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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검은 돈 6백25만불

Views 605 Votes 0 2016.01.05 23: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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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lack Money of 6.25 Million Dollar

 

 


An undercover struggle between James K. Shin and
Min Ha Lee continued, and a constant secret negotiation between Park,

Chong kyu and Northrop's executive members

to funnel the lobbying fund to Pistol Park.
During LA Olympic event, 6.25 million dollar being

transfered to the account in the name of Mili Kim,

22 years old Korean young lady in Hong Kong,

and under the instruction of Pistol Park,

Oh Hyun Kang,  took a flight to Hong Kong to meet Mili Kim.

 

 

 

 

검은 돈 6백25만불

 

 


  사실상 맨 처음 판촉자금을 요구하고 나선 것은 이민하와 강세희이며 동시에 호텔합작투자를 제안한 것도 이민하였다. 호텔합작투자 계획을 제안하고 추진하기 위해 이민하가 대리인으로 내세운 인물이 시카고에 거주하는 재미교포 찰스 김(한국명 : 김종선)이다.
  84년 3월 이민하와 강세희는 판촉자금이 필요하다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박종규에게 이러한 의견을 제시하자 그 자신도 판촉자금의 선지급을 노드롭에 요청해야겠다는 제안에 동의를 했다. 막상 그들의 의견을 듣고보니 박종규도 자금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이민하와 강세희는 노드롭 측의 대 한국 판촉 업무의 주역인 제임스 도어시와 계약담당 부사장 도널드 폴즈에게 판촉로비자금의 지급을 요청하여 본격적인 협의에 들어갔다. 노드릅 측도 그들의 판촉비용 선지급 제안을 수용하겠다는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으나 문제는 어떤 방법으로 즉 지급명분이 문제가 된 것이다.
  미국 내 기업들은 록히드사건 이후로 1977년 미의회에서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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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 대외부정거래방지법(FCPA)이라는 제도 때문에 판촉비용 명분으로는 함부로 지출할 수가 없게 되어 있다. 동법이 허용되는 판촉비 명분의 지출 한계는 거래금액의 0.3%인데 과연 이와 같은 수치의 한도 내에서 판촉을 하는 미국 내의 군수업체가 있는가 하는 의문을 갖는 것 자체가 넌센스일지도 모른다.
  노드롭의 경우 지난 1975년에 대외거래에서 판촉자금으로 3천만불을 부당하게 지출했다는 혐의로 미정부 당국으로부터 경고를 받고 토마스 존스 회장과 노드롭은 동의판경(Consent Decree)에 서명함으로써 일단락 되었지만 이것은 일종의 집행유예와 같은 판결처분으로써 그후 미연방지법 판사는 상기 건을 1977년부터 발효 시행된 미국의 대외부정거래방지법에까지 확대적용을 해놓음으로써 토마스 존스 회장이나 노드롭은 다시 한번 부정거래 혐의가 드러나면 주주들로부터의 비난은 말할 것도 없고, 존스 회장 자신이 구속까지 될 수도 있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제너럴 다이내믹과 치열한 경쟁을 거쳐 최신예전투기 F-20을 생산 판매해야 하는 노드롭의 입장에서는 현행 관계법 때문에 판촉자금의 수요를 외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보니 그럴 듯한 전용방법과 명분이 필요했던 것이다.
  한편 제너럴 다이내믹을 비롯한 유수의 미국 군수 관련업체도 대 한국 판촉로비에서는 크게 예외는 아니었다. 제너럴 다이내믹도 85년에 판촉 용역비의 과다지출 혐의로 미하원 관계조사위원회의 청문회에서 한국의 부연상사 대표이며 예비역 공군장선인 윤응열과의 거래를 조사받기 시작했다.
  부연상사 대표 윤응열의 경우 제너럴 다이내믹을 포함한 미국의 5개 군수업체들로부터 수수한 판촉명분의 자금을 대부분 한국 내에 반입하지 않고 미국 내의 몇개 은행에 분산시켰다가, 다시 프랑스 파리에 있는 모은행의 비밀구좌에 예치하는 등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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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도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어떤 여인의 명의로 관련자금이 관리되고 있었던 것으로 청문회 보고서에 나타나 있다.
  검찰에서의 진술에 의하면 강세희는 5백만불을, 이민하는 2백만불을 판촉자금으로 노드롭 측에 요구한 것으로 나타나 있으나 이민하의 제안대로 계획서가 작성되어 신광수를 통하여 노드롭에 전달되었다. 그러나 이 보고서가 제대로 전달되었는 지는 의문이었다.
  그러면 노드롭 측이 수락한 계획서의 주요 골자는 무엇인가. 노드롭으로부터 2백만불은 동양관광주식회사로 입금되고 그 돈은 판촉비로 전용하되 회계 장부에는 노드롭 직원들에게 항공권을 발급한 명목으로 처리한다는 것이다. 검찰의 피의자 신문조서에서 이민하는,
  ...... 저희들이 판촉활동을 하다보니까 돈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강세희, 박종규 등과 상의하여 노드롭으로부터 선지급으로 돈을 미리 받아 판촉비로 사용하자고 하였는데, 우선 2백만불 정도가 있어야겠다고 상의되어 노드롭 쪽에 동 사실을 통보하고 그 돈을 미리 주도록 요구하였더니 자기들은 공개법인이기 때문에 판촉비를 정식으로 인출할 수가 없고, 또 미국에는 대외부패방지법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함부로 판촉비라는 명목으로는 돈을 줄 수가 없고, 동양고속의 계열회사인 동양관광주식회사라는 여행사가 있으니까 그 여행사를 통하여 노드롭사의 직원들이 한국을 방문할시에 티켓을 발급해 주는데 사용한다는 명목으로 노드롭에서 미리 돈을 보내주면 그 돈을 동양고속에서 인출하여 판촉활동비로 사용하기로 그 무렵 노드롭의 도어시 부사장 등과 협의가 되어서 그 계획서를 작성하여 1984년 4월경 신광수를 통하여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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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롭사에 전달하였는데 그 이후에는 노드롭에서 돈을 보내오지 않아서 받지 못했습니다.

이민하에 대한 인정신문에서 :

"  ...... 피의자는 그 무렵 노드롭사로부터 동양관광주식회사로 2백만불이 왔다 하더라고 그 돈은 계획서에 의한 노드롭사 직원들의 여행 티켓발행에 사용하는 돈은 아니었지요."
" 예, 그렇습니다. 서류정리만 티켓으로 정리하고 사실은 판촉자금으로 인출하여 사용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돈이 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  ......신광수, 강세희 등이 피고인을 찾아와서 F-20 전투기의 대 한국 판매가 이루어지면 연간 수백 명의 노드롭 직원들이 한국을 방문하게 될 것이므로 동양관광주식회사로 하여금 항공표를 판매할 수 있도록 하면, 1인당 왕복 2천불씩 1천명 분만 판매해도 2백만불이 된다고 하면서 동 금액 정도를 선지급해 달라고 요청해 보자고 하여 동양고속 김덕기 사장이 계획서를 만들어 신광수에게 전해준 사실이 있었지요."
" 예, 그렇습니다."
" 그러나 박종규의 사망 후에 여러 사람들의 말을 종합하여 본 결과 신광수는 동 계획서를 노드롭 측에 전달하지도 않았고 곧바로 소위 팔래스호텔(Palace Hotel) 합작투자를 명분으로 6백25만불의 F-20 판촉자금을 요청하였던 것을 알게 되었지요."
" 예, 그렇습니다."

