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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F-20의 추락

Views 511 Votes 0 2016.01.05 23:2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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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F-20의 추락.jpg

  

F-20 Fighter Crashed

 


During the late President Park's time,
a power broker,
Chong kyu Park countered with
an ambush unexpectedly on the way of rebuilding his dignity.
On October 10, 1984, a F-20 Fighter was
exploded during the demonstration flight in the mid-west of Korea,
while obtaining a verbal commitment
to purchase F-20s from the
Chief Executive Officer of Korean government.
But Chong Kyu Park, in the secret report to Thomas V. Jones,
Chairman of Northrop, asserted that the back-up from the President,
Chun, Doo Hwan would be continued.

 

 

 


F-20의 추락

 

 

 

 

1984년 9월 박종규와 노드롭이 F-20의 대 한국 판촉로비를 위해 인연을 맺은지 1년 만에 양측은 판촉의 결실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이때 박종규로서는 고위층으로부터 동년 10월 10일 한국에서 F-20 타이거 샤크 전투기의 시범비행을 마치고 나면 주문계약을 하겠다는 내락을 얻어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드롭으로서도 박종규에게 6백25만불이라는 거액의 자금을 변칙적으로 선지급하면서 내부적인 갈등이 없지 않았다. 일부 중견간부나 사내의 법률담당 카운슬러(사내변호사) 등이 6백25만불의 지급문제를 놓고 반대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웰코 개쉬와 제임스 도어시, 도널드 폴즈와 같은 대 한국 판촉에 관련된 실세의 간부들이 주도권을 행사하며 추진했던 계획이라 사내의 반대의견들은 무시된 것이다.
  박종규는 로스앤젤리스 올림픽기간에 공사간의 많은 결실을 얻어냈다. 지난날 그의 화려했던 전성기의 권세는 회복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80년 초 전두환 군부의 집권으로 한동안 침체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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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 그의 권위가 회복되고 그의 입지가 현실적으로 되살아나는 계기가 온 것이었다.
  첫째, 그가 한국 체육계의 중요한 위치에서 전두환 전대통령의 배후지원으로 88서울올림픽 유치를 위한 국가적 사업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또한 그 공로로 전두환 정권으로부터 부정축재자로 몰려 사회정화법에 얽매여있다가 자유롭게 풀려나는 한편 국제올림픽 조직위원장인 사마란치와 관계인사들을 상대로 로비를 한 결과 그는 국제올림픽조직위원으로 선출된 것이다.
  그는 사회정화법에 묶여 외적으로 운신의 폭이 좁아 불편했을지는 몰라도 대외활동에는 별로 규제를 받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회정화법에서 풀려나기까지 그는 해외출장시에는 김포공항의 보안사 전용출입구를 통하여 왕래했기 때문에 그에게는 공사간의 필요한 업무를 수행하는 데에 불편이 없었다. 그가 사회정화법에서 풀려나자 제일 기뻐한 사람들은 오히려 기관의 실무관계자들이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가 해외출장 때마다 그의 행적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게끔 보안조치를 취하며 그를 수행하고 그의 출입국을 도와야 하는 불편을 겪었기 때문이었다.
  둘째, 박종규는 국제올림픽조직위원으로 선출됨과 동시에 지난 6월 초 신광수를 통하여 판촉자금 조달을 위한 계획을 노드롭에 전달할 당시 박종규를 노드롭사 회장의 고문으로 추천해 다라는 서한을 제임스 도어시에게 함께 보낸 결과 노드롭 측이 이를 받아들여 84년 8월 16일자로 박종규에게 노드롭의 컨설턴트로 임명한다는 서한을 보냄으로써 그는 노드롭과의 거래에서 내용적으로는 두가지 방법으로 이권을 확보한 것이다. 즉 이민하를 내세워 판매대리점 계약에 대한 실권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편으로는 노드롭에서 보수를 지급받는 컨설턴트가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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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다. 이것은 내용적으로 보면 신광수와는 순서만 뒤바뀐 것으로 양쪽 이권에 다 같이 연계되었다는 점에서 똑같은 경우에 속한다. 다시 말하면 신광수는 먼저 노드롭의 컨설턴트가 된후 박종규와 노드롭 사이에 이권관계를 맺어준 다음 상대방 박종규의 이권에 이면계약으로 끼어들었는데 이번에는 박종규가 그와 반대로 판매대리점 계약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하는 위치에서 다시 노드롭의 컨설턴트가 되어 월 6천5백불의 보수를 받게 되었다.
  그가 신광수보다 비중이 낮을 리야 없지만 신광수의 연봉에는 훨씬 미치지 못하였고 엄격히 따져보면 노드롭사의 사내 정책에도 위반되는 이해상충의 일례가 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지만 박종규 측의 요구를 노드롭은 무시할 수가 없었던 것 같다.
  박종규가 사망한 후 강세희가 노드롭 측에 보낸 협박편지에서 비밀사항을 공개하겠다고 열거한 내용 가운데 박종규는 노드롭의 비밀 로비스트(Underground Consultant)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무튼 박종규는 6백25만불이라는 거액의 판촉자금을 실물거래없이 선지급으로 받아냈다. 더욱이 F-20 전투기 판매 대가로 얻어질 수 있는 커니션만해도 예상금액이 5천만불을 넘어서고 부대사업의 조건인 오프셋 프로그램으로 수십억불의 사업이권을 소유한다는 자신을 얻은 것이다.

