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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타이거 샤크의 거간꾼들

Views 598 Votes 0 2016.01.05 20:5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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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거간꾼들.jpg

 

F-20 Tiger Shark's People

 

 

 

In the April of 1983,
Northrop dispatched James K. Shin,
a front-man for the lobbying activity to work out
the marketing promotion of F-20 to Seoul, Korea.
James K. Shin(Korean name : Shin, Kwang Soo)
shows up with the marketing project of 2.7billion dollar's
sales volume and 55million dollar's commission
including 3.0 billion dollar's construction project.
He has been tied up with Park,
Chon Kyu(Nick name : Pistol Park),
and thus, the lobbying team was made up of.....

 

 

 


타이거 샤크의 거간꾼들

 

 

 

미국의 노드롭(Northrop Corporation)사는 1939년 잭 노드롭(Jack Northrop)에 의해 설립된 전투기 및 미사일 전문생산 군수업체로서 2차대전의 와중에서 전투기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을 대비하고 사업계획을 추진했으나 50년대 말까지도 미국 내의 유수한 군수산업체의 서열에 끼이지는 못했다. 이미 기존의 막강한 록히드(Rockheed), 맥도널 더글러스(Mcdonell Douglas), 제너럴 다이내믹(General Dynemic) 등과 같은 군수산업 재벌들에 밀려 상기와 같은 유수한 업체들로부터 하청을 받는 것으로 경영을 유지해 오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러나 1960년 스탠포드공대 출신으로 야심가였던 40대의 젋은 기업가인 토마스 존스(Thomas V. Jones)가 회사를 인수하면서 노드롭은 경영의 활성화와 도약의 기반을 다지기 시작했다. 현재 노드롭의 회장인 토마스 존스는 회사를 인수하자마자 치열한 군수산업의 경쟁에 도전했고, 그런 사업의 일환으로 개발해낸 전투기종이 F-5로서 한국에서도 주력기종으로 도입 또는 기술합작으로 생산해낸 프림덤 파이터(Freed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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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ighter)이다. 그러나 노드롭이 F-5를 생산해 냈을 당시 미공군은 F-5이글, F-4팬텀, F-14톰캐트 등을 주력기로 선정하여 월남전에 배치했고 실전의 성능을 테스트 중이었기 때문에 F-5와 같은 경량급 전투기는 미공군당국으로부터 외면 당했다. 그러나 미국시장에서는 외면을 당했으나 추진국 수출용으로 F-5를 개발한 노드롭사의 전략은 대성공을 거둠으로써 미국 내의 군수산업 분야에서 지위를 확보하게 되었다.
  F-는 한국, 유럽 및 제3세계 국가에 1천5백대 이상을 판매하여 전투기 판매 사상 경이로운 기록을 세운 것이다. 그후 노드롭은 70년대 후반 카터 행정부의 FX계획에 따라 신형기종 개발에 참여하여 F-20 타이거 샤크를 내놓았으나, 미공군은 제너럴 다이내믹사가 개발한 F-16을 잠재적인 주력기로 선정함으로써 노드롭은 다시 한번 미국시장에서 외면당한 셈이 되었다. 그 당시 토마스 존스 회장은 카터 행정부로부터 어떤 이유로 소외되고 있었다고 알려졌으나 존스 회장은 F-20에 대한 개발의 집념을 포기하지 않고 F-5의 경우처럼 해외수출시장을 겨냥한 것이다.
  미국의 방위산업체는 정부의 방위계획에 맞춰 신형무기를 개발할 경우 미정부당국으로부터 연구개발비를 지원받는 것이 관례이나, 카터 행정부로부터 외면당한 노드롭은 존스 회장의 집념으로 독자적인 개발과 판매시장 확보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레이건 행정부가 전대통령으로부터 F-20을 자가비용으로 개발 생산한다는 조건에서 승인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F-20 타이거 샤크 전투기 개발에 투자된 재원은 물경 12억불에 이른다. 이것은 미국 내 군수산업에서 무기개발 프로젝트에 기업체 단독으로 투자한 사상 최고의 금액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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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너럴 다이내믹과 노드롭의 전투기에 대한 홍보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한다면, F-16은 미국의 세계전략적 개념에 맞춰 개발되었으며 F-20이 개념적으로 개발된 전투기라면 F-16은 기능적 전투기라는 것이다. 반면 F-20은 국지전에 맞게끔 개발한 전투기종이며, F-16은 야간전투에 취약점을 갖는 대신 F-20은 최신 첨단전자장비를 갖추고 주 야간을 가리지 않고 전투능력을 수행할 수 있으므로, 국지전을 가상한 한국을 비롯한 유럽과 제3세계의 국가에서 채택할 수 있는 기종이라고 선전했다. 그러나 전문가의 의견으로는 사실상 F-20은 F-16의 기능을 8할 정도 가지고 있으며, 가격도 F-20이 1천8백만불 정도인 반면 F-16은 2천3백만불에서 2천6백만불 정도 된다는 것이다.