  신광수가 2백만불의 판촉자금을 받기 위한 계획서를 전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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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전달했는데 노드롭 측과 협의하여 동 계획을 묵살했는 지는 알 수 없으나, 아무튼 박종규는 신광수와 밀착하게 되고 신광수는 이민하와 강세희를 따돌리고 다른 방법으로 노드롭 측과 판촉자금에 관한 문제를 비밀리에 협의하기 시작하였다.
  한편 거의 같은 시기에 이민하는 호텔합작투자 사업을 제안하기 위해 찰스 김을 협상대리인으로 노드롭에 파견한다. 찰스 김은 누구이며, 이민하와는 어떤 관계인가.
  이 두사람은 충남 천안출신의 동향인으로서 선후배 관계이며, 찰스 김은 한국외국어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1968년에 미국 루즈벨트대학원에 유학하여 1972년 졸업한 후 시카고에 소재한 웰트 인터내셔날(Welt International)이라는 회사에서 경영자문역으로 근무하다가, 1978년에 인트랙사(Intrac Corporation)를 설립하여 전문 용역사업을 하고 있다. 그는 삼성그룹 소유의 동방프라자를 신출할 때 설계용역을 맡아 거금의 커미션을 챙겨 파문을 일으킨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고 이병철 회장 생존시에 각별한 총애를 받기도 했다는 것이다. 왜소해 보이는 작은 체구이지만 두뇌회전이 빠르고 매우 영리하다는 것이 그를 아는 사람들의 평이다.
  이민하와는 1977년 말경부터 프랑스 소피텔(Sopitel)호텔 그룹과 합작투자로 서울에 호텔건설을 추진하기 위해 한불합작회사인 동창개발주식회사를 설립하여83년에 정부당국으로부터 합작투자 승인을 얻었으나, 특급호텔 '소피텔서울'을 건축하기 위한 서울 마포의 동양고속 정비공장부지가 은행에 근저당설정이 되어 있는 등 자금사정으로 계획추진이 중단되고 있는 실정이었다. 바로 이러한 중단된 호텔 프로젝트를 노드롭 측에 소개하고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이민하는 찰스 김을 은밀히 노드롭에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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냈다.  찰스 김은 84년 3월 29일 이민하로부터 노드롭사의 부사장 도널드 폴즈 앞에서 보내는 소개편지를 지참하고 로스앤젤리스에 있는 노드롭 본사를 방문하였다.
  그는 폴즈에게 모든 자료를 제시하고 동 프로젝트에 대한 브리핑을 한 결과, 그후로 2, 3차례에 걸쳐 프랑스 소피텔그룹의 중역들과 함께 노드롭을 다시 방문하여 상담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84년 5월 18일자 찰스 김은 노드롭으로부터 그가 제시한 호텔사업계획에 투자할 의향이 있다는 서신을 받았으나 그후에는 찰스 김이나 이민하에게는 알려지지 않는 이유로 상담은 중단되고 호텔투자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불과 한달 동안에 찰스 김이 수차례에 걸쳐 프랑스 소피텔그룹의 중역들과 노드롭을 방문하여 상담한 결과 투자유치에 대한 긍정적인 대답을 받았냈다는 것은 대단한 성과인데 어째서 이렇다 할 이유도 없이 투자계획이 중단되어을까.
  이민하는 강세희가 판촉자금을 기다리고 한편으로는 찰스 김이 호텔합작투자 유치를 위해 동분서주했던 이 시기에 신광수는 박종규와 노드롭을 오가며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84년 5월 초 어느날 동경 나리따공항 프린스호텔 5층에는 박종규와 강오현이 묵고 있었다. 이들은 서독 뮌헨에서 열렸던 세계사격연맹(World Shooting Federation) 이사회에 참석하고 돌아오는 길에 일본에 들려 동 호텔에 투숙한 것이다. 그 당시 박종규는 세계사격연맹 제2부회장이었고 강오현은 부회장의 보좌관으로 수행했었다.
  이때 박종규와는 이미 약속이 되어있던 신광수가 제임스 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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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사장과 함께 박종규가 투숙하고 있는 객실에 나타났고, 강오현은 그들이 만나는 목적이 무엇인 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박종규의 소개로 도어시 부사장과는 첫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그러나 신광수와는 월남전 당시 업무관계로 이미 구면이고 이 자리에서는 우연히 만난 처지가 된 것이었다.
  박종규는 강오현에게 노드롭과 동양고속의 판매대리점 계약에 대해 설명을 간단히 해주었고 강오현은 박종규의 권유로 함께 동석한 자리에서 회의가 시작되었다.
  박종규 측에서 먼저 판촉자금으로 5백만불 정도가 필요하다고 하면서 소피텔호텔건에 대해 언급했다.

" 미스터 도어시, 노드롭 측에서 빨리 투자결정을 해주면 그 그대금 중에서 우리가 필요한 판촉비용을 사용할 수 있지 않겠소."
" 미스터 박, 소피텔호텔 프로젝트는 프랑스 회사가 개입된 3국 간의 합작투자가 됩니다. 따라서 동양고속에 투자금이 송금된다 할지라도 판촉비로 사용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리고 판촉비로 미리 지급한다면 이는 미국 내 법상 문제가 있고, 잘못하면 스캔들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소피텔호텔 계획은 보류하고 새로운 5백만불 짜리 사업계획서를 작성해서 제출해 주시면 제가 빠른 시일 내에 본사의 결재를 받아 내겠습니다."
  이 자리에서 제임스 도어시는 박종규에게 판촉자금을 마련해 주겠다는 확약을 하는 대신 소피텔호텔 프로젝트는 3국 간의 합작투자인만큼 투자금을 판촉비로 전용하기에는 기술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박종규도 이해하고 도어시와 신광수의 의견을 따랐다. 회의 중 상기와 같은 대화의 내용으로 보아 박종규 역시 이민하와 함께 소피텔호텔 합작투자 계획에 기대를 하고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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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알 수 있다.

