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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대통령의 커미션 요구설

Views 484 Votes 0 2016.01.06 01:4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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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통령.jpg

 

 

A closed Meeting Between The President and Chair

 

 


While C.K. Park's trusted assistant,
Myung Duck Ma (Eric Ma) faces with a lyunch from the hoodlums
hired by James K. Shin who was Ma's step
father - in -law at that time,
Park's lobby team arranged a private meeting
between the President and Thomas V. Jones.
On the day when the meeting held between I.K. Kim,
Chief Staff of Korean Air Forces and Chairman of  Northrop,
a F-20 exploded again during refueling
in Canada on the way to Paris World Air Show.
But, to break through this hard situation,
Northrop and C.K. Park set up......

 

 


대통령의 커미션 요구설

 

 

 

미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길에 오른 전두환 대통령은 하와이에 들려 호놀루루의 카할라 힐튼호텔에 머물면서 85년 5월 23일 노드롭사의 토마스 존스 회장과 예정대로 비공식 면담을 가졌다. 이 면담에는 당시 홍순영 하와이 주재 총영사만이 통역으로 배석하였으며 당초에는 마명덕을 통역으로 참석시킬 예정이었으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예정이 취소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이 면담은 박종규의 주선으로 이루어진 것은 사실이나 전투기 도입과 같은 막대한 국가예산이 지출되고 국가안보적인 사안은 당연히 대통령의 결재권에 속하는 중요한 사항인데다가 노드롭 측이 전투기 구매조건으로 내세운 간접상쇄거리에도 상당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그런데 노드롭이 제시한 간접상쇄프로그램이라는 것이 문제시된 것이다.
  이 문제는 전두환 대통령이 당시 김인기 공군참모총장으로 하여금 미국 방문시에 노드롭 측과 확인하도록 지시하였는데 이 과정에서부터 한국 측과 노드롭 간에 오해가 일어나고 나아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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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일에 전두환 전대통령이 존스 회장에게 8백61만5천불의 커미션을 요구했다는 전무후무한 설이 나돌게 된 동기가 아닌가 하는 추측이다. 이런 커미션 요구설이 나오게 된 그 진원지를 정확하게 밝혀낼 수는 없지만 추적해보면 보도와 관련자료에서 상기 금액의 출처부분이 나타나기도 한다. 먼저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김인기 공군참모총장과 존스 회장의 회합내용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김인기 당시 공군참모총장은 미공군 참모총장의 공식방문 초청으로 동년 6월 14일부터 10일 간의 미국 방문일정에 들어갔다. 이때 그는 전두환 대통령으로부터 노드롭 측에서 제시하고 있는 상쇄프로그램을 검토해보고 동년 6월 20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에어 쇼(Air Show)에 참관하여 F-20의 성능을 확인해 보라는 지시를 받았고, 방미기간 중인 6월 17일 국방부의 항공사업담당관과 수행보좌관을 대동하고 노드롭 측에서는 존스 회장과 웰코 개쉬 등 관계 임직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노드롭 본사에서 회의를 가졌다.
  그러나 이 회의에서 노드롭 측은 그들이 당초부터 거래조건으로 제안하고 약속한 간접상쇄계획을 스스로 부인하는 모순된 태도를 보임으로써 한국 측으로부터 오해와 불신을 받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그들은 대 한국 판촉로비를 시작하면서 한국정부가 F-20을 구매한다면 F-20 생산조립시설을 만들어 1천 대를 생산하고 그중 2백 대는 한국정부에 팔요 8백 대는 제3국에 팔아준다는 조건과 함께 기술이전도 해주겠다는 약속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그들은 기술이전비로 2억불을 즉 생산된 전투기 1대당 1백만불의 로열티를 내라는 요구를 해왔다.