  스페인 방문을 마치고 일본에 들려 이민하에게 2백만불을 건네주고 서울로 돌아온 박종규는 여유있는 마음가짐으로 주변을 정리하고 사업도 추진하기로 구상한 것 같다.
  이때 신광수와 강세희가 로비팀의 실무자급 인사로 김득만과 허두기를 영입하여 박종규에게 추천하였다. 김득만은 지난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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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영입한 예비역 공군소장 출신인 진치범이 국회의원 출마로 물러나자 그의 후임자가 되었는데 김득만은 공군사관학교 5기생이며, 김인기 공군참모총장과는 친구로서 예비역 공군준장이다. 예비역 공군대령인 허두기는 진치범의 추천 의뢰로 김인기 공군 참모총장이 친거한 인물이었다.
  이들은 동양고속의 고유업무와는 전혀 무관했지만 김득만은 동양고속의 고문으로, 허두기는 부장대우의 월급을 받으면서 실제적으로는 삼청동에 있는 박종규의 사무실인 극동문제연구소에서 판촉실무를 맡았고, 동양고속에서 지급하는 월급 외에도 강세희와 박종규로부터 별도의 활동비를 지급 받았다.
  로비팀을 재정비 하고나자 이번에는 홍콩에서 6백25만불을 인출할 때부터 불만을 노골적으로 나타낸 강오현이가 박종규와는 더 이상 사업을 도모할 수 없다면서 아시아문화관광개발의 대표이사직을 사임하겠다는 강경한 태도로 나왔다. 박종규로서는 그렇나 강오현을 굳이 잡아두겠다는 생각도 없었고 성격으로나 자존심으로서도 그에게 사정을 해야 할 박종규가 아니었다. 따라서 강오현의 대표이사직 사임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다.

  다음으로 박종규는 사파리클럽 경영문제를 정리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사파리클럽은 박종규가 소유하기 이전에 이미 고급술집으로서 물장수로 재력을 상당히 축재한 것으로 알려진 K모여인의 소유였는데 동 건물과 시설을 강오현의 매매알선으로 박종규가 매입한 것이었다.
  박종규의 개인소유가 된 서울 성동구 옥수동 480의 8에 소재한 2층 벽돌건물은 사파리클럽이라는 고급사교장으로 둔갑을 해버렸다. 동 건물 내에는 데판야끼(Tepan Yaki)를 하는 식당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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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테스가 서비스하는 룸사롱, 그리고 블랙 잭을 할 수 있는 카지노가 들어섰고, 카니조는 83년 7월부터 영업을 개시했다. 물론 카지노는 불법영업이었으나 미군이나 외국인 전용클럽인양 위장을 하고 경영했다. 당초에 카지노 사업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박종규는 사업의 대형화를 위해 허가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나마도 비공식으로 클럽을 운영해온 것은 권력의 비호와 묵인을 받은 그의 뱃심이었다. 그에게는 신분에 걸맞는 직무를 수행하고, 그의 야심을 키워가는데 돈이 필요했기에 이와같은 고급 사교장이 필요했는 지도 모른다.
  그의 사후에 외신의 보도만을 보아도 사파리클럽은 세계의 무기거래상들이 들려 상담을 하는가 하면 내노라하는 국내외 실업인들이 모이는 사교장이며, 도박과 여자까지 제공되는 치외법권의 별세계처럼 취급되고 있었다.
  이곳에는 무기거래의 세계적인 거상이었던 중동의 카쇼기도 들려 박종규와 친교를 나누기도 했다는 것이다.
  박종규는 고위층에 부탁하여 이미 카지노 영업을 위한 내인가를 받아놓고 있었다. 그런데 그와 교분이 있던 전, 현직의 몇몇 공직자들이 그에게 진언을 했다. 과거의 경력으로나 현재의 사회적 신분으로 보아 그가 카지노 영업을 대형화하고 사업을 계속한다면 여론이 좋지 않을 것이니 동 사업에서 손을 떼라는 권고였다.
  그는 주위의 권고도 있었지만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가 노드롭과 추진하고 있는 판촉사업도 대단한 이권일 뿐더러 그 실현에 대한 자신감을 얻은 마당에 굳이 카지노 사업의 대형화를 강행할 필요가 없다는 결심을 한 것이다. 그는 생각 끝에 사파리클럽 운영을 맡은 마명덕을 불렀다.
" 미스터 마, 요즈음 카지노 영업이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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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그는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흘리는 듯 했고, 마명덕은 평소에 볼 수 없는 그의 태도를 약간 의아하게 여겼다
" 별다른 진전없이 늘 그렇습니다."
" 그래, 그거 적자만 나고 골치 아픈데 집어치우고 전락원이 팀을 당장 철수시켜 버려요."
  마명덕은 박종규의 단호한 한 마디에 어리둥절 할 수밖에 없었다 내인가까지 받아두고 이미 투자자를 구해놓은 처지에 카지노를 집어치우고 전락원을 당장 철수시키라니 벼락같은 소리였다.
  카지노만은 워커힐 카지노 소유자인 전락원에게 위탁으로 경영해 왔던 것이다.
" 전사장이 아직 해외출장에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 그래, 그럼 전락원이 다음 책임자가 누구요?"
" 최이사라고 있습니다."
" 그 친구 당장 불러오지."
  마명덕은 전화로 연락하여 전락원의 대리인격인 워커힐 카지노에서 파견된 최이사를 박종규의 사무실로 즉시 불러 들였다. 최이사가 나타나가 박종규는 거두절미하고 용건만 말했다.
" 최이사!"
" 네."
" 오늘 당장 카지노에서 손을 떼고 철수해."
  박종규에게 감히 그 이유를 묻고 어쩐다는 것은 통할 리가 없었다. 최이사는 그저 허리만 굽실거리고 주눅이 들어 나가버렸다.
" 짜아식들, 내가 죽은줄 알았지."
하고 박종규는 다시 한번 마명덕을 쳐다보며 빙그레 웃었다.
마명덕은 그제서 박종규의 태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차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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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나 다음 말에 또 한번 놀랐다.
" 미스터 마, 카지노 내인가는 반납해 버려요. 그리고 오늘부터 카지노 영업도 미스터 마가 인수하구."
  이렇게 해서 전락원을 위탁경영에서 손을 떼게 했고 말썽많다고 생각한 내인가도 반납해 버렸다.
  박종규는 자신의 권위회복과 건재함을 은연 중에 과시하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전락원에게 맡긴 위탁경영을 빼앗아버린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도 있었다. 전락원은 자신의 사업인 카지노를 경영해 오면서 박종규로부터 많은 지원과 사업상의 보호를 받아왔다는 것이 주변 인물들의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락원은 박종규로부터 사파리클럽 카지노의 경영을 위탁받아 고의적으로, 장부상 적자를 내어, 박종규에게 보고를 해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박종규 같은 권력형 거물급 인물이 카지노에서 돈을 벌어들이는 재미를 붙이면 사업을 확장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자신의 사업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선입견적인 피해망상으로, 박종규가 카지노 사업에 관심을 갖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전락원의 지론이었다. 그러다보니 결국 전락원이 고의적으로 적자를 낸다는 말이 박종규에 알게 모르게 전달되었고, 배은망덕하다는 생각이 그의 비위를 못견디게 자극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박종규의 사후에 또 하나의 사건을 몰고오는 태풍의 눈이 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박종규가 내인가를 반납함으로써 가장 큰 피해를 본 사람은 부산출신의 사업가 제갈사장이었다. 그는 카지노 사업에 자본을 투자하고 박종규의 주선으로 허가를 얻는 조건으로, 동업을 하기 위해 그가 소유하고 있던 부산 극동호텔을 전락원에게 팔아 처분한 대금으로 카지노 시설까지 준비해 놓고 있었으나 졸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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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말할 것도 없이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운 카지노 영업 내인가를 박종규가 느닷없이 반납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제갈사장으로부터 극동호텔을 매입하여 그 자리에 파라다이스호텔을 지은 전락원의 사업은 호황을 누렸다. 제갈사장은 박종규에게 따지고 항의를 하기는커녕 그후 울화병에 걸려 죽고 말았다는 후문이다.