  노드롭으로부터 소피텔호텔 합작투자에 관심이 있다는 서신을 이민하가 받을 무렵인 5월 중순경 동경의 록번기에 있는 C. C. C터미널 사무실에서 박종규는 강오현을 대동하고 노드롭 측과 비밀담판을 하게 되는데 노드롭 측에서는 도어시 부사장과 신광수, 그리고 수석부사장 웰코 개쉬가 참석하여 판촉자금 조달을 위한 방법을 결정짓게 된다.
  신광수가 86년도 12월 1일자로 노드롭의 존스 회장에게 보낸 서한에 의하면 상기 회의가 열린 시기를 1984년 3월이라고 진술하고 있는데 그것은 관계자들의 진술과 사건의 진행과정을 검토해보면 신광수가 시기를 잘못 짚은 것이 분명하다.
  84년 4월에 이민하가 박종규와 상의하여 소피텔호텔 합작투자계획안을 노드롭 측에 제시하기까지는 아시아문화관광개발이 참여하는 호텔계획안은 논의된 것도 없었다. 소피텔호텔 계획이 무산된 후에 아시아문화관광개발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광수의 서한에는 강오현이 동 회의에 참석했다는 언급은 없고 강오현이가 검찰에서 행한 진술에는 참석자가 상기 5인이다. 장소도 신광수는 동경의 록번기에 있는 C. C. C터미널이 아니고 프린스호텔이라고 서신에 밝히고 있으나, 동 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은 강오현의 진술이나 신광수의 서면에서 주장하는 내용이 거의 일치하고 있다. 신광수는 84년 3월에 프린스호텔에서 제임스 도어시와 웰코 개쉬, 박종규, 신광수 등 4인이 참석하여 그 자리에서 판촉자금 수수에 관한 방법이 결정된 것으로 증언했으나, 강오현은 84년 5월 초순과 중순에 각기 다른 장소에서 두차례의 회합을 가졌다는 진술을 하고 있다.
  이 부분에 관한 강오현의 검찰에서 밝힌 진술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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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4년 5월 중순경 동경 록번기에 있는 C. C. C터미널 사무실에서 재차 상기 4인(박종규, 도어시, 신광수, 강오현)과 미국 노드롭사 수석부사장 개쉬가 추가로 참석하여 회의를 가졌다. C. C. C터미널은 사무실과 구락부, 개인주거를 겸한 건물인 바, 박종규가 노드롭사와 아시아문화관광개발의 합작으로 이와같은 건물을 건축하는 것이 어떻냐고 제안하자 노드롭사 측은 좋은 반응을 표시하였다.
 
신광수가 그의 서한에서 밝힌 이 부분의 스토리는 꽤 구체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이 회의에서 박종규는 도어시와 개쉬에게 5백만불의 판촉자금을 요구하였습니다. 도어시와 개쉬는 판매계약에 따라서 동양 측에는 판촉자금을 설정해줄 수 없지만 대체 방안이 마련된다면 그들은 그 방안을 실천하는데 협력하겠다고 하자, 박종규는 판촉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1. 아시아문화관광개발(ACTD)은 한국법인으로서 한국 내에 대지를 소유하고 있으며, 동 법인은 박종규와 그의 가족들이 전적으로 소유하고 있다.
2. 아시아문화관광개발과 노드롭은 고급호텔과 부대시설을 개발건설하기 위한 계약을 체결하고, 아시아문화관광개발은 대지를 제공하고 노드롭은 미화 6백25만불을 제공한다.
3. 노드롭이 제공한 자금은 판촉비용으로 전용한다.

  상기와 같은 회합이 있은 후 소피텔호텔 계획안은 자취를 감추었고, 84년 6월 1일경 건물 평면도(강오현의 진술에 의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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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C. C터미널 축소판 정도라고 함)와 함께 박종규를 노드롭 회장의 고문으로 추대해 달라는 서신이 신광수를 통하여 도어시 부사장에게 전달되었다.
  강오현의 진술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1984년 6월 중순경 노드롭사가 5백만불을 투자하는 내용의 건물건립 계획서가 1부는 도어시 부사장에게, 1부는 신광수에게 전달 되었다. 동 계획서는 박종규의 지시에 의하여 마명덕이 작성, 전달하였다. 그후 그 계획서는 신광수가 스스로 비용을 들여 거대한 호텔건립 계획서로 둔갑되어 노드롭 본사에 전달, 제출되었다. 계획으로 변경되어 신청인을 본인으로 하고 사인이 되어 있었다. 본인은 놀라서 이 사실을 박종규에게 보고하였으나 내용이 변경된것은 없었습니다.

  강오현의 진술대로라면 신광수가 제임스 도어시와 박종규 사이에서 사전협의로 당초 계획을 확대조정하였고, 모종의 계략이 추가되었으리라는 짐작은 어렵지 않다.
  그때까지도 강오현은 아시아문화관광개발의 주주도 아니었고 어떤 직책을 가지고 업무를 수행할 입장도 아니었는데, 본인과는 계획진행과정에서 사전협의나 양해도 없이 강오현의 위조서명으로 계획서가 노드롭에 제출되었다는 것은 선뜻 이해가 되지않는 부분이다. 강오현이 영어해독을 잘 못하는 처지인 것은 사실이나 그 자신도 별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동경에서 두 차례에 걸쳐 비밀회합에 참여한 것으로 보아 적어도 박종규와는 앞으로의 사업에 동참한다는 협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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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종규가 그를 들러리 인물로 내세웠다 하더라도 그 명분이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바로 이것을 뒷바침하는 것이 강오현가 1984년 7월 10일자로 등기상 아시아문화관광개발의 대표이사로 취임했다는 사실과 그때부터 노드롭과 박종규 사이에는 6백25만불의 판촉자금을 조달하는 작업이 신광수를 통하여 비밀리에 일사천리로 진행되어간다. 이 과정에서 박종규는 신광수와 밀착이 되어 있었고 신광수는 이민하와 찰스 김, 강세희 등을 철저하게 따돌려 버렸다. 노드롭과 관련된 이권문제에서 만은 박종규의 주변인물들이 신광수에 의해 거의 완벽하게 차단됨으로써 박종규 사후에 일어난 상호 적대감에 의한 후유증이 더 심각했는 지도 모른다.
  강오현은 누구이며, 박종규와는 어떤 관계인가.
  그는 헌병장교출신으로 보명 30사단 헌병부장, 15CID대장, 중앙정보부 수사분실장 및 수사과장을 거쳐 주일대사관 1등서기관을 마지막으로 공직생활을 끝낸 군출신 인물이다. 박종규와는 군에 있을 때부터 아는 사이였으나, 두 사람이 공사간에 가까워진 것은 강오현이 주일대사관 근무시절 박종규가 일본에 오면 그의 안내를 맡고서부터이다. 박종규가 대통령 경호실장을 사입하고 한가한 세월을 보낼 때 두 사람은 한동네에 살면서 자주 만나 친분이 두터워지기 시작했다.
  1976년 한국에서 세계사격선수권대회를 개최할 때 참가국 유치를 위해 두 사람은 자주 해외출장도 했고, 당시 박종규는 세계사격연맹 부회장으로, 강오현은 부회장의 보좌관으로 함께 업무를 수행해 왔다. 박종규가 강오현을 F-20 전투기 판촉에 보안상 간판인물로 끌어들인 것은 어느 일면으로는 이민하의 경우와 같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강오현은 노드롭과의 거래에서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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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광수, 이민하, 강세희 등과는 위상이 다를 뿐더러 그의 우직한 성품 내지는 자존심 때문에 노드롭과 관련된 이권에서는 일과성의 단역을 해낼 수밖에 없었다.
  신광수에 의해 제출된 호텔사업 계획서를 접수한 노드롭의 재무담당 부사장 윌리암 맥거(William G, Mcgagh)는 1984년 7월 6일자로 아시아문화관광개발의 강오현 대표이사에게 다음과 같은 확인서한을 발송하였다.