  전투기 제작시설 및 기술이전, 로열티 문제는 쌍방간의 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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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한다 하더라도 또 하나 중요한 부분인 간접상쇄프로그램으로 제시한 해외건설수주 및 그외 프로젝트까지 부인하고 나섰다.
  상기 사실과 관련하여 구체적인 자료를 조사해보면 노드롭측은 85년 2월 8일 자사의 오프셋거래 담당간부인 로버트 리오타가 한국공군의 항공기사업부 차장 전성환 준장에게 보낸 제안 서한에서 한국정부가 F-20을 구매해 준다면 86억1천5백만불의 상쇄거래를 이행하겠다는 15개 항목의 프로젝트를 열거하고 금액별로 구분하여 제시하였다. 이후에 노드롭의 수석부사장 웰코 개쉬는 85년 4월 1일자로 한국정부의 금진호 상공부장관에게 보낸 서한에서는 더 구체적으로 상쇄거래계획의 내용을 제시하고 있으며 거래액의 규모도 15년 간에 걸쳐 97억5천만불에 달한다.
  그런데 노드롭 측은 왜 이 사실을 모른다고 부인했을까. 더욱이 6월 17일 김인기 공군참모총장과의 회의에는 4월 1일자의 제안서한에 서명한 웰코 개쉬 부사장도 함께 배석했는 데도 노드롭 측의 참석자들이 동 계획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이다.
  이 사실은 신광수가 86년 12월 1일자로 토마스 존스 회장에게 보낸 서한의 내용가운데 뒷바침할 만한 근거자료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 박종규와 본인의 노력으로 그리고 청와대 직원들의 협조로 귀하와 한국의 대통령 간에 면담이 1985년 5월 호놀루루에 있는 카할라 힐튼호텔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이 면담이 있는 후 한국의 대통령은 김인기 한국 공군참모총장으로 하여금 미국 방문시에 노드롭과 회합을 주선하여 본인이 한국정부에 제출한 노드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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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제안을 확인해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노드롭의 제안에는 한국 정부가 F-20 전투기 2백 대를 구입하면 8백61만5천불의 간접상쇄프로그램이라는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와같은 간접상쇄거래의 약속은 85년 2월 8일자로 한국의 공군항공기사업부 차장에게 보낸 서한에 근거한 것이며......
- 중략-
  상기 서한 내용은 한국상공부에 보낸 개쉬의 85년 4월 1일자에 더욱 구체화되었습니다. 불행하게도 김인기가 로스앤젤리스에서 귀하를 만나던 그날 파리의 에어 쇼에 참가하기로 예전된 F-20이 캐나다에서 재급유를 받던 중 폭발하였습니다. 귀하는 김인기 총장과 회의를 하는 동안 간접상쇄거래에 대한 노드롭 측의 이행약속을 승인한 사실에 대해 부인했습니다. 훗날 본인은 노드롭의 제안에 간접상쇄프로그램이 포함된 것에 대해 개쉬가 본인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힐난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동봉한 자료 중 L과 M에서 귀하가 확인할 수 있듯이 본인은 노드롭에 의해 본인에게 제공된 자료를 그대로 반영하기 위한 노드롭의 지시를 따랐을 뿐입니다.
  캐나다에서 F-20의 폭발과 노드롭의 제안에서 간접상쇄계획의 부분에 대한 정확성 여부를 귀하가 가려주지 못한 것은 한국정부가 F-20 구매를 주저하게 만든 결과를 초래한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88년 6월 26일자 서울의 일요뉴스를 통한 김인기 전공군참모총장의 인터뷰기사 내용이 신광수의 서한에 나타난 주장과 거의 일치하고 있다. 그런데 지적되어야 할 사항은 노드롭이 제시한 간접상쇄거래금액이다.
  신광수의 서한에는 8백61만5천불($8,615,000)이고 8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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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자에 노드롭이 전성환 준장에게 보낸 서한에는 86억1천5백만불인 것이다. 8백60만불은 86억불의 0.1%에 해당하는 금액에 불과하다. 신광수의 서신에 나타난 금액이 진정으로 간접상쇄거래금액이라면 1천분의 1로 축소되어 잘못표기된 숫자임에 틀림없으나 묘하게도 전두환 전대통령의 커미션 요구설에 나타난 금액과 일치하고 있다. 그렇다면 간접상쇄예상거래액 86억1천5백만불에 대한 0.1%를 커미션으로 요구했다는 셈이 된다.
  서울의 월간지 신동아(88년 7월호)를 보면 동지의 김일동 기자가 발표한 칼럼기사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전대통령과 존스 회장은 85년 5월 하와이 호놀루루의 카할라 힐튼호텔에서 대면했다. 노드롭 측은 이날 2백 대의 F-20 판매를 희망했으며, 이에 대해 전 전대통령은 커미션으로 8백61만5천불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존스 회장은 이의 확담을 유보한 데다......