  84년 9월 노드롭은 자사가 개발한 최신예전투기의 판촉을 위해 시제품으로 영국의 판보르(Panbore) 에어 쇼에 참가한 다음 19개국을 순회하며 시범비행을 하고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전시비행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 예정일이 동년 10월 10일이었다. 2대의 시제품이 한국에 들어와 전시비행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끝내고, 그날 아침 박종규와 몇몇 관계자들이 조종사 뎅그릴 코넬(Dengril Cornell)과 아침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코넬은 으시대듯 지껄였다.
" 오늘 마지막 시범비행인데 멋진 묘기를 보여줄 겁니다."
" 거 무슨 묘기요?" 하고 박종규가 물었다.
" 수직강하 비행으로 모두들 깜짝 놀라게 될 겁니다."
  조종사 코넬은 근라 아침 밝은 표정으로 컨디션이 아주 좋아 보였다는 것이 그와 마주 대했던 관계자의 얘기다.
  수원공군기지에서 전시비행이 실시되기로 예정된 오후 3시전에 1백여 명의 참관인들이 활주로의 동쪽 관람대에 자리를 차지했고 정각 3시가 되자 한 대의 F-20 타이거 샤크가 순식간에 활주로를 이륙하여 고공상승, 저공수평비행, 360도 회전, 수직강하 및 모의 미사일 발사 등 묘기를 보여 참관인들로부터 아낌없는 박수갈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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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람석에는 김인기 공군참모총장, 김영선 국회 국방분과위원장, 조중훈 대한항공회장 등 관계인사들이 참관하며 전시비행 묘기에 감탄을 보냈다.
  그런데 F-20 은 전시비행을 끝내고 착륙할 것으로 알았으나 다시 한번 고공상승을 하고나서 수직강하를 감행했다.
  지상 1백여 미터를 수직강하했을 때만도 감히 생각지 못했으나 지상 20미터 정도까지 이르렀을 때 참관인들 모두가 '앗'하는 소리만 냈을 뿐 그 다음은 화염과 검은 연기가 치솟았다.
  날으는 호랑이요, 상어로 상징되는 최신예전투기 F-20 은 활주로 서남쪽 부근의 논바닥에 수직으로 처박히면서 폭발하고 말았다. 참으로 기가 막히고 어처구니 없는 참사가 눈앞에 펼쳐진 것이었다.
  기체의 길이는 46피트 6인치, 높이 13피트 10인치, 폭은 26피트 8인치, 기체무게 1만8천파운드, 최대중량 2만7천5백파운드, 전투비행거리 2천7백마일, 최대속도는 마하 2.0이며 37초만에 활주로를 이탈하여 2분 30초 후면 고공 3만4천피트까지 상승하여 전투태세를 갖출 수 있는 F-20 은 지상, 해상공중 어디서나 전투를 수행할 수 있는 미사일과 20미리미터 기관포 2문, 초정밀 고속 컴퓨터를 갖추고 있었다.
  이날 노드롭 측은 조종사 코넬이 다른 나라에서는 행하지도 않았고, 예정에도 없는 묘기를 보여주었다고 하며 기체조작 실수라고 했다.
  사고에 대한 공식적인 조사결과가 발표되지 않는 한 여러가지 추측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즉 조종사의 조작실수 아니면 기체의 결함인데 어느쪽이냐 하는 것이다.
  초정밀 컴퓨터 장치에 의하여조종사가 조종간을 놓치지 않는 한 어느 한계까지 고도를 내려오면 자동으로 꺽이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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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한다. 그래서 연료탱크의 이상이 아닐까 하는 의문도 제기되었다.
  이와같은 사고로 치명적인 타격을 받은 측은 노드롭이고 파트너인 박종규와 판촉관계자들이었다. 호사다마라고나 할까 공사간에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왔는데 박종규로서는 가장 큰 이권사업을 실현하기 위한 첫 단계에서 예상치 않은 불행한 사태를 맞이했다.
  전시비행이 끝나면 구매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언질까지 고위층으로부터 받아놓았고, 내심 노드롭 측의 로비활동을 좋게 보지 않고 있던 군부 측에도 그동안 잘 다독거려 놓았는데 어쩔수 없이 판촉활동을 잠정적으로 보류하고 관계자들의 여론을 진정시키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냥 물러날 박종규가 아니었고 노드롭 역시 판촉계획에 어떤 수정을 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박종규는 전시비행 중에 일어난 참사의 후유증이 진정되기를 기다리며 고위층과 군부 측을 상대로한 로비작전을 조심스럽게 은밀히 진행시켰다. 그러나 김인기 공군참모총장을 비롯한 군부측의 반응이 문제였다.