 

친애하는 강사장님
  본 서한으로서 노드롭사는 한국에서 자사의 본부사무실 용도로서 서울 팔래스호텔의 1층을 전용으로 임대할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구체적인 계약에 의하여 동 호텔의 자산으로 미화 6백25만불을 투자할 것을 확인하는 바입니다. 부사장 도널드 폴즈와 데이비드 웨일 (David Weil, Assistant General Counsel)이 한국으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으며, 상기인들은 84년 7월 13일부터 이와같은 목적의 업무를 위해 머물게 될것입니다.
  노드롭과 한국 측 법률고문이 이와같은 계획을 상세히 검토한후 쌍방은 관련계약을 체결해야 할 것입니다.
                                                                                                                                                            윌리암 맥거의 서명

 

 1984년 7월 13일 노드롭의 부사장 도널드 폴즈와 사내변호사(House Lawyer) 데이비드 웨일이 서울에 도착하여 하이얏트호텔에 있는 노드롭의 서울 사무소에서 '아시아문화관광개발'과 노드롭의 자회사인 '노드롭 벤추라 시스템사'(Northrop Ventura System, Inc. 후에 Northrop Korea Investment, Inc.로 상호변경)간에 호텔건립을 위한 합작투자 계약을 체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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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약체결 당시 노드롭사 측에서는 상기 2인과 아시아문화관광개발에서는 강오현과 변호사 S모 그리고 마명덕이 참석하였고, 폴즈는 노드롭을 대표하여, 강오현은 아시아문화관광개발과 동사의 주주들을 대표하여 동 계약서에 각각 서명하였다.
  물론 판촉로비자금을 수수하기 위해 양자간에 이루어진 동 계약서는 요식행위는 갖추었을 망정 훗날 말썽이 일어나자 그내용 자체도 관계자들의 부정한 행위 못지않게 상식적으로나 법률적으로나 결함투성이의 한낱 서류 쪼가리에 불과했다.
  그러나 노드롭으로서는 훗날 중재심판이나 법적투쟁에서 6백25만불은 로비자금이 아닌 호텔투자대금이라고 주장하고 반환청구를 할 수 있는 근거서류가 되지만, 6백25만불의 지급절차와 과정이 계약의 목적에 비추어 국제적 관계 및 법률적 상식과는 동떨어져 있기에 그들의 주장은 정당성을 확보하는데 있어서 오히려 의혹만을 짙게 할 뿐이었다.

   1984년 7월 25일 박종규는 국제올림픽위원으로서 그의 부인 이종원과 함께 로스앤젤리스에서 개최되는 올림픽 참관을 위해 출국하였고, 신광수, 마명덕 등도 로스앤젤리스에서 박종규와 합류했다.
  베벌리 힐튼호텔에서 박종규와 신광수는 노드롭의 수석부사장 웰코 개쉬와 계약담당 부사장 도널드 폴즈 등과 수시로 회합을 가지면서 호텔합작투자 계획을 근거로 판촉자금의 조달을 서두르기 시작했다.
  1984년 7월 31일자로 아시아문화관광개발 대표이사 강오현의 명의로 동사의 주주들을 대리하여 6백25만불의 지급을 서면으로 요청하는데 그 당시 강오현은 로스앤젤리스에 있지도 않았고 노드롭 측과 상기 자금의 지급을 협의한 신광수가 지급요청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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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을 한 것이다.

 

친애하는 폴즈
   본 서한은 1984년 7월 13일자로 주주인 강오현, 박경환, 이종원, 박준석, 박준홍과 노드롭 벤추라 시스템(NVSI)사 간에 체결된 합작투자 계약에 관련된 것입니다.
  동 합작투자 계약의 D항에 의거하여 주주들은 노드롭 벤추라 시스템사가 미화 6백25만불을 한국외환은행 홍콩지점에 아시아문화관광개발(대표 : 강오현) 명의로 개설되어 있는 구좌로 입금시켜 줄 것을 요청하는 바입니다.
                                                                                                                                                                 주주를 대리하여
                                                                                                                                                                      강오현의 서명

  동 지급요청서에는 부사장 도널드 폴즈가 확인 동의한다는 서명이 되어있다.
  주주로 나타나 있는 박준석과 박준홍은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박종규의 아들이다.
  지급요청서에는 한국외환은행 홍콩지점에 개설되어 있는 아시아문화관광개발 명의의 구좌로 입금시켜 달라고 했으나 실제 박종규는 상기의 구좌를 개설해 놓고 있지도 않았다.
  그는 아시아문화관광개발 대신 한국외환은행 홍콩지점에 김미리라는 젊은 여인의 이름으로 구좌번호 KC34201을 이용하도록 노드롭 측에 지시한 것이다. 이것은 박종규가 판촉자금을 수수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비밀리에 개설해 놓은 구좌인지 아니면 김미리라는 여인의 구좌를 이용만 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김미리라는 젊은 아가씨는 박종규의 지시에 따라 착실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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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무를 수행했다.
  1984년 8월 3일 도널드 폴즈는 노드롭의 사내 지급요청서에서 6백25만불을 뉴욕 체이스 맨하턴은행에 있는 노드롭 벤추라 시스템의 구좌(구좌번호 910-2-515476)로 전입을 요청하는데 사유는 아래와 같다.

 

금액 : $6,250,000

사유 : 동 자금의 선지금은 NVSI가 한국법인 아시아문화관광개발 (주)의 액면가 1천원의 보통주식 45만주를 구매하기 위한것임. 동 주식구매는 1984년 7월 18일 노드롭 이사회의 결의에 의해 승인된 바와 같이 NVSI와 ACTD 간에 1984년 7월 13일자로 체결된 합작투자 계약에 의한 것임.

 

  위와같은 도널드 폴즈의 자금 전입요청에 대해 재무담당 부사장 윌리암 맥거가 승인 서명을 하였다.
  같은 날 도널드 폴즈는 노드롭 벤추라 시스템의 명의로 아시아문화관광개발의 한국외환은행 홍콩지점 구좌에 상기 자금을 전입시키기 위한 요청서에 승인서명을 함으로써 노드롭 사내의 지급결재는 끝났다. 1984년 8월 9일 도널드 폴즈는 강오현 아시아문화관광개발의 대표 앞으로 6백25만불이 1984년 8월 8일 수요일에 한국외환은행 홍콩지점에 개설된 아시아문화관광개발 구좌에 입금되었다는 확인 통보를 서면으로 전달하였다.
  한편 이와같은 판촉자금 지급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노드롭의 사내변호사 데이비드 웨일은 서울의 변호사 (Lss & Ko)에게 합작투자 계약을 검토하고 법률자문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서울의 변호사는 1984년 8월 1일 데이비드 웨일에게 보낸 텔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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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신에서 훗날 노드롭 측에 불리한 근거자료만 제시하고 말았다.
  그 내용의 주요 골자만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외국인 투자대금은 실질적으로 한국 내에 도입되어야 하며 국외에 있는 한국계 은행의 지점에 예치되는 것은 투자대금의 한국 내 반입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둘째, 아시아문화관광개발이 노드롭의 투자대금 6백25만불에 상응하는 투자로 제공하기로 한 서울 성동구 옥수동 480-8에 위치한 대지와 건물은 서울신탁은행에 3억원(US$375,000)의 근저당 설정이 되어 있고 감정가격은 1억3천3백만원(US$167,055)정도라는 것이었다.
  합작투자 계약의 13항을 보면 아시아문화관광개발이 소유한 상기 대지는 미화 6백25만불에 상응한다는 것을 주주들이 보증한다고 되어 있다. 만약 호텔합작투자 계약이 진정한 것이라면 상기 두가지 사실만 가지고도 노드롭은 결정적인 실수를 범한셈이다. 어쩌면 노드롭은 계산된 고의적인 실수를 범하고 있었는 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데이비드 웨일이 상기와 같은 사실을 도널드 폴즈에게 사전보고를 했으나 전하는 바에 의하면 데이비드 웨일은 수석부사장 웰코개쉬로부터 지시도 하지 않은 일을 임의로 했다는 이유로 힐책을 받고 그 일에서 손을 뗐다는 것이었다.
  박종규와 신광수, 웰코 개쉬와 도널드 폴즈가 6백25만불을 노드롭으로부터 인출해 내는 그 시기에 강오현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그의 진술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6백25만불을 노드롭으로부터 받기 이전에 84년 8월 1일에 미국 로스앤젤리스에서 개최 중이던 올림픽에 참석 중 박종규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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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튼호텔로 오라는 연락을 받고, 박종규를 만났는데 그날 저녁 박종규가 저에게 일본에 있는 재일교포 고지마에게 급히 전화를 하라고 하여...... 다음 날인 8월 2일 아침에 박종규의 방에서 일본의 고지마와 전화 통화를 시켜주었고, 그 통화에서 박종규가 돈이 급히 필요하니 10만불만 구해서 보내달라하니 고지마도 알았다며 보내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 다음날인 8월3일에 박종규는 국제올림픽위원에 임명되었고, 박종규는 그 사실을 8월1일에 미리 알고 돈이 필요하여 고지마에게 연락을 하는 것 같았으며, 그 돈으로 박종규는 IOC위원들에게 접대도 하고 올림픽선수들과 조직위원회에 찬조하면서 사용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올림픽이 8월 14일에 끝났는데 폐막식도 보지 않고 8월 10일에 노드롭으로부터 송금을 받았다며 급히홍콩으로 가자고 하여......

