조사관 피터 스탁튼은 노드롭문제에 대한 제보를 받고 자료수집과 비공개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 노드롭사건은 미국 내에서 언론에 뒤이어 의회의 관계기관에까지 아주 구체적인 정보가 흘러들어감으로써 그 진상이 단계적으로 하나씩 외부에 알려지게 되나 조사과정이라는 것 자체가 사건의 내용보다 더 복잡해져가고 있었다.

  1988년 3월 중순경 유종만은 한국의 고위층인사에게 제2차 보고서를 작성하여 보냈으나 동 보고서가 제대로 전해졌는 지는 지극히 의문이지만, 유종만은 LA 타임스지의 기자 랄프 바터베디언을 만나 정보를 교환했다는 사실을 동 보고서에서 밝히고 있다. 그 내용의 진실성 여부는 전후 사정을 고려해보면 거의 파악될 수 있는 것이었다.
  동 보고서에서 유종만은 LA타임스의 기자가 한국정부 고위층인사들이 동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심증적인 근거를 여섯가지 경우를 들어 제시했다고 진술하고 있는데 부분적으로 요약하여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중략 –
첫째, 86년 6월 이민하가…… 1백50만불을 취득하고 서울로 돌아가 국가안전기획부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을 당시 이민하가 불법으로 수수편취한…… 미화 6백25만불을 환불한다는 내용을 전제로한 각서의 조항을 현재까지 불이행하고 있다는 사실. 이 사실에 대해 LA타임스지의 랄프 바터베디언은 전현직 한국정부 고위관리들이 동 사건에 깊이 관련되었다는 심증적인 의혹을 뒷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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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하는 중요한 근거로 주장하고 있음.
  둘째, 85년 5월 전두환 전대통령이 미국방문기간에 존스 회장과 호놀루루의 카할라 힐튼호텔에서 면담시에 예정했던 통역을 쓰지않고 갑자기 면담시간이 임박하여 하와이주재 한국총영사 H모만을 불러들여 밀담을 나눈 사실. 비공식 면담시 내정된 통역을 취소변경한 것은 모종의 뒷거래를 위한 의혹이 있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음.
  셋째, 정호영 전국방장관, 장세동 전국가안전기획부장 등이 관련된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 그는 코멘트 했으며 이 점에 대해 본인은 근거를 제시하라고 요구했으나 그는 완곡히 함구했음.
  넷째, 이민하는 LA타임스지의 서울주재원에게 다수의 고위층 인사들이 관련되었기 때문에 안기부나 한국정부당국은 동 사건에 연루하여 이민하 자신에게 어떤 불이익한 조치를 취할 수 없다고 호언했음.
  예를들면 정호영, 장세동, 손지영 및 대만주재 김상태 대사 등과 같은 고위층 인물들이며 한편, 검찰총장이 인척관계에 있다는 사실까지 과시하며 이민하는 자기에 대한 처벌은 불가능하다는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음.
  다섯째, 서울에서 발행되는 월간지 신동아에서 자유기고가 천금서에 의해 88년 2월호에 동 사건을 기사화하려고 했으나 저지당한 사실까지 LA타임스지 관계자는 언급하고 있음.
  여섯째, LA타임스지의 관계자는 하기와 같이 미화 6백25만불의 지급수수 과정에 대한 명세를 가지고 있음.
-중 략-
 