  84년 10월 하순 어느날 강오현은 박종규로부터 전화연락을 받고 그의 사무실로 찾아갔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마명덕이가 와 있었다.
  의례적인 인사가 오고간 뒤 박종규는 마명덕이가 들고 있는 영문으로 된 서류를 가리키며 말했다.
" 강사장, 그 서류에 사인이나 하시오."
" 이게 뭡니까?"
" 대표이사직을 사임할려면 미국 측(노드롭)의 동의를 얻어야 합니다. 사임동의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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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오현은 두말없이 마명덕이가 준비해 놓은 서류에 미련없이 서명을 했다. 그리고는 홀가분하게 박종규의 사무실을 나섰다. 이렇게 해서 강오현은 노드롭에 관한한 박종규와의 관계를 4개월여 만에 정리를 해버렸으나 노드롭사건의 전반에 걸쳐볼 때 그에게 있어서도 동 사건에 연루되는 시작이기도 했다.
  그 자신이 검찰에서 밝힌 진술과 피의자 신문조서에 의하면 그는 단순히 박종규의 요구에 의해 관련된 사업의 내용이나 목적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협조하였고, 모든 것을 선의로 생각하고 관계업무에 임한 것처럼 변명하고 있다. 그의 진술대로라면 아시아문화관광개발의 대표이사직에 얼굴마담격으로 자리나 지켜주었으며 그가 6백25만불 자금을 수수하고 지출하는 과정에서도 단순히 어떤 조직의 하수인 같은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과연 그는 자신의 주장대로 상기 자금과 관련하여 박종규로부터 한 푼도 받지 않고 결백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한국외환은행 홍콩지점에서 6백25만불을 인출할 때 마명덕이가 박종규의 지시를 받아 행하는 출납관계의 일을 지켜만 보는 것으로 노드롭사건에 관련된 그의 역할은 끝난 것일까.
  마명덕이가 입을 열지 않는한 6백25만불에 관련된 강오현의 역할도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이민하의 진술에 의하며 84년 9월 초 동경 프린스호텔에서 박종규로부터 2백만불을 받을 때 박종규는 나머지 20만불은 강오현에게 주어 처리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강오현은 이 부분도 검찰에서 철저히 부인하고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마치 선의의 피해자인 듯 변명하고 있으나 설득력이 부족하다. 헌병장교 출신으로 중앙정보부 수사과장을 거쳐 주일대사관 일등서기관을 역임했던 그가 명의만을 빌려준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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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에서 박종규의 이권사업을 아무런 이해관계없이 도와주었다면 누가 믿을 것인가. 돌이켜보면 강오현은 오랫동안 박종규와는 공사간에 범상치 않은 관계를 유지해온 것도 사실이다.
  강오현의 후임으로 박종규는 처남 이종훈에게 이시아문화관광개발의 대표이사직을 맡겼고, 동년 11월 1일자로 강오현의 주식 26만7천주를 이종훈이가 양수하는 형식의 절차를 거쳐 11월 27일에는 노드롭의 도널드 폴즈에게 이 사실을 통보했다. 이후 강오현은 85년 1월25일자로 등기상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다.
  이 경우 강오현의 입장으로서는 아이러니한 면이 없지 않다. 마명덕이가 입회한 자리에서 사임동의서에 서명한 것이다. 알고보면 박종규에게 마명덕을 소개하고 천거한 사람은 다름아닌 강오현이었기 때문이다.

  마명덕(미국명 : Eric Ma) 은 누구인가. 그는 한국 태생 화교로서 한국외국어대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미국에 유학하여 로스앤젤리스의 우드베리대(Woodbury University)에서 국제경영을 전공했으며, 사리분별이 정확하고 두뇌회전이 비교적 빠른 엘리트이다.
  그는 유학 중에 훗날 신광수와 재혼을 하게된 마리 앤의 딸과 만나 결혼했으며, 77년부터 80년까지 미육군에서 근무하고 미국시민으로 귀화했다. 그는 미육군에서 전연한 후 미재향군인회 용산지부장을 지내기도 했고 이 무렵 이태원에서 미군들을 상대로 나이트클럽을 경영하면서 미8군 내에 있는 은행(USA Federal Credit Union)의 대부계 매니저로 근무했다.
  이재관리에 남다른 지식과 수완을 겸비한 그가 박종규로부터 동업을 하자고 제안을 받은 것은 강오현의 소개와 추천 때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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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다. 평소에 마명덕의 장모와 친분이 있던 강오현은 박종규가 찾고 있는 적당한 인물로 마명덕을 천거하게 되었고, 박종규는 마명덕의 경력이나 능력으로 보아 사파리클럽의 경영을 맡길 수 있는 적임자라고 판단한 것이다.
  마명덕은 사파리클럽 개업시부터 경영을 인수받아 착실히 관리해 나갔고 박종규로서는 마명덕의 영민하고 사리판단이 정확한 처신이 만족할 만한 것이었다. 그래서 사파리클럽 운영뿐만 아니라 그의 필요한 대외업무에도 마명덕의 관리적인 능력을 십분 이용했다. 따라서 마명덕은 박종규에게 있어서 사업의 동업자로서 만이 아니라 그의 생전에 마지막으로 가장 신임하는 보좌역이요, 충복이랄만 했다. 그것은 바로 노드롭의 F-20 판촉활동에서 박종규가 그에게 부여하는 업무의 성격에세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박종규에게 있어서 신광수는 표면에 나서서 노드롭과의 연락조정 업무를 수행하는 전위적 위치에 있는 존재라고 한다면 마명덕은 항상 막후에서 얼굴없이 신광수의 역할을 재검토 확인하며 박종규의 마지막 비밀을 취급해온 그림자와 같은 존재였다.
  박종규 사후 2년이나 경과되어 미국의 매스컴에서 마명덕을 추적했을 때 그의 처신이 그의 입장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관계자들의 알력에 의해 그의 신분이 노출되자 월 스트리트 저널과 LA 타임스의 극동특파원들이 그를 추적하고 만나줄 것을 회유했으나 그가 끝까지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묘하게 피해버리자, LA 타임스의 칼 소엔버거(Karl Shoenberger) 동경주재특파원은 88년 7월 31일 노드롭스탠들에 관련된 장문의 특집기사를 주로 사파리클럽과 마명덕을 내세워 취재하면서 마명덕에 대해 이렇게 표현한 구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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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명덕은 행적을 파악하기 어려운 과거와 함께 표면에 나타나지 않는 사업가이다. 그는 노드롭이 내놓은 6백25만불이 어떻게 쓰여졌는 가를 개인적으로 잘 알고 있는 유일한 실존 인물로서 박종규가 신임했던 보좌역이다. 그러나 그는 입을 열지 않고 있다.

