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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미로에 선 사람들

Views 465 Votes 0 2016.01.06 02: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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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미로에 선 사람들.jpg

 

 

The People On The Road Without A Milestone

 

 


Even after taking 1.5 million dollar,
Jim K. Shin sticks to scheming another clandestion dealing.
Chong Man Yoo and Shin in the same boat made
A nonsensical plot to recover 6.25 million dollar,
Taking advantage of the political influence from the Korean government.
It was quite a wrong concept.
They break the faith each other and……

 

 


미로에 선 사람들

 

 

 

  신광수와 유종만의 첫 만남은 86년 4월 하와이에서 L모의 소개로 이루어졌다. 이 두 사람의 만남은 그저 우연이라거나 단순한 사교적인 계기가 아니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신광수로서는 유종만을 통하여 정치적 또는 사회적 영향력을 노드롭에 얽힌 자신의 이권문제에 이용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그의 주된 관심이었고 유종만으로서는 그런 대로 명분만 있으면 누구와도 이권추구에 합세하는 그런 인물이다. 좋게 얘기해서 그들은 로비스트요, 속된말로 거간꾼이거나 브로커들인 것이다.
  남달리 사교적인 기질이 있는 두 사람은 더욱이 의도적인 면이 있었기 때문에 쉽게 가까워질 수 있었고, 외모나 대인관계의 매너는 현저하게 차이가 있더라도 상류층 주변에서 특히 정치적 배경 또는 권력층 주변에서 자신들의 입지를 지켜가려는 그런 인물형에 속하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신광수와 유종만은 출신배경이나 성장과정이 꽤 흥미롭게도 대조적인 면이 있다. 신광수가 사회저변에서부터 세상풍파를 몸으로 부딪치며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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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가한 사람이라면, 유종만은 어린시절부터 그래도 가세가 있는 집안에서 자라나 10대의 어린 나이로 미국에 유학하여 일단은 교육적 환경에서 성장하였고, 소위 명문대라고 하는 스탠포드대의 경영학 석사과정을 거친 속된 말로 간판을 내걸 만한 학벌의 인물이다. 그는 조직사회의 경험이 별로 없으면서도 당초부터 미국사회에서 무역업으로 자수성가의 기반을 다졌지만 남달리 돋보일만큼 성공을 한 것은 아니었다. 반면에 신광수는 건달세계를 거쳐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월남전에서 돈을 벌어 본 경험이 있는 상인출신이다.
  신광수는 유종만이가 미국과 한국 내에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지닌 인물들과 대인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믿었고, 따라서 그러한 유종만을 자신과 노드롭관계의 이권에 이용해 보자고 마음먹은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신광수가 생각한 박보석과 유종만의 이용가치에 대한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신광수가 유종만을 활용하기 시작한 것은 노드롭문제로 변호사 선임을 의뢰하면서부터인데 이때 이미 신광수는 그가 얻게 되는 이권에서 로비의 대가로 유종만에게 일정 비율을 지급하기로 약정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신광수는 변호사를 통하여 노드롭과 타협을 시도해 보아고 이민하와도 막후절충을 하면서 한국 내 정치적 영향력을 이용해 보려고 동분서주한 나날을 보내다가 이민하로부터 50만불을 받고나자 그의 계획은 더 큰 목적으로 바뀌고 있었다.
  1백만불 그리고 50만불 씩이나 두차례에 걸쳐 변칙적인 방법으로 이권을 챙겨 돈맛을 본 그는 물러서기는 커녕 한국이나 미국 내의 정치적 영향력을 동원하여 이민하와 노드롭 양쪽 모두에게 압력을 넣어 문제의 6백25만불을 환수하려고 하는 황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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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을 세웠는데, 이때까지 신광수의 일방적인 편견에만 귀를 기울여왔던 유종만이가 전후 사정을 깊이 검토해 보지도 않고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다. 즉 이민하와 이종원이가 6백25만불을 환불하게 만들고 노드롭은 문제해결이라는 화해의 차원에서 회수된 금액이 얼마가 되든, 기부금 형식이 되었든 또는 로비의 대가가 되었든 반대급부를 내놓게 한다는 것이었다. 아무튼 이 황당한 계획은 시기적으로 고려해 볼 만한 가치도 없는 공상적인 것으로 끝나버리기는 하나 두 사람의 씻을 수 없는 양면적인 오해의 감정은 노드롭사건의 내막이 미국 내 매스컴과 관계요로에 전면 폭로되면서 분출되고 말았다.