  상기와 같은 정보의 출처가 어느 경로인 지는 알 수 없으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전두환 전대통령과 존스 회장과의 면담에는 통역을 맡은 당시 홍순영 하와이주재 총영사만이 배석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의 커미션 요구설은 노드롭 측에서 흘러나왔는지 아니면 한국 측에서 추측으로 흘러나왔는지 동 보도내용은 막연한 느낌이다.
  이에 앞서 88년 6월 20일 LA 타임스지의 기사에 문제의 커미션 금액과 동일한 숫자가 나타난다. 존스 회장이 김인기 공군참모총장을 만났을 때 그 내용이 알려지지 않은 프로젝트에 8백60만불의 투자요청을 거절했다고 보도하고 있으나 이것 역시 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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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스의 기자 랄프 바터베디언이 신광수의 서한을 인용 보도한것에 불과하다.
  물론 전두환 전대통령이나 그의 측근 커미션 요구설 자체를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한국 내의 매서컴을 통하여 단호히 부인하고 나섰다. 심지어 전대통령 측은 존스 회장과 만난 관련접견록까지 공개하겠다고 했다.
  위와같은 전후사정을 검토해보면 8백60만불이라는 금액의 수치는 신광수의 서한내용에 근거하여 보도자료로 흘러나오는 과정에서 대통력의 커미션 요구설로 둔갑하여 와전된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도 해볼 수 있다.
  전두환 전대통령과 존스 회장의 면담주선에 연락업무를 맡았던 노드롭의 컨설턴트였던 신광수 자신도 대통령의 커미션 요구설은 사실무근이라고 필자의 질문에 답변하면서 가령 대통력이 커미션을 요구한다면 우회적인 방법도 얼만든지 있는데 존스 회장의 면전에서 국가원수의 체면을 걸고 그런 발언을 할 수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전두환 전대통령과 면담을 마치고 나온 존스 회장은 그의 측근 관계자들에게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표시했다고 한다. 간접상쇄프로그램에 관하여 자신도 모르고 있는 계획을 한국정부에 제시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 또한 무슨 넌센스인가. 적어도 일개국가의 원수를 비공식으로라도 면담하여 이권을 얻어내기 위한 중대한 사안에 대해 예상될 수도 있는 질문과 답변 자료를 준비하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자신이 거느리는 판촉로비의 멤버들과 손발이 맞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더욱이 노드롭은 책임있는 중역간부들이 서면으로 간접상쇄거래계획을 한국정부에 제시했고, 신광수 자신이 연락업무를 수행한 근거를 제시하듯 노드롭은 판촉로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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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적 실수를 범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다음으로 88년 5월부터 미국의 언론을 통하여 노드롭의 로비스캔들이 공개되기 시작하자 관련정보를 얻어낼 수 없었던 한국의 매서컴들은 뒷북을 치며 장단을 맞추고 따라다니는 꼴이 되었다.
  한국의 야당가와 일부 언론들은 5공화국 정권비리의 시작으로 보는가 하면 급기야는 전일본수상이 관련되었던 70년대 초의 록히드 스캔들을 상기시키면서 정부당국에 전면조사를 촉구했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서 전두환 대통령의 커미션 요구설은 설에서 시작하여 설로써 끝이나고 말았다.