  이렇듯 박종규를 보좌하는 그를 가장 못마땅하게 여기고 눈에 가시처럼 생각한 주변인물은 다름아닌 신광수였다.
  이민하의 경우도 마명덕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것은 신광수와 다를 바 없었으나 이민하는 노드롭 관계업무에는 관여할 입장이 아니었다.
  박종규 자신도 신광수가 마명덕에 대해 갖고 있는 감정을 훤히 꿰뚫어보고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하려고 했으나 일단은 두사람 사이를 관망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의붓장인과 의붓사위인 그들의 인간관계에 박종규 자신도 함부로 끼어든다는 것이 결국 남의 사생활을 간섭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리라는 것은 당연하다.
  박종규하면 '피스톨 박'이라는 그의 별명처럼 외부적인 이미지는 권력을 상징하는 저돌적인 면이 있지만 대인관계나 이권관리에는 남다른 판단과 수완을 지니고 있기도 했다. 그것은 정치와 권력의 중심부에서 오랜 경륜으로 터득한 그의 처세철학이기도 한 것이다. 아무튼 신광수에게 있어서는 박종규와 밀착된 관계를 유지하는데 맘여덕이란 존재는 의붓사위일 망정 눈에 가시였다.
  한편 이민하에게 있어서도 마명덕이가 불편한 존재로 클로즈업 된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박종규가 있는한 감히 어쩔 수 없는 처지였다. 마명덕에 대한 그들의 감정적인 앙금은 쌓여만 가고 있는 가운데 신광수가 박종규에게 제시하는 안건이나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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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신광수 본인 자신도 마명덕을 통하여 여과과정을 거치고 있었다.
  F-20이 전시비행 중 추락참사를 당한 후 박종규와 노드롭의 판촉활동은 소강상태에 직면하였고, 노드롭 측으로서는 박종규의 수완에 기대를 걸고 은근히 그에게 간적적인 방법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압력을 넣고 있었던 것이다.
  거금을 판촉로비자금으로 선지급했을 뿐만 아니라 박종규는 노드롭으로부터 월정보수를 받는 로비스트이기도 했다. 이러한 당시의 사정은 박종규가 84년 12월 10일자로 노드롭의 토마스 존스 회장에게 보낸 보고서한에서 잘 반영되고 있다. 국제올림픽조직위원의 직함이 새겨진 그의 전용 서한용지에 작성한 비밀보고서 내용 전문을 번역하면 하기와 같다.

  친애하는 톰

  본인은 지난 8월 초 LA에서 귀하와 화합을 가진 이래로 우리가 수행해온 판촉활동을 내밀하게 검토해 보고자 합니다.
  본인은 귀국하는 대로 김인기 장군으로 하여금 귀하에게 '오퍼(Letter of offer)를 요청하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국방부당국의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반대 측에 대해 그의 입장을 지워할 수 있는 당위성과 자료가 더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김장군은 지난 10월 10일 수원에서 예정되었던 F-20의 전시비행이 성공적으로 끝날 때까지 우리 측에게 기다려 달라고 강력히 권고했던 것입니다. 현재까지 김장군은 이와같은 대규모 사업계획의 조달업무에 중요한 비중이 있는 한국육군의 관료적 조직의 실체를 보장해 주기 위한 조치들을 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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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10일의 비극적인 사고의 결과는 반대 측에 의해 우리에게 불리하게 이용되어 왔습니다. 이제 겨우 우리는 지금까지의 잠정적인 후퇴에서 회복되어 가고 있습니다. 모든 관계자들이 전투기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사실을 수긍하지만 우리는 그렇나 사실을 기록으로 입증하기 위한 사고조사의 결과가 여전히 필요합니다.
  현재 본인은 F-20의 계획을 진행시키라는 전두환 대통령의 지속적인 확약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공군참모총장은 단계적으로 지원을 위한 절차를 조심스럽게 마련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O장관과 본인은 동 사업계획의 성공에는 완전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으며 가장 중요하다고 사료되는 부분의 지원을 보장했습니다.
  물론 우리의 경쟁은 우리 앞에 놓여진 장애물을 제거하듯이 성실하게 수행되고 있으며 특히 국방부당국을 상대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직 시간문제일 뿐 이와같은 경쟁은 우리의 최종목표를 바꾸어 놓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와같은 관점에서 본인은 짐 도어시(Jim Dorsey)를 통하여 신속한 회담이 필요함을 깨달았으며, 아울러 본인은 한국 내의 복잡한 정치상황이 허용하는 대로 즉시 현안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약속드립니다.
  현재 본인은 12월 15일 또는 20일 전에 '오퍼'의 요청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오퍼 요청이 실현되면 그때 본인은 사업수행을 위한 방법에 관하여 여러가지 제안을 할 것입니다. 한국 측(모든 중요한 계층을 포함)과 노드롭 측의 관계는 개쉬, 도어시 및 폴즈가 주도해 왔습니다. 본인은 이 중요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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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에서 상기인들이 가능한한 오랫동안 이와같은 관계를 지속할 것이라는 귀하의 확약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동 사업계획은 결코 실현되지 못할 것으로 본인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인사들은 이와같은 현재의 관계를 가장 만족하게 여기고 있으며 그런 상태가 계속되길 원하고 있습니다.