87년 7월 20일경 신광수와 계획한 노드롭문제의 해결책을 강구하기 위해 관계요로의 인사들과 접촉을 시도하느라 분주했던 유종만은 신광수에 대한 감정이 점점 회의적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첫째, 그가 만난 관계요로의 인사들은 무슨 의도로 노드롭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관여하느냐 하면서 오히려 유종만에게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더라는 것이었다. 어느 고위층인사에게 심지어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신광수와 같은 인물과 관계를 가지는 것을 삼가하라는 충고까지 받고나자 유종만은 떳떳하게 내놓고 신광수를 두둔하기가 어렵게 되어버린 것이다. 유종만은 한국정부를 위해서 관여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미국 시민권자인 교포의 신분으로서 동 사건에 느닷없이 끼어든다는 것은 관계자들이나 관계요로의 인사들에게 의혹의 눈초리를 받기가 십상이었다. 동 사건의 해결을 위해 유종만에게 협조해 주라고 고위층인사로부터 권고를 받은 H모는 다음날 유종만을 다시만나 완복하게 협조요청을 거절하더라는 얘기였다. 관계인사의 변인 즉 한국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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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이 동 사건에 직접적인 관련도 없는데 개입할 명분도 없고 더욱이 민간차원의 비리사건을 정치적 입장에서 해결하려는 듯한 인상을 주면 한국정부기관이 연루되었다는 오해만 얻게 될뿐이라는 것이었다.
  이쯤 되고보니 유종만도 신광수와 모사하여 동 사건에 관여하는 자신의 입장이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의 의견은 어디까지나 이민하와 이종원에 대한 정치적 압력이었고, 신광수는 이민하가 구속되어야 동 사건이 해결될 수 있다는 주장을 가지고 있었다.
  둘째, 유종만이 신광수에 대해 결정적으로 반감을 가지게 된것은 신광수가 이민하에게 50만불을 받고도 한 푼도 받지 않았다고 유종만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다. 사실 신광수는 이민하로부터 50만불을 받아 박보석, 강세희 등과 분배를 하여 홍콩의 환생은행에 자기몫을 예치해 두고 유종만에게는 시치미를 떼고 있었다. 유종만은 신광수가 받은 상기 대금에서도 자신이 지분을 분배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을 했고, 반면 신광수는 그동안 유종만이 이민하로부터 50만불을 받아내는데 실질적으로 어떤 역할을 해낸 것이 없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신광수는 앞으로 유종만과 협조하여 얻어지는 이권에서 서로 분배하겠다는 생가가을 했던 것이다. 두 사람은 이렇게 동상이몽을 하는 상반된 생각을 가지고 계획에 임하자 눈에 안보이는 갈등만 심화되고 있었다.
  서울 신라호텔 17층 로비에서 필자는 그날 오후 유종만과의 업무적인 스케줄을 상의하기 위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로서는 그의 부탁에 따라 그가 몇년 전에 한국 측의 파트너와 합작투자로 농산물 가공처리공장을 설립하다가 중도에서 어떤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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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으로 포기한 사업을 정리하기 위해 위임을 받은 대리인으로 나선 입장이었다. 그런데 어디를 다녀왔는지 유종만은 필자와 마주 앉자마자 신광수의 얘기를 먼저 꺼냈다.
“ 이형. 신광수가 이민하한테서 돈을 받았다고 하는 정보를 입수했어요.”
“ 언제 말입니까?”
“ 오늘 아침에 알았어요. 그래서 신광수를 만나 따지고 오는 길인데 신광수는 죽어도 받은 사실이 없다는 거예요.”
“ 확실한 근거가 있어요.”
“ 글쎄 확실한건 아니짐나 더 확인해 봐야겠어요. 제놈이 돈을 받고도 내게 거짓말을 한다면 이건 배신이라구요. 그 돈을 받았다면 미스터 슈라이와 우리 때문에 받은 것일텐데 사기치면 그냥 두지 않을 겁니다.”
하고 유종만은 정색을 하며 그것이 사실이라면 간과하지 않겠다는 눈치였다. 필자는 처음으로 그가 신광수에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털어놓는 것을 보았고 또한 그들 간에는 이권 분배에 관한 구두약정이 있었을 것이라는 심증이 굳어졌다.
“ 신광수가 그 돈 받으면 사례를 하기로 했었나요?”
“ 물론이오.”