  그러나 이때 강오현의 심정은 이틀 전 노드롭이 6백25만불을 홍콩으로 송금하던날 밤 신광수로부터 모욕적인 행패를 당한 것 때문에 여전히 뒤틀려 있었다. 그는 박종규와 신광수 사이에서 얼간이가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8월 8일 수요일 오후에 호텔로 박종규를 찾아온 토마스 존스 회장이 박종규와 한국정부 고위인사까지 함께 담소하는 자리에서 홍콩으로 송금이 완료되었다는 사실을 구두로 통보한 것이다.
  박종규는 의외로 요구한 돈이 빨리 지급되었다는 사실에 반갑기도 했지만 그가 놀란 것은 단둘이 있는 자리도 아닌데 존스 회장이 스스럼없이 얘기를 해버렸다는 점이다. 존스 회장이 돌아간 다음 함께 배석했던 고위인사가 '형님 그게 무슨 돈이냐'고 박종규에게 묻자 그는 내심 당황하며 그저 그런게 있다고 적당히 얼버무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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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박종규는 노드롭 측의 신중하지 못한 태도에 몹시 불쾌하여 객실로 신광수를 불러 들였다. 사실 따지고보면 신광수는 노드롭게 고용된 직원인 것이다. 그래서 박종규는 노드롭측에 경고하는 의미로 신광수에게 화풀이를 해댔다.
  " 광수, 노드롭에서 홍콩으로 송금을 했다는데......"
  " 회장님, 연락받으셨습니까?"
하고 신광수는 안색이 돌변하며 기분이 들뜨기 시작하는 순간 박종규로부터 호된 질책이 떨어졌다.
  " 도대체 노드롭사람들은 일처리를 어떻게 그 따위로 해! 돈이 나왔으면 나왔지 O장관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그런 말을 하면 어쩌란 말이야. 존스 그 놈의 영감 정신이 있어 없어."
하고 박종규는 관계자들의 이름을 거명하며 신광수에게 일처리가 신중하지 못하다고 성깔을 부리고 있었으나 신광수에게는 돈이 홍콩으로 송금이 되었다는 사실만이 중요하고 반가웠을 뿐 박종규의 힐책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당연히 그는 자기 몫을 챙겨야 한다는 황홀한 생각에 깊이 빠져 있었다.
   신광수는 노드롭 측에 박종규의 경고를 전하고 다시는 그런 실수가 없도록 하겠다고 몇 번이고 머리를 조아리고 밖으로 나왔다.
  이런 일이 있은 후 박종규가 강오현을 불러 6백25만불 중 신광수에게 수고비 명분의 배당금 지급을 놓고 상의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일어난 것이었다. 박종규가 강오현에게 의견을 구하자 강오현은 국제적인 거래의 관례를 들어 5% 정도의 수수료조로 35만불을 신광수에게 지불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주장했다. 박종규는 이 뜻을 받아들여 다시 신광수에게 35만불의 지급결정을 통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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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이 금액에 만족할 신광수가 아니었다. 박종규의 결정과 신광수의 평소 생각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박종규로부터 위와같은 결정을 통보받고 일단 자리에서 물러나온 신광수는 그날 저녁 술을 거나하게 마신 후 강오현을 호텔로비로 불러냈다. 강오현을 불러낸 신광수의 입에서 다짜고짜 거친 육두문자부터 쏟아져 나왔다. 옛날 같으면 강오현이 누구였는데 감히 신광수가 욕지거리에 삿대질을 하며 덤벼드는 것인가.
" 강오현, 야, 씨발놈아-. 니가 뭔데 박회장한테 수수료를 5%줘라, 3%줘라 하는거야. 내가 시시하게 그 정도 커미션에 떨어질 놈으로 보여. 그 돈 누구 때문에 나온 돈이냐. 니가 받아낸 돈이냐. 좆같이 노네. 이건 어디까지나 내가 정치해서 받아낸 돈이다 이거야."
  강오현은 기가 딱 질려 버렸다. 연력적으로도 7, 8년이나 아래인 신광수가 반말에 욕지거리까지 하며 대들고 있었다. 대꾸할 자신도 없이 그 자리를 모면 해야겠다는 생각에 급급했다.
" 처음에 5백만불로 타협했다고 6백25만불까지 받아낸건 내 수완이다 이거야. 그런데 그 차액인 1백25만불 마저도 못 내놓겠다 이거야. 그리고 그 돈 나혼자 먹는거 아니야. 알았어?"
" 좋아, 신광수. 나는 관계하지 않을테니 박회장과 직접 얘기하라구."
" 그래 좋아. 진작 그럴 것이지."
  신광수는 단숨에 박종규의 객실로 올라갔다. 그때 박종규는 부인 이종원과 함께 있었다. 신광수는 거침없이 불만을 털어 놓았다.
" 회장님, 저에게 35만불만 준다는 건 다시 생각해 주셔야 겠습니다. 그 돈 누구 때문에 5백만불로 얘기된 것이 6백25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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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나 나왔습니까. 회장님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1백25만불을 저에게 준다고 해서 저 혼자 먹는 돈 아닙니다. 개쉬, 폴즈, 도어시, 그런 사람들과 제가 애써서 나온 돈이란 말입니다. 그 돈 킥 백하도록 약속이 되어있다 이 말씀입니다."
  박종규는 신광수의 얘기를 듣고 보니 과히 틀린 것만은 아닌것 같았다. 신광수의 의견대로 처리하는 것이 노드롭의 관련간부들과 유대를 돈독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도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리고 의외로 신속하게 지금 지급을 처리해준 것은 신광수의 말대로 킥 백을 기대하고 협조해준 결과일 것이라는 짐작이 충분했다.
" 좋아. 알았으니까 나가 있어."
  박종규로부터 이 말을 들은 신광수는 깍듯이 허리를 굽혀 고맙다는 말을 남긴 채 황황히 밖으로 나왔다.