  제너럴 다이내믹과 노드롭의 전투기 판매를 위한 대 한국 로비활동은 1970년대 초 한국정부의 방위계획에 연루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70년대 중반까지도 제너럴 다이내믹은 전투기의 해외판매에 이렇다 할 실적이 없었다.
  1970년 한국에서는 방위계획에 따라 새로운 기종의 공군주력기 수요가 대두되었고, 1974년 한국공군의 현대화 계획에 따라 한미 양국정부는 미국으로부터 한국의 전투기 구매를 위한 정부간의 양해각서를 교환하였다. 이 양해각서에서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구매하게 될 전투기종은 제너럴 다이내믹사가 개발 중인 F-16으로 이미 선정되었으며 F-16의 대 한국 판매계획은 무난히 진척되어가고 있었다.
  한편 노드롭사도 대한항공과 기술합작으로 한국 내에서 F-5를 생산해 내면서 F-20의 대 한국 판촉으로 제너럴 다이내믹과는 불가피하게 경쟁을 하게 되었다.
  해외시장에서 제너럴 다이내믹과의 경쟁은 불가피하다 할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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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도 노드롭이 F-20을 한국에 판매하겠다고 전략을 세운 이면에는 회사의 사활을 건 중대한 동기가 있었다.
  군수산업 분야에는 널리 알려진 사실로서 한국이 외국으로부터 무기구매를 하거나 개발을 하면 후진국 특히 동남아 국가들이 한국의 방위체제를 모델케이스로 삼기 때문에 노드롭은 자사가 개발한 F-20을 한국에 우선적으로 판매함으로써 동남아는 물론 유럽 및 제3세계에 판매전략을 펴기 위한 교두보를 구축한다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노드롭이 한국시장에 뛰어들어 제너럴 다이내믹과 경쟁을 함으로써 한국 측에 유리한 점도 있었다. F-16의 한국판매에 있어서 콧대높기로 소문난 제너럴 다이내믹사의 회장이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하여 방위산업 분야의 고위관계자들을 직접 만나 로비를 하는가 하면, F-16의 가격도 대당 5백만불 내지 6백만불씩이나 인하할 것을 결정했으나 박종규를 주축으로 한 노드롭의 로비팀은 제너럴  다이내믹으로서는 대적해 내기가 어려운 상대였다.

  노드롭이 1982년에 F-20 타이거 샤크라고 명명한 최신예전투기 시제품을 3대 생산하여 시험비행을 끝내고 대 한국 판촉로비를 공식적으로 시작한 것은 다음해인 1983년 3월 15일 하와이에 거주하는 재미교포 신광수와 컨설턴트 계약을 체결하고 그를 판촉로비의 전초병으로 내세움으로써 비롯되었다. 신광수를 대 한국 판촉을 위한 로비스트로 발탁한 인물은 노드롭의 태평양 및 극동지역 판매담당 부사장인 제임스 도어시(James A. Dorsey)였다. 그는 호놀루루의 힐튼호텔에 사무실을 두고 있었다.