  필자는 유종만이가 미스터 슈라이와 우리라는 말에 어느 누가 포함되어 있는 지에 대해서는 그때까지 헤아리지도 못했고 물어보지도 않았다. 그가 서울에 도착하던 날 저녁에 그의 사업상의 파트너인 일본인 T모와 신광수, 그리고 필자와 함께 네 명은 영동의 이어도라고 하는 일식요정에서 신광수로부터 분위기있는 저녁대접을 받으며 화기애애하던 그때와는 상황이 너무 살벌하게 바뀌어버린 것이었다.
“ 그럼 서로간에 지불약정이나 각서를 주고 받은 근거서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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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있습니까?”
“ 그런 건 없지요. 나는 믿었어요.”
“ 신광수가 이민하한테 받은 돈을 얼마나 되는데요?”
“ 정확한건 모르겠어요. 20만불 정도. 그래서 이번에 신광수한테서 각서를 받아야겠어요. 이형이 각서를 하나 만들어 주세요.”
  유종만 자신도 이렇듯 신광수가 이민하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막연한 정보를 가지고 신경을 곤두세웠고, 만약을 대비하여 지불각서라도 받아 공증을 해두겠다는 것이었다. 필자는 그 자리에서 한글과 영문으로 된 지불각서를 신광수의 명의로 초안을 했고 각서의 중요한 대목은 이러했다.
  신광수가 노드롭문제와 관련하여 받게 되는 금액 중에서 절반인 50%를 유종만에게 지급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유종만이가 협조하여 어떤 형태로든 해결하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신라호텔 1층 로비에서 지불각서를 타이프로 정리하여 다시 유종만은 신광수를 만났으나 신광수는 이권 분배를 상호 간에 동등하게 한다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이유를 내세워 서명을 거절했다. 두 사람은 다시 타협을 한 결과 신광수가 6할, 유종만이가 4할을 분배받는 것으로 최종합의를 보았다.
  신광수는 유종만의 요구대로 즉시 무교동에 나가 지불각서에 공증을 받아 유종만에게 전달했다. 그러면 유종만은 어떤 대안으로 노드롭사건을 해결한다고 신광수에게 지불각서를 요구했으며, 신광수는 각서의 서명에 쾌히 응했을까. 각서를 받는 행위 그 자체는 별로 하자가 없다하더라도 문제해결에 자신있는 대안을 가지고 있느냐가 진정한 관건이었는데 그때는 이미 시기적으로 유종만이 깊이 개입할 계제가 아니었다.
  신광수로부터 유종만이 각서를 받은 그 다음 날로 이 두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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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관계는 급기야 돌변하고 말았다. 유종만이 이번에는 신광수가 이민하로부터 40여만불을 받아 홍콩에 에치해 두었다는 확실한 정보를 입수한 것이었다. 그가 어떤 경로를 통하여 정보를 입수했는 지는 몰라도 신광수의 측근이 아니라면 당시의 상황으로서는 이러한 정보를 얻기랑 쉬운 일은 아니었다.
  신광수와 이민하의 금전거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신광수 본인을 포함하여 박보석, 강세희 그리고 이민하와 그의 변호사 김진억 등이었다. 이민하가 신광수에게 50만불을 지불하고 노드롭에 보고했다고 진술했고, 신광수에게 지급하기 전에는 모관계기관과 협의를 했다고 했으니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상기와 같은 인물이나 기관이었다. 훗날 유종만이가 신광수와 관련하여 노드롭사건의 자료를 입수하는 과정에서 신광수 자신이 발설하지 않은 정보의 출처는 몇군데로 한정이 되어있지만 문제는 신광수의 측근임이 분명했다.
  유종만이가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신광수에게 따지고 들자 신광수는 어쩔 수 없이 이민하에게 돈을 받았다는 사실을 시인하면서도 받은 액수에 대해서는 정직하게 털어놓지 않았다. 신광수의 변명은 이민하로부터 돈은 받았으나 박보석 등 관계자들과 분배에 대한 의견 상충으로 현재 보관하고 있는 상태이며, 또한 관계자들이 보안유지를 요구하고 있어서 사실대로 얘기해줄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종만은 신광수가 배신적인 행위를 했다고 생각을 했고 그의 이면에 관계자들이 있다는 이유를 내세워 신광수가 보관하고 있는 금액에서 지분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 부분이 신광수와 유종만의 이해관계가 미묘하게 얽히는 동기가 되고 말았다. 