  85년 6월 17일에 F-20이 캐나다에서 재급유 중에 두번째로 폭발하고 말았다. 파리에서 열리는 연례적 행사인 에어 쇼에 참가하기 위해 비행 중 캐나다에서 재급유를 받아가 일어난 또 하나의 어처구니 없는 참변이었다.
  12억불이나 되는 막대한 개발비를 투입하여 제작한 시제품 전투기의 두번째 참사로 노드롭의 대 한국 판촉활동은 완전히 위기 국면에 접어들었고, 동 전투기의 해외수출시장 교두보로 선정된 한국에서 구매를 외면한다면 해외수출계획 역시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공교롭게도 캐나다에서 F-20이 폭발하던 그날 노드롭의 존스 회장과 한국의 김인기 공군참모총장이 로스앤젤리스의 노드롭 본사에서 F-20의 구매거래조건을 놓고 상담을 진행한 회의마저 그 결과가 좋지 않았고, 전두환 대통령의 지시를 받고 F-20의 성능을 확인하기 위해 파리의 에어 쇼에 참관하기로 계획했던 김인기 공군참모총장은 파리행 여행일정도 취소하고 말았다.
  노드롭 역시 F-20의 대 한국 판매로비를 포기하느냐 하는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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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몸살을 앓으며 대책에 부심했다. 이때 박종규도 F-20의 대 한국 판매는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노드롭과 박종규는 끝내 판촉계획을 포기하지 않고 강한 미련을 가지고 서서히 또 다른 방법으로 계획을 추진하는데 그것이 바로 홍콩에 설립되는 방카바로우(Bankaborrow)라는 대 중공무역창구를 담당할 회사의 설립이었다.
  그러면 왜 노드롭은 박종규가 홍콩에 방카바로우사를 설립하도록 지워했으며, 5천만불이라 거금을 빌려준다는 명분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하는 것이다.
  노드롭은 F-20이 두번째로 추락 폭발하고 난 후 F-20의 대 한국 판매가 어렵다면 선지급된 로비자금 6백25만불을 반환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은근히 박종규에게 압력을 넣으며 그의 눈치를 조심스럽게 살폈다. 그러나 노드롭의 그런 압력이나 불만에 치우쳐 마음이 흔들리거나 고심할 박종규가 아니었다.
  이때 박종규로서는 현명한 판단을 내렸다. 쌍방간에 말썽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우선 노드롭으로부터 받은 자금으로 호텔건립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물론 6백25만불이 판촉자금이라 할지라도 당시의 상황으로서는 F-20의 구매승인을 고위층으로부터 얻어내기가 어려워졌고, 그렇다고 그 돈을 돌려주기 보다는 호텔을 건립함으로써 6백25만불을 받을 수 있었던 형식적인 계약명분을 살려 자신의 실리를 취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다음으로 노드롭과 협의하여 방가카로우사를 설립하는 것이었다. 박종규는 마명덕으로 하여금 호텔건립 계획을 구체적으로 진행시켜가기 시작했고 주변관계자들은 모두가 환영하고 나섰다. 그래서 박종규는 동양고속의 계열회사인 동창건설로 하여금 호텔시공을 맡기기 위해 싱가포르의 은행에 예치해 두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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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백만불 중에서 2백만불을 이민하에게 미리 건네주고 85년 10월 초에는 그동안 판촉비용으로 사용하다가 남은 35만불 마저도 이민하에게 건네주어 호텔건설 자금을 조성했다. 이로써 박종규로부터 이민하에게 넘어간 돈은 전부 4백35만불이 된다. 그러나 박종규가 사망한 다음 이민하는 이 부분을 완전히 외면하고 자기 위주의 허구적인 진술을 하는가 하면, 신광수 역시 증언을 번복하는 등 노드롭의 로비스캔들의 복잡하게 얽혀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와 같은 매듭을 만들어 놓고 말았다. 사건의 동기와 진실한 내면은 6백25만불을 내놓은 로드롭 측의 관련간부들이 더 정확하게 알고 있으리라는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하지만 이 부분은 방카바로우사의 설립동기와 배경, 검찰에서의 이민하의 진술, 신광수의 주장, 그리고 박종규를 보좌한 측근의 증언을 근거로 그 허구적인 진실의 단면을 조명해 볼 수 있다.

  1985년 9월에 설립된 홍콩의 방카바로우사는 실질적으로 박종규가 사망한 85년 12월까지 3개월 동안 실적없이 운영되다가 폐쇄되어 버렸다. 말할 것도 없이 박종규가 타계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상기사는 노드롭과 박종규가 고육지책으로 판촉활동을 재개하고 F-20의 구매조건에 따른 간접상쇄거래로서 발생하는 한국상품의 수출입 창구를 전담할 회사이지만 F-20의 판매커미션도 이 회사가 수수하게 될 것이라는 짐작은 어렵지 않다.
  88년 8월 12일자 LA 타임스지의 기사내용 중에서 관련부분만 발췌하여 검토해보면 방카바로우사의 설립목적이나 배경이 간단하게 드러난다.