  신광수라는 인물이 과연 어떻게 발탁되어 그와 같은 막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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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는가 하는 사실은 가까운 관계자나 주변인물 외에는 그리 알려져 있지 않았다. 한국의 재계나 정계에서 이렇다 할 과거의 지위를 가져본 경력도 없을 뿐더러 한국에서의 최종학력은 고졸이며, 한국해병대의 하사관 출신인 그가 미국의 5대 군수재벌 회사의 최신예전투기 판매를 위한 로비스트가 되기까지 그의 인생역정도 우여곡절이 많았던 것이다. 그는 해병대에서 군복무를 마치고 사회에 진출했으나 이렇다 할 만한 직업도 가져보지 못한 처지였다. 가문도 그저 그랬고, 내놓을만한 학력도 없었고, 그렇다고 재력이 있는 집안도 아니었고, 건달기질을 다분히 지닌 그가 얻은 직장은 미8군 관광택시 운전사 자리였다고 한다. 그는 미8군에 근무하면서 PX물품을 암거래하는데 이골이 나 있었고 그 무렵 박보석과 같은 주먹건달로 이름난 인물들과도 불가분한 인연을 맺었다. 강세희와도 그가 미8군에 종사하던 시절에 사귀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훗날 신광수가 노드롭의 컨설턴트가 될 수 있었던 것도 그 당시 미8군에서 타이피스트로 근무하다가 하와이로 이민 온 그의 누이동생의 숨은 노력이 결정적이었다는 사실은 지금까지 외부에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시기적으로 그의 인생역정을 전환 시킨것은 월남전쟁이 치열하던 1960년대 후반이다. 월남전쟁은 몇몇 한국의 기업체들이 재벌로 변신하는 동기가 되었으리만치 그에게 있어서도 월남전은 중대한 의미가 있었다. 본인의 말에 의하면 그는 월남에서 미공군 납품업자(Contractor)로 활약했으며 그 당시 월남전에 참가한 많은 군계통 인사들과 교분을 갖게 되었다.
  그가 노드롭의 컨설턴트로서 판촉활동을 하며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절제없이 두루 접촉한 정계 및 재계의 인사들은 월남전 당시 친분을 맺었던 인물들이 대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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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광수는 월남에서 독자적인 사업 경륜을 쌓으며 대인관계를 통하여 이권을 챙기는 수완을 터득해 갔으며 그 자신의 미래를 가꾸었다. 그는 사이공에서 월남여인과 결혼하여 사우나를 경영하기도 했는데 그가 월남을 떠날 때 월남여인과 함께 사우나 경영으로 축재한 돈을 혼자 몽땅 챙겨 잠적했다는 추문이 있으리만치 그에게는 늘 가지가지 불명예스러운 딱지가 붙어다니기도 했다. 그러나 오누이인 여동생이 그의 대모와 같은 존재로서 늘 그의 뒤를 보살펴왔던 것이다. 여걸이라 할 만치 활동적이고 사교적인 그녀는 오빠인 신광수에게 월남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었고, 미군 군의관과 결혼한 그녀는 하와이로 이민오자 오빠 신광수를 초청하여 함께 정착한 것이다. 그들 남매는 가족사업으로 시작하여 교포사회에서 제대로 기반을 잡고 성공한 케이스에 속한다.
  신광수는 한 때 나이트클럽을 경영하면서 불법 도박장 개장이라는 혐의로 경찰에 입건되기도 하고 나이트클럽 매니저가 공원에서 변사체로 발견되는 등 골치 아픈 일도 있었지만, 재력도 상당히 축적하는 한편 한국정계의 거물급 인사들과의 교분도 유지 발전시켜갔다. 하와이가 지리적으로 미국 본토를 왕래하며 들렀다 가는 관광지가 되고보니 신광수는 이미 친분을 유지해온 한국의 정계나 재계의 인사들을 하와이에서 접촉할 자연스러운 기회를 마련할 수 있었다. 그가 박종규를 처음 만나 인연을 갖게 된 것도 바로 이곳 하와이에서였다. 1974년 8월 15일 박정희 전대통령의 부인 육영수 여사가 저격을 당해 사망한 후 박종규는 경호실장 자리에서 물러나 외유를 하며 미국, 일본 등지에서 요직의 인사들을 만나 한국정부의 막후외교의 일익을 해내고 있을 때 하와이에 들리게 되면 신광수의 후한 대접을 받기도 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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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광수는 그 자신 스스로가 나는 박종규의 '가방모찌'였다고 자랑삼아 말할 정도로 노드롭의 판촉로비에서 이들 두 사람이 한 때 깊이 밀착된 것은 주위에 다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면 신광수가 노드롭과 인연을 맺게 되는 동기는 어디에서 비롯됐는가? 역시 그의 누이동생 준(June)이 이면에서 헌신적으로 오빠를 위해 노력한 덕분이라고 한다. 그녀는 호놀루루의 힐튼호텔에서 선물용품점을 경영하면서 같은 호텔에 사무실을 두고 있는 노드롭의 부사장 제임스 도어시와 자연스럽게 교제할수 있었고, 활동적이고 매우 사교적인 그녀는 제임스 도어시와 가족과 같은 친분관계를 유지했다. 측근에서 그녀는 파티 걸이라고 할 정더로 화려하게 행동했으며 때로는 주위에서 제임스 도어시와의 교제를 오해 받기도 했다고 한다. 이들의 그러한 인간관계가 계속되는 동안 노드롭은 F-20 전투기의 대 한국 판촉을 계획하게 되었고 마침 태평양 및 극동지역 부사장 제임스 도어시는 판매로비를 담당할 적임자를 물색하자 신광수의 누이동생 준과 연결이 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신광수는 노드롭의 컨설턴트로서 연봉 10만2천불에 한국 내에 고급주택과 자가용을 제공하고 판촉경비는 물론 상당한 대우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했다. 그가 개인사업도 오랫동안 경영하여 그런 대로 치부도 해보았지만 낸호을 만한 사업체를 소유한 것도 아니었고, 대인관계가 남달리 뛰어난 면도 있었지만 그것은 인간적 또는 사교적 차원에서 보다는 주로 자신의 이권을 추구하거나 보호하는 그 나름대로 타고난 기질이면서 터득한 수완이었다. 좋게 표현하면 이재에 밝고 이권추구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처세술이 그의 신념이요, 삶의 철학이기도 했다.
  신광수가 금의환향하듯 노드롭의 컨설턴트라는 공식직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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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세워 로비의 보따리를 챙기고 한국의 전투기 구매시장을 찾아든 것은 1983년 4월부터였다. 그는 F-20의 대 한국 판촉을 위해 노드롭과 판매대리점 계약을 체결할 만한 업체를 물색했고 재계 및 정부당국의 관계인사들을 두루 접촉하기 시작했다.
  이때 그가 삼성중공업과 판매대리점 가계약을 체결하게 되는데 그 배경에는 그의 부인이 고 이병철 회장과 가까운 인간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손쉽게 상담이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녀는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둘째 딸과는 고등학교 동기동창으로 가족처럼 지내는 사이였으며, 이병철 회장은 이혼까지한 경력이 있는 딸의 친구인 그녀를 늘 동정하고 격려를아끼지 않았으며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려고 했다. 그래서 동방프라자 건물이 완공되자 그녀에게 동 건물 내의 커피숍자리를 내주기도 했다는 것이다. 들리는 후문에 의하면 이병철 회장은 그녀가 신광수와 재혼한 것을 몹시 못마땅해 하고 심지어는 이혼을 하면 생활대책은 보장해 주겠다는 말까지 할 정도였다고 한다.