신광수는 정확하게 얼마의 지분을 유종만에게 준다고 약속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못주겠다고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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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거절을 해버리는 그런 입장을 취한 것도 아니었다. 신광수에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얼마동안 유종만의 계획추진을 지켜봐야 하는 미련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한편 유종만 자신도 신광수와 노드롭 간에 있었던 그간의 사태발전에 대해 제대로 정보를 갖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은 문제거리였다. 그때까지도 유종만은 노드롭이 지난 87년 3월 하순경 대한상사중재위원회에 심판청구를 제기했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지 노드롭 측이 동 중재심판 청구를 87년 4월에 철회하고 프랑스 파리에 있는 국제상공회의소에 중재신청을 한 사실과, 동년 4월에 노드롭이 고 박종규의 미망인 이종원을 상대로 상속재산에 대한 가압류 신청을 법원에 제출한 일련의 사태를 모르고 있었고, 고지식하게 정면돌파로 정보를 입수하려고 하니 제대로 정확한 내용을 얻어낼 수가 없었다. 신광수는 적어도 모든 내용을 제대로 알고 있었을 터인데 유종만에게 관계자료를 왜 제공하지도 않고 그를 대신하여 총대만 메달라고 했을까.
  이 무렵 신광수는 중재심판에서 이민하와 이종원의 편에 유리한 증언을 한다는 이면적인 조건을 포함하여 이민하로부터 50만불을 받았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러는 한편 신광수는 이민하가 해외구좌에 4백여만불 이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돈을 토해내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관계자들에게 공공연히 떠들고 다녔다.
“ 이형. 신광수가 이민하한테서 40만불을 받아냈다는 확실한 근거를 잡아냈어요.”
하고 유종만은 다음날 다시 만난 필자에게 털어 놓으며 저으기 실망하고 분개한 표정이 엇갈리고 있었다.
“ 그래요.”
“ 확실한 정보예요. 본인도 시인을 했어요. 박보석 핑계를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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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서 보안상 어쩔 수 없었다는 거예요. 정말 야비하고 배신을 밥먹듯이 하는 작자라는 걸 이번에 알았어요. 요전날도 망신만 당했어요. 고위인사를 만났는데 왜 신광수같은 사람하고 어울리느냐고 충고를 하더라구요.”
“ 그래 어떻게 하기로 했어요?”
“ 신광수가 기다려 달라는 거예요. 박보석이와도 상의를 해야 한다고 하면서 사정을 하길래 일단 두고보는 거죠.”
“ 신광수가 약속을 지킬지 두고 봐야겠지만 주변의 의견이 그렇다면 다시 한번 신광수와 도모해야하는 계획을 신중히 검토해서 가부간 결정하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저로서는 관계했던 일이 아니니까 깊은 내용을 알 수 없습니다만.”
“ 이번에 약속지키지 않으면 그냥두지 않을 겁니다. 나도 생각이 있다구요. 그리고 저는 내일 동경에 갔다가 다시 서울로 와야 되겠어요.”
“ 동경은 왜 가십니까.”
“ 제가 말씀 안드렸던가요. 잭 앤더슨이 지금 동경에 와서 머물고 있어요. 중공가는 길에 서울에 들리도록 제가 주선을 해놓았습니다. 정부 측 인사들과도 만나게 될 겁니다.”
“ 특별한 방문계획이라도 있습니까?”
“ 그 분은 칼럼니스트일 뿐만 아니라 아동재단을 경영하고 있잖아요. 그 재단 일로 일본과 중공을 방문하는데 이번에 한국에도 들려서 재단지부설치문제를 추진할 계획도 있고 실은 내가 그 양반 한국방문을……”
  잭 앤더슨의 서울 방문에 대한 그의 부연된 설명에는 궁극적인 방문목적을 뚜렷하게 헤아리기가 모호했다. 한국정부의 공식 초청방문도 아니고 그 자신의 여행일정에 서울방문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렇다면 유종만의 설명대로 그가 잭 앤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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슨의 방문을 비공식으로 마련했다는 셈이다. 잭 앤더슨의 서울방문을 두고 신광수도 꽤나 어떤 기대감을 가지고 들떠 있었다. 신광수 역시 박종규와 인연이 있다보니 잭 앤더슨과는 사업상의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지면이 있는 사이였다.