  방카바로우사의 사무실은 홍콩의 광동은행(Bank of Kanton)건물에 설치되었고 대표에는 마명덕을, 재정담당 책임자에는 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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롭의 부사장 제임스 도어시의 둘째 아들 마이클 도어시가 각각 취임했다.
  노드롭은 방카바로우사에 매월 3만3천불씩 85년 말까지 총 9만9천불을 지급했으며, 동사의 역할은 노드롭이 한국에서 구매하여 중공에 수출하는 상품거래의 중개역이며 이것은 상쇄거래의 일환으로 한국정부가 전투기를 구입하는데 재정적인 도움을 주기 위한 계획이었다. 그러나 한국이든 어느 누구에게도 전투기는 단 한대도 판매되지 않았고 생산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 커미션이 발생할 만한 거래도 전투기 판매도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동사에 자금이 지급되었다는 것은 그 당위성이 불분명한 것이다. 방카바로우사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한 관계자는 이는 박종규에게 자금을 조달해 주는 방편으로 볼 수도 있으며 한편으로는 한국과 중공의 무역거리를 촉진하기 위한 합법적인 방법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박종규에게 지급된 노드롭의 자금은 판촉비로 판단되며 또 그 돈의 일부는 한국정부의 관리들에게 전용되었으며 이는 곧 미국의 해외부정거래방지법을 위반했다는 주장들이 있어왔다고 했다. 방카바로우사에 지급된 자금은 노드롭이 한국인들에게 지급한 경우와 마찬가지로 회계처리가 되지 않았다.