  신광수가 삼성중공업과 가계약까지 체결을 해놓았으나 어찌 된 일인지 삼성 측에서는 적극성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신광수는 노드롭과 대체방안을 검토하며 대한항공 등 몇몇 업체를 전전하다가 강세희와 손을 잡고 F-20의 판촉계획을 다시 수립하게 되었는데 이때, 그들은 본 사업계획 추진에 한국 내의 최고 적임자가 박종규라는 판단을 하기에 이르렀다.
  박종규라면 신광수도 십여 년 전에 이미 교분을 가진 사이이고 더욱이 재혼한 처의 사위, 굳이 관계를 내세운다면 의붓사위가 박종규의 사업과 깊이 연관이 되어 있고 보좌역으로서 박종규의 각별한 신임을 받고 있는 처지가 아닌가. 신광수와 강세희는 박종규를 로비의 사령탑으로 내세우자는 의견을 굳히고 박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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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와의 접촉을 시도했으나 의외로 좋은 반응이 나오지 않았다. 박종규 쪽에서 선뜻 신광수를 만나주려고 하지를 않았던 것이다.
  그 무렵 박종규는 전두환정권이 들어서면서 그를 사회정화법에 의해 부정축재자로 묶어 놓았던 것을 풀어주고 새로운 임무인 올림픽개최의 중대한 일을 맡기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옥수동에 카지노를 겸한 고급 사교장인 사파리클럽을 개업한지 불과 몇개월 되지 않았고, 그 나름대로 공사간에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권력의 대부적인 존재였던 과거의 지위는 회복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자신의 위치가 격상되고 있는 터였다. 강세희의 제안으로 신광수는 박종규를 끌어들이는 데에 정면돌파를 보류하고 우회적인 방법을 선택했다.
" 신광수. 좋은 방법이 있지."
" 무슨 좋은 방법 말입니까, 형님."
" 이민하를 통해서 박회장을 움직여보면 반응이 나오겠지."
  강세희는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였다. 신광수도 강세희의 제안이 박종규를 움직이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을 간파하고 그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이민하도 돈버는 일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물이 아닌가. 그의 뒤에는 그의 처제인 박종규의 부인 이종원이가 있고 그는 그들의 사업관리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강세희라면 이민하의 자문역 같은 존재로 그를 쉽게 주무를 수 있지 않은가. 신광수와 강세희가 우회적인 방법을 선택한 전략은 적중했다.
  일단 신광수와 강세희는 동양고속회장인 이민하와 사장인 김덕기에게 손을 뻗쳤다. 강세희는 이민하와 김덕기에게 있어서 어떤 존재인가. 괄세 못할 친구이자 경북고등학교 동기동창이고, 선후배 관계일 뿐더러 강세희의 뛰어난 두뇌회전과 주먹건달의 깡다구와 독기 앞에서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감히 어느 누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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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볼 수가 없었다. 지금은 척추불구자로서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고 있을 망정 그의 뛰어난 지략과 모사는 주위에서 인정하는 터이고 거간꾼으로서의  처신이 건달기질과 잘 조화를 이룬 인물이다. 그가 학사출신의 주먹건달로서 척추불구가 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60년대 중반 30대의 젊은 나이로 미8군 군납업자 조합장을 맡고 있었다. 그 자리는 권모술수와 협잡이 그리고 남다른 배짱과 재력도 동원할 수 있어야만 지킬 수 있는 이권의 노른자위였던 것이다. 이때 그엑는 이권에 얽힌 불만세력이 조합내부에 생겨났고 그에 연루되어 그는 생사를 가름하는 총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후문에 의하면 치열한 납품업자들의 이권경쟁과 암투에서 모기관의 간부까지 동원된 상대방은 강세희를 그의 집앞에서 총격을 가했으나 천명으로 목숨을 건져 척추불구가 되었고 그후로 그의 육신의 기동선은 휠체어에 의지하게 되고 말았다.