  유종만과 함께 서울에 도착한 잭 앤더슨은 역시 신라호텔에 머물면서 당시 박세직 체육부장관 및 올림픽조직위원장을 만나 기자회견을 가졌고, 88서울올림픽을 성원하는 발언을 하는 등 몇몇 고위층인사들을 접견하고 2박3일 간을 머문 후 떠났다.
  그의 서울방문이 유종만과 신광수가 직접, 간접으로 관여한 노드롭사건에 어떤 이해관계가 있었는 지에 대해서는 이렇다할 만큼 표면에 나타난 증거는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그는 박종규와는 개인적인 친분이 상당히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종만과는 언제부터 어떤 동기로써  가까운 유대관계를 지녀왔는 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유종만이가 일본에 머물고 있는 잭 앤더슨을 찾아가 그를 서울로 안내하는데 동행을 할 정도로 친분이 있었고 유종만은 평소 그를 대단히 존경하는 인물로 추켜세웠다. 뿐만 아니라 유종만은 잭 앤더슨의 아들과도 형제같은 우애관계를 지니고 있다고 서슴없이 말하곤 했다. 이와같은 유종만과 잭 앤더슨의 친밀한 인간관계를 신광수가 은근히 이용하려고 시도했는지 아니면 유종만이가 그런 인간관계를 은연 중 과시함으로써 신광수로 하여금 그의 영향력을 인식하도록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훗날 사태의 발전을 지켜보면 잭 앤더슨 자신도 노드롭사건에 대해 타의든 자의든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잭 앤더슨이 박종규와 친분을 가지게 된 시기는 박종규가 박정희 전대통령의 경호실장을 사임하고 나서부터이며 그때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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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도 그는 친한파인사라고는 할 수 없는 그런 입장이었다는 것이 주변사람들의 얘기다. 그렇다면 그는 박종규와 가까운 친분을 유지하게 됨으로써 한국에 대한 우호적인 입장을 취했다는 판단이 가능하다.
  신광수와 함께 홍콩에 다녀온 유종만은 신광수에 대한 일종의 배신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그의 말에 의하면 홍콩에 같이 여행을 했는데도 신광수는 막상 현지에 도착하자 또 다시 변명을 늘어놓고 약속한 대금을 주지 않더라는 것이었다. 신광수는 박보석 등 관계자들과의 의견 조정이 되지않아 도저히 약정대금을 지급할 수 없다고 거짓 변명을 하며 사정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훗날 신광수 측의 변명을 들어보면 그가 이민하로부터 받은 대금에 대해서 유종만은 기득권을 주장할 수 있을만큼 관여한 사실도 없고 어떤 간접적인 역할도 없었다는 것이다.
  아무튼 신광수에 대한 유종만의 불만은 대단한 것이었으나 두 사람은 표면적으로는 전화 별다름없이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의견을 나누기위해 전화연락을 수시로 주고 받는 한편, 유종만은 필자를 통하여 한국정부 고위층인사에게 노드롭사건에 대한 종합적인 보고서를 마련하고 있었다.
  신광수도 유종만이가 문제해결을 위해 보고서를 마련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으나 그 내용은 서로간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질 수 있는 것으로만 생각했다. 감히 그 자신에 대해 어떻게 불리한 언급이 동 보고서에 포함되리라는 것은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유종만은 신광수로부터 정보를 제공받는 한편 신광수가 제보하지 않은 이면적인 자료는 신광수의 측근으로부터 얻어내는 일을 천연덕스럽게 계속하고 있었다.
  유종만의 서명으로 작성된 보고서는 1987년 8월 26일자로 완성되었지만 실제로 동 보고서가 한국정부의 고위층인사에게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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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된 것은 동년 9월 초순이었다.
  23페이지에 달하는 동 보고서의 내용은 대체적으로 88년도에 미국과 한국 내의 매스컴을 통하여 알려진 사실과 대동소이한 부분들이 많다고 할 수 있으나 중요한 것은 왜 유종만이 이와같은 보고서를 작성했는가 하는 그 자신 나름대로의 동기와 명분이며, 노드롭사건에 대한 그의 해결 및 수습방안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보고서 작성동기와 경위에 대하여 그는 첫머리에 아래와 같이 그의 뜻을 피력하고 있다.