  방카바로우사에 지급된 9만9천불이 회계처리가 되지 않았다면 그 돈은 어디로 증발한 것인가. 동사의 대표였던 마명덕도 그 돈의 입출금에 대해 한번도 결재를 해보지 못했고, 재무담당자였던 마이클 도어시로부터 보고를 받은 일도 없었다. 회사설립 초기에 마명덕 외에 유일한 상주 임직원이었던 마이클 도어시가 노드롭으로부터 지급된 9만9천불을 받아챙겨 정당한 회계 절차없이 처리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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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드롭은 판촉의욕에서 후퇴는 커녕 오히려 새로운 전략으로 박종규와 함께 방카바로우라는 회사설립을 지원했으며 더욱이 5천만불을 빌려준다고 한 것은 또 무슨 내밀한 계획에서 비롯된 것일까. 이것 역시 커미션을 담보로한 선지급이며, 이번에는 대통령으로부터 전투기 구매에 대한 내락을 얻어내면 지급한다는 전제조건을 내세웠다는 추측이다.
  방카바로우사는 유령회사가 아닌 것 만은 분명했다. 왜냐하면 박종규는 경영책임자로 마명덕을 사장자리에 앉혔고, 그는 일주일간이나 노드롭사의 생산시설 및 경영실태를 견학하기도 했다. 박종규가 그를 신임했을 뿐만 아니라 그는 화교출신으로 중국어 및 한국어 그리고 영어를 동시에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는 능력에다 재무관리에 밝고 사업적인 경륜도 있었기 때문에 주변인물 중에서 최적임자라는 것은 당연했다. 아무튼 노드롭은 F-20의 개발에 투자한 12억불이라는 막대한 비용손실을 회복하기 위해 판촉이라는 명분으로 어떤 누기라도 감수해야만 하는 그런 입장이었고 박종규를 통하여 대통령으로부터 구매에 대한 내락을 얻어낸다는 것은 천명을 기다리는 것과 같은 절대절명의 과제였던 것이다.
  그러면 이민하가 88년 12월 19일과 20일에 검찰의 신문조서에서 밝힌 환차놀이와 노드롭이 박종규엑 5천만불을 빌려준다고 한 것과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 피의자는 위 2백만불을 받아서 어떻게 사용했는가요."
  " 예. 위 2백만불을 받던 날 바로 동경시내에 있는 동경은행의 구룡지점에 개설되어 있던 저의 구좌에 입금하여 두었습니다. 그리고 2백만불 중 1백만불은 박종규가 죽기 전인 1985년 10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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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전부터 알고 지냈고, 박종규도 알고 있던 일본의 환차장사인 아오끼를 예수근으로부터 소개받아서 박종규가 노드롭사로부터 받아 싱가포르에 있는 은행에 보관하여 두었던 2백만불과 제가 가지고 있던 1백만불을 아오끼에게 주어 환차장사를 하는데 주었습니다. 그리고 남은 1백만불은 1984년 9월경부터 동년 말까지 사이에 그중 20만불씩 3번, 60만불은 제가 오래 전부터 알고 있던 부동산회사인 미국 매리린치회사와 거래하는 조지 아이(한국명 : 예수근)의 매리린치 회사의 구좌로 보내주었고(박종규의 지시에 의하여), 20만불은 제가 전에 순복음교회의 건축수주를 받아 공사하고 그 대금 중 0.7%를 선교자금으로 주기로 하였는데 그 선교자금으로 일본에 있는 오오모리라고 하는 순복음교회의 직원 앞으로 보내 주었습니다. 또 10만불은 씨지아이(C.G.I)라는 미국에 있는 순복음연관교회에 선교자금으로 보내주었고, 남은  10만불은 천병두 박사가 대표이사로 되어있고 저도 이사로 되어있는 컴퓨터리본 제조회사인 서울정밀주식회사에 주었습니다."
"...... 박종규가 노드롭사로부터 받아 피의자에게 주었던 위 2백만불 중의 1백만불과 박종규가 가지고 있던 2백만불로 일본의 아오끼에게 환차장사를 시킨 내역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말해보시오."
" 예. 박종규가 전부터 알고 있던 홍콩에 거주하는 조지 아이를 통하여 일본 동경은행 구룡지점장으로 있으면서 환차놀이 전문가라는 아오끼를 소개받아 그 아오끼에게 환차장사를 시켰던 것입니다."
" 피의자도 위 조지 아이라는 한국인을 알고 있었던가요."
" 예. 저도 박종규와는 다르게 조지 아이를 알았는데 1978년 홍콩 교포이던 조지 아이를 서울에서 순복음교회 장로로 있는 차일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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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사람을 통하여 소개받았으면 당시 오퍼상을 하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 아오끼를 만난 경위 및 환차장사를 시킨 경위에 대하여도 말해보시오."
" 예. 위와같이 박종규가 조지 아이를 통하여 환차장사를 해보려고 조지 아이로부터 방법을 들었으나 조지 아이는 한국사람으로서 보안유지가 어려울 것으로 판단하여 동인에게 일본인 중에서 환차장사를 잘하는 사람을 소개해 달라고 하여 1985년 6월경 홍콩에 있는 골프장에서 박종규가 동경은행 지점잠으로 있던 아오끼를 소개해 주어서 같이 알게 되었는데, 그 무렵 노드롭사에서 F-20 전투기 한국판매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 그 6백25만불을 돌려달라고 박종규에게 요구하자 박종규와 노드롭 간에 그 돈을 돌려받는 방법으로 노드롭사가 5천만불을 빌려줄테니까 그 돈으로 증식을 하여 6백25만불을 변제하도록 합의가 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후 85년 10월 초순경 박종규와 제가 홍콩 페닌슐라(Peninsular)호텔에 투숙하면서 아오끼를 만나 그 자리에서 박종규가 아오끼 앞으로 5천만불을 대줄테니까 환차장사를 해보라고 하자 아오끼도 좋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박종규가 먼저 자기가 가진 3백만불을 줄테니까 환차자사를 해보라고 하면서 자기가 가진 2백만불과 제가 가지고 있던 1백만불을 아오끼에게 주어 환차장사를 시키자고 하여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노드롭은 진정 6백25만불을 돌려받기 위해 박종규에게 환차장사 대금으로 5천만불이나 되는 거금을 빌려주겠다고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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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야 6백25만불을 호텔건립 합작투자라는 명분으로 변칙적인 방법의 지급을 했던 노드롭으로서는 가능한 것인지도 모르나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아무튼 상기와 같은 약속이 있었다면 홍콩에 설립된 방카바로우라는 회사가 바로 박종규에게 상기의 자금을 공금하는 매개체가 될 것이라는 짐작은 당연하다. 이렇게 보면 5천만불이라는 돈을 박종규에게 공급한다는 계획은 단순히 6백25만불을 변제받기 위한 환차장사의 밑천으로 빌려준다고 보기에는 논리적으로 납득이 될 수가 없다.
  6백25만불을 호텔합작투자 명목으로 지출하는 과정에서도 노드롭 자체 내에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았을텐데 이것은 F-20의 판매를 전제로한 커미션 선지급 계획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박종규가 죽지만 않았더라면 이 돈은 방카바로우사를 통하여 지급되었을 것이다. 물론 F-20의 구매에 대한 대통령으로부터 내락을 얻어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었을 것이라는 가정이 가능하다.
  환차장사에 대한 이민하의 검찰 신문조서는 다음과 같이 이러진다.