  83년 8월경 신광수는 강세희의 주선으로 동양고속회장 이민하, 사장 김덕기와 서울 남대문로 5가에 위치한 동양고속건물 7층에 있는 이민하의 사무실에서 첫 회합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신광수는 F-20 전투기의 판매계획을 자세히 일러주었고 이민하로서는 노드롭 측의 제안에 지대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전투기 2백여 대를 한국정부에 납품하게 된다면 거액의 대리점 수수료를 챙기게 된다는 것도 관심을 갖게 했지만, 그보다는 전투기 조립공장을 설립하고 전투기 판매조건으로 얻어지는 부대적인 거래 즉 오프셋 프로그램이라는 것에 큰 관심이 쏠린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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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민하는 오프셋 프로그램(Offset Program)으로 30억불의 해외공사 수주를 알선해 준다는 조건과 전투기 생산공장 설치계획에 대한 노드롭 측의 제안에 그 나름대로의 사업적인 욕구로 발벗고 나서게 되었다. 동 회합에서 노드롭 측의 제안을 정식서면으로 작성하여 박종규에게 제출하기로 합의하였고, 신광수는 노드롭의 제임스 도어시 부사장과 상의하여 예비계획서를 만드렁 며칠 후에 임니하에게 전달하였다.
  오프셋 프로그램이라 함은 무역거래에서 말하는 바터제  즉 구상무역거래의 형태로써 국제간의 무기판매 거래에서 채택되는 상쇄거래 조건이며, 직접상쇄프로그램(Direct Offset Program)과 간접상쇄프로그램(Indirect Offset Program)으로 구분된다. 전자의 경우 수출 또는 판매업자가 해당상품을 제조생산하는 데에 수입 또는 구매자 측 또는 그의 대리인으로 하여금 원자재와 부품을 납품하는 하청형태로 구상적인 거래에 참여하게 하는 조건이다. 후자의 경우는 판매상품의 제조생산에는 관계없는 수입자 측의 상품이나 용역을 수출업자가 판매를 알선해 주거나 구매해 주는 거래조건으로서 양자는 바터 시스템(Barter System)에 속한다. 본래 이렇나 거래조건은 수출업자가 자사의 상품을 구매해 주는 측에 재정적인 지원을 한다는 의미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민하로부터 일단 구두보고를 받은 박종규는 신광수와 강세희가 노드롭을 통하여 만들어온 F-20의 판촉계획서를 직접 세심하게 검토해볼 만한 사무적인 성격의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사파리클럽 경영관리겸 자신의 보좌역으로 스카우트해온 마명덕을 당연히 불렀다.
  " 마사장. 이거 미국 노드롭에서 개발했다는 F-20이라는 전투기 판매계획서인 모양인데 검토해 봐요. 해볼 만한 사업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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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오."
하고 어느날 갑자기 박종규는 마명덕에게 판매계획서라는 것을 불쑥 내밀었다.
  마명덕으로서는 신광수가 F-20 판매로비를 위해 박종규에게  접근하려고 적극 시도한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듣고 있었지만 이렇게 박종규를 통하여 느닷없이 계획서까지 검토하라는 지시가 하달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실었다. 마명덕이가 F-20 판촉계획서를 검토하고 박종규에게 나름대로의 의견을 종합하여 보고했을 무렵 신광수는 이미 박종규와 노드롭의 부사장 제임스 도어시 간에 회합을 주선했고 박종규는 은밀히 노드롭과의 판매대리점 계약을 추진하기로 구상하고 있었다. 이로써 동 계획 추진을 위한 예비절차는 급진전 되어가기 시작했다. 박종규는 이민하를 불러 계약을 추진하라고 지시했고, 이 자리에서 이민하는 신광수와 강세희가 제시 요구한 이면계약의 내용을 박종규에게 전하자 박종규는 아직 계약도 성사가 되지 않았는데 이면계약이 선행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니 본 계약이 체결된 후에 논의할 일이라고 거절해 버렸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이면계약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신광수와 강세희는 당초부터 이민하에게 판촉계획을 설명하면서 계약이 체결되면 노드롭으로부터 F-20 전투기 판매대금에서 2%의 수수료를 지급받는다고 했고, 그중 0.5%, 즉 수수료 총액의 25%를 신광수와 강세희에게 환불해 달라는 조건이었다. 삼성중공업과 가계약을 체결할 때는 수수료를 1.5%로 했으나 동양고속과의 계약에서는 0.5% 올려줄테니 그 차액을 환불 즉 킥 백(Kick Back) 해달라고 했고, 더욱이 상쇄거래의 총금액에서 3%의 수수료를 킥 백 해달라는 것이었다. 만약 해외공사 수주 외형금액이 30억불이라면 9천만불을 커미션으로 돌려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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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이면조건이었다.
 