  본인은 미국 노드롭사의 전투기 F-20 타이거 샤크의 판매를 위하여 작고한 박종규와 제임스 신(한국명 : 신광수), 노드롭 측의 부사장인 제임스 도어시 및 관련임직원들이 한국정부 관계당국과 판촉로비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983년 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민하 동양고속회장이 작고한 박종규가 실제 그의 친족들과 소유 경영했던 아시아문화관광개발 임직원 및 주주들과 함께 상기 거래사건에 관련해온 핵심인물로서 그가 자행해온 모든 비리의 진상을 직접 또는 간접적인 동기와 경로를 통하여 소상히 파악하고 있습니다. 동 사건은 한미간의 국제적인 비리로 미국 내의 언론매체를 통한 여론의 대상으로 공개될 수도 있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알려 드리오며, 그에 대한 시급한 대책이 강구되어야 한다는 판단에서 리포트형식의 진상을 발췌하여 O O O 께 보고드리고자 합니다.
  본인은 사업 및 사교상의 명문으로 미국의 정계 및 법조계에 덕망과 명성이 있는 몇몇 인사들과 오래 전부터 친분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본인의 입장을 잘 이해하고 있는 이 사건의 주요 인물로서 관련되어 있는 제임스 신이 이민하와 노드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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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에 계속된 분쟁과 비리의 와중에서 피해를 입은 자신의 사업적. 인격적 손실과 명예획복을 위한 명분으로 본인에게 잔문을 요청하였고, 나아가 법률적인 도움의 주선을 의뢰받고 관련된 모든 기록과 자료 그리고 진술에 의한 상황을 친구이자 권위있는 법률전문가와 철저히 검토한 결과 법률전무가의 입장을 배재하더라도 본인은 객관적인 입장에서 이민하와 그의 측근들이 국제적인 관계는 물론 사업인으로서의 기본적인 윤리마저 저버린 배덕한 행위를 감안할 때 이 사실이 한미간의 국제사회에 공개되어 여론화될 경우 국가적 명예의 실추는 물론 사건의 정황으로 보아 국가의 최고통치권자와 현정권에까지 불명예의 화를 입힐 수 있는 심각한 소지가 있기에 본인은 모든 상황을 중요한 부분만 요약하여 증빙자료와 함께 제시하오니, 미국 내 언론이나 관계기관에 비화 공개되지 않도록 원만한 해결방안이 강구되길 조그만한 충정의 뜻으로 간절히 바랍니다.
-중  략-
  제임스 신이 토마스 존스 회장 앞으로 보낸 서신의 내용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있는 객관성은 배제하더라도 시간적인 상황의 진행은 논리적인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동 사건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물론 제임스 신 역시 노드롭을 위해 판촉로비활동의 핵심인물로 역할을 분담해 왔으나 그는 노드롭으로부터 박종규가 죽은 이래로 요주의 인물로 불신을 받고 완전히 소외당하게 되자 노드롭과 이민하 측을 상대로 삼각관계의 이권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건달로 이름난 박보석과 강세희까지 이 사건에 관여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줌으로써 또 다른 형태의 비리와 협잡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와같이 본인이 리포트를 작성하게 된 동기를 이해하시고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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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O의 결단 외에는 본인으로서는 더 이상 이해관계가 없음을 저의 진정한 충정으로 받아주시길 바랄 뿐입니다.