  본인이 상기와 같은 요청을 하는 이유는 사교상의 예의 및 의전에 대한 매우 미묘한 문제와 관계가 있습니다. 그것은 한국과 같은 동양적인 국가와의 사업거래에서는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본인은 많은 노드롭의 임직원들 가운데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 지나치게 우월감을 표시하는 듯한 몇몇 인사들이 있다고 판단하며 이는 양측간의 관계에 감정적인 틈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와 똑같은 문제는 인격적인 신뢰가 아주 중요시되고 있는 아시아지역 전역에 현존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본인이 한국 내 로비대상자들로부터 받은 보고에 의하여 실례를 들어 지적한다면 지난 9월 SITRA 무역전시회 기간에 듀크 골든(Duke Golden)의 한국방문이었습니다. 그는 한국의 장관들을 마치 자기의 친구처럼 매우 오만불손한 태도로 그들의 등을 두들기고 농담을 하며 거칠게 대했습니다. 더욱이 그는 우리 측의 간접상쇄거래 요구에 반하는 생각으로 상대방 한국인 관계자들에게 노골적으로 겁을 주는 발언을 행하였습니다.
  이와같은 유형의 행위가 미국에서는 용납이 된다하더라도 이곳 한국에서는 노드롭 측에 심각한 장애요인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위에서 거론한 노드롭의 3인이 계속하여 협의업무 수행을 요구하는 본인의 뜻은 기술적인 전문지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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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사회적 또는 의전적인 상황을 적절히 처리할 수 있는 그들의 능력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귀하께서 이해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오퍼 요청이 있는 대로 즉시 이곳 한국이나 로스앤젤리스에서 귀하와 다시 회동하게 될 것을 기대합니다.
  삼가 말씀 드립니다.
                                                                                                                                                                1984년 12월 10일
                                                                                                                                                                                 박종규

  박종규가 노드롭의 토마스 존스 회장에게 보낸 보고서한은 당시 F-20 전투기의 대 한국 판촉로비에 관련된 애로점이 간략하게 잘 표현되어 있으나 추리적인 가정으로 노드롭 측과 박종규의 입장을 정리해보면 갖가지 의문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동 보고서한에서 김인기 공군참모총장의 입장이 박종규 자신이 겪고 있었던 판촉로비의 어려움을 대변하고 있다.
  김인기 총장은 노드롭에 대해 F-20 전투기 구매를 위한 오퍼 요청을 10월 10일로 예정된 전시비행이 있을 때까지 미루어왔고, 더욱이 F-20이 추락되자 그가 F-20을 구매하자는 결정적 의견을 내놓을 수 있는 당위성을 주장할 수 없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국방부당국의 조달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실권자들의 반대에 부딪치게 되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국방부에서 구매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육군의 관료적인 권위의 벽을 뚫기도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과 F-20의 추락참사는 반대 측에 의해 노드롭 측에 불리하게 이용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박종규는 동 서한에서 판촉사업의 성공에 대한 자신감을 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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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하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첫째, F-20의 계획을 계속 추진하라는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지속적인 확신을 박종규는 얻었다는 것이다. 군부 측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을텐데 과연 최고위층인 대통령이 군부 측의 반대의견을 수렴한 후에 이와같은 언질을 주었느냐 하는 문제이다.
  둘째, 공군참모총장은 신중하게 판촉사업을 지지하는 입장을 다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고위층과 군부 측의 중간 입장에 서있는 김인기 공군참모총장의 호의적인 협조를 얻어있다는 내용이다.
  셋째, 박종규는 O장관과 동 사업계획의 성공에 대한 완전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으며 가장 중요하다고 사료되는 지원을 보장했다고 보고하고 있다. 바로 이부분은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언질과 맞물려 있는 중요한 의미를 시사하고 있다. 성공에 대한 자신감과 함께 중요시되는 지원의 보장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신감이라 함은 판촉의 결과이고 중요시되는 지원이란 구매결과에 대한 반대급부로써 노드롭 측이 한국 측에 '오프셋 프로그램'형식으로 구상거래를 한다는 것으로 선의적인 판단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오프셋 프로그램'이라는 일종의 구상거래 내용은 그 유형이 다양하고 비리가 발생할 수 있는 소지가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앞서 이미 6백25만불이 지급된 것처럼 판촉이 성공되었을 때 상기 금액의 처리는 두가지 형태로 재무관리상 회계처리가 된다는 것은 자명한 것이다.
  진정 판촉비로 처리한다면 후일 전투기 판매가 이루어졌을 경우 판촉 커미션에서 공제처리할 것이고 만약 호텔합작투자대금으로 회계처리할 경우 간접상쇄프로그램(IOP)으로 계정처리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왜 박종규는 동 보고서한에서 당시 O장관을 거명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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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냐 하는 것이다. 그 당시 O장관이라면 한국정부의 전투기 구매사업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그런 이권의 자리도 아닐 뿐더러 판촉로비에 직접, 간접으로 관여할 입장도 아닌 것이다.
  물론 개인적인 입장에서 이권에 개입하는 경우 신분이나 지위고하를 굳이 구분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당시 한국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보면 O장관은 권력적인 측면에서 실세라고 볼수 없는 위치였는데 박종규가 O장관의 이름을 보고서한에서 자신과 동격의 입장으로 끌어들여 전시한 것은 판촉로비의 이면에 대한 의혹을 자아내게 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자기 과시를 위해 한국정부의 고위인사들의 이름을 거명했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중요시되는 지원을 보장했다는 부분에서는 박종규와 당시 O장관이 판촉로비에 어떤 관련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오해를 낳을 수도 있는 것이다.