  강오현은 84년 8월 10일 박종규 부부와 함께 로스앤젤리스를 떠나기 직전 박종규로부터 홍콩으로 직행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 강사장, 나는 이대로 곧장 서울로 돌아갈테니 홍콩으로 직행하시오. 팬암(PAN-AM)이 도착하는 시간에 김미리가 비행장에 나와서 기다릴 겁니다. 6백25만불 짜리 수표 한 장을 주면 받아가지고 서울로 돌아오시오."
  마치 공작원이나 첩보원들이 접선하는 것 같은 지시를 하고 박종규는 서울로 떠났고, 강오현이 홍콩에 도착한 것은 현지 시간 밤 9시경이었다.
  박종규의 말대로 김미리라는 젊은 아가씨가 공항에 마중을 나와 기다리고 있었고 그녀의 안내를 받아 강오현은 샹그리라호텔에 투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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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날 아침 9시경 본인이 투숙한 샹그리라호텔로 김미리가 왔습니다. 커피숍에서 기다린다고 하여 가보니 그녀의 말이 어젯밤 마명덕으로붜 박종규의 지시라고 하면서 그 돈을 본인(강오현)에게 주지말고, 그냥 홍콩에서 보관하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하면서 아저씨는 아무 연락 받지 못했냐고 반문하는 것이었습니다.

  강오현은 박종규로부터 받은 지시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 되고보니 이 사실을 확인하고자 서울에 국제전화를 몇 차례나 해보았지만 박종규가 부재중이라서 통화를 할 수가 없었다. 그는 당초 지시받은 대로 이행하겠다는 생각에 김미리에게 수표를 만들어 오라고 하자 그녀는 통장을 내보이며 이것을 가지고 가라고 했다.

  통장을 분실하면 재발급이 가능하므로 김미리와 같이 외환은행 지점에 가서 새로운 통장 늑 아시아문화관광개발 강오현(구좌번호 KC-733-07) 앞으로 6백25만불 전액을 입금시키고 인출용지 5매를 받아서 한국으로 귀국하였습니다.
  서울에 도착 즉시 박종규의 자택을 방문하여 그 통장과 인출용지에 사인한 것 5매를 건네주니, 왜 홍콩에 두고 오라고 했는데 가지고 왔느냐고 하기에 이제 22세 밖에 안된 아이에게 어떻게 대금을 보관시키느냐고 반박하였습니다.

  이상 강오현의 진술을 통해 보더라도 문제의 6백25만불은 당초 아시아문화관광개발의 은행 구좌로 전입된 것이 아닐 뿐더러 동 구좌도 강오현이 임시변통으로 안전을 위해 구좌를 개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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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은 것이다.
  그러면 22살된 김미리라는 아가씨는 누구인가.
  그녀는 홍콩에 있는 '이화원'이라고 하는 한국식당 주인의 딸로서 주인인 그녀의 어머니와 박종규는 상당한 친분이 있었던 것으로만 알려져 있다. 그러나 6백25만불이라는 거금을 보관시킬 만한 관계라면 비밀유지를 위해서도 신임을 주고 받을 수있는 사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6백25만불이나 되는 거액의 돈이 한국도, 미국도 아닌 제3의 장소인 홍콩에 그것도 더욱이 어떤 제한된 조건도 없이 인출해 낼 수 있는 개인명의의 구좌에 입금되었다는 사실 자체 만으로도 이 돈은 계약상의 명분과는 전혀 다른 용도라는 심증을 굳히게 하고 있다.
  박종규가 몇 년만 더 살다가 죽었어도 아무런 말썽없이 영원히 베일에 가려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노드롭과 박종규는 마치 바람난 과부와 외간 남자가 남의 이목을 피해 야밤삼경에 밀회를 즐기는 형상이었다. 노드롭이 그런 과부의 꼴이요, 박종규는 외간 남자의 입장이었다면 박종규 사후에 뚜쟁이 격인 거간꾼들이 과부에게 손가락질하고, 과부는 겁탈을 당했다고 변명을 하고 법석을 떠는 해프닝이 벌어진 것이다.
  1984년 8월 25일 아침, 박종규는 강오현에게 전화를 걸어 내일 아침 홍콩으로 출장 갈 준비를 하라고 지시하고 아침 9시 비행기이니 일찍 공항에서 만나자고 했다.
  박종규의 지시대로 강오현이 출장준비를 하고 김포공항에 나가자 박종규 부부, 신광수 부부 그리고 마명덕이가 나타났다. 일행 여섯 명이 같은 비행기에 동승하여 홍콩에 도착하였고 구룡(Kowloon)에 있는 페닌술라(Peninsula)호텔에 투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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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7일이 공휴일이라 박종규는 은행에서 돈을 찾지 못하고 다음날 28일에 외환은행 홍콩지점에서 6백25만불 전액을 인출하게 된다.

 

......28일 아침에 박종규가 자기방으로 오라고 해서 가보니 마명덕과 같이 있으면서 미스터 마에게 지시하였으니 같이 외환은행 홍콩지점에 가서 마명덕이가 행하는 일에 입회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호텔 자동차로 갔다가 그 차를 대기시킨 후 그 차를 타고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렇듯 박종규는 돈을 인출하는 과정에서도 만반의 대비를 하고 빈틈없이 처리했다.
  강오현과 함께 은행에 들린 마명덕은 박종규의 사전 지시대로 6백25만불을 인출하여, 보증수표를 만들기도 하고 타은행에 송금도 했다.

 

급 내 역

금  액

박종규의 개인구좌에 입금

이민하 앞으로 보증수표 1매

신광수 앞으로 보증수표 1매

여행자수표

현금

여행자수표 제작수수료

US$3,000,000
US$2,000,000

US$1,000,000

US$   150,000

US$     98,500

US$       1,500

합  계

US$6,250,000

  3백만불은 싱가포르에 있는 마린 미드랜드(Marine Midland) 은행의 박종규 개인구좌에 송금하고, 2백만불은 보증수표 1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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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수취인을 이민하의 명의로 발행 받았으며, 1백만불 짜리 보증수표는 신광수의 명의로 발행받은 다음 15만불은 여행자수표로, 잔금 10만불 중 9만8천5백불은 형금으로 인출하고 1천5백불은 여행자수표 제작수수료로 지불되었다.
  1백만불 짜리 보증수표는 당일 박종규가 호텔에서 신광수에게 직접 교부하고 이민하 앞으로 된 2백만불 보증수표와 여행자수표 및 현금은 박종규 자신이 챙겼다.