" 환차장사라는 것은 어떠한 방법으로 하는 것인가요."
" 예. 환차장사라는 것은 위 3백만불을 은행에 예치하고 그 3백만불을 담보로 일본 엔화(Yen Currency)로 대출받아 그 엔화를 금리가 높은 방법으로 예금하고, 위 3백만불의 담보로 대출받은 이자는 낮기 때문에 대출이자와 금리가 높은 예금의 이자 차이를 먹는 것을 환차장사라고 하며, 위 3백만불은 대출받은 돈의 이자로 계산하여 이자담보로 대출받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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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 3백만불을 예치하면서 1년에 대출이자가 3백만불 이하로 되는 대출을 일본 엔화를 대출받고, 그 대출이자가 연 5%라고 하면 그 5%의 이자가 3백만불에 해당하는 원금을 대출받아 연이자가 10%인 예금을 하고, 그 5%와 10%의 차이인 5%에 해당하는 이자를 취하는 것을 환차장사라고 하며 당시에는 10년 동안 달러화가 강세에 있었으니까 앞으로도 달러화의 강세에 대한 높은 금리의 이자액을 취하기로 한 것입니다."
" 그 명의자는 누구로 하였던가요."
" 예. 그 대출을 받든지 또 예금을 하더라도 명의자가 있어야 되는데 그 명의자를 아오끼의 착안으로 저의 명의로 홍콩에 유나이티드 알라이언스(United Aliance)라는 유령회사를 설립하여 동 회사 명의로 대출을 받고 예금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 유령회사 설립 및 대출관계 서류일체를 아오끼가 해가지고 와서 저는 각 서류에 서명하여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 환차장사를 한 경위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진술할 수가 있는가요."
" 예. 85년 10월경 위 유령회사 관계서류를 전부 아오끼에게 해주고 나서 바로...... 박종규의 2백만불로는 당시 강세에 있던 오스트리아(Austria) 국채액면 1백99만5천불 짜리를 매입하고, 저의 1백만불과 박종규의 국채귑 차액을 가지고 50만9천불 짜리 2개의 정기예금을 해두고 그 국채와 정기예금증서를 이자담보로하여 그 무렵 일본 엔화로 10억7천5백만엔, 5억7천2백18만엔, 5억4천8백31만엔, 미화 3백30만불을 대출받아 그 자리에서 강세에 있던 오스트리아 화폐 7백10만1천불, 미화 3백만불, 일본 엔화 5억4천8백31만엔을 구입하여 저의 명의로 정기예금하여 두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강세에 있던 달러화가 하락하고, 반대로 엔화가 강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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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나타내자 환율변동에 의하여 1986년 6월 6일경 정산을 해보았더니 2백10만불 정도가 손해를 보았던 것입니다."