  보고서를 작성하게 된 동기를 집약해보면 노드롭문제가 공개되어 여론화되면 한국정부에까지 불명에스러운 화를 미칠 수 있는 심각한 소지가 있으니 미국 내 언론이나 관계기관에 공개되지 않고 원만히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관계당사자나 동 사건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던 위치에 있는 인물이 판단할 때는 어느 정도는 과장된 편견으로 볼 수도 있었다. 좋게 생각하면 순수한 동기와 충정심은 이해가 된다 할지라도 동 사건이 공개되면 사실상 어려운 처지에 놓이는 것은 한국 측 당사자들과 한국정부가 아니라 노드롭 측인데 한국정부가 일방적으로 사법권을 내세워 공개적인 수사를 할 수도 없고,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여 적당히 해결방안을 모색한다는 것도 잘못하면 미국 내의 여론이나 노드롭 측에 의혹만을 더욱 심어줄 뿐이라는 객관적 판단을 해본다면 한국정부가 취해야 할 입장은 저절로 해답이 나오는 것이다.
  한국정부당국에서 동 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 내막을 보고서 이상으로 파악하고 있었다고 봐야한다. 86년 6월 하순에 이민하가 이미 모기관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고 풀려났고, 87년 3월에는 노드롭 측이 대한상사중재위원회에 심판청구를 했다가 철회한 후 87년 4월에는 고 박종규의 상속재산에 대해 가압류 신청까지한 사실이 있는데 동 사건의 실상을 충분히 파악해 볼 수 있는 것이 한국정부 측 입장이었다.