유종만은 랄프 바터베디언 LA타임스지 기자와 첫 면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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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의 요청에 의해 이루어진 다음 도합 세차례에 걸쳐 면담을 가졌다고 언급했다.
  그러면 LA타임스의 기자는 어떻게 유종만을 알고 접근했는가 하는 것이다. 랄프 바터베디언은 유종만이 자신을 스스로 노출시킬 때까지는 전혀 아무 관계가 없는 사이였다. 유종만 자신이 동 기자가 면담을 요청하도록 기회를 마련해준 것이었고 동 기자는 유종만을 만날 때까지도 상기와 같은 자료나 추측을 할 수 있는 정보를 갖고 있지 못했던 것이 정확한 판단이다. 단지 그는 87년 4월 홍콩에서 어느 누군가에 의해 우편으로 제공된 판매대리점 계약서와 호텔합작투자 계약서 그리고 강세희의 협박편지 사본만을 보관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물론 유종만과 첫 면담을 가졌던 랄프 바터베디언이 그의 동료기자인 LA 타임스의 동경주재특파원 칼 소엔버거로 하여금 서울에서 이민하를 비롯한 관계자들을 통하여 입체적인 취재를 시도했으리라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모든 관계자료 및 문서는 관련된 직접적인 당사자들과 그들의 법률대리인 그리고 법원 측에서 소송당사자들이 제출한 일부 관련자료를 소유하고 있었고, 그 외에 유종만이가 유일하게 관련자료를 보관하고 있었기 때문에 감히 기자의 입장에서 정보교환과 토론을 거치지 않고 상기와 같은 의견을 내놓는다는 것은 시기상조였다. 그렇다면 이것은 유종만이가 LA타임스에 제보한 자료를 근거로 검토한 결과 제시한 의견이거나 아니면 유종만 자신이 스스로 내놓은 자체 발상적인 의견이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보고서 작성이 이루어진 88년 3월 18일 이전에 이미 세차례나 면담을 한 결과로서는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빈약한 내용이란 점을 감안해 볼 때 대체적으로 유종만의 주관적인 발상이라는 판단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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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내의 언론과 미의회에 동 사건과 관련하여 제보를 하고 적극적으로 협조한 유종만의 입장과 그의 변을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그의 변명처럼 한국정부이 무관함을 알리고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관점에서 일단 대의명분은 부족함이 없다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모든 비리는 공개되어야 하며 한국정부에 대한 오해와 의혹을 막기 위해서 언론관계자와 접촉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소극적인 면에서 볼 때는 신광수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이 그의 행동거지의 동기가 되었다.
  이와같은 양면성을 지닌 그의 입장을 관찰해보면 그는 자신이 표면적으로 내세운 명분을 위해 언론기관이나 미의회에 자진협조를 한 셈이고, 신광수에 대한 인간적인 감정을 고려해보면 동 사건의 내막을 고의적으로 폭로하는 셈이었다.
  왜냐하면 그의 목표는 신광수나 노드롭에 대한 비리의 공개이지 한국정부가 아니라고 강조했고, 혹시나 그에게 집중될 지도 모르는 오해를 막기위해 한국정부에 대한 여론을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는 연막을 치고 있었다.
  88년 4월 3일 워싱톤 D.C에서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유종만은 다시 3차 보고서를 작성하여 한국의 고위층에 보내게 되는데 보고서 내용을 중심으로 그의 행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동년 3월 하순경 잭 앤더슨은 미연방하원 조사위원(U.S Congressional Investigator)으로 있는 피터 스탁튼으로부터 오찬회동을 제안받고 그와 만난 적이 있었다. 오찬을 나누는 자리에서 잭 앤더슨은 피터 스탁튼으로부터 노드롭의 F-20 전투기에 관련된 대 한국 판촉로비사건에 대해 알고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내심 충격을 받았으나 아는 바가 없다고 대답하자 스탁튼은 다음과 같이 코멘트를 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70년대 총 일본의 다나까 전수상이 관련된 록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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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을 훨신 능가하는 스캔들로서 그가 그동안 수집해온 정보자료로서도 조사에 착수할 준비가 거의 되어있다는 것이며 2~3개월 후면 노드롭을 상대로 환문조사를 시작하겠다는 얘기였다.
  2~3개월 후에 조사를 착수하겠다는 것은 그 당시 피터 스탁튼이 소속해 있는 조사위원회가 87년 하반기 뉴욕증권시장에서 발생한 회사채주식 부정거래를 조사하고 있기 때문에 동 조사활동이 끝나는 2~3개월 후부터 노드롭사건을 다루기로 결정했다는 뜻이었다. 피터 스탁튼은 이런 정보를 잭 앤더슨에게 알려주면서 동 사건을 칼럼으로 다루어 보라고 권했다.
  동년 3월 31일밤 워싱톤 D.C에 출장 중인 유종만은 잭 앤더슨을 만나 그로부터 상기와 같은 사실을 전해 듣고 상호간에 많은 의견을 교환하였다는 것이다.
  이와같은 경위를 설명하고 나서 다음의 대처방안을 제시했다.

  첫째, 미의회가 조사활동을 공식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한국정부당국이 한국 내의 관련자들을 철저히 조사하여 대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과,
  둘째, 잭 앤더슨의 의견에 의하면 한국정부당국이 한국 내 관련자들을 통하여 동 사건을 조사하는 동시에 피터 스탁튼과 어떤 경로로든지 접촉하여, 한국정부 측은 동 사건과 무관하다는 사실을 설득력있게 알리는 것이 훗날 예기치 않은 여론의 비등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며,
  셋째, 피터 스탁튼과의 접촉은 상기와 같은 의미도 있지만 한국 측에서 선제행동을 함으로써 동 사건을 조사하기 위한 정보교환 협조를 요청하는 명분을 내세우는 것이 바람직한 외교적 입장이라고 사료되오며 그와 접촉시 잭 앤더슨으로부터 이와같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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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입수되었다는 사실은 극비에 붙여져야 한다는 잭 앤더슨의 당부였습니다.
  넷째, 상기와 같은 본인의 건의를 참작……
-중략-
  한국정부의 무관함을 대변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면 본인은 언제라도 미의회 조사위원회에 출두하여 증언할 각오가 되어 있사오니……
  본인이 한국정보를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한시라도 하명하여……
-중략-
  동 보고서에 의하면 미의회의 관계조사위원회는 벌써 그 당시에 노드롭사건에 대한 많은 자료를 수집해 놓고 있었다는 것이다.
  어떤 경로를 통하여 조사에 착수할 수 있을만큼 정보를 입수했다는 것일까. 관련당사자들로부터 정보를 입수하지 않으면 도저히 사건의 진상에는 접근하기가 어려웠을텐데 의문이 제기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더욱이 의회조사관이 잭 앤더슨에게 동 사건을 칼럼으로 다루어보라고 했다면 관련정보를 제공하겠다는 뜻이 될 수도 있다. 이미 잭 앤더슨도 노드롭사건의 내막을 거의 대부분 파악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87년 8월 26일로 유종만이 서명하여 한국고위층에 보낸 보고서의 영문판을 잭 앤더슨이 검토했을 것은 뻔한 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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