  박종규와 노드롭이 판매대리점 계약을 구두로 사전 합의한것이 83년 9월 하순경이었고 박종규나 신광수가 판촉활동의  정지작업을 하는데 군부 측과 고위층의 의견을 호의적으로 끌어들이는 데에는 애로도 꽤 있었다.
  경쟁관계에 있는 제너럴 다이내믹 측에서 F-20은 F-16보다 질적으로나 기능면에서 수준이 떨어지는 전투기종이라고 은근히 선전을 유포시켰고, 한편으로는 1979년도에 노드롭이 F-5EF를 한국정부에 판매할 때 고위층에만 주로 로비를 하여 한국의 청와대 측이 최종 구매결정르 하는 과정에서 군부의 권위를 무시하고 계약이 체결되었기 때문에 한국군부 측이 노드롭에 대해 불신감을 가지고 있을 뿐더러 실무급 관리들은 노드롭이 그들을 무시했다는 불만감을 노골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실정이었다.
  F-20 전투기의 대 한국 판매로비는 당초부터 로비팀의 구성멤버나 실무관계자들의 여론 등에 비추어보면 파란이 예상되고 이었던 것이 분명했다.
  노드롭이 신광수를 전위병으로 내세웠을 때 이미 그는 로스앤젤리스에 거주하고 있던 C모를 통하여 전두환 전대통령의 실제인 전경환을 로비의 사령탑으로 내세우려고 시도했으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전경환은 F-20의 판촉이권에 손을 대지 않았던 것이다.