    F-20이 추락된 후 침체된 판촉활동으로 박종규의 입지가 궁색해진 것은 그의 보고서한에 잘 나타나 있다.
  그러나 소강상태에 빠져들었던 판촉활동은 85년 초부터 다시 적극적인 실무차원에서 전개되었다.
  F-20의 추락은 기체의 결함에서 기인된 것이 아니라는 홍보와 설득으로 나서는 한편 노드롭 측은 오프셋 프로그램을 제시하며 한국정부의 구매결정을 유도하려고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오프셋 프로그램에 대한 노드롭 측의 제안을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85년 2월 8일자로 대 한국 오프셋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는 로드롭사의 로버트 리오타(Robert G. Liotta)가 한국공군의 항공기사업부 차장인 전성환 준장에게 보낸 간접상쇄계획안에 의하면 한국정부가 F-20 전투기를 구매할 경우 노드롭이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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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해 주는 간접상쇄거래액은 무려 미화 86억1천5백만달러나 된다.
  이러한 제안은 15개 항목으로 구분된 사업계획으로 열거되어 있으며, 노드롭은 과거 스위스, 캐나다 및 스페인에서의 실적과 한국이 이미 구매한 F-5 EF전투기 거래에서 약정된 사업계획을 84년부터 이행하고 있다는 실례를 제시하면서 F-20에 관련된 그들의 제안 계획을 홍보하고 나섰다. 뒤이어 85년 4월 1일자로 이번에는 노드롭의 수석부사장 웰코 개쉬가 한국의 금진호 상공부장관에게 보낸 서한에는 수정된 간접상쇄거래 계획안이 더욱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다.
  한국정부가 F-20 전투기 1백50 내지 2백 대를 구매할 경우 반대급부로 노드롭은 한국을 위해 건설 및 조선분야의 프로젝트에 93억달러, 기타 구매 및 삼각무역거래에서 4억5천만달러 등 총합계 금액 97억5천만달러의 간접상쇄거래를 15년 간에 걸쳐 이행하겠다는 조건을 제시하였다. 이것은 한국정부의 고위관계 인사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킬만 하고 상담해 볼만한 제안이었음에 틀림없다.
  전투기 구매에  30억달러 정도 지출하고 해외건설 및 조선사업 그리고 수출에 의한 부대적인 거래가 무려 1백억달러 정도 실현 된다면 해볼 만한 거래가 아닌가. 이래서 한국정부의 관계자들은 노드롭과 박종규의 판촉전략에 선의의 관심을 갖게 되고 고위층의 동의와 결정을 얻어내기 위해 판촉관계자들은 분투하고 있었다. 이 무렵 박종규와 신광수는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미국 방문시 대통령과 노드롭의 토마스 존스 회장과의 면담을 주선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 면담허락을 받아낸 것이다.

  전두환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앞둔 85년 5월 초 어느날 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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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은 박종규의 부름을 받고 그의 사무실에 올라갔다.
  평소 때와는 달리 마명덕이 사무실에 들어서자 박종규는 선뜻 입을 열지 않고 잠시 상대방을 의미있는 시선으로 쳐다보며 자리를 권했다. 소파에 마주앉아 박종규는 예기치않게 신광수의 얘기를 꺼냈다.
  " 마사장과 신사장 관계에 내가 끼어들고 싶지는 않지만 얼마전부터 한번쯤 마사장한테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두 사람은 장인과 사위관계이고, 이건 남의 가족문제이지만 마사장이 한가지 알아두어야 할 사항이 있어요. 다름아니라 신사장이 마사장을 아주 좋지 않게 보고 있다는 거예요. 나에게 몇번이고 마사장에 대해서 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내가 정말 듣기 거북할 정도요."
하고 박종규는 마명덕의 눈치를 다시 한번 살폈다. 그 순간 마명덕은 수치심을 느꼈고 누구에게 느닷없이 뒷통수라도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동안 마명덕은 신광수와의 인척관계를 어느 누구에게도 내세워 본적이 없었고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지만 단 한번도 신광수의 이름을 남들 앞에서 거론조차도 해보지 않을만큼 스스로가 조심스럽게 처신을 해왔던 것이다.
  장인과 사위간에 간접적으로나마 박종규를 중심으로 한 사업적 연관을 가지고 있다는 인상을 남기고 싶지 않았고 한편으로는 신광수 자신이 공공연하게 나는 건달이요, 로비스트라고 자기과시를 하고 다녔기 때문에 마명덕은 가능한한 그의 주변에서 멀어지고 싶어했다. 그리하여 박종규 앞에서조차 신광수에 대한 얘기는 한번도 꺼내지 않았다.
  마명덕은 자기자신만 신중하게 처신하면 신광수와는 이해상충이 되는 어떤 일로 부딪치는 경우가 없을 것으로 생각해 왔는데 박종규의 얘기를 듣고보니 신광수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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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꽤 깊은 일종의 투기심을 뜻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의붓장인인 그가 박종규에게 자신에 대한 험담을 했다는 사실 그자체가 불쾌할 수밖에 없었다. 나이도 불과 십여 년 차이밖에 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래도 맺어진 인간관계는 장인과 사위였던 것이다.
  " 회장님. 저는 그런 경우를 한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습니다."
  " 그럴테지. 아무튼 신사장은 신뢰하기가 어려운 사람이오. 그동안 내가 상대하며 관찰해온 결과 얻은 결론이구요. 무서운 사람이니 각별히 조심해요. 명색이 장인과 사위인데 나로서는 두사람 사이에 끼어들 수도 없으니까요."
  " 네. 충고의 말씀으로 알고 명심하겠습니다."
  마명덕은 황당한 심정으로 박종규 앞을 물러 나왔다. 신광수라는 사람의 인품이 다시 한번 마음깊이 되새겨졌다.