...... 이상과 같이 6백25만불을 처리하고 통장과 현금 및 1백만불 수표, 2백만불 수표, 15만불 여행자수표를 큰 은행봉투에 넣어서 마명덕이 직접 호텔방에서 박종규에게 전달하였습니다.
...... 그 인출 방법도 마명덕이 박종규로부터 지시를 받아서 처리하였으며, 은행에서 마명덕이가 하는 말이 저를 못믿어서 자기를 본인에게 붙여 주었다고 해서 박종규와 욕설을 하면서 싸움을 한 사실이 있는데 그 당시에 왜 수표를 구분하여 끊어오라고 했는지 물어 볼 수가 없는 형편이었고 그후...... 박종규와 싸움을 하고 다음 날인 8월 29일에 아무 말없이 서울에 오려고 공항으로 갔는데 마명덕이가 급히 가방을 들고 따라와서 저와같이 일본을 경유하여 가자고 하였습니다. 같이 일본에 도착하여 나리따공항을 나오는데 검사대에서 마명덕의 가방에 미화 현금이 많이 들어있는 것을 보았고......

  나리따공항을 빠져나온 강오현과 마명덕은 함께 프린스호텔에 투숙하였고 마명덕이 강오현에게 고지마의 연락처를 아느냐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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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명덕은 박종규가 고지마에게 돈을 빌렸는데 그 돈을 갚으라면서 9만2천불을 주어서 가지고 왔다는 것이었다. 강오현은 박종규가 로스앤젤리스에서 국제전화로 고지마에게 부탁하여 10만불을 빌려쓴 사실을 기억하며, 고지마가 경영하는 식당으로 전화하여 마명덕과 고지마를 만나게 해주었다. 그 돈은 강오현이가 보는 앞에서 고지마에게 전해졌다.
  박종규는 이미 홍콩에서 국제올림픽위원장인 사마란치에게 인사차라는 명분으로 부인과 함께 스페인으로 떠나 버렸다. 그러나 마명덕은 일본에서 박종규를 만나 함께 귀국하겠다며 남아있었고 강오현은 서울로 돌아온 것이다.
  박종규로부터 1백만불 보증수표를 받던 날 신광수는 박종규의 호텔방에서 나와 일단 종적을 감추었다. 한국외환은행 홍콩지점에서 돌아온 마명덕은 박종규에게 인출해온 현금 및 수표를 건네주고 호텔 로비에서 기다리는 있는 신광수 부부에게 찾아갔다. 그는 먼저 신광수에게는 지갑을, 장모 마리 앤에게는 휴대용 계산기를 선물로 사주고 나서 신광수에게 박종규의 호텔방으로 올라가 보라고 했다.
  신광수의 부인 마리 앤은 1백만불을 받는다는 기대감에 기분이 구름처럼 들떠 있었다. 왜냐하면 신광수와 수년 전에 재혼하여 신광수의 사업 뒷바라지를 한답시고 40여만불이나 손실을 보았고, 그 중에는 남의 빚도 수월치 않았다. 이런 차제에 남편 신광수가 1백만불을 받아 챙긴다면 최소한 빚은 갚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사위인 마명덕 역시 공감이었다. 그래서 마명덕은 장모에게 그동안 사업적 손실의 정산을 해보라는 의미에서 계산기를 선물로 사준 것이다. 그런데 박종규로부터 1백만불 보증수표를 받은 신광수는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고 나타나질 않았다. 오후가 되고 밤이 되어도 연락도 없이 어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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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하는지 기다리는 사람들을 은근히 초조하게 만들었다. 그는 한밤중이 지나서 넉살좋게 덜렁거리며 호텔로 돌아왔다.
  신광수는 박종규에게 수표를 받아쥐자 즉시 은행으로 가서 1백만불 중 90만불은 하와이에 있는 여동생 준에게 송금을 해버렸고, 8만불은 자신이 챙기고, 2만불을 가져와 그의 처에게 내놓으며 쇼핑을 하라고했다. 이때부터 이들 부부는 만난지 몇년이 안되어 이별연습을 시작하게 되었는 지도 모른다.
  신광수는 노드롭의 관련간부들 즉 자신의 보스격인 몇몇 인물들을 엮어매어 좌지우지하는 데는 천재적인 수완을 발휘했다. 하지만 박종규 사후에 6백25만불의 판촉자금이 문제가 되자 그는 1백만불을 보관하고 있다가 박종규에게 돌려준 것처럼 가짜 영수증을 만드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말았다. 이래서 천재와 바보는 종이 한장 차이라고 했을까.
  84년 9월 초 스페인 방문을 마치고 귀국길에 오른 박종규는 일본에 들려 나리따공항의 힐튼호텔에 머물면서 서울의 이민하에게 전화로 연락하여 즉시 동경으로 오라고 했다.
  다음날 이민하는 동경으로 건너가 박종규가 투숙하고 있던 힐튼호텔 6층 객실에서 미화 2백만불 짜리 보증수표 1매를 받았다. 그 자리에는 이민하의 처제인 박종규의 부인 이종원이도 함께 있었다. 이 부분과 관련하여 이민하가 검찰의 피의자 신문조서에서 밝힌 진술을 먼저 검토해보면 다음과 같다.