  신광수의 주선으로 박종규와 노드롭 간의 구두합의가 있은 후 이민하에게 동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노드롭사의 방문해 달라는 통보가 전달된 것은 83년 12월 20일경이었다. 이민하는 이 사실을 박종규에게 보고하고 동양고속의 사장 김덕기, 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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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윤운상을 대동하고 83녀 12월 22일 서울을 떠나 로스앤젤리스에 있는 노드롭 본사를 방문하였다. 부사장 윤운상을 대동한 것은 통역 및 계약서 검토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박종규는 훗날 당사자 간에 발생 할지도 모르는 분규나 문제에 대비하여 전문가의 조언을 구하거나 검토를 의뢰해 보지도 않은 것이다. 아예 박종규에게는 그러한 번거로운 절차는 오히려 거추장스러웠는 지도 모른다. 무소불위의 카리스마적인 권력을 행사해 왔던 그에게는 그의 권위 그 자체가 법이었기 때문이다.
  노드롭 측에서는 수석부사장 웰코 개쉬(Welko E. Gasich)와 오프셋 거래담당 부사장 도널드 폴즈(Donald D. Foulds-Counter Trade),  태평양 및 극동지역 담당 부사장인 제임스 도어시 등 주요 임원들이 나와서 이민하와 그의 일행을 정중히 환대했다. 이민하의 일행은 노드롭으로부터 환대를 받고 다음날인 12월 23일 오후 3시경 노드롭사의 항공기사업본부(Aircraft Division) 사무실에서 판매대리점 계약서에 서며을 했다. 그러나 이때 함께 서명을 해야 할 상대방인 노드롭 측의 항공기 계약담당 부사장 조셉갤리거(Joseph T. Gallagher)가 크리스마스 휴가로 부재중이어서 동양고속을 대표하여 이민하와 그를 수행한 김덕기 사장만이 동 계약서에 서명을 했고, 다음해 84년 1월5일자로 노드롭의 계약담당 부사장이 서명을 하여 계약서를 이민하에게 보냄으로써 계약은 일단 이루어졌다.
  13페이지에 달하는 동 계약서는 전문 14개 조항으로 되어 있고 별첨 부칙에는 오프셋  프로그램에 대한 노드롭 측의 제안이 포함되어 있다. 계약기간은 1986년 12월 31일까지이며 쌍방 합의에 따라 연장할 수 있고 반면에 어느 일방의 사정에 의해 30일 전 사전 서면통보로써 동 계약을 취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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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
  중요한 부분인 판촉대행 수수료는 거래금액의 2%로써 미화 5천5백만불을 초과하지 못한다고 규정하는 한편, 별첨 서류에 전투기 판매대금은 27억불로 나타나 있다. F-20 전투기 1백50대를 구매하는 거래총액이 27억불이라면 대당가격은 1천8백만불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또 한가지 형식적이나마 중요한 부분은 판촉수수료의 선지급 규정은 없을 뿐더러 동양고속은 자가비용으로 판촉활동을 위한 용역을 제공하며 전투기 판매 후 수수료를 받았다 할지라도 거래상의 부분적인 손실이 발생했을 경우 그 액수에 비례하여 수수료도 반환하며 상쇄거래액도 차감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일단 본 계약은 체결되었고 그 다음 이민하는 신광수와 강세희를 상대로 이면계약 소위 환불(Kick Back)계약이라는 것을 체결하게 되는데 그는 몇년 후에 노드롭사건과 연루되어 검찰에서 진술한 것처럼 과연 계약에서부터 문제의 6백25만불이 노드롭에서 변칙적으로 흘러나오고 박종규가 사망할 때까지 단순히 박종규의 지시나 요구대로 들러리 역할만 했을까 하는 것이다. 참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일 뿐더러 박종규의 사후에 신광수와 강세희 등과 노드롭의 상대로서 악역을 맞았던 그의 행적을 검토해보면 당초부터 이권을 책기는데 여념이 없었던 것 같다.
  노드롭과 동양고속 간에 판매대리점 계약이 체결되자 거의 동시에 84년 1월 11일자로 신광수와 이민하 사이에 소위 기술자문협약(Technical Advisory Agreement)이라고 하는 명목으로 이면계약(Underground Contract)을 별도로 체결했다. 그 내용의 주된 골자와 목적은 이미 그들 사이에 구두로 협의된 바와 같이 동양고속 측이 노드롭으로부터 수수하게 되는 판매대리점 수수료 중에서 25%, 그리고 전투기 판매로써 이루어지는 상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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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 총액에서 3%를 기술자문 용역비라는 명분으로 신광수에게 지급한다는 약정이다.
  신광수를 상대로 동양고속을 대표하여 사장 김덕기, 회장 이민하가 서명하였고 신광수 측의 입회증인으로 강세희와 이민하측의 증인으로 부사장 윤운상이 각각 서명하였다. 판매대리점 계약상에 계정된 수수료 예상 수입금 5천5백만불로써 그 중의 25%라면 1천4백만불이고, 상쇄거래로 얻어지는 해외공사 예상 수주액만도 30억불이라면 동 금액에 대한 3%의 커미션은 9천만불에 이른는 거액이다. 노드롭의 입장에서 보면 이 계약은 한마디로 불법거래인 것이다. 왜냐하면 신광수는 엄연히 노드롭이 컨설턴트로 고용한 유급직원이며, 노드롭의 경영규칙상 그리고 대부분의 기업들이 내세우는 윤리적 경영관리면에서 이해상충에 관계되는 거래행위는 절대금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신광수가 이민하와 체결한 계약은 노드롭의 거래와 무관한 제3자와의 독립된 거래가 아니라 노드롭과의 본 거래에서 자사의 직원이 간접적인 방법으로 이권을 취득하는 행위인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이면계약 체결은 쌍방이 서명한지 불과 며칠도 되지 않아 양자간에 불신의 계기가 되고 말았다. 동 계약의 부대 조항에 의하면 이민하 측에서 계약이 체결되는 대로 미화 50만불을 신광수에게 선지급하고, 동 금액은 추후 신광수에게 지급되는 수수료 중에서 우선적으로 공제한다는 것이었는데 이민하가 이를 이행하지 않아 판촉로비의 벽두부터 두사람 사이에는 깊은 불신의 싹이 트고 눈에 보이지 않는 적대감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신광수는 자기 비위에 맞지 않으면 객기를 부리는 오기가 있고 음기응변의 처신에 능하지만 이민하는 선비같은 태도로 속마음은 접어두고 상대를 앞질러 내다보는 계략에 능한 사람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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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 주위의 평이었다
  이민하는 왜 신광수와의 계약상 맺은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면전에서 신광수가 계약서를 내던지고 모욕적인 언사를 퍼붓는데도 부처님처럼 참고 있었을까. 그 깊은 속을 그와 공사간에 밀착되어 있는 친구 강세희만이 어느정도 알고 있을 뿐 어느 누구도 감히 헤아릴 수가 없었다. '마지막에 웃는 자가 승리자'라는 말이 있다. 과연 그는 마지막에 웃을 수 있는 승리자인지 그의 깊은 마음 속에 감추어둔 성품은 동서인 박종규도, 처제인 이종원이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여기서 1988년 12월에 외국환관리법 위반혐의로 구속되었던 이민하가 노드롭과의 판매대리점 계약에 관련한 당시의 그의 입장을 내세운 검찰에서의 진술이나 법정의 인정신문을 우선 참고해 볼 필요가 있다.