  이민하의 진술에 의하면 3백만불로 환차장사를 한 결과 8개월만에 2백10만불의 손실을 보았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당시 동경욍환시장의 상황을 이민하와 환차놀이 전무가인 아오끼가 전혀 예측을 못하고 고스란히 손해만을 보았다는 얘기다. 86년에 접어들어 계속 하락세를 보였던 달러 시장에서 달러로 일본 엔화를 상대하여 환차장사를 계속했다는 것은 참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변이다. 반대로 엔화를 매입했더라면 그는 엄청난 달러이익을 취했을 것이 아닌가.
  이민하의 진술이 사실이라면 박종규가 죽지 않고 노드롭에서 5천만불을 대주어 환차장사를 했을 경우 그 손실의 결과는 어떠했을까. 상상만해도 끔찍한 손실을 입었을 것이다.

  신광수에 의하면 박종규는 1985년 10월 7일경 자신이 간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 10월 10일에 이민하와 함께 홍콩에 건너가서 싱가포르은행에 그의 명의로 예치해 놓은 3백만불을 이민하에게 건네주었고 귀국하자 10월 15일경 병원에 입원하였다고 한다. 이민하는 3백만불이 아니고 2백만불을 그것도 환차장사를 위해 받은 것으로 진술하고 있다. 그러면 박종규는 진정 환차장사로 증식하여 노드롭으로 선지급받은 6백25만불을 변제하려고 했을 것일까.
  신광수는 박종규와의 관계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박종규가 죽기 전인 85년 11월 4일경 박종규로부터 방문요청을 받고 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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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갔더니 신광수에게 한국 내에서 노드롭의 거래에 관련된 일체의 서류와 기록을 인계하면서 만약 그가 오랫동안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든지 아니면 회복이 불가능하면 그를 대신하여 동양고속, 아시아문화관광개발과 노드롭 간의 모든 거래를 맡아주길 바란다는 것이었다. 신광수의 이와같은 주장 역시 참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면이다. 박종규에게는 상속인이 되어야 할 부인 이종원이가 있고, 진행 중인 호텔건립 추진사업과 기타 업무를 맡아 박종규를 보좌해온 마명덕이가 있었는데 그가 신광수를 은근히 불러 모든 자료까지 넘겨주며 그의 대신 뒷일 처리를 당부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박종규의 측근들부터 비웃음을 당할 짓거리에 불과하다.
  박종규의 측근에 의하면 이민하가 박종규의 지시로 환차장사를 하여 2백10만불이나 손해를 보았다고 주장하는 것이나, 신광수의 주장처럼 박종규가 3백만불을 이민하에게 그냥 넘겨주었다는 것도 모두가 허위진술이라고 일축했다. 왜냐하면 박종규가 이민하에게 넘겨준 돈은 호텔건립자금을 조성해준 것으로 환차놀이란 있을 수 없으며 환차장사를 했다면 박종규를 기만했거나 박종규 사후에 상속인 이종원을 속이고 이민하 자신이 임의로 저지른 배임행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민하와 신광수, 그들은 판촉활동 벽두부터 상대방에 대해 영원히 풀 수 없는 감정적인 앙금을 지닌 사람들이다. 그들은 박종규 사후에 문제를 일으키는 주역들이기 때문에 한번쯤 그들의 인물평을 주변 관계자들을 통해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이민하는 주변사람들로부터 침착하고 정적이며 선비와 같은 인물형으로 평가를 받는다면 신광수는 허세를 부리는 건달로 비유된다. 이민하는 가문이나 사회출신성분도 남들에게 인정받을 만치 학력 및 경력 그리고 처신도 그에 걸맞게 하는 편이다. 신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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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이민하와는 반대로 호기를 잘 부리는 외형적인 처신을 해왔다.
  그러나 이민하는 외부적으로 풍기는 인품과는 달리 그야말로 표리부동하고 지능적이며, 교활한 수술와 협잡에 능한 인물로 평가를 받는 반면, 신광수는 자신이 노골적으로 협잡꾼이며 건달이라고 드러내 놓고 처신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민하와 신광수는 대도와 소도의 차이라고 혹평하는 주변인물의 평도 있다.
  이 두 사람은 박종규 사후에 노드롭사건을 통하여 그들의 대조적인 개성과 인품을 유감없이 드러내는데 측근의 어떤 관계자는 그들의 행적을 만화로 엮어본다면 극적인 재미가 대단할 것이라는 시니컬한 얘기를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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