  " 그러면 박종규가 2백만불 짜리 보증수표를 주면서 어떠한 말을 하였는 지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말해 보시오."
  " ...... 프린스호텔에서 박종규가 저에게 2백만불을 주면서 하는 말이 노드롭에서 3국 간에 소피텔호텔을 건축하는 문제에는 관여하지 않기로 하고, 별도로 박종규가 계획하고 있는 서울 팔래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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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을 옥수동에 특급호텔로 건축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자금으로 노드롭으로부터 돈을 받았는데 그중 1백만불은 신광수에게 주었고, 또 25만불은 아시아문화관광개발의 대표이사로 있던 강오현에게 처리하도록 하였고, 2백만불은 저에게 주면서 가지고 있으라고 하여 받았던 것입니다. 그 받은 돈은 박종규가 사주로 있던 주식회사 아시아문화관광개발 구좌로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 그러면 박종규는 노드롭으로부터 얼마를 받았다고 하던가요."
" 그 말은 하지 않고 노드롭으로부터 받은 돈 중에서 1백만불은 신광수에게 주었고, 25만불은 강오현에게 주었으며, 2백만불은 저에게 보관하라면서 주었습니다."
"피의자 강세희 등과 같이 노드롭사로부터 전투기 판촉자금으로 동양고속 구좌로 돈을 받기로 한 사실을 박종규도 알고 있었지요."
" 예, 알고 있습니다."
" 그런데 그 무렵 피의자는 강세희 등과 같이 판촉자금으로 노드롭사에 선급금을 요구하였는데 돈은 오지 않고, 또 그 사실을 알고 있던 박종규가 노드롭사로부터 이와같은 돈을 받아 그중 1백만불은 신광수에게 주었다고 하였습니다. 신광수는 전투기 도입에 관련한 사람들에게 돈을 주었다고 했는데 그 돈은 전투기 판촉자금으로 노드롭사로부터 받은 것이고, 또 노드롭사에서는 대외부패방지법 때문에 판촉비 명목으로는 돈을 지급 할 수가 없기 때문에 동양고속 구좌를 이용하여 돈을 보내왔던 것입니다. 같은 방법으로써 그 돈도 서류처리는 여행사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정리만하고 실제로는 전투기 판촉비로 사용하는 것이고, 또 박종규가 노드롭사와 합작으로 서울 팔래스호텔 건축자금으로 돈을 받았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으로써 피의자가 노드롭과 추진하던 소피텔호텔 합작추진도 주계약인 전투기 판매가 이루어져야 그에 부수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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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드롭에서 상쇄계획인 오프셋 프로그램으로 합작에 관여하겠다는 것으로 당시는, 아직 전투기 판매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박종규가 노드롭과 서울 팔래스호텔 합작설립자금으로 돈을 받았다고 해서 그 말을 그대로 믿었다는 말인가요."
 " 예, 사실 박종규가 저에게는 서울 팔래스호텔 합작자금으로 돈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 돈은 전투기 판매촉진 활동을 위한 자금으로 받은 것입니다."
" 그리고 그 돈은 박종규가 피의자에게 보관하고 있으라고 하고 그 돈을 주었다는 것은 이치가 맞지 않는데 어떤가요."
" 아닙니다. 그렇게 하고 주었습니다."
" 그러면 피의자와 강세희 등이 노드롭사에 전투기 판촉자금으로 돈을 요구하기 전에 박종규도 정부당국자들에게 판촉활동을 하였는지요."
" 물론 하였지요."
" 박종규가 당시 노드롭사로부터 판촉비로 받은 돈은 미화 6백25만불이고, 그 돈은 피의자와 강세희 등이 모르고 있는 사이에 신광수와 같이 노드롭사로부터 돈을 받았다면 피의자들이 계획하여 추진 중에 있던 것을 박종규가 난데없이 서울 팔래스호텔 합작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노드롭사로부터 6백25만불을 받았던 것이죠. 또 그 중에서 1백만불이라는 돈은 신광수에게 주고, 25만불은 돈을 받은 창구역할을 한 강오현에게 주었다고 하고, 피의자에게도 2백만불을 준 것은 피의자가 강세희 등과 상의하여 발의한 선급금을 박종규가 가로챈 형식으로 노드롭으로부터 받아 그 돈 중에서 2백만불을 피의자에게 준 것은 피의자가 쓰라고 주었던 것이지 피의자에게 보관하고 있으라고 주었다는 것은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 것 같은데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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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 그 돈은 박종규가 저에게 주었다고 볼 수 있는데 저는 박종규가 평소에도 동양고속에 와서 자기 회사인 것처럼 돈을 함부로 가져가고......"
" 박종규가 그 6백25만불을 받아 그중 1백만불은 신광수에게 주고, 25만불은 강오현에게 주고, 남은 5백만불은 외환은행 홍콩지점에서 찾을 때 3백만불은 박종규가 수취인으로 하여 발행 받았고 2백만불은 피의자가 수취인으로 하여 발행받아 피의자에게 주었던 것으로써 그 돈은 인출할 때부터 피의자에게 주려고 수취인을 피의자로 했던 것이지, 피의자에게 보관하여 두고 박종규가 쓸 돈이라면 피의자를 일본으로 부르지도 않았을 것이고, 또 노드롭사로부터 받은 돈 중에서 1백만불은 신광수에게 주고 25만불은 강오현에게 주었다고 말하고 피의자에게 맡겨둔 것은 아니지 않는가요."
" 예, 제가 박종규로부터 외화를 받은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저에게 주었다고 해도 틀림 것은 아닙니다."
" 피의자는 그후 앞서 피의자와 같이 노드롭사에 선급금을 요구하였던 강세희 등에게 돈을 받은 사실을 말하여 준 사실이 있는가요."
" 한 사실이 없습니다."
" 왜 하지 않았는가요."
" 박종규가 그 돈을 주면서 돈 받은 사실을 보안해 달라고 하여 말하지 않았습니다."
" 그런것이 아니고 당시 판촉활동을 하면서 선급금을 기다리고 있던 강세희 등에게 알리면 피의자와 박종규 등이 분배할 돈이 적어지기 때문에 말하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요."
" 그런 이유도 있었지만 박종규가 보안해 달라고 해서 말하지 않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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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니다. 또 신광수에게 1백만불을 준 것은 아직 납품도 되지 않았기 때문에 돈을 줄 수가 없었는데 1백만불을 주었던 사실 등이 있어서 말하지 않았습니다."
" 피의자는 2백만불을 받아서 어떻게 사용했는가요."
" 예, 2백만불을 받던 날 바로 동경 시내에 있는 동경은행 구룡지점에 개설되어 있던 저의 구좌에 입금하여 두었습니다. 그리고 2백만불 중 1백만불은 박종규가 죽기 전인 1985년 10월경 제가 전부터 알고 지냈고, 또 박종규도 알고 있던 일본의 환차장사인 '아오끼'를......"

  이와같이 1984년 8월 8일 노드롭으로부터 한국외환은행 홍콩지점에 송금된 6백25만불은 김미리라는 22세의 아가씨 명의로 입금된지 20일 만인 동년 8월 28일에 박종규, 신광수, 이민하에게 분배되었다. 박종규는 관계된 인물들에게 보안을 유지하도록 함구령을 내렸다.
  이 비밀은 박종규가 1985년 12월 3일 새벽 3시경 서울대부속 간암으로 사망하기까지 그런 대로 보안이 유지되었으나, 그가 죽으지 24시간도 되지않아 그 비밀은 시한폭탄이 되어 강세희 등 관계자들에게 누설되고 노드롭스캔들은 베일에 가려 진 채 비리의 수렁으로 점점 빠져 들어가게 된다. 사건 자체로 본다면 박종규의 사망은 노드롭스캔들의 1막이 끝남과 동시에 제2막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박종규와 이민하 그들은 서로 필요악적인 존재였는 지도 모른다. 그들은 서로 동서간이라는 인간관계이면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적인 갈등을 느끼면서 이권관계만은 어쩔 수 없이 숙명적인 인연으로 끈끈하게 유지해야만 했다.
  이민하는 서울공대 재학 중 한국동란으로 육군종합학교에 이교하여 육군중위로 군에 복무하다가 전역하였으며, 서울공대 전기과를 졸업한 후 한국원자력원에 기좌로 입단하여 공직생활을 시작하였다. 1965년에 서울대 행정대학원을 졸업하고, 이사관급인 원자력 연구관을 지낸 다음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의 기획관리부장 및 이사직에 있다가 1969년에 의원면직하였다.
  이 무렵 벌써 그는 처제인 이종원이가 박종규의 후처가 되어 박종규와는 동서지간이었고,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경호책임자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해온 동서와 처제의 가족사업과 이권에 깊이 개입하고 관리인이자 동업자로서 그의 사회적 위상이 크게 달라진 것이었다. 평생 공직자 생활이나 하다가 정년퇴직하리라고 마음먹었을 그가 동서 박종규와 처제 이종원의 힘으로 함께 동양고속을 설립하여 사장자리에 취임하면서 젊은 사업가로서 변신을 했다.
  이때가 1969년, 그의 나이 불과 37세였다. 돈과 권력의 맛에 도취한 그는 박종규와 20여 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영욕을 함께 나누었다. 그의 측근에서 그와 사업적 관계를 가졌던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그는 지산의 은닉도피는 말할 것도 없고, 양반이나 선비같은 그의 외모나 처신 못지않게 속은 음흉하고 간교하며 욕심이 대단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러한 그의 성품과 인간됨이 그의 하늘 같은 존재였던 박종규가 사망함으로써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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