  따라서 유종만이가 서명하여 제출한 보고서는 한국정부 측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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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낸 것 보다는 고위층인사에게 보낸 개인적 차원의 보고서라고 해야 타당할 것이다. 그러나 보고서 말미에 제시한 동 사건의 해결 내지는 수습방안에 대한 의견은 정치적인 성격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는 데서 동 보고서의 궁극적인 목적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다.

  동 사건의 문제점과 해결 수습에 대한 의견

(1) 주요 원인의 두가지 문제점
  첫째, 한국에서 F-20 전투기의 시험비행 중 추락하고 더욱이 프랑스 파리의 에어 쇼 참가를 위해 캐나다에서 재급유를 받던 F-20이 다시 폭발함으로써 한국정부의 관계당국에서 구매결정을 할 수 없었던 점이며,
  둘째, F-20의 판촉로비에 결정적인 주요인물인 박종규가 예기치 않게 사망함으로써 선지급받은 판촉로비 명분의 자금에 대한 이권다툼으로 인한 비리.
   후자의 경우 이미 언급한 바와같이 한미간에 국제적인 비리로써 미해결의 와중에서 하기와 같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사료됨.
① 이민하와 이종원 측이 신광수를 이권거래에서 배제시키기 위한 조작, 음모로써 미연방수사국, 미연방국세청, LA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뉴욕 타임스, 시카고 트리뷴에 보낸 관계계약서 사본 및 강세희의 협박편지내용 등으로 상기 기관에서 정확한 정보입수를 위해 관계자와 비공식접촉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음.
② 지난 85년 5월 대통령께서 미국방문시 호놀루루 카할라 힐튼호텔에서 노드롭의 토마스 존스 회장과 비공식 면담을 가졌고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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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에서 신광수가 한국정부에 제출했던 노드롭의 제안건을 확인하기 위해 노드롭과 회합을 마련하라는 지시가 있었고,
③ 84년 LA올림픽기간 동안 현집권여당의 총재께서 미국 방문시 토마스 존스 회장을 만나 헬기로 수영대회 관람안내를 받으며 오찬을 함께 나눈 점.
④ 작고한 박종규가 대통령각하와 개인적으로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외부에 알려진 점과, 신광수가 토마스 존스 회장 앞으로 보낸 서신에 의하면 대통령께서는 박종규와 친구이기 때문에 노드롭과 박종규의 거래가 공개되기를 원치않는 것으로 나타났음.
이상의 내용이 미국관계 언론들이 한국고위층이 불필요한 의구심을 갖게하는 동기가 되고 있음.
(2) 문제 해결을 위한 의견
  지금이라도 제임스 신과 박보석, 강세희 등의 부당한 이권개입을 배제시키고 이민하와 이종원이 미국 내에서 영향력있는 제3의 인물을 중재로 내세워 교섭을 시도한다면 공개적인 여론을 피하고 분쟁없이 원만히 수습될 수 있을 것으로 확신되나 이민하 측에서 해결의 의지를 나타내지 않는다면 관계당국이나 영향력있는 개입이 불가피한 것으로 사료됨.

  이쯤되고 보면 보고서의 내용은 어찌되었던 보고서의 작서동기와 결론적인 의견은 한국정부 측의 입장을 전적으로 배려한 시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다면 고위층인사나 그 주변에서 동 보고서에 나타난 의견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하는 것이 관심거리가 될 수도 있으나 이미 언급을 했듯이 한국정부의 관계기관에서도 동 사건의 내막을 거의 파악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은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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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 보고서를 긍정적인 면에서 평가한다면 고위층인사를 비롯하여 한국정부 관계기관에 좋은 참고자료가 되겠으나, 부정적인 시각으로 생각한다면 보고서를 작성하게된 이면의 저의가 무엇이냐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도 있다.
  한국정부의 관리가 동 사건에 관련된 혐의가 나타난 것이 없는데도 가정적으로 확대해석하여 한국정부 측에 일종의 위기감을 주어 정치적 영향력을 끌어 들이려 한다는 오해를 받을 소지도 없지 않았다. 왜냐하면 노드롭이 동 사건을 법정으로 끌어들인 마당에 한국정부 측이나 고위층인사가 미국 내의 영향력이 있는 제3의 인물을 통하여 중재교섭을 주선해야 할만큼 동 사건에 이해관계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한편으로 신광수, 박보석, 강세희 등의 부당한 이권개입을 배제시켜야 한다는 의견은 유종만 자신이 신광수와의 이해관계를 완전히 청산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드롭사건으로 인한 신광수의 이미지를 생각할 때 유종만이 신광수와 더 이상 어떤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자신의 명예에도 위험부담이 따른다는 판단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종만은 전과 다름없이 신광수와 태연하게 필요한 정보와 의견을 교환했고 신광수는 유종만에 대해 변함없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생각의 차이와 함께 감정의 차이까지 내표된 이 두사람 간의 불행한 인간적 양면성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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