  고속버스를 운영하는 회사에게 최신예전투기 판매에 관여하도록 제안한 것은 상식적으로나 능력의 면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으나 노드롭사의 목표는 동양고속이 아니고 박종규였던 것이며, 미국의 국내 규칙상 전투기 판매대리점 계약은 개인과는 할 수 없고 상대방국 회사와만 할 수 있기 때문에 동양고속을 다만 계약당사자로 등장시키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진술인은 이와같은 사실을 알고 수일 후 박종규를 만나서 그같은 경위를 설명하고 의향을 물었던 바 며칠 후 계약을 추진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1989년 3월 7일 서울형사지방법원에서 변호사의 인정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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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1월 5일 피고인이 회장으로 있던 동양고속은 노드롭과 F-20 전투기의 판매대리점 계약을 체결한 사실은 있으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형식적으로 동양고속의 명의로 되어 있을 뿐 실질적으로는 박종규와 이루어진 것이었지요."
" 예, 그렇습니다."
" 동양고속은 운수회사에 지나지 않았고, 피고인은 과거 군고위층으로서의 경력도 없었으며 정치적인 경력도 없었기 때문에 국가보안적 차원에서 결정되는 최신예전투기 판매에 대하여 어떠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입장이나 능력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요."
" 예, 그렇습니다."
" 다만 미국 노드롭사의 규칙상 개인하고는 대리점 계약을 체결할 수 없기 때문에 박종규의 직접 간접 영향 하에 있었던 동양고속을 계약당사자로 등장시킨 것에 지나지 않으며, 피고인은 당시 동양고속의 회장으로 재직하고 있었기 때문에 관계가 된 것일 뿐이지요."
" 예, 그렇습니다."
 " F-20 판매대리점 계약의 추진여부, 계약과정, 계약의 체결 등은 전부가 박종규의 의사결정에 의하여 행해졌던 것이지요."
" 예, 그렇습니다."

  이와같이 이민하는 자신의 입장을 진술한 것과는 달리 동서인 박종규가 사망하자 그의 처신은 전혀 어느 누구도 감히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선회하고 말았다. 그것은 마치 죽은 나뭇가지에서 꽃이 피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판매대리점 계약이 성립되고 박종규와 노드롭 측의 제임스 도어시, 신광수 등은 판촉로비를 위한 기본전략과 역할 분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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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립해둘 단계가 된 것이다. 그들의 역할 분담은 박종규가 고위층만을 상대로 로비활동을 전담하는 반면 신광수는 중하위급 정부관리들을 담당하는 인사들을 영입한다는 것이었다.
  이민하가 동양고속건물 12층에 판촉업무를 위해 신광수와 강세희에게 사무실을 마련해준 다음 강세희는 한국공군당국을 상대로 판촉업무를 수행할 인사로서 공군사관학교 2기생이며, 공군예비역 소장인 진치범을 스카우트하여 동양고속의 고문이라는 직함을 주었고 그는 주로 공군참모총장과 전투기 구매담당 고위 실무자들을 맡았다. 진치범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강세희와는 친구로 지내온 사이이며 85년에는 민정당 전국구의원으로 당선되어 민정당의 국책평가위원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 다음에 영입된 인물은 공군예비역 대령 허두기와 역시 공군예비역 준장 김득만이었다.
  공군사관학교 7기생인 허두기는 진치범이 김인기 공군참모총장에게 의뢰하여 추천받은 인물로 주 캐나다 한국대사관 무관과 공군정보부대장을 역임했고, 84년 9월부터 동양고속의 부장대우를 받으며 F-20 전투기 판매를 위해 공군본부 특수사업부를 주로 접촉하면서 노드롭과 공군당국 관계자들 간의 연락업무 및 안내를 맡았다.

  진치범의 후임자격으로 영입된 김득만은 공군사관학교 5기생으로 김인기 공군참모총장과는 공사 동기생이며, 공군대학 총장과 공군본부 특수사업부장(항공기사업부)을 역임한 경력이 노드롭의 F-20 판촉에 제대로 어울리는 것이었다. 그는 고등학교 후배를 통하여 강세희와 신광수를 소개받고 영입되어 당시 삼청동에 있던 박종규의 사무실에서 근무하며 전투기 판매를 위해 공군당국과 실무적 창구역할을 담당, 강세희로부터 월 2백만원씩 보수를 지급 받았으나, 후에 노드롭의 컨설턴트로 채용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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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드롭으로부터 월 3천불씩 지급받게 된다. 그가 전투기 구매담당 부서인 특수사업부장을 지냈고, 공군참모총장의 공사 동기생 친구였다는 것이 F-20 판촉계획에 있어서 필수적인 인물로 받아들여진 것 같다.

  F-20 타이거 샤크 판촉팀이 구성되고 그 업무가 개시되는 벽두부터 제임스 도어시를 통하여 노드롭의 지시를 받고 박종규를 정점으로 하는 로비팀을 오가며 연락조정업무를 수행하는 신광수는 이민하와 강세희를 따돌리는 모사를 시작하고, 노드롭과 박종규는 신광수의 계략에 따라 똑같은 목표지점에 도달하기 위한 갈림길을 선택해야만 했다. 노드롭이나 박종규가 신광수의 계략을 간파하지 못할만큼 판단력이 부족했을까. 그렇다면 노드롭의 '로비스캔들'이란 아예 만들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역설이 나올만도 한 것이다.
  노드롭이나 박종규는 다 같이 6백25만불의 판촉자금을 주고 받는데 신광수의 계책을 받아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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