  대통령 방미시에 대통령과 노드롭의 토마스 존스 회장간에 단독면담 일정을 주선해 놓을 박종규와 로비팀의 핵심 멤버들은 기대감과 부대적인 준비에 분주했다. 마명덕 자신도 박종규를 수행하는 미국 방문일정을 마련해 놓았고 더욱이 대통령과 존스회장의 단독면담에 존스 회장의 통역으로 마명덕이 참석하도록 계획이 되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강세희로부터 상의할 일이 있으니 신라호텔에서 만나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마명덕은 강세희에 대해 주변인물들을 통해 얘기만 들었을 뿐 정식대면을 하여 수인사를 나눈 적도 없는 그런 사이였다. 마명덕은 그가 신광수와 가까운 사이이고 박종규와 이민하의 주변인물이라 무슨 안건으로 상의할 것인 지에 대해 반문도 없이 신라호텔로 나갔으나 강세희는 나타나지 않았고 다시 전화로 동양고속건물 12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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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만나자는 것이었다. 마명덕은 다시 남대문 쪽으로 향했다.
  동양고속건물의 주차장에 자동차와 운전사를 대기시켜놓고 12층에 있는 강세희의 사무실로 올라갔다. 마명덕이가 사무실 문을 노크하고 들어서는 순간 느닷없이 건강한 세 명의 젊은 녀석들이 달려들어 주먹질과 발길질을 사정없이 해댔다. 졸지에 그는 무차별 날아드는 주먹과 발길지레 의식을 차릴 수도 없이 고스란히 얻어 맞아야만 했고 무방비 상태에서 당한 일이라 신체적인 고통만을 느꼈을 뿐이었다.
  " 마사장. 첫인사를 이렇게 해서 않됐군. 내가 강세희요."
   책상 앞에 휠체어를 놓고 앉아있던 강세희가 마명덕을 째려보면서 입가에 냉소를 머금고 있었다. 마명덕은 소름이 끼치고 독기가 올랐으나 숫적으로 불가항력이었다.
  "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이오!"
  " 닥쳐! 짜아식. 너는 너무 건방져. 그래서 손을 봐줘야 한다 이거야. 박회장 믿고 건방지게 놀다가는 각오해."
  그저 건방지다는 것 외에는 이유가 없었다. 마명덕은 그 자리에서 더 이상 그들과 맞선다는 것이 자신에게 손해가 될거라는 생각에 그대로 물러나는 수밖에 없었다.
  강세희로부터 야유조의 공갈과 경고를 받고 난 후, 일단 폴려났으나 마명덕은 돌아오면서 박종규에게 이 사실을 보고해야 한다는 생각보다 강세희 측에서 자신을 적대시하게 된 동기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박종규에게 신임을 받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강세희가 시기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며 혹시 사파리클럽 운영에 관련된 주변인물들이 간접적인 방법으로 압력을 가해오는 것일까 하고 가정해 보았으나 자신에게 원한을 가질만한 인물이 떠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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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집으로 향하는 차안에서 힘에는 힘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
  깡패나 건달세계에서는 사회통념상의 법이라는 것은 기도나 염불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새삼 떠올랐다. 하나의 힘으로 밀고 들어오면 둘이라는 힘으로 밀어내는 것이 바로 그 세계의 적자생존이요. 법이다. 마명덕은 자기의 동조자에게 연락을 하여 자신이 강세희 앞에서 당한 굴욕을 갚기 위해 만반의 조치를 취했으나 그의 처와 장모가 이 사실을 알고 그냥 넘어갈 리가 없었다. 마명덕의 장모가 즉시 박종규의 부인 이종원을 찾아가 이사실을 알리고 울분을 터트린 것이다.
  그날밤 늦게 귀가한 박종규는 그의 부인으로부터 마명덕이가 강세희의 수하들로부터 테러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자리에 앉지도 않고 그냥 밖으로 나갔다고 한다. 몹시 진노한 박종규는 즉시 수소문하여 마명덕에게 폭행을 가한 강세희와 그의 수하들을 수배하여 사파리클럽 2층 사무실로 불러 들였다.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자기를 보좌하는 심복같은 인물에게 폭행을 가하다니 박종규는 자신에게 도전하는 행위라고 단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강세희를 비롯하여 관련자들을 모조리 혼쭐을 내주겠다고 단단히 마음먹었던 박종규는 강세희를 막상 만나고 나니 그것도 자신의 뜻대로만 할 수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강세희는 전후사정을 설명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며 박종규에게 백번 사죄하고 위기를 모면했다. 박종규는 강세희로부터 다짐을 받으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허전할 수밖에 없었다.
  " 세희!"
  " 네, 회장님."
  "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한번만 더 그런 일이 일어나면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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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끝장인줄 알어."
  " 네, 명심하겠습니다."
  그날밤 마명덕이가 박종규로부터 연락을 받고 사파리클럽 2층 사무실로 간것이 새벽 2시경이었다. 마명덕이 들어서자 박종규는 대뜸 역정인지 푸념인지 모를 소리를 지꺼렸다.
  " 내 오른팔 노릇을 하면서 얻어 맞다니 이거 말이나 되오."
하더니 이내 유연한 소리로 다시 지껄였다.
  " 내가 알아서 모든 것을 처리했으니 두번 다시 이런 일이 없을거요. 마사장은 매사 나를 대신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시오."
  " 네."
  박종규는 더 이상 아무 말없이 나가버렸다. 그러나 마명덕은 박종규가 모든 것을 알아서 처리했다고 하나 그대로 넘어갈 수는 없었다. 다음날 강세희를 찾아가서 만났을 때 박종규로부터 호되게 닥달을 받은 그는 대뜸 뜻밖의 변명을 늘어 놓았다.
  " 마사장, 미안하게 되었소. 그러나 나를 오해하지 마시오. 어제 일은 신광수의 작품이니 내게 무엇을 알려고도 하지 말고 묻지도 마시오. 나로서는 그 말밖에 할 말이 없어요."
하고 강세희는 손을 내저었다. 그 순간 마명덕은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아찔함과 깊은 허탈감에 빠져들었다. 명식이 장인인 그가 이렇게까지 비인간적일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 인격이고, 품위고 간에 피차가 인전적인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마명덕은 지난밤 박회장이 두번 다시 이런 일은 없을 것이라는 말만 남기고 사무실을 나가버리던 그의 태도를 기억했다. 그리고 불과 열흘 전 박회장이 그에게 신광수는 믿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무서운 사람이니 조심하라는 경고성 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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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두사람 사이에 끼어들 수 없다는 하던 말을 되새겼다. 강세희가 마명덕이 폭행을 당한 것은 신광수의 작품이라고 폭로한 이상 이 문제는 가족 내부의 불화로 번지고 말았다. 남들에게 흉잡히는 부끄러운 일이라 함부로 입밖에 내지 못할 사건이었다. 물론 신광수는 이런 사실을 시인할 리가 없었다. 오히려 주위에서 자신을 중상모략질한다고 반박을 하고 나섰다. 집안 굿이된 마당에 마명덕은 일단 덮어두고 후퇴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결코 지워버리기 어려운 감정이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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